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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마음은 정말 다 똑같은가보다. 셀카가 조금이라도 더 인형처럼 나오는 카메라를 찾아 온 인터넷을 뒤지고, 카메라가 앞에서는 부끄럽다며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남자친구 앞에서는 갖은 표정을 지어가며 예쁘게 찍히고 싶은 그 마음. 그게 바로 여자 마음이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을 얼른 읽어낼 줄 알아야 사랑받는다. 비싼 카메라, 좋은 렌즈 들고 가까이 있는 여자친구를 내팽개쳐두고 쭉쭉빵빵 모델들만 쫒아다니는 남자친구를 그 어느 여자가 좋아할까!



오늘은 지난 여름 탐론 70-200과 함께했던 여자친구 모델만들기 대작전, 그 두번째 편이다. SLR클럽 일면의 모델 사진들을 가르키며 자기도 이렇게 예쁜 사진좀 찍어달라며 생떼를 쓰던 여자친구, 그렇게 여차저차 쓰게된 첫번째 이야기는 정말로 SLR 사용기 일면에 걸려버렸다! 지난번 70-200 사용기가 일반적으로 인물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밝은 망원 렌즈에 대한 개괄적인 리뷰였다고 한다면, 오늘의 탐론 90 마크로와 함께할 '여자친구 모델만들기 대작전 2탄'은 마크로 렌즈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 사실 탐론 90 마크로의 인물 렌즈로써의 가능성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써보지 않은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만 마음이 놓이기 망정. 본편보다 성공하는 속편은 없다는 말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열심히 셔터를 누르며 행복했던 그 시간들, 탐론 90 마크로가 선사하는 사진들과 함께 흐뭇한 마음으로 감상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서 간단한 스펙과 함께 외형부터 보고 넘어가기로 하자. 탐론 90 마크로의 디자인은 무난하게 전형적인 탐론 렌즈군의 패밀리룩을 따르고 있다. 가벼우면서도 탄탄한 느낌의 경통 재질이라던지, 초점링 전체를 전후로 움직여서 AF/MF를 변경하는 방식등은 여타 탐론 렌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마크로 렌즈의 특성상 대물렌즈가 경통 앞에서 꽤 후퇴하여 있다는 점, 그래서 빗살무늬의 경통 내부와 후드가 도드라져 보인다는 점 정도가 눈에 띈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건 렌즈 좌측에 달려있는 잠금레버다. 뒤에서 다시한번 이야기 하겠지만 코가 앞으로 많이 나오는 마크로 렌즈의 특성상, 필요하지 않을때는 원하는 초점 영역을 제한하여 경통이 나오지 않도록 잠그는 레버다. 특히나 가까이 초점을 맞출 필요가 거의 없는 인물 촬영시에는 꽤나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기능이다.    


사실, 탐론 90 마크로를 맨 처음 손에 쥐었을땐 말 그대로 막막함 그 자체였다. 나만이 추구하는 독특한 사진 스타일이 있는것도 아니고 장비를 가리지 않는 출중한 내공이 있는것도 아니건만, 더더군다나 마크로 렌즈는 관심을 가진적도 사용해 본적도 없었다. 이 렌즈를 어디야 써야할까, 무슨 사진을 찍어야 할까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렌즈와 독대하고 있는데 문득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90'이라는 숫자였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디지털 바디를 사용기 훨씬 전에 필름 바디로 사진을 시작한터라, 수동렌즈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펜탁스 135mm 렌즈에 붙는 '그린스타'라는 이름때문이었을까, 인물 렌즈라고 하면 무의식중에 135mm에 대한 환상 같은게 있었다. 실제로 135mm는 포트레이트 사진에 자주 이용되곤 한다. 85mm, 100mm, 135mm, 200mm등 주로 인물을 찍는다고 하면 떠오르는 수많은 숫자들 중에서 135mm는 아주 멀지도, 또 아주 가깝지도 않은 그런 편안하고 친숙한 화각을 만들어준다. 그런데 탐론 90 마크로 얘기를 하다가 왠 뜸금없는 135mm 타령일까? 그건 다름아닌 1.5 크롭 화각에서 90mm는 환산 135mm가 되기 때문이다. 아직 FF 바디가 없는 펜탁스에서, 탐론 90 마크로는 그냥 135mm 단렌즈라고 생각하면 쉽다.


엄밀히 말해서 마크로 렌즈는 일반적으로 인물 사진에 불리한 조건들을 갖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너무 또렷한 화질 때문에 과도하게 묘사된 사실적인 피부톤이 사진을 망친다거나, 초점링의 피치가 너무 커서 움직이는 피사체에 포커싱이 어려운 점 등등.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론 90 마크로는 인물용으로 두루 사랑받는 렌즈 중 하나다. 거기에 환산 135mm라는 인물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화각을 지녔다는 생각을 하니 아예 마크로는 접어두고 포트레이트 렌즈로만 사용해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마음속에 들기 시작했다. 서론은 이정도로 하기로 하고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를 더 해보도록 하자.


맨 처음 여자친구 앞에 탐론 90 마크로를 가져갔을땐, 굉장히 시큰둥한 반응이였다. 그도 그럴것이 접사를 위해 설계된 렌즈 앞에서 쉬이 웃음지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말이다. 그보다도, 렌즈 자체의 성능부터 얘기하자면 마크로 렌즈답게 화질면에서 그 어떤렌즈보다 만족스러웠다. 속눈썹 한올 한올, 심지어 모근까지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선명하고 칼같은 화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부톤이 적나라하게 표현될꺼란 생각은 일치감치 버리는게 좋다. 탐론 90 마크로에 인물 렌즈로써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인물을 가장 사랑스럽게 보여주는 클로즈업 바스트샷을 잡아보았다. 위 사진은 JPG로 촬영하고 따로 컴퓨터로 옮긴후 샤픈등을 가하지 않은 그대로인데, 머리카락이나 눈썹같은 디테일이 매우 선명한걸 보면서 역시 마크로 렌즈구나 감탄하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피부톤 또한 색감이나 모든 면에서 훌륭히 묘사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모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블랙헤드가 몽글몽글 춤출것만 같았던 생각들은 모두 마크로 렌즈에 대한 부정확한 선입견에 의한 것이었을까. 이제서야 탐론 90 마크로가 인물용으로 왜 사랑받는지 알것만 같다.




하지만 그래도 마크로 렌즈라 확실히 포커싱에 있어서 만큼은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가끔 빨리 움직이는 여자친구를 뷰파인더로 보며 따라가다가 엄한테 반셔터를 눌러버리면, 지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초점링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버린다. 이렇게 된 이후에 다시 초점이 돌아오는 1초는 마치 1시간 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나마 탐론 90 마크로는 위에서 언급했던 잠금 레버가 있어서 이런 고민들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다. 물론 접사를 하거나 하게되면 레버만 딸깍 풀어주면 되니, 마치 인물용과 접사용 두 개의 렌즈를 가지고 다니는 느낌마저 든다.


탐론 90 마크로의 필터구경은 55mm다. 그동안 인물용으로 무거운 대구경 렌즈만 써와서 그런지 탐론 90 마크로는 오히려 작고 아담한 느낌마저 든다. 구경이 작다는건 곧 필터값이나 여타 악세서리 값이 비교적 저렴해진다는 뜻이므로 좋은 일이다. 또한, 접사용으로 설계된 메츠 15 링플래시등과의 궁합도한 매우 좋다. 그러나 야외에서 인물을, 그것도 전문 모델이 아닌 여자친구를 찍어줄때는 오히려 그게 약점이 될 수도 있다.  



1편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모델이 아닌 일반인들은 대부분 카메라 앞에서 쑥스럼을 타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주변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오픈 스페이스에서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기란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럴수록 더 작은 카메라와 렌즈를 사용해서 찍히는 사람에게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그 반대다. 그렇게 카메라를 숨겨서 찍는건 어디까지나 피사체가 자신이 찍히고 있다는걸 인지하지 못하는 캔디드샷의 경우에 한정된다. 지금처럼 여자친구를 일대일로 찍어준다거나 하는 경우는 일부러 큰 구경의 렌즈와 큰 카메라로 아예 스포트라이트를 받고있다는 느낌을 주는게 훨씬 효과적이다. 그래서 이 리뷰 제목도 '여자친구 모델 만들기 대작전'이 아니던가!


탐론 90 마크로는 인물용으로 좋은 렌즈임에는 분명하나, 위에서 언급한 점에 있어서는 본격적인 모델 촬영용으로 쓰기에 조금 아쉬울 수 밖에 없다. 또한 계속해서 여자친구랑 조금 떨어져서 사진을 찍다보면 자연스레 서로간의 대화가 힘들어지게 되는데, 렌즈 구경이 크면 언제 셔터가 눌리는지 렌즈를 보고도 알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실시간 의사소통이 쉬워진다. 아무리 여자친구가 계속 포즈를 잡아도 당최 남자친구가 셔터를 누르는건지, 사진을 찍긴 하는건지 알 수가 없다면... 한없이 천사같던 여자친구가 이렇게 악마로 변하는건 한순간이다!


비록 초점거리 90mm에 환산화각 135mm지만 이정도만으로도 전신 아웃포커싱은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탐론 70-200 같은 망원 렌즈에 비하면야 배경 정리에서 분명 차이가 나지만 뛰어난 선예도 덕에 공간감은 나름 훌륭한 편이다. 최대 조리개 개방치는 2.8이다. 성능에서 워낙 발군인 렌즈인지라 한 스탑만 더 밝았어도 하는 욕심마저 든다. 만약 그렇게 나왔다면 정말 마크로 렌즈계를 평정하지 않았을까하는 망상이...


최대개방 선예도는 매우 훌륭한 편이다. 주광하에서 인물 촬영이나 일반적인 접사 촬영에서 특별히 화질이 떨어진다는 느낌은 없었으며, 색수차 역시 아주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왠만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접사렌즈에게 있어서 화질저하나 색수차는 그야말로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이야기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혹은 눈보다 더 섬세하게 묘사해야하는 특성상 그런 면에 있어서는 충분히 신뢰해도 될듯하다. 그렇게 정밀하게 설계된 렌즈니 일반적인 스냅이나 인물 촬영에서는 뛰어난 화질은 두 말할 나위도 없으리라 본다.


탐론 90 마크로의 전신샷 배경정리도 나름 괜찮은 편이지만, 쭉 사용해본 소감으로는 전신보다는 바스트샷 정도가 이 렌즈의 특성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진에 너무 작게 나와버린 얼굴이나 표정은 탐론 90 마크로의 매력을 백퍼센트 발산하기에는 너무 좁은 무대다.


처음 렌즈를 손에 쥐었을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생각보다 가볍다'였었다. 정말이다. 크기도 경통을 모두 넣은 상태에서는 꽤 아담할 뿐더러, 재질까지 가벼운 느낌이 드는 소재라 원래 무게보다 더 가볍게 느껴지는것 같았다. 물론 실제 무게도 405g으로 꽤 가벼운 편이다. 펜탁스 기본 번들인 DAL 18-55와 옆에 놓고 한번 크기를 비교해보기로 했다.


길이가 조금 더 긴걸 빼고는 경통 지름도 거의 비슷해보이고 마운트 시켰을때 부담없이 손에 딱 잡히는 느낌이 참 편안하고 좋았다. 야외에서 하루종일 데이트를 겸한 올인원(?) 여자친구 모델 출사를 하게되면 자연스레 피곤해지기 마련인데, 그런면에서 생각보다 컴팩트한 크기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또한 접사를 하게되면 한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거나 오랜시간 카메라를 들고 있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이때 역시 가벼운 무게와 컴팩트한 크기로 기동력을 높여줄 수 있지 않을까.




억새축제가 끝난 바로 다음 날, 노을지는 억새밭을 배경으로 인물사진한번 찍어보겠노라고 미친듯이 뛰어서 겨우 하늘공원 정상에 도착했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기까지 남은 시간은 채 30분되 되지 않았다. 이리저리 여자친구를 들볶으며 셔터를 눌러대는데, 더 무거운 렌즈를 들고왔더라면 사진을 찍기도 전에 탈진했을지도 모른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것 같아도 장비는 확실히 가벼울수록 좋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더~







151mm는 경통이 최대 돌출되었을때 마운트부에서 렌즈 끝까지의 길이다. 평상시에는 97mm에 불과한 렌즈가 포커싱을 하다보면 거의 두배가까지 길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처럼 마크로 렌즈가 익숙치 않은 초보들은 무턱대고 접사하겠답시고 뷰파인더만 보면서 피사체에 들이대다가 튀어나오는 경통으로 피사체를 박아버리는 사고가 종종 생기곤 한다.




이렇게 해서 탐론 70-200과 함께했던 8월도, 탐론 90 마크로와 함께했던 10월의 끝자락도 모두 지나가버렸다. 좋은 렌즈 덕분이었을까, 함께하며 찍었던 사진들 모두 꽤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다. 물론, 사진을 찍는 입장에서도 탐론 90 마크로는 너무나 충성스러운, 믿음직한 동반자였다. 본문에서 구체적인 수치나 차트를 언급하여 설명하진 않았지만, 그보다 더 생생한 이야기들을 통해 충분히 렌즈에 대한 감상이 전해졌으리라 짐작해본다.

누군가에게 사진을 찍어준다는건, 선물을 주는것과 같다. 선물이라는건 원래 받는 사람보다는 주는 사람이 기분좋은 법. 선물을 받을 사람은 얼마나 기뻐할지, 표정은 또 어떨지, 어떤 말을 할지... 그런 행복한 상상을 하며 선물을 준비하는건 생각만으로도 신나는 일이다. 사진도 그렇다. 정성들여 찍어주는 사진 한 장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무엇보다 특별한 선물이 되어 소중히 간직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더 추워지기 전에 푸른 하늘 아래 투명한 가을속으로 여러분만의 대작전을 펼쳐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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