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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원 잇 썸 스페셜 미트, 라잌 어 사파리 애니멀!'

 숙소에 짐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다짜고짜 사파리 동물들을 먹고 싶다는 나를 조금은 이상하게 생각했을까. 여행을 떠나기 전 부터 케냐에 가면 꼭 신기한 고기들을 먹어보겠노라 다짐했던 터라 다른 메뉴들은 눈에 차지도 않는다. 게다가 국경을 넘어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아무것도 못 먹어서 그런지 코끼리 한마리도 통째로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스페셜 미트'를 염소 고기라고 알아 들었는지 자꾸 이상한 레스토랑을 알려주길래, 어제 사파리에서 만났던 동물들 이름을 떠올려가며 다시 천천히 설명을 했다. 코끼리, 타조, 악어, 사자... 나는 이런걸 먹어보고 싶다구!

아프리카에서 이렇게 본격적인 만찬을 즐기게 될 줄이야...


 한참을 더 설명한 끝에 드디어 주인장을 이해 시킬 수 있었다. '카니보어'라는 레스토랑에 가면 원하는 만큼 부페식으로 가져다 먹을 수 있고, 네가 원하는 여러가지 고기들이 있을거라며 예약을 당장 잡아주겠단다. 시 외곽에 위치한 레스토랑까지는 따로 또 택시를 타고 가야만 한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 지난지 오래다. 아 배고파...
 푸근한 인상 만큼이나 느릿한 손놀림으로 예약 영수증을 끊어주는 주인장과 눈을 맞춰가며 배가 많이 고프다는 신호를 계속해서 보냈다. 알아 들었다는 건지 씽긋 한번 웃고는 이내 영수증을 끊어서 나에게 쥐어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너는 왜 그런 특이한 고기들이 먹어보고 싶은거야?'

모르긴 몰라도 이곳 레스토랑을 찾는 사람들은 꽤 상류층인것 같다

 
 이웃 나라 중국 만큼은 아니어도, 우리나라는 참 다양한 식재료와 식문화를 가진 몇 안되는 나라다. 하지만 적어도 코끼리 같은 야생 동물들을 우리나라에서 '식재료'로 만나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케냐의 이웃나라인 탄자니아에서 조차 야생 동물들을 먹는건 법으로 금지가 되어있다고 하니,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르는 색다른 점심 한 끼를 말이다.

시내에서 꽤 멀리 떨어진 패밀리 레스토랑, 카니보어


 택시를 타고 20여분, 나이로비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길가에 위치한 '카니보어'레스토랑이 보인다. 그런데, 왠걸. 생각보다 너무 깨끗하고 심지어 비싸보이기 까지 한다! 처음엔 그저 야생 동물 고기를 부페식으로 먹을 수 있는 곳이라 해서 로컬 식당들 처럼 지저분하고 더럽고 할줄로만 생각했는데 이건 고급 패밀리 레스토랑에 더 가까워 보인다. 비싸면 어떻게 하지? 배도 제대로 못 채우고 나오는건 아닐까? 그냥 다시 시내로 돌아가서 싸게 먹을까?

오른쪽에 보이는 흰 깃발을 내려놓으면 서빙이 끝난다


 에잇, 어차피 여행 마지막 날이니 이 형아가 쏜다! 하고 어깨를 툭특 치며 당당하게 안으로 걸어들어 갔다. 멋진 사파리 모자와 얼룩말 무늬 유니폼을 입은 웨이터들이 유창한 영어로 자리를 안내하며 맞아준다. 자리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니 초라한 행색을 한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었다. 버스에서 먼지를 가득 뒤집어 쓰고 새까매진 옷이나, 땀이 말라서 소금이 되어버린 빛바랜 모자까지.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나이로비 시내에서 만났던 사람들보다 더 있어보이고 당당함이 넘친다. '카니보어'가 꽤 고급 레스토랑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자녀가 대학 합격했을때 가족끼리 다같이 한번 식사하러 올 정도의 레스토랑이 아니겠냐며 둘이서 껄껄대며 한참을 웃었다.



각종 드레싱과 신선한 샐러드


 본격적으로 고기가 나오기 전에 가벼운 샐러드와 빵이 함께 나온다. 음식의 맛이나 모양새가 참 고급스럽다. 내친김에 가지고온 물병은 가방 안에 넣어두고 망고주스까지 한잔 더 시켰다. 다른 식당에서는 다들 생수를 들고다니면서 먹는 풍경이 익숙했는데 이곳 사람들은 왠지 아주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물까지 시켜 먹고 있었다. 허기진 속을 샐러드로 좀 달래고 이제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고기들을 먹을 차례다.

야생 동물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곳 다운 야생 서빙(?)


  자리에서 일어나 고기를 좀 받아오려 하는데 웨이터가 먼저 다가온다. 그것도 한 손에는 커다란 꼬챙이에 고깃덩이를 끼우고서는 말이다. 알고보니 이곳에서는 따로 음식을 가져올 필요 없이 수시로 웨이터들이 돌아다니며 손님들에게 고기를 원하는 만큼씩 즉석에서 잘라 그릇에 덜어주는 방식이다. 눈 앞에서 칠면조 한마리를 통째로, 혹은 노릇노릇 익힌 갈빗대를 슥슥 썰어주는 광경이 나름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뭔가 아프리카에서 고기를 먹고 있다는 느낌이 제대로 난다고나 할까.


악어고기는 독특한 향 때문에 썩 맛이 좋지는 않았다


 고기의 종류도 참 다양하다. 칠면조, 닭다리, 닭날개, 양갈비, 소갈비, 돼지갈비... 한 조각 먹기가 무섭게 번개처럼 달려와 또 꼬챙이를 들이대며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먹으라며 권해준다. 워낙 배가 고팠던 터라 정신없이 고기를 먹어치우고 있는데, 아차! 우리가 여기에 온 목적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게 아니었다! 바로 웨이터를 불러서 좀 더 특별한 고기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사진에 보이는 노르스름한 고기가 바로 악어고기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악어 갈비' 쯤 되겠다. 약간 노린내가 나긴 하지만 식감이 쫄깃한게 나름 나쁘지는 않았다.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기억에 남는게 있다면 특이한 뼈모양 정도. 좌우로 꿈틀대며 움직이는 악어를 생각해보니 복잡하게 생긴 뼈 모양이 조금 이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덕분에 먹기는 조금 불편한 점이 있다.


오늘의 베스트 메뉴! 타조 미트볼


 이번엔 타조고기. 칠면조나 닭고기 처럼 뼈를 잡고 뜯어먹을 수 있는게 아니라 미트볼로 되어 나오는게 조금 아쉬웠지만 의외로 맛이 꽤 괜찮아서 마음에 들었다. 닭고기와 맛이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조금더 돼지나 소고기에 가깝고 쫄깃함이 더하다. 악어고기는 특유의 노린내 때문에 많이 못먹었지만 타조 미트볼은 질리지 않는 맛이다.

칠면조도 나름 나쁘진 않았다


 이번엔 칠면조 고기다.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이면 매년 먹는 흔한 요리지만 한국에서 먹어보기란 의외로 쉽지가 않다. 타조와 마찬가지로 닭고기와 비슷한 맛이지만 좀더 퍽퍽하면서도 감칠맛이 더한 듯 하다. 워낙 큰 새를 꼬챙이에 한마리 통째로 꽂아서 서빙하는 바람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카니보어의 주방


 '카니보어' 레스토랑에서는 날마다, 혹은 철마다 서빙되는 고기의 종류가 바뀐다고 한다. 운이 좋으면 코끼리나 사자같은 좀더 와일드한 동물들도 먹어보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타조와 악어를 맛보는데에 만족해야 했다. 방 전체가 커다란 화덕처럼 되어있는 주방에서는 커다란 꼬챙이와 함께 각종 고기들이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를 내며 바쁘게 구워지고 있었다.

맛있게 먹었으니 가격이야 아무렴 어때~


 그러고 보니 레스토랑에 이렇게 앉아서 서빙까지 받아가며 밥을 먹은건 아프리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계산서를 보니 둘이 합쳐서 가격이 꽤 나왔다. 다른 때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소리지만 케냐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배불리, 그것도 처음 먹어보는 악어와 타조를 메뉴로 먹었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아깝지는 않았다. 
 어느덧 시간은 네 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다시 나이로비 시내로 돌아가, 오늘 밤이 지나고 나면 다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빵빵해진 배를 문질러가며 나이로비에서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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