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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가 어디일까. 답답한 마음에 누가 내 지도를 빼았어서 손가락으로 콕 하고 찍어주는 상상도 해본다. 벌써 한 시간 째, 스톤타운 외곽 어느 길가에 서서 언제 올지 모르는 능궤 행 미니버스를 마냥 기다리는 중이다.
 오전 보다 더욱 맑아진 하늘 아래로 내 어깨를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이 참 얄밉다. 버스 정류장이라고는 하지만 변변한 그늘 조차 없는 덕분에 시원한 콜라로 더위를 식히는게 전부다. 하지만 그 전에 지루해서 먼저 지칠 노릇이다. 그렇게 한 시간 쯤 더 지났을까. 드디어 저 멀리서 조그만 봉고차가 한대 이쪽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와 멈춰선다. 한 눈에 보기에도 이미 자리가 없는 버스. 뒷 좌석 창문으로 힘겹게 내 배낭을 구겨넣고는, 이내 나 역시 배낭처럼 구겨진 채로 들이밀어 진다.



여기가 어디쯤 될까. 같은 스톤타운이지만 또 다른 표정의 거리에 서서


 스톤타운이 인도 바라나시를 쏙 빼닮았다면, 잔지바르의 북쪽 끝 능궤는 몰디브와 더 닮은 곳이다. 능귀, 눙궤, 눙기, 능궤... 야시장에서 나를 쫒아다니던 사람들이 입이 닳도록 추천하던 바로 그 해변이다. Nungwi라고 표기는 하지만 다들 말하는게 조금씩 달라서 정확히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새하얀 백사장, 에메랄드 빛으로 반짝이는 투명한 바다가 있는 그 곳. 아프리카의 몰디브라고도 불리는 능궤 해변을 향해 작은 버스는 쉬지않고 달린다. 배낭도 많고 사람은 더 많아 누가봐도 위태로워 보일것만 같은데, 운전수 어깨너머로 힐끗 계기판을 훔쳐보니 바늘은 어느새 130을 넘어가고 있었다. 군데군데 웅덩이가 파여있기도 하고, 가끔은 포장이 끊겨서 누런 흙먼지기 일기도 하는 도로사정을 잘 알기에 앞좌석 손잡이를 더욱 꼬옥 쥐었다.

바람 한번 참 시원하다


 스톤타운에서 능궤 해변까지는 버스로 두 세시간 정도 걸린다. 능궤보다 조금 못미쳐 켄드와에 잠깐 들리고는 단 한번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달리고 또 달린다. 반 쯤 열어 놓은 창문 틈으로는 먼지가 절반인 바람이 계속해서 따갑게 내 뺨을 스친다.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옆자리의 영국 부부와 친해지게 되었다. 런던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는 그는 새하얀 피부와 조금 외소한 몸집을 한 샌님같은 스타일이다. 하지만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건 큰 실례. 알고보니 벌써 케냐에서 사파리도 하고, 킬리만자로를 등반을 마친 후에 여행의 마지막을 능궤에서 편안하게 보내기 위해 가는 길이란다.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는 그의 모습이 조금은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직 남아있는 아프리카에서의 하루하루가 더욱 기대되기도 한다.



보석같이 빛나던 능궤와의 첫 만남


 앗 하고 나도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도로 옆으로 늘어선 야자수들 사이로 반짝 하고 새파란 바다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아프리카의 몰디브, 잔지바르의 보석 능궤에 도착했다. 마음같아서는 훌훌 옷을 벗어던지고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고 싶었건만, 방을 잡는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추천해주는 숙소들은 하나같이 고급 호텔에 맞먹는 어마어마한 가격. 무슨 신혼여행을 온 것도 아닌데 그렇게 비싼 방에 묵을 필요는 없었다. 그저 침대 하나, 화장실 하나면 충분한데 아무래도 해변에는 우리같이 가난한 배낭여행자를 위한 방은 없는것 같다. 눈앞에 넘실대는 푸른 바다를 두고도 발만 동동 굴러야 하니 정말 미칠 노릇이다. 차라리 그냥 스톤타운으로 돌아가 버릴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이미 머릿속 한가득 바다가 아른거린다.



낭만, 꿈, 이런 단어들을 먼저 생각나게 만드는 아름다운 해변


 휴양지를 찾아 온 서양 관광객들은 저마다 멋진 방갈로를 찾아 들어가고 결국 운전 기사와 우리만 남았다. 얼굴에 졸음이 벌써 한가득인 운전기사를 조르고 또 조른 끝에,스톤타운에서 묵었던 방 보다 더 저렴한 방갈로에 짐을 풀 수 있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방에 들어가보니 이건 길도 보통 길이 아니다. 방문을 열고 한 발짝만 나가면 하얀 모래가 사각거리며 발가락을 간지럽히고, 열 발짝만 더 나가면 푸른 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해변에 야자수 아래로는 언제라도 누울 수 있는 해먹과 그물침대가 있고 파도소리가 온 해변을 감싸 안으며 들려온다. 이 모든 풍경이, 바다와 백사장이 전부 우리만의 것이라도 된 것 마냥 웃음이 나온다.
 




인적이 드문 능궤의 해변은 조용해서 더욱 좋다


 배낭엔 따로 준비해온 수영복도, 물안경도 없었다. 짐을 내려놓자마자 옷을 벗어버리고는 달랑 팬티 차림으로 바다에 먼저 뛰어들었다. 해변은 사람이 없어서 너무나 조용하다. 가끔씩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를 빼면 마치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 혼자 들어와 있는 것 처럼 그렇게 너무나 고요하다. 복작대는 스톤타운에서 나도 모르게 지쳐버렸던 걸까.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차가운 바닷물 속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왠지 온몸이 나른해진다.
 사람들은 스노클링을 하기 위해 능궤를 많이 찾는다. 조그만 통통배를 타고 더 먼 바다에 나가 해변을 한바퀴 돌아보는 것도 꽤 괜찮아 보였지만 그보다는 해변을 걷는게 더 운치있고 좋았다. 선머슴같은 남자 둘이 이런 해변에 나와 즐기고 있자니 서로 얼굴을 보며 웃음이 먼저 나온다. 뭐 아무렴 어때. 아무도 없는 아프리카의 바다위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은 여기에 글로 다 표현 못할만큼 행복했다.

 잔지바르에서 방을 구할 때는 조금 영리해져야 한다. 사실 우리 힘만으로는 이렇게 멋진 방갈로를 싼 가격으로 구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왠지 오랜 여행의 연륜이 묻어나는 서양 여행자 둘을 따라다닌 덕분에 마침내 마음에드는 방을 구한 것이다. 모든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똑 부러지는 그녀들의 말솜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음에 드는 방을 찾았다면 먼저 가격부터 물어보기 전에 방을 보여줄 수 있냐고 물어봐야 한다. 그러면 대부분은 가장 좋은 방으로 안내한다. 마음에 드는 방일지라도 표정에서 티를 내서는 안된다. 그다음은 몇가지 필수적인 질문을 할 차례다. 전기는 들어오는지. 들어온다면 시간은 언제까지인지. 밤에도 샤워를 할 수 있는지. 모기장은 튼튼한지. 백사장에 있는 그물침대와 해먹은 자유롭게 이용해도 되는지. 아침은 제공되는지. 메뉴는 어떤식으로 나오는지. 까다로운 손님처럼 보이는게 내키지 않더라도 대충 넘어갔다가는 밤 새도록 어두운 방 안에서 모기와 싸워야 하는 고생으로 고스란히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방을 구했다면 마지막으로 가격을 물어볼 차례. 달러로 가격을 말해달라고 하고는, 1달러에 1000실링으로 계산해서 탄자니아 실링으로 지불하겠다고 하면 협상은 끝이 난다. 1달러에 1000실링으로 치고 실링으로 지불하면 달러보다 조금 더 싸게 방을 구할 수가 있다.



무슨 고기를 잡은걸까?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어느새 코 끝이 빨갛게 익어버렸다. 시원한 바다에서 놀다보니 더위 따위는 금새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수영은 그만하기로 하고 해변에 나와 그물 침대에 누웠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행복이라는게 이런걸까. 바닷가에 나와 모래장난도 치고, 고기도 잡는 사람들 보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대부분 특별한 직업이 없는 잔지바르의 젊은이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들 얼굴에는 늘 즐거움이 묻어난다.




그들의 미소에서는 언제나 여유가 한가득 느껴진다


 사람은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어디선가 전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가 미국도, 유럽도 아닌 태평양의 바누아투 라는 조그만 섬나라 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사람에 치이고, 자동차에 치이고 빽빽한 빌딩 숲 속에서 매일같이 경쟁하며 살아가는 도시의 젊은이들보다 이렇게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더 행복한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들도 나름의 고민과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말이다. 할 수만 있다면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더 많이 보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가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맑은 생각과 건강한 정신이야 말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삶의 보물과 같은 것이기에.



해변에서 맛보는 세렝게티 맥주 한잔의 추억


 어느덧 해가 어둑어둑 해 지고, 물에서 놀아서 그런지 배가 슬슬 고파온다. 다른 여행자들에게 물어보니 해변에서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아주 싼 로컬 식당들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겨우 하룻 밤 묵어가면서 이렇게 멋진 해변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사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매직아워라고 불리우는 해 질 무렵. 바다 저 멀리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백사장에 마련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랍스타를 꼭 먹고싶다며 후배 녀석이 졸라댔지만 생각보다 너무 비싼데다가, 우리가 랍스타라고 하는 얘기를 들었는지 눈 깜짝할새에 메뉴판의 가격을 쓱쓱 지우고 더 비싸게 적어놓았다. 치사해서 내가 안먹고 말지! 대신 피자와 참치 스테이크를 시키기로 했다. 근사한 식사에 맥주 한잔도 빠질 수 있을쏘냐. '세렝게티'와 '킬리만자로'를 한 병씩 시켰다. 백사장에 앉아 멋진 해변을 바라보며, 파도소리와 바다내음을 안주삼아 맥주를 한모금 들이키니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 아른거리는 석유등잔 불빛과 함께 능궤에 밤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능궤의 마사이족들은 포켓볼도 즐긴다


 아프리카 여행은 늘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을 안겨준다. 더운 날씨에 배낭을 짊어지고 내내 고생만 할 줄 알았던 우리에게 찾아온 아름다운 해변에서의 하룻밤은 마치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처럼 느껴졌다. 아프리카에서 수영을 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사는 것도 다 그렇지 않을까. 늘 생각대로만 되고, 예측할 수 있는 길로만 간다면 이런 즐거움은 절대로 맛볼 수 없으리라. 기분좋게 취해서 방으로 돌아온 우리는 침대가 아닌 백사장 위에 누웠다. 시원한 바닷가에 누워 하늘을 보니 야자수 나무 위로 쏟아질듯 별들이 한가득이다. 내일 아침이면 아름다운 능궤와도 안녕이다. 아쉽지만 그 다음날엔 드디어 꿈꿔왔던 세렝게티 사파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또 어떤 생각치 못한 즐거움들이 그곳에는 있을까. 들뜬 마음에 심장이 또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엄지손가락 만한 벌레가 내 얼굴위로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달콤하게 바람을 베게삼아 잠이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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