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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밤에 내내 잠을 설쳤다. 찐득찐득한 땀냄새가 진하게 베어있는 침대커버는 몸이 닿을 때 마다 찰싹 달라붙어 따라 올라오고, 침대를 통째로 감싸는 모기장은 어디가 뚫려있는건지 당최 제 기능을 못한다. 윙윙거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손을 휘젓다 보니 어느새 창밖이 환해지기 시작한다. 아직 전날의 피로가 풀릴리 만무하지만 한번 떠진 눈은 다시 감길 생각을 안한다. 대충 고양이 세수로 눈꼽을 떼고는 조금 이른 시간 밖으로 나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깜깜하지만 15달러인 숙소와 가격이 두배긴 해도 선풍기가 돌아가는 숙소, 그래도 첫날이니 더워서 잠을 못자는 일은 없어야 겠다고 생각해서 비싼 돈을 주고 짐을 풀었건만 밤새도록 돌아가는 발전기 소리때문에 선풍기가 돌고있는지 내가 돌고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필이면 우리 방 바로 옆에 발전기가 있을 줄이야. 가장 시끄럽고 불편한 방을 제발로 찾아온 격이다.

이른 시간이지만 벌써부터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해가 뜨자마자 새벽녘에 돌아다니는 방법은 지난 인도 여행에서 얻은 노하우다. 인도나 아프리카처럼 날씨가 더운 지방에서 무턱대고 한낯에 밖을 돌아다니다가는 제대로 구경도 하기전에 숙소에 앓아 눕기 십상이다. 걸어서 이동을 해야할 일이 있거나, 골목길을 걸으며 사람사는 구경을 하고싶다면 이른 아침이나 새벽녘이 가장 좋다. 아직 세상모르고 쿨쿨 자고있는 후배녀석은 더 재우기로 하고 벌써부터 사람들로 북적이는 골목길의 정취를 따라 혼자 걸어보기 시작한다.



칠흑같이 어두웠던 골목길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얼기설기 제멋대로 얽혀있는 전깃줄 사이로 멀건 태양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어두운 골목길을 비춘다. 인도양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인도와 잔지바르는 너무나 닮아 있었다. 차이점을 찾아보려 한다면 골목길로 소가 다니지는 않는 다는 정도. 가장 나중에 탄자니아 공화국에 편입된 영토인 만큼 아직까지 고유한 문화가 골목길 이곳저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색, 아프리카는 언제나 색이 함께해 더욱 활기차다


 지도도 없이 좁은 골목길을 여기저기 헤매다 보니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잘 가질 않는다. 저마다 집 앞에 나와 분주하게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정겹다. 빵빵거리는 자동차들과 콩나물 시루처럼 지하철에 매달린 사람들의 모습에 익숙해서 였을까. 가끔씩 지나가는 자전거의 따르릉거리는 소리 말고는 정적에 가까운 고요함에 내 귀가 오히려 멍멍해지는 느낌마저 든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 뭐가 그리도 즐거울까나


 골목길을 걸으며 찬찬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골목길에 점점 아이들이 많아진다. 머리에 흰 천을 뒤집어 쓴 여자아이들이며 푸른색 교복을 멋지게 빼입은 학생들까지 저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학교로 향한다. 잔지바르의 등굣길 풍경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바가 없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듯 학교앞 문방구에 들려 불량식품을 사먹기도 하고, 자전거에 친구를 태우고 부리나케 내 옆을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한산했던 골목길은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더욱 활기를 띄기 시작한다.


학교앞 문구점은 언제나 아이들로 북적인다


 문득 초등학교 시절 즐겨 먹던 불량식품의 달달한 맛이 떠올라 무작정 아이들이 몰려있는 가게에 들어가봤다. 빨대처럼 생긴 쏙쏙 빼먹는 사탕, 불에 구워먹으면 더욱 맛있는 쫀디기, 색소가 너무 많이 들어가 용기까지 물들어 버린 아이스크림, 그리고 숨겨두고 하나씩 까먹던 별사탕까지. 너무나 익숙한 옛 추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데 그때는 왜 그리도 맛있고 좋았었는지. 사탕하나를 쪼개서 친구에게 조금 나누어주며 생색을 내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딘가 나의 모습을 닮아 있는것 같기도 하다.

배움은 이곳에서 당연하기보다는 일종의 특권이 아닐까


 하나 더 먹어도 좋고, 못먹어도 또 어떠랴. 학교가는 마냥 즐거운 아이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아이들도 있다. 아직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안된걸까. 비슷한 또래로 보이지만 바쁘게 거리를 걸어다니는 아이들을 그저 부러운듯 쳐다보고만 앉았다. 돈이 없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다던 인도의 아이들이 생각나 왠지 마음이 쓰인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부터 입시전쟁을 치루며 지옥같은 학교생활을 한다고도 하지만 그마저도 부러워할 아이들도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어쩌면 우리는 축복받은 삶을 살고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사는건 아닐까.




익살스러운 아이들의 표정이 참 천진난만하다


 사진을 찍어줄테니 포즈를 취해달라고 말하면 이내 이렇게 익살스러운 표정들을 짓는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거부반응부터 보이는 아프리카 사람들이지만 일단 허락을 맡으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어른들에 비해 아이들은 그래도 허락을 맡기가 조금 수월한 편이지만 어르고 달래서야 겨우 한장을 찍었다. 카메라를 쥐어주고 찍힌 사진을 보여주고 나면 영락없이 이번엔 자기가 카메라를 들고 찍어보겠단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사진으로 이야기하고 눈빛으로 교감하며 아이들과 금새 친구가 된다.


아름다운 빛깔에서 싱싱함이 눈으로 먼저 느껴진다


 한바탕 아이들이 지나간 골목은 이내 치열한 삶의 무대로 변한다. 어느덧 햇살은 더욱 강해져 슬슬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하고, 물통을 가득 지고 지나가는 물장수의 셔츠에도 벌써 땀이 흥건하다. 과일과 채소들을 바리바리 들고나와 좌판을 벌이기도 한다. 칠이 다 벗겨져 짙은 회색빛에 가까운 스톤타운 골목길에서 형형 색색의 과일과 채소들은 더욱 싱그럽게만 느껴진다.

모자는 태양을 피하기 위한 그들만의 방법이다

 
 골목을 조금 더 걸어나오니 항구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 만큼이나 가지 각색의 모자들을 걸어놓고 파는 풍경도 이색적이다. 햇빛이 강렬해서 그런지 아프리카에서는 모자를 쓴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데, 하나같이 강렬한 원색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포로다니 정원은 어제와는 또 다른 표정으로 나를 반긴다


 어제 그렇게 사람들로 북적이던 '포로다니 정원'도 보이기 시작한다. 시끄럽고 정신없던 야시장이었는데 아침에 다시보니 몰라보게 또 변해 있었다. 여기가 어제 거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멀리 항구를 보니 아침부터 배를 타고 잔지바르에 들어온 사람들이 바쁘게 내리고 있다. 어제 내가 저기 저 사람들처럼 그렇게 잔지바르에 들어왔었지 하는 생각을 하고 보고있으니 내가 무슨 여기 주민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설레임과 두려움이 교차하던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며 어제의 추억에 잠시 잠겨본다.


잔지바르의 하늘은 어제보다 더욱 시리도록 파랗다


 이제 슬슬 얼굴이 따가워지기 시작한다. 새벽녘에 선선했던 공기는 어느새 완연한 여름날로 바뀌어 있었다. 골목길 구경하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걷다보니 지금쯤 잠에서 깨어났을 후배 녀석이 문득 생각났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서 방금 걸어왔던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따라 숙소로 돌아간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여행지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일찍 일어나는 만큼 남들이 보지못하는 진짜 사람사는 풍경에 더욱 가까워지고, 더 많은 친구들과 여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좋은 생각, 즐거운 고민 역시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보다는 걸으며 거리에서 더 많이 떠오르는 법이다. 그렇게 내가 걸어온 길을 다시 따라 걸으며 탄자니아에서의 두번째 날 아침을 기분좋게 반겨 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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