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한 더위에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만 간다. 물 한병 사먹을까 주위를 둘러봐도 변변한 가게조차 없는 시골길을 벌써 반나절이 넘게 달렸다. 의자시트 등받이 스펀지가 다 삮아서는 뒷자리 아저씨의 딱딱한 무릎이 내 등에 그대로 닿는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무렵에야 우데뿌르에 도착했다. 지나가는 릭샤 한대를 무작정 잡고 미리 알아두었던 게스트하우스로 가자고 말했다. 깨끗한 침대는 바라지도 않으니 그저 몸을 조금 누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 주인아저씨가 방을 안내해주며 창문을 활짝 열어주시는데 창밖으로 반짝거리는 야경이 너무 예뻤다. 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오케이를 외치고 침대해 벌러덩 드러누웠다. 잠시 누워서 생각해보니 방값을 조금 비싸게 낸 것 같기도 하다. 뭐 그래도 좋다. ..
인도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어림잡아 300여개. 어마어마한 크기와 인구 만큼 문화도 다양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하며 지나치는 수많은 도시와 사람들, 그 다양한 문화들이 모두 '인도'라는 하나의 나라로 묶여 있다는게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면 무슨 국경을 넘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괜히 가슴이 콩닥콩닥 거린다. 다음 도시는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기대하면서. 덜컹거리는 버스가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창밖으로는 계속 같은 풍경이 펼쳐지지만 잠시 버스가 멈춰 설 때마다 재빠르게 창문 밑으로 와 생수와 주전부리를 파는 아이들을 구경하는게 나름 심심하지 않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들 말고 진짜 인도 사람들이 인도를 여행한다면 어디를 갈까? 다양한..
'너 제정신이야?' 한여름 인도를 여행하면서 기어이 낙타를 타보고 말겠다는 나를 주위 사람들이 말린다. 사막은 겨울에도 태양빛이 뜨거운 곳인데 여름엔 어떨 줄 알고 무슨 고생을 하려 하느냐고 한다. 내 대답은 그냥 낙타가 타보고 싶어서였다. 아니, 멀리 인도까지와서 사막을 안보고 그냥 돌아가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튼튼한 몸이 최고의 자랑거리이자 재산인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지. 사막하면 머리속에 다들 떠올리는 이미지가 하나쯤 있지 않을까?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뜨거운 모래만이 가득한 그런 곳. 나역시 머릿속으로 그런 상상을 하면서 난생 처음보는 이상하게 생긴 동물에 몸을 맡겼다. 하지만 한시간을 가도, 두시간을 가도 어설픈 풍경이 펼쳐지는게 어째 이상하다. 생각보다 나무도 많고, ..
전 세계에서 플래그쉽(DSLR)을 취미용으로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는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난다. 어디든 유명한 여행지에 가면 으레 손이나 목에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있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이지 않을까. 최근들어서 고급 카메라의 보급이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리들, 일명 '포인트'라는게 인터넷등을 통해 널리 공유되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멋진 포인트를 찾아 삼삼오오 카메라를 들고 떠나는 일도 많아지는 것 같다. 창녕 우포늪 역시 사진찍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포인트'중 한 곳이다. 이른 아침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저녁노을이 아름답다는 이 곳. 하나쯤 멋진 사진을 찍어가길 욕심 내 볼 법도 하지만, 그런 이유보다는 '늪'에 대한 호기심이 나..
인도를 여행하기 전, 낙타는 아프리카에만 살고 사막은 사하라 사막이 전부인줄 알았었다. 동화책속에만 있는 줄 알았던 사막을 제썰메르에서 진짜로 만나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넓디넓은 인도 대륙을 한번에 모두 돌아보기란 말처럼 쉽지가 않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북부와 남부 중에서 마음에 끌리는 쪽을 찾게 된다. 수도 델리가 북부에 가까운 탓에 처음 인도를 찾은 여행자들은 자연스럽게 북부쪽을 먼저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빼놓치 않고 들러야 하는 도시가 바로 제썰메르(자이살메르)다. 16시간의 길고 긴 기차여행을 끝내고 드디어 제썰메르에 감격스런 첫 발을 내딛었다. 날씨부터가 델리와는 영 딴판이다.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등줄기를 따라 줄줄 흐르고, 고운 모래알갱이들이 섞인 사막의 모래바람이 불어와 쉬지않고 내..
기차는 오로지 철길이 놓여진 곳만을 따라 달릴 수 있다. 하지만, 철길 위에서 만큼은 그 무엇도 신경쓰지 않은 채 마음껏 달리고 또 달린다. 아직도 기차여행하면 낭만과 설레임이 먼저 떠오르는 건 그 때문일까. 낮선 나라를 여행하는 여행자의 마음 역시 기차와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놓여지지 않은 철길을 하나 하나 놓으면서 달려야 한다는것. 하지만 그렇게 작은 철길이 모이고 모여서 길고 긴 여정과 잊혀지지 않을 추억들을 만들어 내게 되고, 우리는 그것을 '여행'이라고 부른다. 기차에 오른지 어느새 12시간이 지났다. 가끔씩 긴 기적을 울리며 기차는 여전히 잘 달리고 있다. 하루에 한장씩은 꼭 그림을 그리겠다고 바로 어제 다짐했는데, 채 하루가 안되서 그 결심이 깨지게 생겼다. 기차 안에서 꼬박 하루를 보..
모기, 파리, 쥐, 거미, 바퀴벌레, 도마뱀! 이게 다 뭐냐구? 잠들기 전 침대 머리맡으로 찾아와 잘자라고 인사해주던 인도의 친구들 이름이다.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생각도 못한 곳에서 저런 녀석들이 불쑥 튀어나오는 일이 심심치 않게 있다. 그래서 인도를 처음 여행하는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게 '잠자리'인가보다. 그리 깔끔떠는 성격이 아닌 나 역시 처음엔 그랬다. 원래 뭐든지 맨 처음 시도하는게 항상 어렵듯, 처음 가보는 여행지에서의 잠자리에 대한 걱정은 여행을 망설이게 만들기까지 한다. 설마 도마뱀 까지 보게 될 줄이야 미처 몰랐지만, 깔끔하게 꾸며놓은 숙소에서 조차 쥐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나니 이 여행을 가야 하는건지 말아야 하는건지 잠깐 고민도 했었다. 제일 싼 항공권을 구입한 덕분에 한국에서 인도까..
'인도를 다녀왔다면 이제 이 지구상에서 못갈곳은 없다'.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 흔히 하는 우스갯소리중 하나다. 물론 이 지구상에 인도보다 더한 오지야 셀수도 없이 많겠지만 확실한 건 인도는 절대 만만한 여행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럽고, 불편하고, 찝찝하고, 힘들고... 인도를 여행하다보면 이런 단어가 자주 머리속에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인도에 다녀온 사람들이 다시 또 가고싶다고 말하는걸 보면 참 이상하다. 그 그리움을 참지못하고 결국 다시 비행기에 오르기도하고, 인터넷을 뒤져서 맛있는 인도요리 전문점 찾아 진한 마살라 향기로 그리움을 달래기도 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더럽게' 재미있는 나라, 그게 바로 인도다. 10억 인도인 중 한사람이 되어 빠하르간지 귀퉁이에 앉아 처음 펜을 잡았다. 내가 갔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