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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테이프 커팅과 함께 밀라노에서의 나의 공식적인 출장 업무도 모두 종료되었다. 그건 지난 며칠간 내 집 안방처럼 휘젓고 다니던 전시장을 관람객들에게 양보하고 떠나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시원섭섭한 마음도 들었지만 무사히 일을 마쳤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그보다 내 마음은 이미 출장 뒤로 붙여 써둔 일주일간의 여름휴가에 가있었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불과 몇 발자국 만에 '출장'에서 '휴가'로 나의 상태가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원래 생각했던 휴가는 이런 거였는데... (출처: Your Secret Tuscany)

 맨 처음 생각했던 건 '토스카나 렌터카 여행'이었다. 업무가 끝나는 날짜에 맞춰 여자 친구를 밀라노로 불러 함께 차를 타고 남쪽으로 토스카나의 소도시들을 여행하는 멋진 계획이었다. 하지만 둘이 휴가를 맞추어 쓰는데 실패하는 바람에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드넓은 구릉지와 포도밭, 연달아 심어진 높다란 사이프러스 나무들, 멋진 레스토랑과 고성... 이토록 낭만적인 풍경을 혼자서만 다니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다고 일주일 동안 멍하니 밀라노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남쪽의 토스카나를 포기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나의 시선은 북쪽으로 옮겨갔다. 거기엔 '알프스'가 있었다.

... 어쩐지 이런 고독한 산길이 더 어울릴것만 같았다.    

알타비아 1번에서 6번까지의 코스, 혼자 원 없이 걸어볼 요량이었다. (출처: Cicerone Press)

 전체 길이만 1000km에 이르는 알프스 산맥은 지역별로 부르는 이름이 조금씩 다르다. 그중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위치한 동부 알프스 산군을 일컫어 '돌로미티(dolomiti)'라고 한다. 최고 높이 3343m의 험준한 산악지대인 돌로미티에서는 자전거, 하이킹, 스키, 드라이빙 등 다양한 활동들을 즐길 수 있지만 그중 백미는 단연 '알타 비아(Alta Via)'라고 불리는 트래킹 코스다. '알타 비아'란 영어로 'High Route', 우리말로 '높은 길'이라는 뜻으로 작은 도시들과 산장들을 연결하는 100~200km의 루트가 1번부터 10번까지 열 개나 잘 정비되어 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보내야 하는 휴가라면 차라리 아무도 없는 산속으로 들어가 하루 종일 걷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여름 휴가지는 열개의 코스 중 가장 유명한 '알타비아 1'을 걷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밀라노에서 알타비아로 가는 여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밀라노 중앙역으로 향하는 나의 짐가방에는 출장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등산화 한 켤레와 등산배낭이 담겨 있었다. 이탈리아 반도의 서쪽 밀라노에서 동쪽 돌로미티 까지는 기차만 세 번, 무려 6시간이 걸리는 먼 여정이었다. 출장 내내 가벼운 차림으로 다니다 별안간 20kg이 넘는 캐리어를 들고뛰려니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다행히 플랫폼을 막 떠나려는 기차에 가까스로 올랐고,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기차는 덜컹거리며 동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멀어져 가는 시가지를 보고 있자니 그제야 진짜 휴가가 시작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첫 번째 기차에선 이랬던 창 밖 풍경이...

... 두 번째 기차에선 이렇게 변해있었다.

롬바르디아 평원을 서에서 동으로 유유히 가로지르는 기차는 이내 베로나(Verona)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열차를 갈아타고 북쪽 산악지대로 올라가야 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드넓은 평원을 달리고 있었는데 두 번째 기차로 갈아타기가 무섭게 창밖 풍경이 확연히 달라진다. 꽤 가파른 산세와 기암괴석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어느새 창밖 공기마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밀라노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완전히 땀에 젖어있었던 셔츠는 베로나에 도착하기도 전에 바싹 말랐지만, 어느새 나는 가방에서 카디건을 꺼내어 걸치고 있었다.

두 번째 열차를 내릴 때 즈음엔 나 말곤 아무도 없었다.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남북으로 길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지형이다. 하지만 북한에 의해 대륙으로의 연결이 원천 봉쇄된 우리나라와는 달리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등 총 4개의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육로로 국경이 이어져 있다는 건 그만큼 문화와 언어도 가깝다는 뜻일 게다. 돌로미티가 속한 이탈리아 동북쪽 지역은 이탈리아어 외에 독일어가 공용어로 함께 사용되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지역을 부르는 행정명도 언어별로 다르다. 이탈리아어로는 트렌티노-알토 아디제(Trentino-Alto Adige), 독일어로는 쥐트롤(Südtirol)이라고 부른다.

포르테차 역에서 세 번째 열차로 갈아탄다.

왼쪽 이탈리아어, 오른쪽 독일어 역명이 나란히 병기되어 있다.

 열차의 위도가 북쪽으로 조금씩 올라갈 때마다 덩달아 바뀌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역명 표지판이다. 베로나(Verona)에서만 해도 보이지 않던 독일어 역명 표기는 북쪽으로 삼십 분여를 달려 알라(Ala) 역을 지날 때부터 이탈리아어 '아래'에 병기되기 시작했다. 다시 한 시간여를 더 달려 포르테짜(Fortezza)역에 도착했을 때에는 아예 이탈리아어 역명 '옆에' 독일어 역명 'Franzensfeste'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어와 독일어 역명이 각각 있다는 사실도 신기했지만 독일어 생활권에 가까워지며 점점 높아지는 독일어의 위상을 관찰하는 것 또한 꽤 흥미로웠다.

겨우 두 량 짜리 미니열차지만 가장 새것이었던 세 번째 기차

이제는 아예 독일어 역명이 이탈리아어 역명보다 앞에 쓰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밤 여덟 시를 넘긴 시각이었지만 창 밖은 아직도 대낮같이 환하다. 돌로미티 지역의 여름철 일몰시간은 밤 아홉 시 근방이라고 했다. 산악지역이라 그런지 날씨 또한 변화무쌍해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나기를 흩뿌리던 구름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포르테짜 역에서 세 번째 열차로 갈아탔다. 돌로미티의 작은 마을들을 연결하는 이 열차는 겨우 두 량짜리 '초미니'였다. 열차는 브루니코(Brunico), 빌라바싸(Villabassa), 도비아코(Dobbiaco)를 거쳐 산칸디도(San Candido)까지 달리는 오늘의 마지막 편성이었다. 동양인이 귀한 동네라 그런지 맞은편에 앉은 젊은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이 자꾸만 나에게 향하는 것만 같았다.

장장 여섯 시간 만에 마지막 플랫폼에 도착했다.

이젠 아주 독일어 역명이 이탈리아어 역명보다 위로 올라가버렸다.

 마침내 오늘의 목적지인 도비아코(Dobbiaco)에 도착했다. 이 도시의 독일어명은 '토블라흐(Toblach)'인데 이제 역명 표지판에는 아예 독일어가 더 '위에' 쓰여 있었다. 미리 지도에서 찾아본 길을 따라 예약해둔 숙소로 향했다. 밤 열 시가 넘어 호텔에 도착한 나에게 주인아주머니는 이탈리아어 밤 인사인 '부에나 세라' 대신 독일어로 '구텐 아벤트'라고 인사를 건네셨다. 이미 마을의 모든 레스토랑들이 문을 닫은 시간이라 가방에 있던 맥주 한 병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못다 채운 허기보다는 당장 내일 아침부터 시작될 트래킹이 조금 더 걱정이었다.

밀라노에서부터 챙겨 온 맥주 한 병이 참 요긴했다.

조금 열어둔 문틈으로 시원한 밤공기가 훅 밀려들어온다.

 배낭을 꺼내어 트래킹에 필요한 짐들만 간단히 추려 담아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둘이 누워도 충분할 것 같은 널찍한 침대에 혼자 멀뚱히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출장 내내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치열한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찾아온 고독이 영 어색하기만 했다. 여행은 외로운 사람이 덜 외로워지고, 안 외로운 사람이 외로워지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나는 전자일까 후자일까. 좀처럼 오지 않는 잠에 이런저런 잡생각만 많아지는 밤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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