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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예술은 대중 앞에 내어짐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화려함의 이면엔 언제나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수많은 스태프들이 있다. 크레딧에 이름 한 줄 나올까 조마조마할지언정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그들의 노고를 어느 누가 하찮다고 여길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언제나 전시장에선 하얀 벽 이전의 모습이 더 궁금하고, 공연장에선 까만 장막 뒤편의 일들에 더 관심이 많은 나였다.

 God Knows.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와 인터뷰를 위해 뉴욕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그가 들려준 이야기다. '설마 이런 사소한 것까지 누가 알아볼까요?’라는 직원의 우문(愚問)에 거장 건축가는 '신은 알고 계신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서 스태프란 보이지 않는 곳에서조차 작은 것 하나 포기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 완성해내야만 하는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번 밀라노 전시에서의 내 모습 또한 그와 같았다. 완성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사투를 벌이던 무대 뒤편의 이야기, 신과 나만이 알고 있는 그 비밀을 여기에 살짝 털어놓아 본다.

결과적으로 전시는 성공이었지만, 여기까지 오는 길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무리한 부탁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준 분들, 함께 찍은 사진으로 고마움을 전해 본다.

발단, 일은 누가 할 것인가

 건설현장의 시공관리 요소를 일컫어 '5M'이라고 한다. 인력, 자금, 재료, 장비, 공법(Man, Money, Materials, Machine, Method)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전시장 또한 작은 규모의 건설현장과도 같으니 동일한 개념을 적용하여도 무방하리라.

 그중, 밀라노로 출발하기 전 몇 번이나 반복해서 확인했던 건 'Man(인력)'이었다. 한국에서야 급하면 인력사무실에 전화를 해도 되고, 정 안 되겠으면 친구, 선후배, 동료 죄다 동원해서 어떻게든 끝낼 수 있겠지만 여긴 이탈리아란 말이다. 특히나 이번 전시설계 내용 중에는 넓은 바닥면에 투명 필름을 붙이는 작업과, 한 평 정도 크기의 정자를 조립하는 목공 작업 등 꽤 전문적인 공종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관련 경험이 있는 '래핑(wrapping) 전문가'와 '목수'를 이탈리아 현지에서 섭외해줄 것을 요청했었다. 아니, 그럴 줄로 믿고 밀라노행 비행기에 올랐었다.

분해된 상태로 컨테이너에 실려온 정자의 모습

수 백 킬로그램의 부품들을 들고 제 자리에 올리고, 일일이 조립해야만 완성이다.

 막상 현장에 도착해보니 이야기가 영 달라져 있었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나의 요청은 애초부터 검토되지조차 않았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텅 빈 전시장에는 내가 상상했던 까무잡잡한 피부와 근육질의 이탈리아 목수 아저씨는커녕 나와 비슷한 또래의 허여멀건한 대학원생들만 몇 명이 있었을 뿐이었다. 별수 없이 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을 지휘하여 한 짝에 몇백 킬로그램이나 되는 물건들을 옮기고, 조립하며 진행해야 했다. 그나마 한국말이 통하는 사람들이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했을까.

불행 중 다행으로, 정자의 도장 보수(touch-up)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탈리아 작업자들을 만나건 정자 조립이 다 끝난 이후에서였다. 미술관측에서는 전시공사 중 미술관 바닥과 벽의 손상을 우려하여 별도의 도장팀을 고용하여 보수(touch-up)를 해준다고 했다. 아무래도 비전문가들끼리 모여 일하다 보니 까인 곳도 많고, 틀어진 부분도 있어 염치없지만 부탁을 좀 했다. 흔쾌히 수락한 고마운 작업자들은 8등신의 긴 팔다리로 슥슥 페인트를 칠해주고는 이내 사라졌다.

소쇄원 광풍각의 들어열개문 (출처: 리움미술관 / 사진: 구본창)

전개, 문은 어떻게 달 것인가

 어찌어찌해서 바닥 필름도 깔고, 정자도 제법 모습을 갖춰 세워졌다. 하지만 끝내 말썽을 부렸던 게 있었으니 바로 '들어열개문'이었다. 이는 한옥의 누각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날이 좋을 때에는 미서기 문짝을 철물로 천장에서 잡아매 실내외 공간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한국 건축의 매력적인 장치이다. 

이 문짝 하나를 못 달아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휴...

 소쇄원에서 모티프를 따온 이번 전시에서 광풍각 자리에 놓일 정자는 딱 한 평 정도의 크기로 단순화하여 설계됐는데 나름 우물마루와 소반, 한지문까지 갖춘 구성이었다. 들어열개문은 정자의 조형적 단조로움을 타파하고 전시공간에 파격을 주고자 도입한 것으로 목재 문짝을 강재 와이어와 텀버클(장력을 조절하는 철물)로 천장에 걸어 고정할 계획이었다. 전시를 보러 온 관객들이 정자에 앉아 들려진 한지문 너머로 청자를 감상하는 그야말로 '인터랙티브'한 체험이 이루어지길 기대하고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이렇게 수평으로 문짝을 고정해야 했지만...

... 번번이 실패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1923년에 지어진 이 고풍스러운 미술관의 천장에는 그 어떤 것도 달아맬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대답을 들은 것이다. 물론 벽과 바닥에 뭔가를 붙일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설계를 진행할 때부터 미리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분명 '천장'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던 말이다. 허탈했다. 미리 확인 못한 내 책임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빨리 현실을 받아들이고 대안을 모색해야만 했다.

 다른 일을 도와주러 왔던 키 큰 작업자 분들께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높이만 2m에 가까운 문짝을 천장이 아닌 다른 곳으로부터 완벽하게 수평으로 달아매는 방법은 없었다. 끝내 문짝은 달리지 못했고 퇴근시간이 다 된 작업자들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전시장에는 어색하게 매달려 있는 문짝과 나뿐이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하필 또 전시장 안이 순백의 공간이라 눈 앞도 점점 하얗게 변해만 갔다.

이대로 문을 달지 못하고 포기할 것인가?!

절정, 드라이버는 또 왜 없는가

 모든 건 내 손에 달렸다. 나사못을 수십 개 박아 넣는 한이 있더라도 비슷한 모양이나마 만들어야만 했다. 심호흡을 가다듬고 혼자 작업해보려는 찰나, 주변을 살펴보니 드라이버 하나 없이 깨끗한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요청했던 작업자만 안온게 아니라 기본적인 공구(tool) 또한 오지 않은 것이었다. 별수 없이 드라이버를 빌리기 위해 1층에 위치한 경비실로 내려갔다.

 하지만 경비실에도 드라이버는 없었다. 푸근한 인상의 경비 아저씨는 박물관 유지관리가 100% 외주로 운영되고 있어 그렇다고 했다. 아웃소싱이 대세라는 걸 뉴스에서나 들어봤었지 그 영향이 이탈리아 한복판에서 나에게까지 미칠 줄은 몰랐다. 그럼 작업팀을 한 시간만 다시 불러볼까 알아보다가 또 한 번 크게 놀랐다. 오늘은 주말이라 기본 2배, 게다가 야간시간이니 3배를 줘야 하고 한 시간만 일하고 가도 하루치 일당을 다 줘야 한다고 했다. 천 원도 안 할 드라이버 쓰기 위해서 60만 원 가까운 돈을 날릴 수는 없었다.

드라이버를(을) 구매하시겠습니까? 예(Y)/아니오(N)

 철물점에 가서 직접 드라이버를 사고기로 결심했다. 그 길로 미술관 앞 큰길로 나가 택시를 잡아 탔다. 역시나 영어를 못하시는 기사님이 살짝 느끼한 목소리로 목적지를 물었다. 그런데 철물점이 이탈리아어로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미술관 건물에서 멀어져서 그런지 와이파이조차 잡히질 않았다. driver, screw, tool... 아는 단어를 총동원하고 바디랭귀지까지 섞어봤지만 도통 감을 못 잡으시는 표정이었다. 아, 이대로 문짝은 끝내 달리지 못하고 마는 것인가!

 그때 불현듯 떠오른 잡지식이 하나 있었으니 이탈리아어랑 스페인어가 80% 이상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스페인어로 '공구'라는 뜻의 '페라미엔따(ferramienta)'를 크게 외쳤다.

철물점은 이탈리아어로 '페라멘따(ferramenta)'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기사님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하시는 나를 마법처럼 공구상 앞으로 데려다주셨다. 학생 때 조금 공부해놓은 스페인어가 이렇게 위기상황에서 나를 구하게 될 줄이야. 보쉬(Bosch) 사의 튼튼해 보이는 전동 드라이버를 구매해 미술관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해가 어둑해져 있었다.

 오늘 저녁식사는 예정대로라면 모든 전시 설치를 완벽하게 마치고 뒤풀이 겸 관계자들과 함께 하기로 되어있었다. 식사시간 직전까지 아무도 없는 전시장에서 한참을 더 혼자 낑낑거렸지만 끝내 문은 달리지 못했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함께 터덜터덜 무거운 발걸음으로 시내로 향했다.

선생님, 결국 문을 달지 못했어요...

결말, 끝내 달리지 못한 문

 약속 장소는 밀라노 구도심에 위치한 'bice'라는 레스토랑이었다. 1926년에 문을 연 곳으로 오늘의 메인 메뉴는 봉골레였다. 잠시 후, 식탁 위에는 조갯살이나 마늘 같은 일체의 건더기 없이 면만 헹궈놓은 듯한 모습의 요리가 준비됐다. 다소 심심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한 입 베어 물자 바다의 향과 올리브 오일의 고소함이 한입 가득 밀려왔다. 평생 그렇게 맛있는 봉골레는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흡입하듯 한 접시를 다 비워버릴 때쯤에서야 달지 못한 문짝이 다시금 떠올랐다. 무거운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조심스레 승선생님께 상황을 전했다.

'사실... 문을 아직 달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럼 닫힌 걸로 하지 뭐'
'네... 네?'

다음날, 전시는 예정대로 무사히 개막했고...

...들어열개문은 결국 미서기 문으로 변경되었다.

 그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홀로 전시장에 돌아와 문짝을 세워 벽에 단단히 고정했다. 어딘가 만족스럽지 못한 결말이었지만 그래도 개막일을 하루 앞두고 사건이 일단락된 것 같아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나마 위안이 된 건, 원래 들어열개문이라는게 잡아 매기 전까진 미서기문과 같은 모양이라는 사실 정도였다.

밀라노에서 못다 이룬 꿈은 광주에서야 이루어졌다.

내가 원했던 모습은 이런 것이였거든!

 여담으로, 이 비운의 들어열개문은 밀라노 전시를 마치고 돌아와 광주에서 다시 열린 귀국전에서 비로소 천장에 매달렸다. 막상 와이어를 천장에 거는 작업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채 일 분도 걸리지 않아 뚝딱 하고 들리는 문짝을 보며 밀라노에서의 갖은 노력들이 떠올라 허탈하기까지 했다. 그때 누가 내 표정을 봤다면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톰 헹크스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막 무인도에서 탈출해 마주한 파티 음식들 앞에서 자동 라이터를 말없이 껐다 켰다를 반복하는 그 장면 말이다.

어쨌거나 전시는 무사히 막을 올렸다.

저 문이 원래는 천장에 매달려야 하는 거였어요. 여러분만 아세요..

 다행히도 전시는 성황리에 개막되었다. 밀라노시장과 광주광역시장을 필두로 양 국의 각 분야 예술가들은 물론이고 얼마 전 돌아가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 1931-2019) 선생까지 유명인사들도 많이 참석해 열기를 더했다. 

 나는 멀치감치 서서 지난 나흘간의 피로를 느지막이 느껴가며 지켜보고 있었다. 스태프란 원래 그렇게 고독한 운명인 게다. 종종 외국인들이 정자에 걸터앉아 문짝을 손으로 어루만질 때면 살짝 뜨끔하기도 했지만, 저 문이 원래 어떻게 달려 있어야 하는 건지는 신과 나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Who Knows? (계속)

화려한 무대 조명 뒤에는 늘, 묵묵히 자기 몫을 다하는 치열한 스태프들의 노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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