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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이틀간의 짧았던 베를린과의 만남. 그 마지막은 파울, 우린이, 제시,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하게될 새해 맞이다. 처음엔 우리가 머무는 토비의 아파트로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할 계획이었지만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많아져 장소를 바꿨다.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 우리에게 열쇠를 전해주었던 윗집 제시도 파티에 함께 가기로 했다. 2011년 독일에서의 마지막 기록. 지금부터 새해 맞이 세 시간전으로 돌아가 다시 찬찬히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보자.

파울이 옆구리에 끼고 있는건 바로 우리가 터뜨릴 폭죽들!


세 시간 전

 집근처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파티장소로 가려는데 벌써부터 거리에는 폭죽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참 급하기도 하지. 사실 폭죽소리는 해질 무렵부터 베를린 전체에 서서히 울려퍼지기 시작했었다,. 심지어 지하철 역 안에서 마구 쏘아대는 철없는 젊은이들도 간혹 보인다. 당연한 소리지만 정말 새해라는건 전세계 누구에게나 똑같이 설레이는 일인가보다.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대부분은 손에 바리바리 음식을 들고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벌써 많은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두 시간 전

 일찍부터 친구들이 모여있는 파티장소에 도착했다. 집에서 나오면서 조금 꾸물거린 탓에 우린 꼴찌로 도착했다. 토마토 모짜렐라 샐러드와 과일 샐러드로 가볍게 애피타이저를 하고 본격적인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이것이 바로 독일식 불판(?) 사용법!


 얼핏 보면 우리나라의 삼겹살 불판처럼 생긴 화로. 하지만 자세히 보면 불판 아랫쪽에 공간이 있고 구이용 조그만 팬을 넣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 토마토, 삶은 감자, 파프리카 같은 야채들에 치즈를 한 장 올려 불판 아래에 넣는다. 이제 몇 분뒤 치즈가 녹으면 맛있게 먹으면 된다. 매 번 취향에 맞춰 재료를 고를 수도 있고, 직접 만들어 먹는 재미도 있어서 재미있는 저녁 식사였다. 다만 양은 살짝 부족했지만.


2011년의 마지막 할 일은 새해의 점괘를 보는 일이다


한 시간 전

 식사를 모두 마치고 흥겨운 술자리가 이어질 즈음, 테이블 위에 난생 처음 보는 재미난 광경이 펼쳐졌다. 여러 모양의 납조각들과 스푼, 그리고 차가운 물이 담긴 그릇. 어디에 쓰는 물건일까. 알고보니 독일에선(어쩌면 베를린 주변 지역에서만 일지도) 매년 새해 맞이를 하며 운세를 점치는 특별한 풍습이 있다고 한다.



닭머리? 해마? 자신이 만든 납조각의 그림자로 새해 운세를 점친다


 각자 납 조각을 하나씩 받아들고 스푼 위에 올려 완전히 녹인다. 그렇게 흐물흐물해진 납을 찬 물에 부으면 순식간에 각각 독특한 모양으로 굳어진다. 자 이제 자기가 만든 납 조각을 들고 촛불에 그림자를 만들어보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림자의 모양에 따라 자기의 새해 운세를 찾아볼 수 있다. 처음엔 그냥 신기한 풍습이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다같이 하다보니 의외로 이게 꽤 재미있더라.


자, 이번엔 내 차례!


 내 납조각은 개중 꽤 독특한 모양이 되어있었다. 촛불에 그림자를 비춰보니 목이 긴 '낙타(Camel)'처럼 보인다(사실 타조라는 의견부터 그냥 새라는 의견까지 분분했지만). 낙타 모양의 그림자의 뜻은 '새해에는 강한 지구력이 필요한 운동을 잘 하게 됩니다'라고 한다. 지구력이 필요한 운동이라니... 마라톤이라도 한다는 소리일까? 잠깐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 하고 있는데 순간 머리속에 번쩍 하는 뭔가가 있었으니. 바로 '졸업 전시회'다. 그러고보니 마드리드에서 교환학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2012년 1학기에 건축학과 졸업 전시회를 하게 된다. 이보다 더 '강한 지구력'을 요하는 '운동(Exercise)'이 어디 있을까. 뭐 꿈보다 해몽이라지만 어쨌거나 꽤 신통하다. 다행히 졸업전이 잘 풀리려는 모양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같이 오래된 흑백 영화 한 장면을 봤다


십 오분 전

 납조각으로 운세를 보는 풍습보다 더 이상한(?) 풍습이 하나 남았다. 매년 이 시간이면 다 같이 모여 무슨 흑백 영화를 하나 본다고 하는데... 그다지 흥미롭지도 않고 잘 알아듣지도 못해 대충보는 바람에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거리에서 울려퍼지는 폭죽소리가 이제 겨우 십 오분 앞으로 새해가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사실 정확히 카운트다운을 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십 초 전, 그리고 2012년

 혹여 늦을까 싶어 부리나케 겉옷을 챙겨서 다같이 밖으로 나왔다. 사실 아무도 방송을 보고 있지 않아 정확한 카운트다운은 알 수가 없었지만 갑작스레 커진 폭죽소리가 드디어 2012년 새해가 밝았음을 알려준다. 귀가 따가울 정도의 굉음 사이로 늘 그랬던것 처럼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며 경건한 마음으로 그렇게 새해를 맞았다.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 매년 이 맘때면 종갹을 가득 메운 인파들이 쏘아대는 폭죽 속에서 그 연기에 취해 새해를 맞이하곤 했었다. 한국의 새해 맞이도 그리 얌전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왔지만 여기 베를린은 조금 더하다. 시내 중심가에서 제법 먼 동네에서도 이정도면 브란덴브루크 문 근처와 도심은 상상조차 안간다. 하지만 뭐 그렇게 마냥 시끄럽고 듣기 싫지만은 않았다.


폭죽에 불을 붙히는건 언제나 설레이는 일이다


 우리도 파울이 사온 폭죽을 쏘기로 했다. 마침 사람수대로 딱 하나씩 있어서 각자의 소원을 빌며 하늘 높이 폭죽을 쏘아 올렸다.




반갑다 2012년!


 그렇게 자정부터 한 시간정도를 길에서 폭죽 구경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우린이는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가고 난 이탈리아 북부를 일주일간 더 여행한 뒤 마드리드로 돌아가게 된다. 이렇게 해서 독일에서의 짧았던 열흘도 모두 지났다. 새해에는 내게 또 어떤 흥미진진한 일들이 일어나게 될지, 5년만에 다시 찾는 이탈리아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모든 여행을 마치고 마드리드에 돌아가면 기분이 어떨지, 교환학기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면 뭐가 제일 먼저 하고 싶을지... 베를린의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들 만큼이나 생각이 참 많았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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