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2년 1월 1일~1월 6일, 이탈리아 북부 여행


 5년 전 유럽으로 첫 배낭여행을 떠났던 때를 떠올려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유럽은 생각보다 꽤 많이 달라져 있다. 그 중에서도 여행자들에게 있어서 특히 와닿는건 바로 '저가항공'의 대중화. 그 때만 해도 유레일패스로 기차를 타는 것 이외에는 딱히 더 저렴한 방법도, 더 편한 방법도 없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국경을 넘어 멀리 다닐 때조차 기차 보다는 비행기가 더 싸게 먹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베르가모(Bergamo)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한 시간 조금 못되게 떨어진 아주 작은 도시다. 한국사람들에겐 그리 유명한 여행지가 아니지만 밀라노에서 라이언에어(Ryanair)를 이용해본 사람들에게는 꽤나 익숙할 법한 도시다. 바로 밀라노행(이름만 밀라노행이다) 라이언에어 비행기가 오고가는 공항이 베르가모 공항이기 때문이다.

벌써 6개월 넘게 세계일주 중인 현재와의 만남


 바로 전 포스팅(새해 첫 날, 이탈리아에서 세계일주 여행자 신현재를 만나다)에 이어 이제부터는 사진 속 이 친구가 글에 자주 등장하게 된다. 전 글에서도 쓴 것처럼 6개월만에 다시 만난 곳이 바로 이 베르가모였고 여기서부터 일주일간 우리는 이탈리아 북부를 여행한 뒤 함께 마드리드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첫 목적지는 이미 베네치아(Venezia)로 정해놓은 상태였지만 막 독일에서부터 날아온 나도, 벌써 6개월이나 여행중인 현재도 둘 다 좀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급하게 베네치아로 옮겨가 여행을 계속하는 대신, 우린 베르가모라는 이름없는 도시에서 하룻밤을 묵어가기로 했다.



을씨년 스럽기까지 한 베르가모의 길거리... 이정도일 줄이야!


 라이언에어같은 저가 항공사들은 어떻게든 단가를 줄이기 위해 수 많은(가끔은 치사한) 방법을 동원 한다. 예를 들면 비행기 표를 직접 출력해서 공항에 가져가야 한다던지, 인터넷으로 예약한번 할라 치면 여행자 보험부터 렌터카, 심지어 샘소나이트(!) 캐리어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광고창을 요리조리 피해다녀야 한다. 큰 도시의 메인 공항이 아닌 외곽도시의 작은 공항을 사용하는 것도 이러한 꼼수의 일환이다. 대신 외곽 공항에서 메인 도시까지는 셔틀 버스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항에 내리자마자 곧바로 버스를 타고 원래 가려던 도시로 들어가게 된다.

 결국 베르가모 공항에서 내린 사람들은 다들 버스를 타고 밀라노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동시에 우리처럼 베르가모 시내로 들어오는 여행자들이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날은 2012년의 첫 날인 1월 1일. 공휴일이다보니 길거리에는 사람은 커녕 자동차 한 대 지나가질 않는다. 미리 얘기하지만 이번 포스팅에 여행얘기는 거의 없다.


그래도 나름 베르가모 공식 호스텔도 있다


 베르가모에는 여행자를 위한 숙박 시설도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어렵게 찾아낸 호스텔은 산꼭대기에 있어서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도 한 참을 더 가서야 호스텔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이라도 닫혀 있었으면 큰일날 뻔 했지만 의외로 사람들이 좀 있었다. 

 체크인까지 시간도 좀 남고 해서 동네도 둘러보고 저녁 찬거리도 좀 살 요량으로 밖에 나갔다. 하지만 공휴일에 문을 여는 가게가 어디 있겠는가. 결국 우린 한 시간쯤 헤메다가 겨우 발견한 맥주집에서 맥주 두 병씩을 비우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야만 했다.



눈물의 라면... 이라고 하기엔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주변에는 식당도 없고, 먹거리를 살 수 있는 슈퍼하나 없다. 정말 베르가모엔 그날따라 유난히 '아무것도' 없었다. 다행히 현재가 한국 사람들한테 받아 들고다니던 라면이 있어서(그것도 무려 요새 한국에서 대유행한다는 꼬꼬면과 나가사키 짬뽕) 그걸 저녁삼아 먹기로 했다. 헌데 호스텔에 주방이 없다?! 결국 플라스틱 용기에 화장실물(정수기도 없다)을 받아서 전자렌지에 돌려 '뽀글이'를 해 먹었다. 방법이야 어떻든 간에 우리의 그날 첫 끼였으니 맛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최고였다.

다음날 베르가모엔 이른 새벽부터 내내 비가 내렸다


 '6개월만에 다시 만나는 날이니 오랜만에 좀 수다도 떨고 쉬자!'
 '베르가모에 가본 한국인이 얼마나 있겠어? 우리가 베르가모를 여행해보면 재미있겠다!'

 뭐 대충 이런 생각들로 시작된 베르가모에서의 1박이었지만, 수다도 없고 여행도 없이 그냥 푹 잘 자고 아침이 밝았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리고 있어서 베르가모와는 영 인연이 아닌가 싶었다. 다행히 다시 평일이 되니 그제서야 길가에 사람들도 좀 다니고 도시가 좀 활기 돋더라.





비가 내리는 바람에 시내는 건성건성 그냥 둘러본게 전부다


 호스텔을 나와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시내에 도착했다. 베네치아로 가는 기차표를 구입하려는데 출발 시간은 오후 다섯시. 이미 베르가모에서 할 일은 다 한것 같고, 시내도 적당히 돌아봤건만 시간은 여전히 너무 많이 남는다.

그래서 맥주집에도 들렀다가...


햄버거도 하나 먹어보고...


지도도 한번 들여다보고...


 바에 들러 맥주 한잔 시켜놓고 두 어시간 동안 수다를, 그러다 배가 고파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떼우며 다시 또 수다를 떨고, 잠시 지도를 펴놓고 앞으로의 여행 계획도 세워보고.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베네치아로 가는 기차시간이 다 되었다.


예상대로(?) 그리 특별할 것 없었던 베르가모와의 작별


 드디어 베네치아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막상 알고보니 겨우 세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의외로 가까운 거리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어젯밤 베르가모에서 자지 말고 베네치아로 일치감치 떠날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하룻밤 동안의 짧은 베르가모 여행은 끝이 났다. 


베네치아에서 마시는 칭따오의 맛은?!


 개인적으로 베네치아는 유럽 도시들 중에 처음으로 '두 번째' 가보는 곳이자, 지난 2007년 유럽 배낭여행 후 '다시 가보고 싶은 도시'로 늘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그런 도시였다. 그런 베네치아와의 5년 만의 재회를 눈 앞에 두고, 우리는 기차역 근처 중국식당에 들러 베르가모에서 못했던 거한(?) 저녁 식사와 함께 내일을 기약했다.

 본격적인 이탈리아 북부 여행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계속)

 



공유하기 링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