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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두물머리, 나룻배가 있는 풍경

이규빈 2009. 11. 9. 11:07

 두물머리. 참 정감있고 따뜻한 우리말 지명이다. 지난 주말,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바로 그 곳 - 두 물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다녀왔다. 희미한 물안개 사이로 마치 꿈속을 유영하는 분위기의 두물머리 사진들을 볼 때 마다 꼭 한번 가봐야 겠다고 버릇처럼 다짐했었다. 내 또래 젊은이들은 보통 차에 관심이 많아진다고는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 땅위를 달리는 자동차보다는 물위를 자유롭게 떠다니는 배가 더 좋았다. 두물머리를 찍은 사진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조그만 나룻배 때문일까. 너무나 가고싶은, 내 마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어디선가 얼핏 들은 얘기로, 차 없이 두물머리를 가는건 힘들다고 했다. 나중에 차가 생기면 꼭 가봐야겠다며 늘 아쉬워만 했는데... 얼마전 인터넷을 하다가 우연히 올해 초 중앙선 복선전철의 개통으로 이제는 서울에서도 지하철을 타고 두물머리에 쉽게 갈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가보고 싶어도 쉽게 갈 수 없었던 두물머리,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니 내심 반갑다.

  
 주말 아침 일찍 떠나야지 하고 짐을 주섬주섬 챙기는데 아무래도 불안하다. 용산에서도 지하철을 타고 한시간이나 더 가야하는 먼 길인데, 물안개가 제일 예쁘게 피어오를 때라는 아침 7시 반 까지 도착하려면 적어도 집에서 다섯시에는 나가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고민은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아버지께서 함께 가시고 차로 태워다주시기로 하셨다. 그동안 차가 없어서 미루다가 지하철 개통소식에 마음먹은 나들이를 결국 차를 타고 가게 되다니 혼자서 피식 하고 웃어버렸다.


 뻥 뚫린 올림픽대로를 신나게 달려서 두물머리에 도착해보니 정확히 7시 반이다. 사실 7시 반이라는 시간이 좋다고 누가 말해준것도, 어디 써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인터넷에서 본 마음에드는 두물머리 사진들의 exif 정보를 보면 전부다 촬영시간이 아침 7시 반이었던게 기억이 났었다. 멋진 사진을 찍고 싶어서, 사진만을 위해서 마음먹은 나들이는 비록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왕 멀리까지 왔으니 나도 한장 쯤은 멋진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던 욕심이 났던건 아니었을지...




 처음 도착했을때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연 안개에 신이 났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흔히 말하는 두물머리의 물안개는 이런게 아니었다. 오늘 안개는 그저 날이 흐려서 생긴 진짜 안개고, 두물머리의 물안개라는건 쨍한 날에 아침무렵 수면위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게 맞단다.
 어쩐지 벌써 일출시간이 훨씬 지났는데 하얗게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에 해가 안보이는게 조금 이상하더라.



 이른 아침시간이지만 두물머리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인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비싼 카메라에 저마다 큼지막한 렌즈를 하나씩 달고있는 위용에 괜시리 어깨가 움츠러든다. 대충 어림잡아도 이삼십명은 있었던것 같은데 무슨 동호회에서 출사를 다같이 나온 것 같기도 했다. 옆에 서서 뻘줌하게 한장씩 사진을 찍어보고 있는데 가만보니 그 많은 카메라들이 다들 무얼 찍고있는지 모르겠다. 뿌옇게 낀 안개 때문에 한치앞도 보이질 않는데 무슨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시는지...

 아침 강가의 바람이 생각보다 매서워서 자리를 옮겨서 일단 뜨끈한 어묵부터 한개 집어 들었다. 두물머리 느티나무 바로 옆에 위치한 이곳은 꽤 목이 좋아 보인다. 뜨끈한 국물로 몸을 좀 녹이는 동안 주인 내외분이 두물머리 자랑에 한창이시다. 오늘은 날이 흐려서 사진찍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편이라는데 해가 쨍한 날에는 정말 수면위로 보글보글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손가락으로 콕 찝어서 가르키는 아저씨 한분은 매일 이곳에 새벽마다 나와서 사진을 찍는 분이라는데... 역시 좋은 사진은 그냥 만들어지는게 아닌가보다. 그 열정과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진심으로...



 느티나무 아래 서서 마냥 강물을 바라보며 그렇게 있었는데, 갑자기 웅성웅성 시끄러워진다. 하늘 가득한 구름사이로 해가 잠깐 고개를 내민 모양이다. 다들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 찰칵거리는 셔터소리가 고요한 정적을 깨며 쉴새없이 들려온다. 그것도 잠시,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다시 해는 구름속으로 들어가 버렸고 다시 나올 생각을 않는다. 오늘은 날씨가 글렀다며 순식간에 사람들이 철수해버렸다. 빠르기도 하셔라...










 잠깐 해가 난 사이에 찍은 사진들을 집에와서 컴퓨터에 옮겨보니 햇빛때문인지 마치 저녁무렵에 찍은 사진처럼 보인다. 이른 아침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보러 갔다가 졸지에 저녁 사진을 찍어온 셈이 되었으니 나름 재미있다.
 강가에 군데군데 매어있는 조그만 나룻배들은 가을 풍경에 운치를 더해가고 있었다.


 두물머리, 조용한 정적이 참 잘어울리는 곳이다.
 이름만큼이나 서정적인 강가의 풍경을 즐기고 싶을때 언제든지 다시 찾아가고파 지는 그런 곳이다.

 보고싶었던 물안개를 보지 못했으니 다음에 다시한번 올 생각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강물뿐인 조금 심심한 풍경이지만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지나면 또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해진다. 두물머리라는 너무 예쁜 이름을 놔두고 왜 꼭 '양수역'이라는 이름으로 지하철역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두물머리역이라고 부르면 훨씬 더 오고싶어 질텐데 말이다. 다음에 올때는 꼭 지하철을 타고 와야겠다. 양수역이 아닌 내 마음속의 두물머리역으로 그렇게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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