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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마을'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104마을의 풍경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 뒤로보이는 언덕 꼭대기까지가 전부 104마을이다 창고처럼 보이는 작은 건물, 하지만 두가구나 살고있는 엄연한 집이다
마을이름에 난데없이 104라는 숫자가 떡하니 들어가 있다. 어떤 마을이기에 이런 이름이 붙은걸까.
서울의 북쪽 끝자락, 불암산과 수락산이 만나는 곳에 조그만 야산을 따라 위치한 달동네. 사람들은 이곳 노원구 중계본동을 '104마을'이라고 부른다. 2000세대정도가 살고있는 이곳은 서울에 남아있는 달동네 중에선 그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지하철 4호선 상계역에서 내려 1142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왼쪽으로 중계본동 104마을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찾아갔던 그날따라 어찌나 하늘이 맑고 해가 내리쬐던지 언덕을 오르는 내내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예전엔 야산을 따라 배나무가 자라던 이곳에 1967년 주변 일대의 개발로 인해 판자집에서 떠밀려 온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지금의 104마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강제로 이주당한 100여가구의 주민들은 한 가구당 8평씩 배정을 받고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104마을이라는 이름에는 특별한 뜻이 있는게 아니라, 그당시 이곳 번지수가 '중계동 104번지'였기에 그런 이름이 붙게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소가 개편되어 중계본동 30번지에 해당한다. 그 흔적을 직접 찾아볼 수는 없지만 이름으로나마 남아있는 옛 기억이 아련하다.
뜨거운 주말의 정오, 마을은 생각보다 한적한 모습이었다. 불과 20여년 전까지만해도 상계역 근처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길은 비포장길 뿐이었다. 중랑천으로 유입되는 조그만 개천을 따라서 나있던 비포장도로는 여름철 장마때면 불어난 냇물로 늘 곤죽이 되어 질척질척거렸고, 차가 떠내려가고 사람이 휩쓸려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마누라 없인 살아도 장화없인 못사는 동네'
그래서 붙여진 104마을의 또다른 이름이다.
104마을은 완전히 판자촌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한 세입자라고 한다. 1000여동에 이르는 건물들 중 30%정도는 무허가 건물이다. 전체 가구수가 2000세대 정도 되니, 자그마한 집집마다 두 가족 정도가 살고있다는 말이다.
저멀리 아파트단지를 바라보고 있는 타고남은 연탄들
언덕길을 따라서 거의 꼭대기까지 올라갔을 무렵, 집 앞 공터 한켠으로 가지런히 쌓아놓은 연탄이 보인다.
104마을의 대다수 집들은 아직까지 연탄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이제는 도시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연탄이지만 이곳에선 예전과 다름없이 계속 쓰이고 있었다.
담넘어로 옆집 부엌이 살짝 보였다. 어두컴컴한 부엌에 앉아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밥을 하시는 할머님의 모습을 보니 허름한 부엌시설에 연탄을 사용하시다가 자칫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나 걱정스러운 생각이 먼저 든다.
쓰레기더미 속에서도 쓰고난 연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저 멀리 아파트 단지와 대조를 이루는 풍경
가파른 언덕을 타고 집들이 들어서 있어서 그런지, 고개만 살짝 들어봐도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연탄들 너머로 보이는 2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들에 숨이 턱턱 막혀온다. 사방팔방 다 둘러봐도 아파트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서있었던 이 자리조차 저런 아파트가 놓이게 되는건지... 꼭 그래야 하는건지 잠시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계단처럼 층을 이루며 언덕을 사이좋게 나눠가진 집들
1972년 이 지역 일대가 그린벨트로 묶이면서 무허가 집들은 더욱 높은 산비탈까지 부채살처럼 올라갔다. 지금도 야산 꼭대기 부근에는 차가 올라가기도 힘들 정도의 가파른 경사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 가파른 골목길에 나와 어린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면서 놀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차가 들어올 수 없는 골목길이니 오히려 아이들도 마음놓고 뛰어놀 수 있는것 같다. 마치 골목이 제집 안방인 것처럼.
이 길의 끝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도통 알수가 없다
산 아래에서 시작된 골목길은 그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이리저리 집들 사이로 복잡하게 꼬여있다. 돌아다니는 내내 같은 길을 몇번씩 지나치면서도 끝내 내가 지금 어디있는지 알아차리질 못한다.
104마을에서 길을 찾으려면 계곡에서 물이 흘러내려가는 것 처럼 몸을 언덕에 맡기고 물흐르듯 그대로 길을 따라 흘러내려가는 방법이 제일 좋다.
골목길 슈퍼앞에서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시던 동네 아주머님들
이런 좁은 골목길이 있는 마을 어귀에는 구멍가게 앞에 조그만 평상이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더운 날씨탓인지 그날따라 가게 앞 평상에는 아주머니들이 나와 연신 부채질을 하며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일반 사람들은 '에어컨을 키면 되겠지'하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104마을에선 통하지 않는 이야기다. 집집마다 하나같이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고 무더운 여름을 나고 있었다. 길을 걷다가도 집안이 훤히 다 보인다.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집들이 붙어있다보니 길을 걸어가다보면 집안에서 나는 말소리까지 내 귀에 전부 들려온다. 동네 주민들의 특별할것없는 대화를 들으며 길을 걷고있으면 왠지 나도 그 집에 들어가서 앉아있는것만 같은 느낌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
기꺼이 아이들의 스케치북이 되어준 담벼락
'노원구 중계동'이라고 써있는 낡은 번지수가 인상깊다
언제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지 모를 녹슨 번지수와 그위로 새로붙여진 길이름 표지가 나란히 놓여있다.
저 낡은 번지수에는 '104번지'라고 써있을까 유심히 살펴봤지만 이미 30번지로 교체된 이후의 표지다. 이젠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는 104마을의 유래처럼 점점더 옛 기억은 사라져가고 있었다.
신발장, 얼마나 많은 식구들이 한 집에 살고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맑은날이면 어김없이 미뤄두던 이불빨래도 하기 마련
Happiness Home에 가지런히 널려있는 빨래들
골목 구석구석 보이는 사람사는 흔적들이 정겹다.
마지막 사진의 집 담벼락에 써있던 Happiness Home 이라는 글귀와 그 옆으로 가지런하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던 빨래들이 기억에 남는다. 왜 집에 저런 문구를 써놓았을지 여러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교차한다.
서로 마주보고 눈싸움을 하고있을까, 아파트와 판자집
서울시는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이곳 104마을 산동네를 주거환경 개선지구로 지정, 재개발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산아래 보이는 저 아파트 처럼 이미 104마을 일부는 재개발되어 3000가구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상태였다.
가난한 세입자들은 또 어디로 쫒겨나야할지 모르는,
외줄타기하듯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한다.
집집마다 초록색이 조금씩 모여서 마을 전체가 초록빛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어떤 주거환경을 개선해야한다는건지는 잘 공감이 되지 않는다.
골목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다보면 집집마다 서너개씩 놓여진 화분에 심어진 예쁜 꽃들과 조그만 텃밭에서 자라고있는 고추, 집앞 빈 공터에까지 심어놓은 나무들로 마치 숲속에 온듯한 상쾌함이 감돈다.
삭막한 아파트단지속에 일부러 심어놓는 정원수들보다야 훨씬더 정감있고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하지만 실제 이곳 주민들의 생활 환경은 생각보다 많이 위태로워 보였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허름한 집들 사이에서 해맑게 웃으며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하루빨리 제대로된 '진정한 의미의 재개발'을 통해 주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푸른 하늘아래 104마을의 풍경
헌데 지난달 말 서울시에서 104마을 재개발안을 심의 보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떤이에게는 좋은 소식이고, 또 어떤이에게는 나쁜 소식임에 분명하다. 아래는 심의보류에 대한 신문 기사다.
(건설타임즈)차완용 기자 =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로 꼽히는 노원구 중계동 '104마을'의 재개발사업이 보류됐다.
이에 앞서 지난해 말에는 104마을 내 14만7117㎡를 그린벨트에서 해제하고, 주변지역을 포함한 19만317㎡를 제1종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 재개발을 꾸준히 준비해 왔었다.
지붕너머 보이는 빨랫줄에 가지런히 사이좋게 걸린 빨래들
내가 가본 104마을은 그래도 '아름다웠다.'
비록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가난한 세입자들이고 그 건물들은 무허가 불법건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본 그 마을에는 엄연한 질서가 존재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질서를 지키는데 충실했던것 같다.
불법이라는건 법을 어겨서 남에게 피해를 줄때나 문제가 되는게 아닐런지. 힘들게 살면서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골목길을 만들려 애를 쓰는 주민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제대로된 개발 계획이 수립되고, 이들에게 정말 '보상'이 이루어질지 확신할수도 없는 상황에서 '도시정비'라는 명목으로 쫒아낸다는건 누구에게나 상식적으로 납득이 잘 가지 않는 이야기다.
진정한, '원주민'들의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위한 개발이 필요하다. 말도안되는 이유로 이들의 정든 삶의 터전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일이 없길 바래본다.
Happiness Home, 말그대로 즐거운 나의 집이 오래오래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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