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계획했던대로라면 아침 일찍부터 자전거를 타고 성산 일출봉에 올랐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오름에 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버린 이상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잠을 제대로 못자서 그런지 영 몸이 찌뿌둥하다. 간밤에 창문으로 비가 들이치는 바람에 새벽 네 시쯤 잠에서 깼다. 어찌나 천둥 번개가 심하게 치던지,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밖에 나와 비내리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섰다. 오늘은 영락없이 비를 맞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다시 잠을 청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또 하늘이 맑다. 알다가도 모르는게 제주의 날씨라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다. 덕분에 뽀송뽀송하게 바닷바람 쐬어가며 섭지코지까지 신나게 내달렸다. 온평리에서 섭지코지까지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마을을..
처음 자전거로 제주 여행을 계획했을 때, 주변 사람들로 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가지 마라'. 걱정되다 못해 기분이 나쁠정도로 만나는 사람마다 똑같은 말뿐이었다. 하긴, 제일 덥다는 8월 첫주에 자전거로 남쪽 섬을 가겠다니 어찌보면 조금 바보같아 보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나에게 무조건 가지말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걸까. 물론, 개중에는 마음에 걸리는 진심어린 충고도 있었다. 자전거로 여행을 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도로 위에서 보내게 될 것이고, 그러면 관광도 제대로 못하고 죽어라 페달만 밟고 온다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촉박하다보니 진짜 죽어라고 자전거만 타다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 하지만 제주도..
만 이틀 만에 자전거 안장에서 내려왔다. 짐칸에 고무줄로 칭칭 묶어놓고 다닐때는 잘 몰랐는데 생각보다 쓸데없는 짐이 꽤 많은것 같다. 벌써부터 짊어진 가방 때문에 어깨가 살살 아파온다. 마라도에는 오로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때문에 자동차도, 자전거도 모슬포항에 잠시 세워두고 배에 올라야 한다. 매 시간마다 마라도로 향하는 200명 정원의 쾌속선에는 발디딜틈 없이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다들 무슨 이유에서 마라도를 찾는걸까 궁금해하고 있는데, 유난히 배 안에는 임산부가 많이 보인다. 마라도의 정기가 태교에 도움이라도 된다는 소문이 있는걸까... 어쨌거나 오랜만에 배를 타서 그런지 한껏 기분이 들떴다. 서울 촌놈이라 그런지 배만 타면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오곤 한다. 요란하게 뱃고동을 울리..
내가 자전거로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기라도 했던걸까.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신 덕에 10시가 다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아침 식사용으로 빵과 토스트를 준비해 놓았지만 쓰린 속에 그런 밀가루 음식이 들어갈리가 만무했다. 배를 움켜잡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마침 아침 식사를 하시던 형님 한분이 고맙게도 손수 끓인 김치찌개를 같이 먹자며 권하셨다! 염치 불구하긴 해도 고마운 마음으로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무사히 출발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마라도를 지나 산방산까지. 어제 정도 거리만 타면 쉽게 모슬포항까지 도착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어째 저녁이 될 때 까지 술이 깨지 않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어제의 즐거웠던 ..
아침 7시 20분 비행기는 나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만 되면 뭔가 마무리할 일이 한꺼번에 생각나는 몹쓸 버릇 덕분에, 간밤에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6시가 다 되어서야 눈을 뜨고, 허겁지겁 짐을 챙겨 자전거를 어깨에 들쳐 엎고는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집에서 공항이 가까워 아침에 살짝 타고 가볼까 생각도 했었는데 역시나 무리였다. 아침에 빨래가 다 마르질 않아 인상을 찌푸리며 집을 나와버렸다. 멀리는 아니어도 집을 떠나는 마당에 부모님에 찡그린 얼굴을 보여드린게 못내 마음에 걸리더라.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어느새 공항에 도착했다. 여행이라는게, 꼭 멀리가지 않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요상하게 뒤흔드는 힘이 있는걸까... 제주로 가는 항공편은 종류가 꽤 많은 편이지만, 우리는 무난하..
드디어 내일이면 제주도로 떠난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여행을 다니며 늘 꿈꿔왔던 바로 그것. 드디어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을 앞두고 있다. 준비는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이다. 짐을 챙기고 지도를 보고 있으면 벌써 여행을 하고있는 듯한 행복한 기분이 든다. 스트라이다로 제주도를 여행하겠다고 하니, 물어보는 사람마다 다들 결사 반대다. 물론, 스트라이다가 장거리 여행하기에는 다소 불편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있지만, 시도해보지도 않고 그렇게 단정짓는 사람들의 태도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내가 꼭 완주해 보여주겠노라 오기 마저 생긴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준비를 하는 손길이 더욱 분주해진다. STEP 1 전조등과 후미등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차량'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도로위에서는 약자일 수 밖..
어제의 짧은 라이딩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늘은 조금 더 멀리 나가보기로 했다. 한강은 꽤 큰 강이라 흘러들어오는 지류도 많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들로는 안양천, 탄천, 양재천, 중랑천 정도가 있겠다. 안양천은 예전에도 포스팅을 한번 한 적이 있었는데, 계속 따라가면 안양을 통과해 의왕시 백운호수까지 연결되어 있는 제법 큰 천이다. 주변으로 자전거 도로도 꽤 잘 되어있어서 달리는 맛이 꽤 괜찮은 코스라고 할까나. 사실, 안양천으로 흘러들어오는 도림천이나 학익천 같은 지류들까지 이용하면 꽤 많은 곳을 자전거로 갈 수 있게 되는데 오늘의 목적지인 보라매 공원 역시, 안양천에서 도림천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따라 갈 수 있게 되어있다. 자전거를 타다보면 이렇게 길을 찾아내고 따라가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
스트라이다와 인연을 맺은지 벌써 일주일 째. 보고만 있어도 흐뭇한 그런 녀석이지만 가장 좋은점을 꼽으라면 바로, 주말이 기다려 진다는 점! 예전같으면 주말 내내 방에 틀어박혀서 꼼짝도 않고 빈둥거렸을테지만 이제는 얘기가 좀 다르다. 마음같아서는 당장 저 멀리까지 함께 달리고 싶지만 우선은 집 가까운 곳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마침 한강 하류쪽으로 조금만 가면 방화대교 근처에 '강서 생태 습지 공원'이 있다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원래 풀사진, 꽃사진 찍는걸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왠지 그곳에 가면 예쁜 꽃이 만발했을 것 같아서 접사 렌즈도 하나 챙겨넣었다. 이럴때 아니면 또 언제 그런 사진을 찍어보겠어. 오늘의 라이딩 코스. 생각보다 너무 간단하다. 거리도 가깝고 특별히 오르막이 있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