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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7시 20분 비행기는 나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만 되면 뭔가 마무리할 일이 한꺼번에 생각나는 몹쓸 버릇 덕분에, 간밤에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6시가 다 되어서야 눈을 뜨고, 허겁지겁 짐을 챙겨 자전거를 어깨에 들쳐 엎고는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집에서 공항이 가까워 아침에 살짝 타고 가볼까 생각도 했었는데 역시나 무리였다.
 아침에 빨래가 다 마르질 않아 인상을 찌푸리며 집을 나와버렸다. 멀리는 아니어도 집을 떠나는 마당에 부모님에 찡그린 얼굴을 보여드린게 못내 마음에 걸리더라.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어느새 공항에 도착했다. 여행이라는게, 꼭 멀리가지 않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요상하게 뒤흔드는 힘이 있는걸까...


박스 포장의 충격에서 헤나지 못한 채 비행기에 올랐다


제주로 가는 항공편은 종류가 꽤 많은 편이지만, 우리는 무난하게 제주항공을 선택했다. 자전거를 수화물로 함께 가져가는 경우에는 포장을 미리 해야만 한다. 큰 자전거의 경우는 앞바퀴를 분리하고 박스에 넣기도 하고, 우리 같은 스트라이다는 접은 상태에서 그대로 박스에 넣을 수도 있다. 20kg만 넘지 않으면 따로 추가요금을 물지 않아도 된다. 김포공항은 옆에 이마트가 있어서 직접 박스로 포장하는 방법도 있지만 공항 안에 수화물 포장센터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괜히 포장을 잘못했다가 본격적으로 일주를 시작하기도 전에 자전거가 망가질까봐 포장센터를 찾았다. 한 박스당 가격은 25000원. 그때가 채 7시가 되기 전이었는데, 눈을 막 비비며 나온 직원이 박스를 꺼내 자전거를 넣기 시작한다. 가격이 가격인 만큼 완충재도 좀 넣어주고 그럴거라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전거를 쑥 넣더니만 이내 박스를 테이프로 닫아버린다. 이게 포장 끝이란다. 억울하기도 하고, 걱정도 좀 되긴 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거 어쩔 수가 없었다. 자식을 떠나 보내는 마음으로 수속 카운터에서 자전거를 부쳤다.

제주 공항에 도착해서, 출발 직전 정비를 하며 한컷


 50분 정도의 비행 끝에 제주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시간은 짧았지만 막상 공항에 내리니 창 밖 풍경이 서울과는 사뭇 다르다. 사실 제주도에는 이번으로 세번째다. 갓 돌이 지났을 무렵 부모님을 따라서 한 번, 초등학교 6학년 수련회로 또 한 번, 그리고 오늘. 사실 전에 왔던 두번의 제주도는 생각이 날리가 만무하다. 어릴때야 당연히 사진 속에나 남아있는 추억일테고, 초등학교때 역시 애들이랑 놀았던 생각 말고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 여행은 내 기억속의 첫번째 제주가 될지도 모른다. 괜히 설렜다.


긴팔 긴바지를 준비하지 않으면 여름철엔 화상을 입기 십상이다


 속도계의 리셋 버튼이 눌려지고, 드디어 시작이다! 제주공항을 빠져나와 조금만 달리면 잘 닦인 1132번 지방도를 만날 수 있다. 앞으로 5일 내내 자주 마주치게될 '제주도 일주 도로'다. 일주 도로는 해안가를 달리기도 하고, 조금 산쪽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때문에 대부분의 자전거 여행자들은 일주도로 보다는 해안도로를 따라서 달리게 된다. 하지만 제주도를 한바퀴 순환하는 일주도로의 특성상, 길을 찾을때도 이정표가 되어주고 아무래도 자주 마주칠 수 밖에 없는 도로다.



첫날의 여유가 한껏 느껴지는 셀카!


 제주도를 자전거로 하이킹 하는 경우에는 본인의 취향에 따라 몇가지 원칙을 정하고 출발하는게 좋다. 순수하게 일주를 목적으로 빠르게 돌것인지, 아니면 모든 해안도로를 다 돌아서 굽이굽이 달리며 여행을 할것인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유도리 있게 주행 계획을 세울것인지... 아무래도 자동차나 스쿠터 여행에 비해서 체력에 좌지우지 되는게 많은 여행 방법인 만큼 미리미리 마음속으로 계획을 세워두는 쪽이 훨씬 편하다.
 
 우리는 4박5일로 넉넉하게 일정을 잡은 만큼, 한바퀴는 완벽하게 꼭 돌되 왠만한 관광지와 해안도로는 전부 달려보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렇게 1132 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처음 들어온 해안도로가 이곳 이호테우해변 해안도로다.




이런 오르막이 앞으로 수도 없이 많을 줄이야.. 그땐 몰랐지


 해안도로가 평지일거라는 생각은 일치감치 버리고 오는게 더 좋겠다. 나 역시 그런 생각으로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크게 뒷통수를 맞았으니... 주상절리대 같이 화산 지형이 많은 제주 해안의 특성상 자연스레 해안도로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일이 많다. 허벅지는 좀 아프겠지만, 대신에 높은 곳과 낮은 곳을 넘나들며 경치를 감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아아아! 제주도 해안도로를 달리며 만나는 이런 풍경.. 너무 좋다


 그렇게 해안도로와 일주도로를 번갈아가며 달리다보니, 어느새 오늘의 목적지인 협재 해수욕장에 도착해버렸다. 협재 해수욕장은 멀리 수평선 너머로 비양도가 보이는 제주의 손꼽히는 해변 중 한곳이다. 첫날이라 너무 긴장해서였을까, 예정 시간보다 한참은 일찍 목적지에 도착해버린 바람에 조금은 맥이 빠져버렸다. 스트라이다로 제주도를 달린다는데에 괜히 겁을 먹었었나보다. 자세한 라이딩 리포트는 아래에 첨부하겠지만, 평균속력 18km/h 정도로 달렸으니 꽤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남은 4일의 라이딩에 슬슬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뭘 먹어도 맛있을 때지만, 고등어 조림이 꽤 괜찮았다


 자전거 여행자에게는 잘 달리는것 만큼 잘 먹는게 또 중요하다. 제주도에서의 첫 식사 메뉴는 '고등어 조림'으로 결정했다. 현지 사정에 어두운 외지인인 만큼 바가지를 쓰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마음 편하게 그냥 해수욕장 근처 허름해보이는 밥집을 찾아 들어갔다. 가격이 싼편은 아니었지만 맛이 워낙 좋아서 대 만족!!


무사히 잘 달려줘서 고마워! 스트라이다!


 오늘의 숙소인 '마레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외국이 아닌 한국에서의 게스트하우스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 만큼이나 인상 깊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이야기는 또 따로 하기로 하고.... 속도계를 보고 오늘의 라이딩을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평가라기 보다는 첫날 달려본 느낌과 기록을 봐야 앞으로의 계획을 더 알맞게 수정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함께 온 친구가 여자라서 은근히 체력 안배에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오히려 나보다 더 씩씩한 모습이다. 오늘같이만 달리면 하루에 100km씩 달려도 거뜬하단다!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앞으로 계속되는 여행기에서 확인하시길...(계속)




 


오늘의 코스 리포트
제주국제공항-애월항-협재-한림-마레게스트하우스

전반적으로는 무난한 편이었다. 제주 공항에서 바로 1132를 탄 이후에는 '한림/협재' 표지판만 보고 따라가면 된다. 첫날 라이딩으로 많이들 선택하는 코스긴 하지만, 길을 잃을까봐 겁먹을 필요는 전혀 없겠다. 애월 근처부터 해안도로에서 잠깐 오르막이 나오기는 하지만, 앞으로의 라이딩에 대한 시험이라 생각하고 가뿐하게 올라주면 되겠다.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마레 게스트하우스와 금능 게스트하우스 모두, 일주도로가 아니라 한림공원쪽 해안도로에 있으니 참고하시길...



오늘의 라이딩 리포트
2010년 8월 3일 / 1일차

주행거리 : 40.32 km
주행시간 : 2시간 15분
최고속력 : 38.2 km/h
평균속력 : 17.8 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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