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쏟아지던 지난 주말, 카메라와 필름 몇개를 주섬주섬 챙기고선 집을 나섰다. 언젠가 한번쯤은 비오는날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기회가 찾아온 셈이다. 오늘은 상도동 밤골로 향한다. 오래전부터 밤나무가 많이 자라서 '밤골'이라 불렸다는 이곳은 지금, 서울에 남아있는 몇안되는 판자촌중 한곳이다. 밤나무가 언덕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있던 밤골 언덕에는 어느샌가부터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살기시작했지만 그 언덕은 지금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재개발이 모두 끝나면, '밤골'이라는 이름은 그냥 이름만으로 남게된다.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더 많이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언제부턴가 서울의 오밀조밀한 골목길들은 '재개발', '정비'라는 이름하에 무식하..
하늘은 파랗고,나무는 푸르게 물들어가는 7월의 끝자락. 태풍 갈매기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 우리는 남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할 수 있는 5박 6일간의 여행. 그 시작은 전라북도 고창에서 부터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가 제일 걱정했던 건 다름아닌 날씨였다. 태풍은 이제 북상하여 바다로 나간다 하고, 우리가 갈 곳은 서울보다 훨씬더 남쪽에 있었지만 출발하는 당일까지도 서울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모처럼만의 여행에 날씨때문에 흥이 깨져버리는건 아닐까 걱정을 하며, 우리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고창으로 출발했다. 여행이 끝나고 알게된 사실이지만, 우리가 서울을 떠나있는 일주일동안 서울에는 비가 연일 내렸고, 우리의 여행지는 조금 흐리..
한없이 기분좋았던 어제가 지나가고, 호텔에서 맞은 아침은 생각보다는 실망스러웠다. 그동안 늘 유스호스텔의 빵쪼가리 아침식사에 지쳐있었던 터라, 간만에 호텔에서 자게된 오늘은 푸짐한 뷔페식 아침식사부터 떠올렸었는데 막상 내려가보니 이건 호스텔보다 더하다. 버터도 없이 크로아상 하나, 바게뜨 하나에 달랑 커피와 우유. 유럽에선 원래 이렇게 아침을 먹는다고 하면 할말은 없지만 이걸 먹고 어떻게 돌아다니라는건지... 한국에서 먹던 국 한대접에 밥 한공기가 그리워진다. 지난 밤에는 밀린 옷가지들을 왕창 빨아서 빨랫줄이 모자랄 정도로 방안에 걸어놓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하나도 말라 있지 않았다. 급한대로 해가드는 창가에 옷을 다시 옮겨놓고 다시 침대에 누워 뒹굴거린다. 오늘은 계획이 조금 여유가 있어서 옷이 ..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어딜 가더라도 참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 많다는걸 느낀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여행을 하면, 이름모를 외국인들 속에서 홀로 방황하게 될것이라고 예상했었지만 대부분의 유명한 관광지마다 한국사람들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이렇게 많은 한국 관광객들 속에서 여행을 하다보면, 가끔은 실망스럽기도 하다. 내가 생각했던 유럽여행이 다른사람들도 다 하는 똑같은 형식적인 여행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다들 가는 여행지 보다는 색다른 경험을 하기위해, 우리는 특별한 여행지들을 몇군데 생각했었는데 오늘 들른 '생폴 드 방스'가 그 중 한곳이었다. '생폴 드 방스'는 니스에서 북서쪽으로 11km정도 떨어진 전형적인 중세 요새도시이다. 니스에서 버스를 타고 한시간남짓 달리면 아기자기하고 예쁜 예술인 마을..
에메랄드빛 바다가 넘실대는 낭만적인 이국의 해변가로 떠나는 휴가. 요즘처럼 푹푹찌는 일명 '살인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에는 그 어느때보다 간절해진다. 하지만 외국으로 떠나는 휴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은 꿈에 불과하다, 나역시 마찬가지. 한달간의 배낭여행이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갈때 쯤, 우리는 프랑스 남부 해안 '니스'에 들렀다. 지중해에서 즐기는 바캉스, 여행하는 내내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다려왔던 곳이기도 했다. 물론 바캉스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어디까지나 우린 잠깐 들러가는 관광객에 불과했고, 한나절 쉬어가는 해변은 오히려 아쉽게 느껴질 뿐이었다. 야간열차를 타고 아침 일찍 니스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바다에 나가있기엔 조금 그래서, 우리는 먼저 가까운 '생폴'에 다녀오기로 했다. 작지만 너무..
이 글을 쓰고있는 지금 나는, 근대 건축의 거장 르 꼬르뷔제의 역작 '롱샹성당' 안에서 수많은 촛불들을 뒤로하고 고요한 정적속에 홀로 앉아있다. 오늘 이 경험, 이 느낌, 이 기억은 앞으로 내가 건축가가 되어 활동하는 그 순간까지도 마음속에서 늘 함께 할 것이라고 믿는다. - 참으로 어렵고 힘든 결정이었다. 여행을 계획하고 방문할 여행지를 선택하던 그 때부터, 이곳 롱샹성당은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남부의 조그만 마을인 이곳 '롱샹'에는 롱샹성당을 제외하곤 특별한 볼거리도 없거니와 워낙 작고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하루를 통째로 투자해야만 들를 수 있는 곳이어서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는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었다. 하지만 운이 좋았던 걸까,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날은 특별한 계획도..
튠(Thun)호수에서의 유람선 여행 알프스의 봉우리들로 올라가는 출발지인 인터라켄. 인터라켄은 동쪽으로는 브리엔쯔 호수, 서쪽으로는 튠 호수를 끼고있는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이다. 스위스의 호수들은 에메랄드빛 푸른색이 감돌고, 주변으로는 만년설이 덮힌 알프스의 봉우리들이 둘러서 있어서 전세계의 그 어느 호수보다도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한다. 배낭여행으로 유럽을 찾는 여행객들은 대부분 '유레일 패스'로 기차를 이용하기 마련인데, 이 유레일 패스에는 각 나라별로 여행과 관련한 여러가지 혜택이 준비되어 있다. 그중 이곳 스위스에서는, 튠호수와 브리엔쯔 호수에서의 페리 탑승권을 제공한다. 이렇게 멋진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즐기는 달콤한 휴식, 게다가 요금도 공짜라니 절대로 놓쳐서는 안될 유레..
몇일전 서울에도 갑작스럽게 우박이 내린 일이 있었다. 슬슬 여름이 다가오는 6월임에도 우박이 내리자, 사람들은 정부의 잘못된 태도에 하늘이 벌을 내리는 거라며 수군수군 했었다. 그날 마침 우산도 없이 밖에있었던 나는, 채 피할 겨를도 없이 내리는 우박을 온몸으로 맞아야만 했다. 온몸이 따갑고 아프면서도 그 순간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기억이 하나 있었으니... 아마 앞으로 살면서 다시는 그런 우박을 볼 수 없을것만 같다. 바로 유럽배낭여행중 만났던 스위스의 우박. 말이 좋아서 우박이지, 거의 폭격 세례였다. 먼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있는 우박에 대한 정의부터 살펴보자. 우박 (기상학) [雨雹, hail]지름이 5㎜~10cm인 공 모양의 얼음 조각으로 된 강수. 작은 우박(또는 진눈깨비·싸락우박이라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