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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은 파랗고,나무는 푸르게 물들어가는 7월의 끝자락.
 태풍 갈매기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 우리는 남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할 수 있는 5박 6일간의 여행. 그 시작은 전라북도 고창에서 부터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가 제일 걱정했던 건 다름아닌 날씨였다. 태풍은 이제 북상하여 바다로 나간다 하고, 우리가 갈 곳은 서울보다 훨씬더 남쪽에 있었지만 출발하는 당일까지도 서울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모처럼만의 여행에 날씨때문에 흥이 깨져버리는건 아닐까 걱정을 하며, 우리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고창으로 출발했다. 여행이 끝나고 알게된 사실이지만, 우리가 서울을 떠나있는 일주일동안 서울에는 비가 연일 내렸고, 우리의 여행지는 조금 흐리긴 했어도 우산을 필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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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리밭도 좋지만, 고인돌은 알수없는 묘한 매력을 가진다

 전라북도 고창은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서너시간쯤 달리면 도착한다. 경상남도를 가고파서 계획을 세웠던 여행에 난데없이 전라북도 고창을 들르게 된 까닭은, 사실 '고창 학원농장'의 청보리밭때문이었다.
 예전에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고창의 청보리밭 사진이 참 마음에 들었었다. 청보리밭을 가고파 통영을 내려가는 길에 고창을 들르려 했으나, 알고보니 계절이 문제였다.

 청보리는 가을에 심어 겨울을 지내고 늦봄에 수확을 한단다. 5월만 지나도 보리는 황금색으로 익어버리고 6월이면 거의 수확을 마쳐서 청보리밭에는 아무것도 남지않는다고 하는데, 우리가 여행하는 7월에는 말할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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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수많은 돌들이 전부 고인돌, 혹은 고인돌의 잔해라고한다


 하지만 고창이 청보리밭 빼곤 볼게없는 그런곳은 아니다. 알고보면 고창에는 그보다 더 놀라운 볼거리가 숨어있으니, 바로 '고인돌'이 그 주인공이다.
 고창이 고인돌로 유명한줄은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처음 알게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수의 고인돌이 발견되었을 뿐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까지 되어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짐작이 간다.

 아래는 관광안내 사이트에 나와있는 고창 고인돌군에 대한 설명이다.

1994년 9월 27일 사적 제391호로 지정되었다. 고창읍 죽림리와 아산면 상갑리 일대의 매산(梅山)마을을 중심으로 동서에 걸쳐 표고 15∼50m 내에서 군락을 이룬다. B.C.400∼B.C.100년경(청동기시대 말∼초기철기시대)까지 이 지역을 지배한 청동기시대 족장의 가족묘역이다.

5만여 평에 1,000기 이상으로 추정되나 1990년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지표조사 결과 북방식 3기, 지상석곽식 44기, 남방식 251기, 기타 불명이 149기로 전체 447기가 확인되었다. 크기는 길이 1m 미만에서 최대 5.8m에 이르며 3m 미만이 80%, 3m 이상이 20%, 4m 이상이 21기로 그중 6기는 5m가 넘는다.

북방식·남방식·무지석(無支石) 등 국내에서 조사되는 고인돌의 각종 형식을 포괄하고, 상석의 크기 또한 소형 석곽인 개석부터 거석까지 있어, 동북아시아의 고인돌 변천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2000년 ICOMOS(Internatioanal Council on Monuments and Sites:국제기념물유적회의)를 통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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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은 고인돌의 마을이라 불릴정도로 지역 전체적으로 고인돌이 분포되어있다. 어느 집은 뒷마당에도 고인돌이 있을 정도라는데, 그런 고인돌들의 대부분이 모여있는 죽림리 일대가 고인돌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고창의 지역색을 보여주듯, 서해안고속도로 고창 휴게소부터 이름이 '고창 고인돌 휴게소'라고 되어있다.

 고창 고인돌 마을에 들어서니 뭔가 많이 어수선하다. 큼지막한 고인돌 모양을 본뜬 건물인, 고인돌 박물관이 아직 공사중이고 주변 공원으로도 이것저것 많이 보수하는 중이다. 고인돌이 가장 많다는 죽림리 일대의 산으로 가려면 조그만 개천을 하나 건너야 하는데, 일명 '고인돌교'를 건너야 한다.

 고인돌교를 건너다보면 참 재미있는게, 이곳의 모든 시설들이 고인돌을 본떠서 만들어졌다는게 느껴진다. 고인돌교의 표지석부터, 난간 손잡이와 문양, 가로등의 모습까지 하나같이 고인돌 모양으로 되어있다. 좋다 나쁘다 라고 느껴지기 보단, 그냥 왠지모르게 재미있다. 외국인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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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교를 건너면 가까운 언덕에 하나둘 돌무더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고인돌교를 건너면 서서히 언덕에 듬성듬성 놓여진듯한 고인돌들이 보인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씨 말을 빌리자면 말그대로 '고인돌 떼무덤'처럼 느껴진다. 들어오는 입구쪽으로 보이는 언덕은 제3탐방로, 이곳 주변으로 4개의 탐방로가 있으니 너무 천천히 둘러보다간 다 둘러보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허나 고인돌을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생김새가 대부분 거기서 거기일테니, 박물관을 관람하듯 하나하나 찬찬히 둘러보기 보다는, 주변 언덕을 따라서 산책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둘러보며 수많은 고인돌 속에 서있는 느낌을 즐기는 것이 더 좋다고 느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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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고인돌 한 기, 저 무거운 돌은 어떻게 옮긴걸까


 이곳 주변을 재정비하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고인돌이 있는 언덕쪽으로는 자연 그대로 '방치'되어있다는 느낌도 든다. 조그만 산책로 하나 있을법 했지만 잔디밭 위로 로프로 만든 간이 난간이 둘러져 있을뿐 사람이 걸어올라갈만한 길은 보이지 않았다. 길이 아닌 잔디밭을 따라 언덕 위까지 올라가니 그제서야 잘 닦여있는 탐방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흔히 고인돌이라 하면 생각하는 모양의 '잘생긴'고인돌들은 앞쪽 언덕 뒤로있는 산속에 대부분이 보존되어있다고 한다. 따로 마련된 길이 없기때문에 탐방로를 따라 가면서 풀숲사이에 숨어있는 고인돌들을 숨바꼭질하듯 찾아내면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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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발아래 이 돌들도 고인돌의 흔적은 아닐까'하는 상상을 하며


 특별할것 없어보이는 고인돌 떼무덤, 누군가가 느끼기에는 그저 야산에 굴러다니는 조금 커다란 돌덩이 정도일지도 모르겠지만 조금만 시선을 다르게 보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고인돌을 만드는데 쓰이는 거대한 돌들은 쉽게 그 자리를 옮기지 못한다. 물론 처음 고인돌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어떤 방법을 써서든 간에 저 큰 돌을 이곳까지 운반해 왔겠지만, 그 이후로는 저 돌은 아마 그자리에 수천년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땅도 변하고, 하늘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는 그 오랜 시간동안 홀로 변치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고인돌은 그 옛날과 지금의 우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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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돌멩이 하나도 이곳에서는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너무많아 친근하게 까지 느껴지는 고창의 고인돌때문인지, 이곳 주변에선 작은 돌하나 마저도 오랜 세월의 흔적을 담은 유적이 아닐까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무심결에 발로 차버린 하찮은 돌속에 선인들의 옛 기억이 서려있지는 않을까 하면서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진다.

 모아이, 스톤헨지 처럼 이곳 고창 고인돌군 역시 세계 거석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인간은 자신을 초월하는 초인간적인 스케일앞에서 엄숙함을 느끼고 경건해진다고 하는데, 나역시 그런 느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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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로를 따라 올라가는 길에 있는 표지판


 언덕위로 산속을 따라 이어지는 탐방로는 그 길이가 3km정도에 이른다. 탐방로는 '오베이골'이라 불리는 동양 최대의 고인돌군이 있는 숲속을 빙 둘러가며 이어져 있지만, 가까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서 직접 고인돌을 보기는 어렵다. 운곡 저수지까지 이어지기때문에 가벼운 산책로로 연인과 함께 혹은 아이들 손을잡은 부모님들이 천천히 걸어보기에 참 좋다. 중간중간 조그만 쉼터들과 생태연못도 마련되어있으니 고인돌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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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꼭대기에서 바라본 고창 고인돌 마을의 풍경

 
 볕이 잘드는 하늘을 바라보며 완만한 언덕에 다소곳이 자리잡은 고인돌군. 그 언덕에 올라서면 고인돌 마을과 그 주변 산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와는 다른 시대에 살았던 선인들의 흔적, 그리고 수천년이 지나 그 흔적에 다시 찾은 우리들의 모습을 비추며 천천히 저녁해가 저물어간다.

 어쩌면 잘 닦아놓은 시설과 공원을 기대하고 찾았던 관광객들이라면 많이 실망할 수도 있다. 아직 이곳저곳이 공사중인데다가 그냥 자연스럽게 놓인 고인돌을 '알아서'관람해야하는 불편함까지. 하지만 오히려 나는 지금 이 모습이 좋았다. 혹여 이곳을 개발한답시고 고인돌이 놓여진 언덕 곳곳을 따라 반짝반짝 윤이나는 길이 놓여지고 가로등이 켜져있었다면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멀리서 되돌아 나가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진정으로 이곳 고인돌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라면, 고인돌이 자리잡은 이곳 언덕과 산 전체를 하나의 유적으로 보고 그 언덕과 산의 모습을 그대로 지키려는 노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옛 흔적은 그 모습 그대로 놓아두는게 가장 멋진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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