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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겨우 5일 타면서 무슨 결전의 날 까지 있겠냐만은, 하루 종일 엉덩이 붙이고 컴퓨터 앞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자전거로 하루에 80km 넘게 달려야 한다는게 나름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게다가 오늘 라이딩에는 목적지조차 없다. 일단은 성산까지 가는걸 목표로 하되, 너무 무리하진 않기로 미리 약속했다. 과연 어디까지 달릴 수 있을까.
 4박 5일이면 그리 짧은 일정은 아니었지만 욕심을 조금 부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거리 분배가 그렇게 되고 말았다. 마라도는 꼭 보고 싶었고, 그렇다고 우도나 성산 일출봉을 포기할 수는 없고... 2일차와 3일차에 두 곳을 나누어 놓으니 그 사이 거리가 거의 100km 가까이 되더라. 물론, 그 사이에도 중문이나 서귀포, 표선 같은 볼거리가 수두룩 하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 출발!


출발하기 전 스트레칭은 필수!


 간밤에 천둥 번개를 동반한 초대형 폭우가 내리는 덕분에, 밖에 널어두었던 빨래는 완전히 젖어있었다. 다행히 내 빨래는 실내 건조대에 있어서 비를 피할 수 있었지만(깜빡 잠든사이 누군가 전부 널어주신...고맙습니다!) 친구는 운동화에서도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스트라이다 짐칸에 운동화를 묶고는 슬리퍼로 갈아신어야 했다. 장거리 라이딩에 슬리퍼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기만해도 숨이 턱턱 막히던 산방산 오르막


 사이 게스트 하우스를 출발해 서귀포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오른편으로는 아름다운 제주의 바다가 펼쳐지는데, 눈앞에 커다란 산 하나가 떡 하니 버티고 섰다. 바로 산방산이다. 마치 누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 마냥 바닷가에 우뚝 솟은 풍경이 꽤나 생경하다. 구경도 잠시, 곧바로 산방산 옆으로 이어지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서귀포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야 하는 그 곳! 혹여 초반부터 몸에 무리가 갈까봐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기로 했다.



서귀포에 도착한 기념으로 한라봉을 하나 사먹었다


 인생을 살다보면 늘 무언가를 선택해야하는 기로에 놓인다. 물론 그 선택에는 포기해야할 무언가가 수반되기도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하루만에 성산까지 가겠다는 야심찬 꿈을 위해서 우리는 중문을 포기해야만 했다. 일주도로를 타고 달리며, 중문이라고 쓰여진 표지판을 지나칠때는 조금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보면 길가에 한라봉이나 제주 감귤을 파는 가게들이 자주 보인다. 꼭 뭔가를 사지 않아도 길을 묻거나 물을 얻기에 좋고, 친절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들도 많았다. 서귀포에 거의 다 왔을 무렵, 한 가게에 들어가 우리는 한라봉을 두 개 샀다. 요새 한라봉은 철이 아니라고 하는데, 찌는 듯한 도로위의 열기를 피해 맛보는 그 짜릿함이란... 먹어본 사람만 안다!



오늘의 체크 포인트, 제주 월드컵 경기장


 드디어 제주 월드컵 경기장에 도착. 꼭 경기장을 보러 왔다기 보다는, 출발하면서부터 마음 속으로 정해두었던 오늘의 체크포인트였다. 송악에서 여기까지만 해도 거리가 꽤 되는것 같은데, 아직도 가야할 길이 삼만리! 잠깐 지도를 펴고 앉아서 재정비를 좀 하기로 했다. 

 월드컵 경기장을 체크 포인트로 잡은건, 일단 여기까지 달려보고 오늘의 라이딩 목적지를 가늠해 보려는 생각이었다. 이런 페이스라면 성산까지 충분히 갈 수 있겠다 싶어서 게스트 하우스에 전화를 했는데, 아뿔싸. 자리가 없단다. 우리의 체력이나 페이스는 중요한게 아니었다. 일단 잘 곳이 없다는데 무엇을 어찌 하리오... 어떻게 할까 고민 하다가, 미리 알아온 다른 숙소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결국, 성산에 조금 못미처 온평리에 위치한 '생태숙소 퐁낭'을 예약했다. 미리 알아보지 못한 곳이라 걱정스런 마음도 들었지만, 그때는 몰랐었다. 퐁낭에서의 하룻밤이 내 여행의 꽤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게 될 줄은...



외돌개의 더 많은 사진들은 다음편에서...


 서귀포 시내에 가까워지면서 부터는 참 볼거리가 많다. 오히려 제주시 쪽에 있을 때 보다 가볼곳이 더 많게 느껴질 정도. 제일 먼저 우리가 들른 곳은 '외돌개', 대장금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관광지에 많이 들리기가 힘든 것 같다. 특히나 이렇게 푹푹 찌는 여름이면, 자전거에서 내려 자물쇠를 채우고 짐을 푸는 사이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버린다. 

진짜 '즐거운' 자전거 생활!?

 
 그래도 자전거 여행이 즐거운데에는 따로 이유가 없다. 땀을 뚝뚝 흘려가며 자물쇠를 채우고 있는 친구 너머로, '즐거운 자전거 생활'이라는 글자가 보이는 상황이 재미있길래 사진으로 한 장 담았다.


하늘이 너무 예뻐서 더운것도 잊었다


 외돌개를 보고서 서귀포쪽으로 더 내려오면 새연교, 천지연 폭포, 정방 폭포를 만날 수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모여 있어서 쉬엄쉬엄 자전거로 돌아다니기에도 안성맞춤! 새연교에서는 그림같이 예쁜 하늘을 배경으로 수고가 많은 우리 스트라이다들 증명사진 한번씩 찍어줬다. 스트라이다가 출시된지도 꽤 오래되었지만, 아직까지는 그래도 신기한 자전거인가보다. 지나가던 꼬마들이 너무 예쁘다면서 한마디씩 하는데,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오늘의 점심! 많이 먹고 힘내자!


 천지연 폭포와 정방폭포, 이중섭 미술관을 돌아보고는 늦은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가장 해가 뜨거운 1시~2시를 피해 라이딩을 하려다보니 자꾸만 점심식사가 늦어진다. 다시 일주도로 쪽으로 나가는 길에 위치한 허름한 식당, 한사람당 5천원에 나름 만족스러운 백반 정식으로 배를 두둑히 채울 수 있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기에, 서귀포에서 들렀던 관광지들 이야기는 다음편에서 따로 하도록 하겠다.



민속의 고장(?), 표선면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서귀포를 나와서 다시 일주도로를 따라 쉬지않고 달렸다. 표선에 조금 못 미처서 갑작스럽게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제주에서는 처음 맞아보는 비라 순간 당황했지만, 쏟아지는 빗속으로 달리는 기분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게다가 시원하기까지 해서, 오히려 다시 힘이 나는 기분이었달까. 어쨌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표선에 도착했다. 이제는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어느새 하늘이 많이 어두워졌다.



두모악에는 결국 가지 못했지만...다음날 아침에 다시 오기로 했다


 그날 많이 타기는 했나보다. 글을 써도 써도 끝나질 않는다. 사실 온평리에 숙소를 정한 후, 두모악 갤러리를 꼭 들렸다가 가기로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어째 삼달리를 지나 아무리 달려도 두모악 표지판이 나오질 않았다. 가까스로 표지판을 만나 오르막을 열심히 달려서 갤러리 앞에 도착했으나...입장 시간이 10분 초과되어 결국 들어가질 못했다. 허탈한 마음으로 손등에다 올레길 도장만 찍고 다시 돌아나와야 했다.

 안그래도 힘든데, 더 힘이 빠진다. 벌써 속도계의 누적 거리는 70km를 넘어섰다.


아무 말 없이 바다를 응시하며...


 온평리 숙소를 찾아가기 위해 마지막 해안도로에 들어섰다. 사진을 다시 보니 그때 우리가 참 피곤하기는 피곤했던것 같다. 모든걸 해탈한듯한 저 심오한 표정!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고 마지막으로 힘을 냈다. 그렇게 해가 다 넘어가서야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도 어제처럼 일찍 잠들어버릴것만 같다. 내일 우도는 갈 수 있을까...? (계속)

숙소에 도착해서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힘들다 힘들어^^;






오늘의 코스 리포트
(사이게스트하우스-산방산-중문-서귀포-표선-온평리-생태숙소퐁낭)

 처음부터 먼 거리를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해안도로나 볼거리에 너무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주로 1132번 일주도로를 따라서 달리되, 서귀포에서 잠깐 시내로 들어가 낮시간을 보낸 후 시원한 저녁을 틈타서 계속 달리기로 했다. 산방산을 넘을때랑, 외돌개 근처에서 오르막이 갑자기 나타나는걸 제외하고는 크게 특별할 것 없는 코스다. 일주도로로 달려도 오른편에 바다가 살짝 보이기 때문에 그리 심심하지 않게 달릴 수 있다.



오늘의 라이딩 리포트
2010년 8월 5일 / 3일차

주행거리 : 79.92 km
주행시간 : 4시간 43분
최고속력 : 42.6 km/h
평균속력 : 16.9 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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