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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 대학에 입학해 과제며, 술자리며 정신없이 흘러갔던 2006년. 열심히 과외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내 인생의 첫 카메라 PENTAX me super와 함께 사진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5년째다. 사진은 찍는만큼 는다고, 경력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짧은 시간들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참 이런저런 사진들을 많이도 찍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필름 첫 롤 현상의 감동에서 부터 지난 사진들을 찬찬히 되돌아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이 스냅사진이다. 표준에 가까운 화각으로 늘 보이는 세상을 그대로 담는게 전부였던 나의 사진들. 편안한 그런 사진이 좋았지만 가끔은 큼지막한 망원렌즈로 모델도 찍고, 스튜디오 촬영도 해보고 싶을 때도 있었다.

이래뵈도 난 얼짱 각도를 아는 강아지라구요~


 여행하며 주로 풍경 사진을 찍는걸 즐기는 터라 12-24mm나 10-17mm같은 광각, 혹은 어안 렌즈를 쓸 일이 더 많긴 하지만 왠일인지 200mm 렌즈를 쓰고싶다고 하고는 넙죽 받아와 버렸다. 처음엔 여자친구도 모델삼아 찍어주고 주변 사람들 이쁜 사진 많이 찍어주면 되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막상 집에 들고와보니 카메라에 물려 있을때보다는 선반에 있는적이 더 많았던것 같다. 그나마 시간이 좀 나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비가오거나 날씨가 흐려버리고, 설상가상으로 3월의 때아닌 폭설과 더불어 어제는 황사까지 겹쳐 도통 제대로 써볼 일이 생기질 않는다. 이 좋은렌즈를 들고도 바보같이 먼지만 쌓이게 하고 있다니. 속타는 마음으로 렌즈를 다시 꺼내어 먼지를 닦아주고 있는데 멍돌이가 폴짝 침대위로 올라와서는 산책나가자고 조르기 시작한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의 끝자락에서...


 그래! 모델이 꼭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 우리집 귀염둥이 막내 멍돌이 사진좀 간만에 이쁘게 찍어주면 되겠다 싶어서 서둘러 카메라를 둘러메고 주머니에 목줄과 비닐봉지를 쑤셔 넣고 집을 나섰다. '산책'이라는 말만하면 폴짝 뛰어올라 김연아 뺨치는 트리플 러츠를 뛰며 반기는 활동적인 우리 멍돌이야말로 나에게는 최고의 모델이다. 집에서 열 발짝만 나가면 동네 뒷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바로 시작되니 멋진 스튜디오도 따로 찾아갈 필요가 없다.

뭐하고 있어! 얼른 따라오지 않구~


 황사가 심해서 그런지 하늘이 흙빛이다. 밖에 나가면 멍돌이나 나나 몸에 안좋을 것 같아 고민을 살짝 했지만 일주일에 딱 한번 유일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주말, 이 때를 놓치면 일주일 내내 또 좁은 집안에만 갇혀 있어야 할테니 잠깐이라도 바깥 바람을 쐬어주는게 좋겠다 싶었다. 녀석도 마음이 통했는지 흙을 밟자마자 이내 저 높은곳 까지 전속력으로 뛰어서 올라가버린다.
 DA☆200mm 렌즈는 크롭환산 300mm라서 실내용으로 쓰기에는 아무래도 좀 한계가 있었다. 헌데, 일단 밖에 나오니 그야말로 멍돌이 전용 렌즈가 따로없다.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테스트 했던것과는 달리 밝은 태양광 아래에서는 스타렌즈 특유의 투명한 느낌이 가득 전해져 온다.



포커싱이 꽤 빠른 렌즈지만, 멍돌이를 가끔 놓치기도 한다


 좋다고 폴짝폴짝 하두 뛰어다니는 통에 아무리 포커싱이 빠른 렌즈도 쉽게 따라가지 못할 것만 같다. 드라이브 모드를 연사로 놓고 여러장 찍는게 대안이라면 대안. 
 멍돌이 얼굴에는 늘 장난끼가 가득하다. 아직 어려서 낯선 사람들이랑 마주치면 으레 먼저 겁을 먹고 후다닥 도망가버리기가 일쑤지만, 도망가는 와중에도 이따금씩 카메라 렌즈를 쳐다보는게 기특하다.


어딜 그렇게 깡총깡총 뛰어가니!


DA☆ 200mm F2.8 ED 렌즈는 초음파 모터로 포커싱을 하기 때문에 소리 없이 조용하고 빠르게 포커싱이 가능하다. 야외에서 사용하다보면 가끔은 너무 조용해서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뿌옇던 화면이 순식간에 또렷하게 짠 하고 변하면서 피사체가 한 눈에 들어오는게 무슨 마법에 걸리기라도 하는것만 같다. 소리에 민감한 멍돌이같은 동물들은 윙윙거리는 포커싱 소리가 나면 금새 고개를 돌려버리는 탓에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흔한데, 초음파 모터 덕분에 카메라가 없는 척 시치미 뚝 떼고 마음껏 사진을 찍어줄 수 있어서 마음에 든다.


얼른 따라오지 않구 뭐해~


 모델을 피사체로 촬영하는 경우, 마음의 드는 사진이 얻어질 확률은 사진사와 모델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이루어 지느냐에 달렸다고 한다. 사람을 찍는 경우야 말도 걸 수 있고, 대화도 가능하지만 멍돌이는 내 말을 못 알아들으니 사진 찍어주기가 배는 더 힘든 것 같다. 이쪽 좀 한번만 봐달라고 애타게 소리쳐도 혼자 신나서 또 쌩 하고 멀리 달려가버린다. 으휴!




바람이 하도 불어서 길어버린 털이 마구 휘날린다


 그러고보니 어느새 멍돌이가 털이 많이 자랐다.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을 보니 야생이 따로 없다. 날이 좀 풀리면 봄맞이 미용좀 한번 시켜줘야지...
 산을 오르는 내내, 나보다 한 열 발짝은 먼저 뛰어가서 한번 쓱 뒤돌아보고는, 다시 또 앞으로 쭉 달려가기를 반복한다. 누가 누구를 산책시키는건지 원, 녀석 참 날쌔기도 하다. 뒤에서 따라가며 사진까지 찍으려니 대부분 멈춰서서 뒤돌아보는 사진이 찍히곤 한다. 한번만 정면으로 좀 봐줘라 멍돌아!



아휴, 고놈 참 이쁘기도 하지


 조리개 최대개방에서도 털 한올 한올 참 이쁘게도 나온다. 괜히 단렌즈에 스타라는 이름까지 붙는게 아닌가보다. 사람들이 흔히 펜탁스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로 리밋렌즈와 스타렌즈를 꼽는다고 한다. 사진을 시작할 때부터 줄곳 펜탁스와 인연을 맺어 왔지만 스타렌즈를 제대로 써본건 이번이 처음이다. 직접 찍어보고, 손에 쥐어보고나니 비로소 그 말이 실감이 난다. 이렇게 이쁘게 나올 줄 알았으면 좀 꾸며주고 나올껄 그랬다.

광각 렌즈로만 풍경을 찍으라는 법은 없으니~


 틈틈히 풍경사진도 좀 찍었다. 겨울의 끝자락을 잡고 찾은 뒷산은 조금은 쓸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다 부스러진 낙엽들이 바람에 뒹굴고 있지만, 또 어느새 새 봄을 준비하는 꽃망울이 하나 둘 활짝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봄이 오고, 푸른 잎이 온 산을 뒤덮을 즈음에 또 다시 올라와봐야겠다.

멍돌아~ 간만에 산에 오르니 좋지?^^


  DA☆200mm 렌즈의 공간감과 색감 덕분에 멍돌이가 한층 더 생기있어 보인다. 해발 100m가 채 안되는 자그마한 뒷산마저 이렇게 멋진 배경으로 변신시켜 버린다. 얼른 또 인물사진도 찍어보고, 야구장에도 한번 들고 가보고 싶어진다.
 한 시간 정도의 산책을 마치고 오솔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꽤 묵직한 렌즈 물린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빨빨거리는 멍돌이를 열심히 뒤쫒다보니 나야말로 한바탕 운동하고 온 느낌이다.
 렌즈든 카메라든 기계적인 성능도 참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건 피사체라던 지인의 말이 떠오른다. 아무리 유명한 모델을 찍어도 애정이 없으면 사진은 밋밋해지기 마련이고,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가족사진, 친구들, 강아지 사진일 지라도 사랑스러운 눈길로 뷰파인더를 바라보고 마음으로 대화하며 찍는 사진은 가장 가치있고 아름다운 사진이 되어준다. 집에와서 다시 사진을 모니터로 보니 우리집 강아지지만 고놈 참 잘생겼다. 너무 팔불출인가? 얼른 글을 마치고 또 멍돌이랑 놀아주러 가야겠다. 사랑해 멍돌아!^ㅡ^

*이 글의 모든 사진은 PENTAX DA☆ 200mm F2.8 ED [IF] SDM + PENTAX K-x로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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