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2년차 중반에 접어들던 지난 초여름, 처음으로 혼자 주택 설계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대상 부지를 답사를 시작으로 사례조사와 대지분석, 기본설계 제안까지의 초기 과정은 학교에서 하던 설계스튜디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계획안이 어느정도 잡히고 본격적으로 공사용 도면을 그리는 실시설계가 진행되면서 부터는 난생 처음해보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모르는 것 투성이라 시간이 오래걸리는건 물론이고 마음고생도 심했다. 다행히도 이제는 설계가 거의 마무리되어 착공을 준비하는 중이다. 건축에서 도면은 설계자의 생각을 시공자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도구다. 하나의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평면도, 입면도, 단면도는 물론이고 창호도, 내부전개도, 화장실상세도, 천장도, 우오수계통도 등 수 많은 종류의 도면들이 ..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 Valls, 1951~)는 스페인 발렌시아 출신의 건축가다. 학부에서 건축학을 전공하였으나 이후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ETH)로 진학하여 토목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는다. 건축학과 공학을 모두 섭렵한 독특한 커리어 덕분인지 그의 작품들은 자연물의 형태에서 모티브를 얻은 독특한 구조미로 유명하다. 몇 년 전에는 현대자동차 광고를 이 곳 발렌시아의 칼라트라바 건축물을 배경으로 촬영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바르셀로나(Barcelona)가 가우디의 도시라면 발렌시아(València)는 단연 칼라트라바의 도시다. 이 곳에서 나고자란 그는 건축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뒤 돌아와 많은 건축물들을 고향에 남겼다. 하지만 꼭 칼라트라바가 아니더라도 발렌..
다시 11월이다. 살다 보면 지난 겨울이 얼마나 추웠는지 자주 잊곤 한다. 올해도 그랬다. 이른 아침 출근길 코 끝 스치는 한기에서야 새삼 겨울이 문턱까지 와 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문득 스페인의 작은 도시 꾸엔까에서 나의 코 끝을 스쳤던 그 때의 바람이 생각났다. 이제는 거의 3년 전 이야기가 되어버린 오래된 여행기다. 이야기는 지난 글, '세계일주 여행자 신현재와의 기막힌 동거(http://ramzy.tistory.com/349 )'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마드리드에서의 교환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귀국 전까지 신나게 여행할 일만 남아있던 무렵이었다. 세계일주 중인 후배 신현재와 마드리드 내 집에서 잠시 동거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스페인 여행을 함께하게 되었다. 겨우 한달 남짓한 시간 동안 스페인, 포르..
지난 6개월간의 나의 마드리드 교환학생 생활은 크게 세 파트로 구분지을 수 있다. 시즌 1은 처음 마드리드에 도착해서 한 학기를 열심히 다니며 마드리드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시기, 시즌 2는 학기가 끝나고 세계일주 여행자 신현재와 마드리드에서 한 방에 한 달 넘도록 함께 살았던 시기, 그리고 마지막 시즌은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마드리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을 준비하던 시기. 그동안 여행기만 주구장창 써왔으니 오늘은 잠깐 사이드로 빠져서 교환학생 생활의 시즌 2를 가볍게 정리해볼까 한다. 위에서 언급한것 처럼 시즌 2는 세계일주 여행자 신현재가 마드리드 내 방에서 함께 살게 되면서 부터 시작된다. 신현재라는 친구에 대한 소개는 지난 포스팅(http://ramzy.tistory.com/341..
북부 이탈리아 여행 7일째. 밀라노에서(정확히는 바로 옆도시 베르가모에서) 시작한 여정은 동서로 지중해를 한번씩 찍고 한바퀴를 돌아서 다시 밀라노로 돌아와 있었다. 돌이켜보면 세계일주중인 현재와 마드리드에서 교환학생 생활로 바쁘던 내가 일정을 맞추고 여행 계획을 잡는 일이 그리 만만치 않았다. 결국 밀라노 인-아웃으로 루트가 굳어진건 마드리드-밀라노간 항공권이 이탈리아 북부 도시들중 제일 싼 편이었기 때문이다. 이유가 조금 엉뚱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베네치아와 친퀘테레 때문에 다시 찾은 이탈리아에서 밀라노까지 여행하게 되었다. 친퀘테레로 가는 밤샘 여정 후 오랜만에 발을 쭉 뻗고 잔것 같다. 밤 늦게 밀라노에 입성해서 미리 알아본 시 외곽의 허름한 호스텔에서 그렇게 하룻밤을 묵었다. 아껴두었던 한국..
친퀘테레의 다섯번째 마을 몬테로소에서의 행복했던 만찬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기차에 올랐다. 생각보다 몬테로소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 탓에 일정이 조금 빠듯해져 버렸다. 다섯 마을 사이를 오가는 기차는 그리 자주있는 편이 아니라 시간표를 잘못 조합했다가는 다섯 마을을 다 돌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다시 우리가 향한 곳은 세번째 마을인 '코르닐리아(Corniglia)'였다. 코르닐리아는 다섯 마을중 유일하게 바다에 직접 면하지 않은 마을이다. 하지만 기차역이 바닷가에 있기 때문에 마을까지는 걸어서 십오분 정도 열심히 언덕을 올라야만 한다. 높은 바위 언덕위에 있는 마을이기때문에 이번 여름 쓰나미 피해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던 마을이기도 하다. 코르닐리아라는 이름은 이곳에서 포도를 재배하던 지주 코르넬리우..
친퀘떼레(Cinque terre). 이탈리아어로 '다섯(Cinque)개의 땅(Terre)'이라는 뜻의 친퀘테레는 리오마조레, 마나롤라, 코르닐리아, 베르나차, 몬테로소 이렇게 다섯 마을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이 다섯 마을들은 이탈리아 북서부 해안을 바라보고 가파른 절벽위에 아슬아슬하게 자리잡고 있다. 일반적인 관광지들과 차마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마을들이지만 유럽 여행자들에게는 의외로 꽤 알려져있는 편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도 등록되어있단다. 흔히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럽에서 제일 아름다운 마을'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그리스의 산토리니와 1, 2위를 다투는 그런 곳이기도 하다. 해안가의 조그만 다섯 마을이 이토록 유명해지게 된건 자연적, 지형적인 특성 때문이다. 지중해의 세찬 바람을 제..
옅은 오렌지빛 암모나이트가 곳곳에 남아있는 도시. 단테와 바이런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따라 찾아왔고, 베르디의 오페라를 고대의 경기장에서 관람할 수 있는 특별한 곳. 이탈리아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이 로마, 피렌치, 베네치아 다음으로 많이 찾는 도시. 한국인들이 제일 많이 본다는 가이드북에서 인용해온 베로나에 대한 설명이다. 설명만 보면 정말이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꼭 들러야 할 도시처럼 되어있지만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에게는 그저 처음 들어보는 도시일 뿐이었다. 사실 베로나에 들르게 된건 순전히 긴 여정을 잘라 가기 위한 이유에서였다. 딱히 보고 싶은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원래 알던 도시도 아니었다. 그저 바닥에 지도를 펼쳐놓고 베네이차에서 친퀘떼레(Cinque Terre)로 가는 길 한 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