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도 희뿌연 연무(煙霧) 뿐이었다. 온데 사방이 구름으로 둘러싸인 누볼라우 산장의 아침 풍경은 마치 내가 하늘 위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이탈리아어로 구름(Nuvolau)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따뜻한 물은커녕 샤워실도 변변히 없고, 전기 콘센트라도 한번 쓸라치면 줄을 서야 하는 불편한 곳이지만 지난밤 이곳에서 나는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라(Mara)와 소피아(Sofia)와 헤어진 뒤, 이 산장에서 같은 방을 쓰게 된 호주인 부부와 친해진 까닭이었다. 선생님으로 일하며 방학 때마다 전 세계를 함께 여행한다는 둘은 저녁식사 내내 나와 함께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언젠가 호주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또 연락처..
내 여행의 출발은 늘 혼자였다. 누군가 함께하지 않으면 금세 외로워질게 뻔함에도 마음 내키는 대로 어디든, 언제든 훌쩍 떠나버리는 나였다. 하지만 공항에서, 기차역에서, 숙소에서, 혹은 레스토랑에서 나는 늘 사람들을 만났고, 어울렸고, 함께했다. 그러다 마음이 맞는 친구를 사귀면 하루, 혹은 일주일, 때로는 한 달 가까이 함께 여행하기도 했다. 여행이란 목적지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이르는 과정에 더 가깝다. 길 위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고, 사람이 있는 곳에는 사연이 있다. 그 사연들이 차곡차곡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야 말로 곧 여행의 본질이 아닐까 종종 생각하곤 했었다. 라가주오이 산장(Rifugio Lagazuoi)에서 묵기로 한 날, 나는 네 명의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다. 이탈리..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난생처음으로 산장에서 맞이해보는 아침이 사뭇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아직은 걸은 길보다 걸어야 할 길이 더 많이 남았지만 어제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마음엔 한결 여유가 생겼다. 자리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오늘의 루트와 산장 정보를 살피던 중 한 문장으로 시선이 향했다. '라가주오이 산장은 해발 2,700m에 위치하고 있어 돌로미티 지역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숙소입니다.' 잔잔하던 내 마음에 순간 물결이 일렁였다. 물론 세상에는 그보다 더 높은 곳도 많다. 당장 같은 알프스에 속한 스위스 융프라우만 해도 해발 3,500m까지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기차로 올라갈 수 있고, 네팔에 가면 에베레스트를 바라보고 해발 3,800m에 우뚝 솟은 호텔도 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700'이라는..
돌로미티에서의 첫 번째 아침이 밝았다. 전날 저녁 늦게 마을에 도착한 탓에 주위를 둘러볼 새도 없이 곧바로 방에 들어와 잠을 청한 뒤였다. 반쯤 열린 발코니창 너머로 불어 들어온 선명한 산내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아직도 잠이 덜 깬 나의 의중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산새들마저 쉴 새 없이 지저귄다. 도저히 일어나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었다. 확실히 도시에서 맞이하던 아침과는 조금 달랐다.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고 문득 생각했다. 호텔 앞을 가로지르는 왕복 2차선 도로는 내 기억이 맞다면 어젯밤 역에서부터 걸었던 그 길이었다. 겨우 차 두대가 아슬아슬 지나갈 정도의 길이 마을의 중심 도로라니. 어쩌면 인구 3천 명 남짓의 이 작은 마을에선 중앙선을 그리는 것조차 사치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정말이지 시에스타는 스페인에나 있는 줄로만 알았다. 점심도 못 먹고 마르세유에서부터 열심히 달려왔건만 이 작은 마을에는 우리 부부 허기를 달래줄 빵 한 조각 살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나마 문이 열려있는 식당들의 주방은 불이 꺼진 지 오래고 저녁 장사 전까지는 재료마저 없단다. 아무래도 오늘 점심은 굶게 생겼다. 시계는 이제 막 두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한낮의 찜통 같은 더위속에 체력만 허비한 채로 터덜터덜 차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시동을 걸자 내비게이션이 남은 길안내를 다시 시작했다. 최종 목적지였던 르 토로네 수도원(Abbaye du Thoronet)까지는 겨우 5km 만을 앞두고 있었지만 목적지 부근 지도상에는 눈 씻고 봐도 식당은커녕 작은 건물 하나 없음이 분명했다. 수도원 기행 중에..
계단은 층과 층을 연결하는 아주 기본적인 건축 요소이다. 기원전에 세워진 지구라트(Ziggurat) 정면에 긴 계단이 자리하고 있음을 떠올려보면 그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계단은 사실상 그 역할을 잃어버렸다. 수 백 미터 높이의 초고층 건물이 전 세계에 천여 개가 넘고* 불과 수 초 내로 엘리베이터가 몇십층을 오르내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혹시 당신은 지금 사는 아파트나 근무하는 사무실의 계단실을 얼마나 자주 이용하는가?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걸어 다니지 않는 이상 계단실에 들어가 볼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고층건물의 계단을 법에서 부르는 이름조차 '특별피난계단'이다. '특별히 피난할'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모르고 살아도 될 것..
건축하는 일은 곧 땅에 대한 존중과 이해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설계 작업은 으레 그 땅을 직접 찾아가 두 발로 걸으며, 두 눈으로 면밀하게 살피는 일로 시작된다. 책상 앞에 앉아 종이와 연필을 쥐기 전부터 건축가의 사유라는 것이 이미 시작되는 까닭이다. 내가 건축에 매력을 느끼는 건 자연과 인간이 서로 밀고 당기며 균형을 잡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지경계라는 가상의 선을 땅 위에서 찾아내고 이를 기준으로 집의 향과 배치를 결정하는 일부터가 당장 그렇다. 더욱이 본격적인 설계가 시작되면 중력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대 자연의 힘과 끊임없이 사투를 벌여야 하며, 건물이 높아지면 질수록 바람과도 싸워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공사가 시작되면 더욱 힘겨운 과정의 연속이다. 땅을 파고, 메우고, 벽을 세우고, 붙이고..
리용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마르세유까지 이어지는 A7번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이대로 서너 시간 정도 계속 달리면 생 레미 드 프로방스에 도착한다. 그러고 보니 외국에서 운전하는 게 벌써 인도, 미국, 이탈리아에 이어 네 번째다. 자동차가 네 바퀴로 굴러가는 이치야 만국 공통이지만 그럼에도 나라마다 특유의 운전문화라는 게 있어 매번 긴장하곤 한다. 괜스레 핸들을 잡은 손이 떨려오는 까닭이다. 어느새 리용에서 꽤 멀어지고 이정표에 아비뇽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즈음부터 운전이 한결 편안해졌다. 프랑스의 운전자들은 카메라가 없는 곳에선 120, 130킬로미터까지 시원스럽게 내 달린다. 나 역시 추월차로를 넘나들며 지중해를 향해 엑셀을 힘껏 밟았다. 초반 한 두 개 정도 못 보고 지나친 과속카메라 말고는 군더더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