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학회 때문에 스페인에 잠시 들른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한 번도 얼굴볼 기회가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바다건너 스페인에서 5년만에 얼굴을 보게 된 셈이다. 마드리드에선 도착해 내 방에서 딱 하룻밤을 자고 학회가 열리는 그라나다(Granada)와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로 가게 되는 짧은 여정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이기도 하고, 마침 또 마드리드에서 4개월이라는 적지않은 시간을 보낸 내가 하룻동안 마드리드 여행 가이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주어진 시간이 겨우 하룻밤 뿐이라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일단 마드리드 관광의 중심인 솔(Sol) 광장에서 부터 출발해 구 시가지를 한 바퀴 함께 걸었다. 걷다보니 문득 마드리드에 처음 도착한 8월 ..
벌써 네 번째 월말 가계부 정산이다. 11월달은 유난히 돈이 모자른 한 달 이었다. 9월 초 학기가 시작할때 즈음 마음먹기를 '학기중에는 여행에 큰 욕심 부리지 말고 학기가 끝나고 실컷 다니자!'했었는데... 실제로 11월에는 세고비아, 엘 에스꼬리알, 사라고사로 여행을 다녀와서 그런지 지출이 확 늘어버렸다. 12월 말에는 크리스마스 여행도 있고 해서 일부러 긴축재정을 했던 한 달이었는데 정산해보니 오히려 지출이 늘어 조금 당황했다. 역시 여행에는 만만찮은 지출이 따른다. 어차피 12월 말이면 학기도 끝나고 연말 정산을 할 생각이라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눈에 띄는 점은 당연히 '여행'항목. 지난 10월달엔 0% 였던게 무려 전체 지출의 32.8%로 크게 상승했다. 자연스럽게 생활비 총 합도 80유로..
교환학생들은 대체로 수업을 많이 듣지 않는다. 물론 개중에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도 있겠지만 에라스무스(유럽 지역 안에서의 학생 교류)들의 교환학기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Gran vacaciones(긴 휴가)'다. 이런 인식이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게, 언어가 다르긴 해도 어차피 한 나라같은 유럽 안에서 교환학생이라는게 학업적으로 이들에게 큰 자극이 되지는 않을것 같다. 오히려 스페인의 놀이 문화와 술문화, 거기에 에라스무스들의 끈끈한 커뮤니티가 더해져 많은 학생들이 '노느라 바쁘다'. 난 한국 학생이기때문에 '에라스무스(Erasmus)'가 아닌 '교환학생(Estudiante intercambio)'으로 분류된다. 제도적으로는 에라스무스와 같은 대우를 받지만,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서 온 나에겐 놀이 ..
종강까지 이제 두 주 남짓 남았다. 학기 초만 해도 '얼른 학기가 끝나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 뿐이었지만 막상 정말로 끝이 다가오니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내일은 설계 수업이 있는 월요일이다. 내일 수업을 포함해 이제 마감까지 딱 두 번만 더 수업에 가면 바로 마감이다. 당장 내일 수업에 가져갈 도면을 그리기 위해 책상에 앉았지만 머리도 잘 안돌아가고 그래서 오토캐드 대신 블로그를 켰다. 이왕 이렇게 된거 마감도 가까워졌으니 한 학기동안의 내 작업을 되돌아볼 겸 수업 이야기를 좀 써보려 한다. 마드리드 대학교로 교환학생이 확정되고나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수업은 당연히 '건축 설계 스튜디오'다. 건축학과의 특성상 다른 어떤 수업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업인데다 또 스페인의 유명한 건축가들 앞에서 내 작업을..
사라고사에서의 마지막날 아침. 거리는 간밤에 내린 비로 촉촉히 젖어 있었다. 이날은 별다른 계획이 없었다. 그냥 점심을 먹기 전까지 가볍게 못가본 여기저기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지난밤 따빠스 투어의 여파로 늦잠을 자는 바람에 11시가 조금 넘어 호스텔을 나왔다. 18유로라는 거금(사실 여행자 숙소치고는 상당히 싼 편이다, 호스텔이니깐)을 줬지만 그만큼 푹 자고나오지 못한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무엇보다도 아침식사 시간을 놓치는 바람에 거리에 나오자 마자부터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일단은 바실리카가 있는 광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바실리카에 아직 못가본 우린이를 따라 한바퀴 휙 둘러보고 나와서 곧바로 맞은편의 Foro로 들어갔다. 어젯밤 호세, 알베르또와 함께 광장을 걸으며 로마 유적인 원형광장을 보고나 F..
호스텔에서 나와 호세(José)를 만나러 가는 길. 둘 다 호세를 못 본지 한 달도 넘게 되어 한껏 들떠 있었다. 잠시 호세라는 친구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마드리드공과대학교(UPM)에서 건축을 공부하는 친구인데 작년에 일 년간 한국의 우리학교로 교환학생을 와 있었던 아이다. 지금은 반대로 나랑 우린이가 마드리드 호세네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상황. 마드리드에서는 우리집이랑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지만 어찌나 바쁜지 생각보다 자주 얼굴을 못보던 차에, 호세의 고향인 사라고사에서 함께 만날 기회가 온 셈이다. 호세랑 만나기로 한 장소는 구시가지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나와서 있는 '아라곤 광장(Plaza Aragon)'이다. 호스텔이 구시가지 북서쪽에 있는 까닭에 아까 걸었던 알폰소 1세 거리,..
사라고사 바이크폴로 대회에서 잠시 빠져나와 에스빠냐 광장(Plaza España)로 향했다. 어느덧 시간은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무렵. 미리 사라고사에 도착해있던 우린이와 형윤이를 만나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도 한 장 없이 처음 와보는 도시에서 길을 찾아가려니 막상 조금 겁이 났다. 하지만 사라고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작고 아담한 도시였다. 한 두어번 물어 방향을 잡자 금새 에스빠냐 광장에 도착했다. 에스빠냐 광장은 사라고사 구시가지 남쪽에서 가장 번화한 곳. 하지만 내가 찾아갔을땐 트램 공사때문에 거리가 상당히 복잡했다. Alberto와 Jose에게 나중에 들은 얘기를 종합해보면(정확히 어디까지 맞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원래 사라고사에 있던 트램을 확장, 보수 ..
스페인에 온 이후 처음으로 1박 이상 일정으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정확히는 2박3일. 어느새 3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정이 들어버린 방을 떠나 여행을 떠나려니 정말 이제는 여기가 '내 집'이구나 하는게 새삼 느껴졌다. 원래 사라고사에 가게 된건 단순히 여행을 목적으로 한게 아니었다. 지난주 주말은 '사라고사 바이크 폴로팀' 주최로 열리는 '사라고사 바이크 폴로 대회'가 있는 날이었고, 우리 '마드리드 바이크 폴로팀'은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 달 전부터 강도높은 트레이닝을 시작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결전에 날이 다가왔다. 키도 조그만 동양인 꼬마인 내가 멀리 스페인에서 '바이크 폴로'라는 인디씬에 몸을 담고 있는 지금의 모습도 아직 잘 실감이 안나지만, 팀원들과 함께 멀리 사라고사까지 가서 대회에 참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