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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환학생들은 대체로 수업을 많이 듣지 않는다. 물론 개중에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도 있겠지만 에라스무스(유럽 지역 안에서의 학생 교류)들의 교환학기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Gran vacaciones(긴 휴가)'다. 이런 인식이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게, 언어가 다르긴 해도 어차피 한 나라같은 유럽 안에서 교환학생이라는게 학업적으로 이들에게 큰 자극이 되지는 않을것 같다. 오히려 스페인의 놀이 문화와 술문화, 거기에 에라스무스들의 끈끈한 커뮤니티가 더해져 많은 학생들이 '노느라 바쁘다'. 

 난 한국 학생이기때문에 '에라스무스(Erasmus)'가 아닌 '교환학생(Estudiante intercambio)'으로 분류된다. 제도적으로는 에라스무스와 같은 대우를 받지만,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서 온 나에겐 놀이 문화 만큼이나 이 곳에서의 '배움'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었다. 실제로 그래서 한국에서 교환학생을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정보를 모아 듣고 싶은 수업들을 추리고, 미리 예상 시간표를 두 벌 정도 만들어 놓았을 정도였다. 물론 생각 했던 대로 수강신청이 되지는 않았다. 처음 생각했던 시간표는 '건축 설계 스튜디오, 사진, 석조 실습, 드로잉' 이렇게 였지만 '석조 실습(Taller de cantería)'은 인원이 너무 몰려 교환학생은 신청할 수 없게 막혀버렸고, 드로잉 수업은 생각보다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번학기 최종 시간표. 회색으로 표시된 과목은 결국 드랍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학기에는 총 세 과목(스페인어 수업까지 하면 네 과목)을 들었다. 나름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보다 욕심을 줄인 시간표지만 과제와 작업량이 많은 건축학과 수업의 특성상 조금 버거울 때도 있었다.




La representa impresa y la fotografía de la arquitectura
프린팅 표현 및 건축 사진


 마드리드에 오기 전부터 꼭 듣고 싶었던 수업 1순위였다. 나에겐 지난 2년 동안 사진이 '취미'가 아닌 '일'이었다. 사진 분야 컬럼니스트 활동을 하면서 사진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졌었다. 마드리드 공과대학교(이하 UPM) 건축학과 전공 수업들 중에는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신기한 수업이 많다. 사진 수업도 그 중 하나다. 사진을 일반 교양이 아닌 건축학과 전공 수업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 수업은 잘 가지 않게 되었다. 평범한 사진 수업이 아닌 건축학도의 눈으로 보는 색다른 수업을 기대해서 였을까. 이론수업은 다게르 부터 시작해서 다 하는 진부한 사진의 역사가 전부였다. 아 물론 아침 10시 수업이라 늦잠을 자다가 놓친 적도 많다. 시험도 없고 출석체크도 없는 수업이라 대부분 에라스무스들이 학점을 채우기 위해 듣는 수업이다. 그러다보니 수업 내용도 뭔가 너무 가벼워진 느낌이다.

 한 학기동안 세 번의 사진 포트폴리오를 제출하게 된다. '빛에 대한 탐구', '건축물의 묘사', '공간의 시퀀스'가 각 포트폴리오의 주제다. 그래도 포트폴리오는 제때 만들어 제출했지만 어딘가 많이 찜찜함이 남는 수업이다.





Proyecto y ejecución de la instalación

건축 설비 계획 및 실습

 정말 어쩌다보니 갑작스럽게 듣게 된 수업. 모든 수업이 스페인어로 진행되기에 이론 수업보다는 실기 수업을 선호했지만, 수강신청이 조금 뜻대로 안되다 보니 얼떨결에 '설비 계획'이라는 심심한 제목의 수업을 듣게 됐다. 이 수업은 UPM에서 유일하게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이다. 하지만 5학년 수업인데다 별로 매력적이지 않아서인지 교환학생들은 나와 우린이가 전부. 영어 수업이라 마음 편하게 먹으려고 했으나 가끔은 스페인어로 쭉 생활하다가 갑자기 영어로 수업을 듣는게 더 불편할 때도 있었다.


 난 아직 한국에서 설비 수업을 이수하지 않았기에 이 수업으로 학점 인정을 받으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ejecución(실습)'이라는 말을 너무 간과했었나보다. 매 시간마다 위 도면 같이 자기가 선택한 건물의 설비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이제 다음주 목요일 기말고사만을 남겨두고 있지만 'Pass'할 수 있을 지 미지수인 과목. 흐아...






Dibujo avanzado e interpretación gráfica 1
고급 드로잉과 그래픽 표현 1


 상식을 뒤엎는 수업으로 UPM 건축학과 안에서도 유명하신 교수님의 드로잉 클래스다. UPM에는 드로잉과 관련된 전공 수업이 꽤 많은데, 처음 들어갔던 다른 수업은 너무 고등학교 '미술 시간'같은 느낌이라 이 수업으로 옮겨왔다. 상식을 잠시 내려두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즉흥적인 표현(?)으로 세 시간 내내 그림을 그리는 수업이다. 처음에는 상당히 흥미로웠으나 학기 초가 지나고 결국 드랍하고 말았다. 목요일 설비수업 세 시간 이후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곧바로 또 세 시간 연달아 수업을 듣는게 상당히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진원이, 우린이랑 내가 다 함께 듣는 유일한 수업이었으나 나랑 우린이는 드랍하고 결국 진원이만 남았다. 한시간 반 정도만 되는 수업이었어도 들을만 했을텐데, 세 시간동안이나 정체 불명의 추상화를 그리고 앉아있는게 나중엔 좀 힘들더라. 드랍하기 전까지는 교수님께 칭찬도 받고 그랬지만 드랍하게 되어 죄송한 마음뿐이다.




 막상 이렇게 수업들을 정리하며 한 학기를 되돌아보다 보니 수강한 과목이 좀 적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와서 다른 에라스무스들을 보며 느낀건 교환학생은 결코 학교 공부만을 하러오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살아오던 문화와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비단 수업시간이 아니더라도 보고, 느끼고,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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