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의 천국, 게스트 하우스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늘 즐거운 이야기가 있고, 웃음이 넘치는 그 곳. 하지만 어디까지나 여행자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하룻(혹은 여러날) 동안의 즐거움'일 뿐 다음날이면 또 다른 즐거움에 취해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여행하는 내내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우리야 하루 즐겁게 놀다 가면 그만인 사람들이니, 아무리 정을 붙이고, 살갑게 굴어보려 해도 어디까지나 '객'에 불과한건 아닐까. 어쩌면 나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고, 소심한 의심이었을지 모른다. 자전거를 타고 있는 동안은,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늘 하면서 달렸다. 하지만 '생태숙소 퐁낭'은 그런 나의 의심을 깨끗하게 지워준 곳이었다. 시설이 좋고, 편안해서라기 보다는...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너무 ..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겨우 5일 타면서 무슨 결전의 날 까지 있겠냐만은, 하루 종일 엉덩이 붙이고 컴퓨터 앞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자전거로 하루에 80km 넘게 달려야 한다는게 나름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게다가 오늘 라이딩에는 목적지조차 없다. 일단은 성산까지 가는걸 목표로 하되, 너무 무리하진 않기로 미리 약속했다. 과연 어디까지 달릴 수 있을까. 4박 5일이면 그리 짧은 일정은 아니었지만 욕심을 조금 부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거리 분배가 그렇게 되고 말았다. 마라도는 꼭 보고 싶었고, 그렇다고 우도나 성산 일출봉을 포기할 수는 없고... 2일차와 3일차에 두 곳을 나누어 놓으니 그 사이 거리가 거의 100km 가까이 되더라. 물론, 그 사이에도 중문이나 서귀포, 표선 같은 볼거리가 수두룩..
한 시간 남짓한 산책이었지만, 그늘 한점 없는 마라도에서는 말 그대로 햇빛과의 전쟁이었다. 카트를 빌려서 타고 다니는 어르신들이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될것도 같았다. 결국, 다시 나오는 배에서는 30분 정도 푹 잠이 들어버렸다. 그렇게 다시 모슬포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 경. 점심도 느즈막히 자장면 한그릇 먹은게 전부라 허기가 졌지만 오늘의 목적지인 '사이 게스트 하우스'까지는 어떻게든 도착해야만 한다. 끼니 걱정은 일단 짐이라도 좀 풀러놓고 다시 하기로 했다. 제주도에는 참 많은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 저마다 규모도, 개성도 다 달라서 골라 묵어가는(?) 소소한 재미가 있지만 무시할 수 없는게 또 게스트 하우스의 위치다. 제주는 그리 크지 않은 섬이지만 어느쪽 바다를 보고 있는지에 따라서, 혹은..
고민에 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제주에 함께 가기로 마음먹었다. 4박5일이라는 그리 짧지 않은 시간동안 제주의 이곳 저곳을 누비며 찍은 소중한 사진들과 함께 본격적인 Carl ZEISS Distagon T* 2.8/21mm ZK 리뷰를 시작해보려 한다. 사실 지난번에 올렸던 프리뷰(http://ramzy.tistory.com/199)에서 생각보다 꽤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바람에 정작 본편에서는 무슨 얘기부터 꺼내야 할지 조금 막막하다. 어쨌거나, 렌즈는 사진을 찍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아무리 이런저런 말을 많이 늘어놓아도 그보다는 한 장의 사진이 더욱 생생할 수 있지 않을까. 소소한 사진들을 함께 감상하면서 제주에서 자이스와 함께했던 나의 기억들을 살포시 즈려 밟으며 걸어보시길... 조금은 무겁고, ..
만 이틀 만에 자전거 안장에서 내려왔다. 짐칸에 고무줄로 칭칭 묶어놓고 다닐때는 잘 몰랐는데 생각보다 쓸데없는 짐이 꽤 많은것 같다. 벌써부터 짊어진 가방 때문에 어깨가 살살 아파온다. 마라도에는 오로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때문에 자동차도, 자전거도 모슬포항에 잠시 세워두고 배에 올라야 한다. 매 시간마다 마라도로 향하는 200명 정원의 쾌속선에는 발디딜틈 없이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다들 무슨 이유에서 마라도를 찾는걸까 궁금해하고 있는데, 유난히 배 안에는 임산부가 많이 보인다. 마라도의 정기가 태교에 도움이라도 된다는 소문이 있는걸까... 어쨌거나 오랜만에 배를 타서 그런지 한껏 기분이 들떴다. 서울 촌놈이라 그런지 배만 타면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오곤 한다. 요란하게 뱃고동을 울리..
내가 자전거로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기라도 했던걸까.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신 덕에 10시가 다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아침 식사용으로 빵과 토스트를 준비해 놓았지만 쓰린 속에 그런 밀가루 음식이 들어갈리가 만무했다. 배를 움켜잡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마침 아침 식사를 하시던 형님 한분이 고맙게도 손수 끓인 김치찌개를 같이 먹자며 권하셨다! 염치 불구하긴 해도 고마운 마음으로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무사히 출발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마라도를 지나 산방산까지. 어제 정도 거리만 타면 쉽게 모슬포항까지 도착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어째 저녁이 될 때 까지 술이 깨지 않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어제의 즐거웠던 ..
자전거는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교통수단이다. 발끝에 힘을 주어 페달을 한 바퀴 돌리면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만 앞으로 굴러가고,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슬슬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하면 바퀴도 덩달아 느리게 굴러간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끼리 흔히 우스갯소리로 사람을 엔진에 비유하곤 한다. 즉, 아무리 비싼 자전거를 탄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건 결국 페달을 돌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마치 자전거와 사람은 단순히 주인과 탈것의 관계가 아닌 함께 호흡을 맞추며 힘을 합하여 달리는 한 몸과 같은 존재라는 말처럼 들린다. 함께 호흡하고 교감할 수 있기에 먼 출퇴근길을 혼자 달려도 심심하지가 않다. 나는 이제 막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한 그야말로 초보 라이더다. 어쩐지 다리에 쥐가 나도록 페달을 ..
아침 7시 20분 비행기는 나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만 되면 뭔가 마무리할 일이 한꺼번에 생각나는 몹쓸 버릇 덕분에, 간밤에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6시가 다 되어서야 눈을 뜨고, 허겁지겁 짐을 챙겨 자전거를 어깨에 들쳐 엎고는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집에서 공항이 가까워 아침에 살짝 타고 가볼까 생각도 했었는데 역시나 무리였다. 아침에 빨래가 다 마르질 않아 인상을 찌푸리며 집을 나와버렸다. 멀리는 아니어도 집을 떠나는 마당에 부모님에 찡그린 얼굴을 보여드린게 못내 마음에 걸리더라.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어느새 공항에 도착했다. 여행이라는게, 꼭 멀리가지 않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요상하게 뒤흔드는 힘이 있는걸까... 제주로 가는 항공편은 종류가 꽤 많은 편이지만, 우리는 무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