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제주도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어제는 게스트하우스 중에서는 가장 인기가 좋은 편에 속하는 '소낭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었는데, 신나게 먹고 마시며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사진 한 장 남아있질 않더라. 결국 하는둥 마는둥 아침식사를 끝내고, 술이 덜 깬 상태에서 띵한 머리를 부여잡고 마지막 라이딩에 나섰다. 월정리에서 제주 공항 까지는 대략 30km 정도. 벌써 라이딩 5일차 마지막 날인 만큼 큰 부담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어제 오르막에서 무리를 하는 바람에 오른쪽 무릎이 좀 아프긴 했지만, 오늘 역시 투명하리만치 맑은 하늘을 보고 있으니 금새 또 신이 난다.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1시 20분으로 예약해 놓았다. 10시 조금 넘어서 월정리를 출발했으니 어쩌면 시간이 촉박할 지도..
처음 계획했던대로라면 아침 일찍부터 자전거를 타고 성산 일출봉에 올랐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오름에 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버린 이상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잠을 제대로 못자서 그런지 영 몸이 찌뿌둥하다. 간밤에 창문으로 비가 들이치는 바람에 새벽 네 시쯤 잠에서 깼다. 어찌나 천둥 번개가 심하게 치던지,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밖에 나와 비내리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섰다. 오늘은 영락없이 비를 맞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다시 잠을 청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또 하늘이 맑다. 알다가도 모르는게 제주의 날씨라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다. 덕분에 뽀송뽀송하게 바닷바람 쐬어가며 섭지코지까지 신나게 내달렸다. 온평리에서 섭지코지까지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마을을..
맨 처음 스트라이다를 끌고 제주를 오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에만 해도, 이 조그만 자전거를 타고 오름에 가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일주도로에서는 조금만 오르막이 나와도 이내 한숨부터 쉬던 우리가 별안간 오름에 가보겠노라 결심을 하게 된 건, 다 '생태숙소 퐁낭'의 마당비님 덕분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도 그 분께 너무나 감사드린다. 어쩌면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를 제주의 진짜 아름다움을 소개시켜 주셨기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두 가지 부류로 분류된다. 하나는 아무 계획 없이 훌쩍 떠나는, 그야말로 방랑을 즐기는 타입. 또 하나는 철저히 조사하고 공부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 까지도 여행의 시작으로 여기는 타입. 나는 그 중 두 번째에 가까운 사람이다. 떠나기 전에 미리 계획하고..
여행지의 천국, 게스트 하우스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늘 즐거운 이야기가 있고, 웃음이 넘치는 그 곳. 하지만 어디까지나 여행자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하룻(혹은 여러날) 동안의 즐거움'일 뿐 다음날이면 또 다른 즐거움에 취해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여행하는 내내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우리야 하루 즐겁게 놀다 가면 그만인 사람들이니, 아무리 정을 붙이고, 살갑게 굴어보려 해도 어디까지나 '객'에 불과한건 아닐까. 어쩌면 나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고, 소심한 의심이었을지 모른다. 자전거를 타고 있는 동안은,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늘 하면서 달렸다. 하지만 '생태숙소 퐁낭'은 그런 나의 의심을 깨끗하게 지워준 곳이었다. 시설이 좋고, 편안해서라기 보다는...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너무 ..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겨우 5일 타면서 무슨 결전의 날 까지 있겠냐만은, 하루 종일 엉덩이 붙이고 컴퓨터 앞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자전거로 하루에 80km 넘게 달려야 한다는게 나름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게다가 오늘 라이딩에는 목적지조차 없다. 일단은 성산까지 가는걸 목표로 하되, 너무 무리하진 않기로 미리 약속했다. 과연 어디까지 달릴 수 있을까. 4박 5일이면 그리 짧은 일정은 아니었지만 욕심을 조금 부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거리 분배가 그렇게 되고 말았다. 마라도는 꼭 보고 싶었고, 그렇다고 우도나 성산 일출봉을 포기할 수는 없고... 2일차와 3일차에 두 곳을 나누어 놓으니 그 사이 거리가 거의 100km 가까이 되더라. 물론, 그 사이에도 중문이나 서귀포, 표선 같은 볼거리가 수두룩..
한 시간 남짓한 산책이었지만, 그늘 한점 없는 마라도에서는 말 그대로 햇빛과의 전쟁이었다. 카트를 빌려서 타고 다니는 어르신들이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될것도 같았다. 결국, 다시 나오는 배에서는 30분 정도 푹 잠이 들어버렸다. 그렇게 다시 모슬포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 경. 점심도 느즈막히 자장면 한그릇 먹은게 전부라 허기가 졌지만 오늘의 목적지인 '사이 게스트 하우스'까지는 어떻게든 도착해야만 한다. 끼니 걱정은 일단 짐이라도 좀 풀러놓고 다시 하기로 했다. 제주도에는 참 많은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 저마다 규모도, 개성도 다 달라서 골라 묵어가는(?) 소소한 재미가 있지만 무시할 수 없는게 또 게스트 하우스의 위치다. 제주는 그리 크지 않은 섬이지만 어느쪽 바다를 보고 있는지에 따라서, 혹은..
고민에 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제주에 함께 가기로 마음먹었다. 4박5일이라는 그리 짧지 않은 시간동안 제주의 이곳 저곳을 누비며 찍은 소중한 사진들과 함께 본격적인 Carl ZEISS Distagon T* 2.8/21mm ZK 리뷰를 시작해보려 한다. 사실 지난번에 올렸던 프리뷰(http://ramzy.tistory.com/199)에서 생각보다 꽤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바람에 정작 본편에서는 무슨 얘기부터 꺼내야 할지 조금 막막하다. 어쨌거나, 렌즈는 사진을 찍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아무리 이런저런 말을 많이 늘어놓아도 그보다는 한 장의 사진이 더욱 생생할 수 있지 않을까. 소소한 사진들을 함께 감상하면서 제주에서 자이스와 함께했던 나의 기억들을 살포시 즈려 밟으며 걸어보시길... 조금은 무겁고, ..
만 이틀 만에 자전거 안장에서 내려왔다. 짐칸에 고무줄로 칭칭 묶어놓고 다닐때는 잘 몰랐는데 생각보다 쓸데없는 짐이 꽤 많은것 같다. 벌써부터 짊어진 가방 때문에 어깨가 살살 아파온다. 마라도에는 오로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때문에 자동차도, 자전거도 모슬포항에 잠시 세워두고 배에 올라야 한다. 매 시간마다 마라도로 향하는 200명 정원의 쾌속선에는 발디딜틈 없이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다들 무슨 이유에서 마라도를 찾는걸까 궁금해하고 있는데, 유난히 배 안에는 임산부가 많이 보인다. 마라도의 정기가 태교에 도움이라도 된다는 소문이 있는걸까... 어쨌거나 오랜만에 배를 타서 그런지 한껏 기분이 들떴다. 서울 촌놈이라 그런지 배만 타면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오곤 한다. 요란하게 뱃고동을 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