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이후로는 처음이니 말 그대로 10년만에 다시 찾은 경주였다. 스페인으로 출국하기 전까지 한국을 여행해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었는데, 마침 풍류(?)를 즐길줄 아는 고등학교 동창 덕분에 얼떨결에 경주로 떠나게 됐다. 왜 하필 경주를 택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대학에 와서 건축을 공부하면서 경주 한번 못가본게 좀 아쉬웠던건 사실이다. 어쨌거나 답사보다는 휴식, 여흥, 풍류의 성격이 짙은 여행이기에 별 부담없이 카메라 하나만 걸치고 집을 나섰다. 이렇게 훌쩍 떠나는 여행일수록 발걸음이 가벼워야 한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기에 주저없이 KTX를 타기로 만장일치. 밤새 뒤척이다 집에서 나와 버스 첫차, 지하철 첫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6시. 우리는 6시 30분에 출발하는 부산행..
무려 2년을 묵혀뒀던 인도 여행기. 이제는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할 시간이다. 그동안 밀린 여행기를 쓴답시고 하루가 멀다하고 여행사진을 꺼내어 보고, 또 다시 보고 그러는 시간들이 참 좋았다. 벌써 먼 옛날 일이 되어버렸지만 사진을 주욱 훑어보고 있노라면 마치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만 한데... 그래서 여행기를 마치는 것조차 아쉽다. 어쩌면 그래서 나도모르게 여행기를 천천히 썼던걸지도 모르겠다. 델리를 떠나던 그날 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이름도, 얼굴도 서로 몰랐던 네 남녀가 함께 모여 인도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나와 정민이형은 그날 밤 비행기를 타고 떠날 예정이지만 나머지 둘은 아직도 여정이 많이 남아있던 터. 우리는 우리대로 여행이 끝나는게 아쉬워 그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은 그들대로 다..
건축학도인 내가 여행을 한다고 하면 흔히들 '답사'를 위한게 아닐까 하고 으레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오히려 내 여행은 그 반대다. 사실 '답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여행'에서 만큼은 그런 강박관념을 버리고 여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유유자적 유랑하는걸 즐기는 편이다. 물론 인도에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답사'할 거리가 널렸다. 꼬르뷔제가 설계한 계획도시 찬디가르나, 2학년때 과제로 만들었던 쇼단하우스 같은 건물들 외에도 참 많다. 하지만 내가 진짜 보고싶은건 사람들이 사는 모습 그 자체, 가장 낮은 곳에서 눈높이를 맞추고 바라보는 그들의 삶 그 뿐이었다. 바라나시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내가 보고싶었던 인도와 가장 흡사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눈앞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인도..
인도를 여행하려는 당신에게 오직 단 하루만 허락된다면 어느 도시를 택할 것인가. 정치, 경제의 중심지이자 인도의 수도인 델리? 아니면 고요한 아름다움이 있는 푸쉬카르? 서구 문명과 인도의 전통이 어우러진 뭄바이? 만약 그 하루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라나시를 택할 것이다. 인도인들의 성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 바라나시, 그 곳에서 가트에 앉아 갠지스강 너머로 지는 태양을 보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델리에서 시작하는 인도 배낭여행은 크게 시계방향과 반시계방향의 두 가지 루트로 나눌 수 있다(물론 라다크 지방을 여행하거나 더 길게 여행하는 경우는 제외). 내가 선택한 반시계방향 루트의 경우엔 델리를 출발해 제썰메르나 조드뿌르를 제일먼저 만나게 되고 한바퀴를 다 돌아..
인도에서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고 많이 찾는 곳은 어디일까? 수도인 델리도 아니고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도 아니다. 정답은 바로 카주라호. 규모도 작고 인구도 얼마 없는 작은 도시지만 이곳에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그 뭔가가 있단다. 카주라호의 별명은 애로틱시티! 이름만 들어도 왠지 한번 가보고 싶은... 그런 도시였다고 하면 너무 속보이려나?^^; 오르차에서 지친 몸을 카주라호에 오자마자 말끔히 풀었다. 사실 카주라호에는 점심때쯤 도착해서 첫날에도 둘러볼 여유가 있었지만 일부러 밖에 안나가고 푹 쉬었다. 덕분에 둘째날인 오늘은 이른 시간부터 팔팔하다! 애로틱시티 카주라호를 돌아보려면 이정도 체력비축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응?) 카주라호는 다소 남사스러운 포즈의 정교한 조각들로 덮인 사원들이 가득한 곳이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 학생인 나에게 라이카는 오래도록 꿈의 바디였다. 오르지 못할 나무였기에 애시당초 바라볼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그런 카메라들이었다. 가끔 사진 잡지에 관련 기사가 나오면 괜히 더 집중해서 읽어보고, 혹 인터넷에서 라이카로 찍은 사진을 보게되면 한번 더 눈길을 주던 그런 존재 정도. 그런데 d-lux라는 디지털 라인업이 생기면서 라이카는 조금더 친숙한 카메라가 되었다. 다만 그때부터 라이카 곁에는 논란과 논쟁이 항상 세트처럼 함께 다니더라. 좋건 싫건 간에 일단 아는게 없으면 할 말도 없는게 세상의 이치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 라이카의 디지털 바디를 꼭 써보고 싶었다. 그리고 살짝 까치발을 디디면 손끝이 닿을랑 말랑한 즈음에 d-lux5가 있었다. 오늘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건 라이카 ..
인도 우타르 프레타쉬주에 위치한 작은 마을 오르차.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작은 기차역이 마을 어귀에 있지만, 대부분의 여행객은 근처 잔시에서 릭샤를 타고 들어와야 할 만큼 작고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을이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심심치 않게 한국인을 만날 수 있는 곳. 하지만 아직까지도 일반적인 배낭여행 코스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매력이 있는 마을이다. 처음 오르차에 가기로 마음먹은건 델리나 우데뿌르, 아그라 같은 대도시에 질려서였다. 사람들은 득실거리고 릭샤 한번 타려면 입에 침이 마르도록 흥정을 해야하는 탓에 지칠대로 지쳐있었던것 같다. 반면 제썰메르나 푸쉬카르같은 작은 도시들의 여유로움은 같은 길을 몇 번씩 다시 걸어도 좋을만..
처음 찍은 사진, 누군가의 필름 첫 롤 속에 담긴 사진들은 그 사람의 성격을 대변한다고 했다. 얼핏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갸우뚱 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지금이야 사진을 찍고나서 마음에 안들면 '삭제'키를 눌러서 지워버리면 그만이지만 필름은 좀 다르지 않은가. 일단 셔터를 누르고 나면 좋던 싫던 '내 사진'이 되는 것이니 자연스레 더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고민도 더 많이 했고, 셔터를 반쯤 누르다가도 이내 손가락을 치워버리고 망설였던 기억도 많았다. 사람은 뭐든지 '처음', '최초'를 기억하길 좋아한다. 그래서 필름 첫 롤이라는 의미는 더욱 크게 와닿는다. 왜, 티비에서도 나오는 말처럼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 살고있는 우리들이니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