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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자락 옥녀봉에서부터 흐르기 시작한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을 굽이치며 지나 지리산을 휘감아돌아 마침내 광양만에 이르러 남해바다와 한 몸이 된다. 한국에는 섬진강을 노래하는 시인들이 참 많다. 산이 많아 동서남북으로 흐르는 강줄기도 참 많은 우리나라지만 섬진강 만큼은 어딘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한 달 전부터 휴가를 미리 써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꼭 4월의 아름다운 어느날에 섬진강을 내달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주말, 하늘이 내려준 축복과도 같은 날씨 속에 꼭 꿈을 꾸는 듯한 이틀간의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 최고의 자전거길은 무조건 섬진강이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섬진강을 달린다는건 그야말로 하늘이 주신 선물이다.



 섬진강이 좋은 이유는 그 뿐만이 아니다. 위 그래프는 이번 여행에서 기록한 섬진강 상류 초반 100km의 고도이다. 그간 여러 강들을 달려보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그래프는 처음본다. 쉽게 말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리막'이다. 때문에 장거리 여행이 부담스러운 초보자에게도 편하게 추천할만 하다. 다리에 힘이 덜 들어가는 만큼,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것 또한 섬진강의 매력이다. 이제 막 자전거 인증수첩과 함께 여행을 시작하려는 사람이라면 다른 강들에 앞서 섬진강을 먼저 달려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그럼 섬진강 예찬은 이쯤 해두기로 하고. 슬슬 여행기를 시작해보자.



 여느 때와 같이 짐을 챙겨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러 나왔다. 이제는 자전거와 떠나는게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전날 자정을 넘겨서야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떠나기 전날 밤은 언제나 설레기 마련이다.




 섬진강 자전거길은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에서 시작해 광양 앞바다에서 끝이 난다. 보통 서울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은 상류에서 하류 방향으로 많이들 계획한다. 

 지도를 찾아보니 강진면의 섬진강댐 인증센터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는 임실과 순창이다. 둘다 15~20km정도 떨어져 있다. 하지만 예매 사이트의 목적지 스크롤을 좀더 내려보면 '전북강진'이라는 곳이 있다. 바로 임실군 강진면 공영버스터미널로 직행하는 버스다. 별도의 노선이 있는게 아니라 순창행 버스가 경유하는 방식이다. 이 '전북강진' 경유지에서 내리면 섬진강댐 인증센터까지 5분도 채 안걸린다. 섬진강 종주를 위한 그야말로 안성맞춤 버스다.

 단, 전북강진이 아니라 '강진'을 선택하면 섬진강에서 수백km 떨어진 '전라남도 강진군'으로 유배당하는 수가 있으니 조심하자.



 서울발 전북강진행 버스는 토요일 아침 9시30분이 첫차다. 대략 3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걸 감안하면 주말에 1박2일로 섬진강을 다녀오려면 무조건 이 첫차를 타야만 한다. 

 출발 시간보다 제법 일찍 도착했지만 이미 짐칸에는 자전거 서너대가 차곡차곡 포개지고 있었다. 부피를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자전거들은 앞바퀴를 빼고 적재하기로 했다. 여러대를 실으려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딱맞춰 도착했으면 짐칸에 실어보지도 못하고 버스를 떠나보낼뻔 했다.



 오늘의 여정 역시 친구 Y와 함께다. 지난 설날에 영산강도 함께 다녀왔고, 얼마전 술자리에서도 봤지만 우린 만나면 참 수다가 많다. Y는 새로 산 손목시계형 심박계를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고, 난 또 호기심에 그 자랑을 듣느라 정신이 없다. 참 쿵짝이 잘 맞는 여행 메이트다.

 어느새 창밖으로 울창한 산림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지리산 자락이 가까워지고 있는 모양이다. 날씨는 완벽 그 자체! Y는 이런 날씨만 보면 심장이 콩콩 뛰어서 어쩔줄을 모르겠단다.




 주말이라 그런지 예정보다 30여분 늦게 도착했다. '전북강진'의 정체는 바로 이곳이었다. 말 그대로 면단위 시골의 조그마한 공용버스터미널이다. 그러다보니 서울발 순창행 버스에서 이 곳에 내리는 손님은 자전거 여행자들이 유일했다. 짐칸에서 자전거를 빠르게 꺼내어 조립하는 우리들, 그리고 그런 우리를 차 안에서 신기하게 바라보는 손님들이 진풍경을 자아냈다. 잠시 뒤 버스는 순창으로 떠나버렸고, 이 작은 터미널 마당에는 조립을 마친 자전거들과 여행자들만 어색하게 남아 있었다.




 일단 시간상으로는 점심을 먹고 출발해야한다. 잠시 몸도 풀겸 자전거로 마을을 휘휘 돌아보는데 역시 예상대로 작고 조용하다. 밥먹을 만한 곳은 면사무소 앞 다슬기집 두어곳과 중국집이 전부. 후기를 보면 보통 지역음식인 다슬기를 먹고 출발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뜨거운 국물을 먹기엔 날씨가 아까울 정도로 따뜻하고 좋았다. 우리는 다슬기 대신 자장면을 택했다. 솔직히 말하면 사진에 보이는 출입구의 나무로 된 발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모습에 마음을 빼았겼다.





 출입구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밖에서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온다. 먹지 않아도 배부른 그런 날씨다. 

 우린 간짜장 곱빼기를 두 그릇 시켰다. 주문을 넣으니 주방에서 아저씨가 직접 손으로 면을 뽑기 시작하신다. 오, 숨겨진 맛집이 아닐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얌전히 기다렸다.

 전북강진에서 맛보는 수타짜장의 맛은 서울에서 먹던 그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담백하면서도 꼬들꼬들한게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식감의 간짜장이다. 맛에 대한 평가는 개인 취향에 맡기기로 하고 패스.





 강진면을 나와 큰길로 달리면 곧장 인증센터가 나온다. 섬진강댐 인증센터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다들 다슬기 해장국을 먹었으려나.

 섬진강 종주 자전거길은 총 154km, 8개의 인증센터로 구성되어있다. 각 인증센터의 거리가 15~20km 정도로 균등하게 배치되어 있는게 독특하다. 이렇게 규칙적인게 아무래도 자전거 타는 사람들한테는 더 좋다. 휴식이나 보급을 하는 타이밍을 나눠 잡기 좋아서 그렇다. 오늘의 목표는 다섯번째 사성암 인증센터까지 완료하고 구례에서 숙박하는 것이다. 절반 이상을 달려야 하므로 갈길이 꽤 멀다.






 누가 그러더라, 섬진강 자전거길의 매력은 방향을 바꿀때마다 새롭게 변하는 풍경이라고. 섬진강댐 인증센터를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말이 온몸으로 이해됐다. 작지만 우아하게 곡선을 이루는 물줄기와 그 옆으로 펼쳐지는 아기자기한 풍경들. 이를 따라가는 길 역시 크고작은 변화를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지루할 틈이 없다.





 날 한번 제대로 잡았다. 구름 한점 없이 쾌청한 하늘아래 푸르른 산천이 자전거 여행자들을 반긴다. 겨우 10여분 달려놓고 Y는 섬진강을 역대 모든 길중 최고라고 연신 엄지를 치켜든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생가도 상류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다. 조금 더 달리면 강을 건너는 그럴싸한 다리가 나타난다. 현수교량이라 발을 심하게 구르면 다리가 흔들거리는게 아주 짜릿하다. 앞뒤로 둘러보니 풍광이 정말이지 한 폭의 그림이다. 다리 위에 서서 다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도 지나가는 부부에게 청해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다. 작년부터 거의 1000km 가까이 함께 달리고 있는 우리지만 함께 나온 사진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상류를 따라 굽이치며 산속을 빠져나온 길은 이제 논밭으로 이어진다. 좁은 계곡 사이를 달릴땐 물과 바람이 만드는 소리를 인지하지 못했는데 넓은 평지로 나오니 별안간 귀가 멍 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강 폭이 넓어지고 있음을 귀로도 느낄 수 있다.

 볕이 좋아 넋을 놓고 달리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느낌이 이상해서 지도를 켜보니 큰 길에서 갈라져나오는 둑방길을 달리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그 자리에 엉덩이를 철푸덕 깔고 앉았다. 자연스럽게 양갱을 꺼내어 휴식 타임. 배수로 쪽으로 다리를 빼고 걸터앉아 달콤한 일광욕을 즐겼다.





 제법 중류에 들어선 티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은 둔치가 강폭보다 더 넓다. 강을 따라 휘돌아가는 중에 눈 앞 풍경이 성산 일출봉 같아 보여서 한 장 담았다. Y에게도 비슷해 보이지 않느냐 물었더니 성산 일출봉을 가본 적이 없단다. 얼른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함께 떠나야겠다.




 1차선의 좁은 터널을 지나 향가 유원지에 도착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섬진강은 각 인증센터간의 거리가 비교적 균일하다. 덕분에 지루하지 않고 리듬감 있게 라이딩할 수 있었다. 총 주행 거리와 도장 찍는 실력은 비례하는 것 같다. 내가 봐도 참 이쁘게 잘 찍었다.





 상류의 흔들다리에 이어 두 번째로 강을 횡단하는 구간. 이제는 강물이 넓어져 다리가 제법 길다. 교량 중간에는 예상대로 스카이워크가 마련되어 있다. 뻔한 레파토리지만 그래도 그냥 지나치긴 아쉬운 그 것! 스카이워크 위에 서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 또 한장 부탁했다. 각자 자전거와 함께 얌전히 선게 마치 가족사진 같다.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것 같다. 마치 멋진 로드무비 한 편을 재생하는 것처럼 섬진강이 휙휙 지나쳐간다. 눈이 시리다는건 이럴때 써야 하는 말인것 같다. 

 다른 강들과는 달리 섬진강의 물빛은 더욱 짙고 푸르다. 이유가 뭘까 한참을 생각했지만 알 수가 없었다. 한창 봄을 맞이하고있는 산천초목들과 함께 달려 외롭지 않은 풍성한 여행이다. 둑방을 따라 달리는 둘의 그림자를 멋드러지게 담아보려 했지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시간은 여섯시를 향해가지만 아직 해가 넘어가려면 조금 남았다. 네 번째 인증센터인 횡탄정에는 제법 사람들이 많았다. 각자 출발지도 목적지도 다른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저녁이 되니 한낮의 햇볕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어쩐지 사르륵 녹아내리는 기분이 드는게 잠깐 눈 붙였다가는 꼼짝없이 발이 묶여버리게 생겼다. 양갱을 하나 꺼내먹으며 잠시 쉬어가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횡탄정에 앉아 쉬고있는데 한쪽 구석에 쓰레기 더미가 보인다. 사진도 찍어놓았지만 올리지는 않겠다. 내용물을 보니 담배, 에너지드링크, 풍선껌 등 누가 봐도 자전거 여행자가 버린 쓰레기들이다. 참 나쁜 사람들이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규칙을 잘 지키고 양심적이지만 이렇게 가끔 마주치는 몰상식한 행동 때문에 화가 날 때가 많다. 적어도 자기 쓰레기는 자기가 가져가는 기본 만큼은 지켰으면 좋겠다.





 잠시 쉬어가는 사이에 해가 거의 넘어가버렸다. 야간 라이딩을 썩 반기지 않는 우리지만 오늘 만큼은 불가항력이다. 서울에서 전북강진으로 가는 버스가 한 시간만 빨리 있었어도 좋으련만. 섬진강 종주를 1박2일로 잡고 구례에서 숙박하려 한다면 시간상 야간 라이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게 싫다면 하루 일찍 전북강진으로 와서 1박을 하고 아침 일찍 출발하는 방법도 있다. 아니면 기차나 근교 버스터미널 시간표를 잘 연구하는 것도 가능하겠다.

 


 평지를 따라 이어지던 길은 어느새 다시 산쪽으로 돌아섰다. 갑자기 차가운 냉기가 온 몸을 엄습해온다. 직감적으로 우린 지리산이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길은 계속해서 지리산 둘레를 타고 돌며 강과 나란히 흘러간다.





 곡성에서 구례에 이르기까지 내내 지리산을 옆에 끼고 달렸다. 산이 가까워지면서 달라진건 불어오는 냉기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예상치도 못했던 날벌레와의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사실 서울에서 한강을 달리더라도 저녁 무렵이면 풀숲 근처에서 날벌레 무리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때문에 마스크나 버프 정도는 기본으로 해주는 것이 일상이다. 하지만 지리산의 날벌레들은 달랐다. 무슨 우박이라도 떨어지는 것처럼 우두두두 하는 소리가 몇 초 간격으로 온 몸에서 울려퍼졌다. 게다가 난 버프도 준비 못했다. 한 십여분을 숨을 작게 쉬어가며 버티다가 결국 항복하고 자전거를 세웠다. 급한대로 가방에 있던 카디건을 얼굴에 동여맸다. 구례에 가까워졌을 때에는 이미 눈물 반 콧물 반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곡성 청소년수련관을 지나면서부터 구례 사성암 인증센터에 이르기까지 자전거길은 국도를 공유한다. 가로등 같은건 없어도 길이 좋고 살짝 내리막이라 시원한 밤바람 맞으며 신나게 달렸다. 구례구역을 지나 사성암 인증센터에서 오늘의 다섯번째 도장을 찍고 구례 시내로 들어갔다. 구례구역은 재작년 내일로 여행의 첫번째 여행지였던 곳이다. 가슴 가득 설레는 맘으로 찾았던 그 곳을 2년만에 다시 자전거로 찾아왔다.

 구례구역은 구례 시내에서 4~5km나 떨어져 위치하고 있다. 역이름에 붙은 '구'는 '옛 구'자가 아니라 '입 구'자다. 즉, '구례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뜻이 된다. 서울대입구역에 서울대가 없고, 총신대입구역에 총신대가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실제로도 구례구역은 행정구역상 순천시에 속해있다. 이런 속사정을 모르고 구례구역만 바라보고 젖먹던 힘까지 다해 달리고 나면 시내까지 5km를 기어가야 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




 시간이 늦어 얼른 잘 곳을 정해야 했다. 보통 작은 도시에서 숙소를 정할땐 버스 터미널에서 부터 시작하는게 편리하다. 하지만 오늘은 시내에 들어서자마자 눈 앞에 보이는 숙소로 곧장 향했다. 온천 마크가 보였기 때문이다. 방 값은 3만원이지만 한 건물안에 딸려있는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목욕비 5000원씩 만원을 빼고 나면 손해볼것 없는 조건이었다. 당장이라도 뜨끈한 물에 몸을 풍덩 던지고 싶었지만 이미 영업시간은 종료. 대신 내일 아침 일찍 들렀다가 출발하기로 했다. 지난번 국토종주때 수안보 온천욕의 효과를 몸소 체험한 Y는 나보다 더 신나 있었다.





 원래 계획은 구례에 도착해 오리고기로 몸보신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물어물어 찾아간 맛집은 이미 영업시간 종료. 시내에 아홉시가 넘어 들어오니 밥먹을 곳도 마땅치가 않다. 걸어서 구례 시내를 한 바퀴가 다 돌고서야 들어간 곳은 생뚱맞게도 대구 막창집이다. 술집 말고는 딱히 식사할 곳도 없는것 같아 울며 겨자먹기로 선택했다. 그래도 막창에 소갈비살, 계란찜, 번데기까지 온갖 고단백 영양식으로 한 끼 거하게 잘 먹었다. 오늘 못먹은 구례의 특산음식은 내일 먹기로 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잘 준비를 마쳤다. 지난 영산강 종주때 나주에서 묵었던 모텔 방에 비하면 여긴 대궐이다. 자전거를 방안에 들여놓고도 자리가 남아 각자 요 하나씩 깔고 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아직 잠들기 전이건만 내일 아침 목욕탕갈 생각에 피곤이 싹 가시는것 같았다. 기록을 보니 오늘 벌써 100km를 탔다. 섬진강 풍광에 취해서 그런지 많이 탄것 같지도 않다. 내일은 더도덜도 말고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계속)



섬진강 자전거 종주 1일차(임실 강진면→구례)

주행거리: 97.7km

주행시간: 5시간 2분

평균속도: 19.4km/h

최대속도: 54.7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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