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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국토종주 여행기를 올리던 당시 학교 선배가 링크하며 붙여준 한 줄의 코멘트가 생각난다. '여행기도 여행기지만 가끔 등장하는 맛집투어가 일품'이라고 하셨던 것 같다. 정확히 보셨다. 어쩌면 우리가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목적은 전국의 산해진미를 맛보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면에서 1편의 제목 '담양 죽통밥에서 나주 곰탕까지'는 이 여행의 정체성을 참으로 잘 드러낸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질세라 둘째 날 여행의 제목은 '비는 쫄딱 맞았지만 목포에서 산낙지'다. 가방을 잃어버려 광주 터미널까지 다녀온 일이나, 나주를 코앞에 두고 펑크 때문에 고생한 일, 밥 먹을 데가 없어 펑크난 자전거로 나주 시내를 빙빙 돌았던 기억. 이 모든 고생스런 여정에도 쏟아지는 비를 맞아가며 페달을 밟았던 것은 다 목포 산낙지를 먹기 위함이었다. 이 얼마나 명쾌하고도 아름다운 목적의식인가!


근데 그걸 꼭 자전거를 타고 가야겠니...?


 다만, 왜 그걸 힘들게 자전거 타고 가서 먹어야 하느냐는 반문에는 딱히 드릴 말씀이 없다. 하하하. 그럼 목포 산낙지를 찾아 떠난 둘째 날 이야기를 시작해볼까나.


우리가 여행을 무사히 마친건 모두 이 분 덕분이다.


 지난밤 고장 난 자전거를 곁에 두고 팔자 좋게 잠들어버린 우리 둘. 그래도 까먹지 않고 알람은 일곱 시 반으로 맞춰 두었다. 한 삼십 분 정도 뒹굴다가 대충 고양이 세수하고 나주 시내로 나왔다.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던 일기예보는 맞지 않았다. 이미 거리는 촉촉이 젖어 있었고 빗방울은 제법 굵었다.


 간밤에 봐둔 자전거포가 근처에 있어 가보았으나 문이 닫혀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주인 아저씨 핸드폰 번호로 보이는 게 있어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직 아침 식사 중이셨던 모양인데 우리의 급한 사정을 들으시고는 부리나케 가게로 달려와 주셨다.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펑크난 채로 꽤 많은 거리를 달린 덕분에 타이어까지 교체하게 되었는데 기존의 매끈한 표면의 슈발베 타이어 대신 제법 요철이 있는 켄다 타이어를 가지고 나오셨다. 가게에 제품이 그것뿐이었는지 비 오는 날씨를 생각해서 일부러 고르신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빗길 라이딩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가벼운 아침상에도 반찬이 이만큼 나온다. 전라도 밥집을 찬양하라!


 제법 이른 시간에 자전거 수리를 마친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아침 식사를 하게 되었다. 여관 근처 골목에 백반집이 있어서 찾아 들어갔다. 전라도에서는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도 실패할 일이 없다고 하던데 과연. 가격이 싼 편은 아니었지만, 게장에 간고등어 구이까지 한 상 푸짐하게 먹었다. 목포까지 아직 갈 길이 멀어서 걱정되었는지 Y는 앉은자리에서 밥 두 공기를 해치워버렸다. 계산을 마치고 달달한 자판기 커피까지 한 잔 딱 하고 나니 아주 뱃속이 든든했다.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 양갱과 초콜릿 몇 개를 사뒀다. 영산강 종주 길에는 담양, 나주 시내 구간을 제외하고 슈퍼나 편의점이 전혀 없다. 미리 먹을거리를 챙겨두지 않으면 황량한 벌판에서 이도 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 딱 좋다.



수리 완료. 이제 쌩쌩 달릴 일만 남았다.


 수리해온 뒷바퀴를 자전거에 끼우고 떠날 채비를 마쳤다. 그러보니 지난 국토종주 때에도 한 손에 바퀴를 들고 터덜터덜 상주 시내까지 다녀온 일이 있었다. Y는 그런 나를 보며 한 손에 바퀴를 들고 시내를 배회하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다며 웃었다. 칭찬인지 흉인지 모르겠으나 다음 여행에서는 부디 같은 모습으로 또 어딘가를 헤매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름 운치 있었던 나주 시내의 한 자전거길.


 다시 영산강 종주 길을 타기 위해서 나주 시내를 가로질러 지나가기로 했다. 로터리에 멋들어지게 자리한 남고문을 지나고 나니 서울의 경춘선 폐선부지 자전거길을 연상시키는 철길 옆 자전거 도로가 있었다. 추측건데 호남선 KTX가 들어 오면서 버려진 철도 구간이 아닐까 싶다. 시내에서 영산강까지는 실개천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꽤 정비되어 있어서 놀랐다. 다만 아침부터 내린 비 때문에 길 위에는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시내를 빠져나가자마자 다시 또 이런 흙길이다...제길


 하지만 영산강 자전거길의 문제점은 노면 상태가 수시로 바뀐다는 점이다. 시내에서 잘 정비되어있던 도로는 강변에 이르기 무섭게 다시 엉망진창으로 변한다. 특히나 진입로 구간은 공사하다가 만건지 의심될 정도로 엉망이었다. 이날처럼 비 오는 날이면 바퀴가 푹푹 빠질 정도로 진흙탕으로 변해버린다. 봄이 제대로 오기 전에는 다 정비가 될는지...




아 양갱먹고싶다... 자전거 타야겠다...


 나주 시내를 벗어나서 한 시간 정도를 달리니 죽산보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여전히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가운데 옷이며 신발이며 이미 푹 젖어버렸다. 아침을 그렇게 든든히 먹었는데 벌써 배가 고프다. 자연스럽게 양갱을 꺼내어 먹을 타이밍이다. 양갱 껍질에 보면 '타우린 110mg 함유'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어디서 들은 얘기로는 원래 타우린을 첨가할 이유가 전혀 없으나,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 행동식으로 양갱이 인기를 얻으면서 피로회복에 도움되라고 일부러 성분을 추가해줬다는 얘기가 있다. 어쨌거나 피로회복에 도움이 된다니 반가울 따름이다. 다시 한 번 얘기하자면 양갱은 자전거 여행자에게 더없이 좋은 행동식이다. 질량 당 열량이 높은 음식임에도 지방과 콜레스테롤 함량이 0이기 때문이다. 산은 산이 거기에 있기에 오르는 것이라지만, 자전거는 양갱을 먹기 위해 타는 걸지도 모른다. 무슨 소린지 나도 모르겠다. 양갱 먹고 싶다...




영산강 종주길의 유일한 업힐, 느러지 전망대 가는 길.


 죽산보를 지나 다시 20여 km를 달리면 다음 인증센터인 느러지 전망대가 나온다. 이름이 참 독특한 데 이 전망대에 오르면 영산강 2경인 느러지(물돌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물이 '늘어지는' 곳이라 해서 느러지라 이름 붙은 셈이다. 하지만 영산강을 달리는 라이더들에게는 일정이 '늘어지는' 곳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 이유인즉슨 전 구간에 걸쳐 평지에 가까운 영산강 종주 길에서 유일하게 언덕을 넘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화령도 끌바 없이 넘었던 우리였는데... 여기서 어처구니없게 무너졌다.


 경사도는 약 13%. 국토종주 자전거길의 충주댐 구간이나, 이화령 등에 비하면 길이도 짧고 경사도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지만 첫  날부터 지쳐버린 우리 둘에게는 갑작스러운 오르막이 버겁기만 했다. 결국, 둘 다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올라가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이화령에서도 끝내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버틴 우리였지만 느러지 전망대 오르는 길은 이상하게 힘들었다. Y는 그 이유를 자꾸만 우리가 나이를 한 살 더 먹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딱히 동의해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영산강의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휴식.


 느러지 전망대에 도착해보니 과연 영산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당이었다. 조금만 여유가 더 있었어도 느긋하게 쉬어가면 좋았을 그런 곳이다. 전망대 옆으로 자그마한 정자가 있어 비를 피하며 스니커즈로 보급을 했다. 위에서 실컷 양갱 예찬을 늘어놓고는 정작 다른 걸 먹으니 머쓱하다. 물론 양갱 뿐 아니라 다른 것들도 참 맛있다. 자전거 탈 땐 다 그런가 보다.



그칠줄 모르는 비에 역풍까지 맞아가며... 그야말로 처절한 라이딩이였다.


 전망대가 있는 언덕에서 다시 내리막을 내려온 이후로는 하굿둑에 이를 때까지 끝없는 평지가 계속된다. 영산강 종주 길이 전반적으로 지루한 구성이지만 그중에서도 느러지 전망대에서 영산강 하굿둑에 이르는 후반부 코스는 달리면서도 하품이 날 정도로 지루했다. 선형도 직선이고,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건물 하나, 차 한 대가 없다. 그나마 길이라도 좋으면 속도라도 낼 텐데 그마저도 상태가 평균도 못될 수준. 혹시나 그날은 비가 와서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이 길을 다시 달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생각에 그 당시에는 머릿속에 오로지 낙지, 낙지 낙지 를 외치며 죽어라 페달을 밟았다.


드디어 저 멀리 보이는 하굿둑, 이제 다 왔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두 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번 여행은 이상하게 밥때를 자꾸 넘기게 된다. 네 시 출발하는 버스로 서울행 차표를 끊어놓았지만 이대로면 낙지는커녕 컵라면 하나 못 먹고 목포를 떠나게 생겼다. 결코, 우리 여행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다행히 버스가 자주 있어서 한 시간 반을 미뤄 예약을 바꿨다. 이제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낙지가, 아니 완주가 코 앞이다!




드디어 낙지! 아, 아니 완주!


 마침내 오후 세 시경, 마지막 인증센터인 영산강 하굿둑에 도착했다. 영산강 종주 길의 마지막 스탬프를 찍음과 동시에 작년 이맘때 국토종주에 이어 4대강 종주까지 완주하게 되었다. 유난히 힘든 여정이었던 만큼 더욱 뿌듯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유인 인증센터가 아니라 곧바로 완주 인증을 할 수 없는 게 아쉬웠다. 그러보니 작년에 다녀온 북한강, 금강 또한 아직 완주 인증을 받지 못했다. 조만간 날이 풀리는 대로 아라 서해갑문에 가서 받아볼까 한다.


 완주의 기쁨도 잠시, 이미 한참 늦어버린 점심을 위해서 서둘러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미리 알아보고 온 근처 식당에 전화를 걸어보니 오늘 영업 한단다. 하굿둑 인증센터에서 시내 방향으로 2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 기어오듯 하굿둑에 도착했었는데, 식당으로 향하는 짧은 구간만큼은 최고속력을 넘나들며 신나게 달렸다. 




헬멧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밑반찬부터 주르륵 세팅된다. 거 마음에 드는구만.


 드디어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는 산 낙지 다짐, 낙지 전, 낙지구이, 낙지 초무침, 연포탕으로 구성된 코스요리를 시켰다. 1인분에 4만 원이나 하는 고급 식사다. 아 이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인가. 아침 댓바람부터 쫄딱 비 맞아가며 고생한 탓에 밑반찬만 집어먹어도 밥 한 공기는 뚝딱 할 기세였다.

 배도 고프고 차 시간도 그리 여유가 있지 않아 조금 빨리 서빙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정말 순식간에 쑥쑥 나와서 살짝 당황했다.


만찬의 시작은 가볍게 산낙지부터!


 사실 목포에서 제일 먹고 싶었던 건 정확히 '낙지 탕탕이'였다. 탕탕이라는건 깨소금, 참기름, 마늘, 대파를 넣고 탕탕 썰어낸 산낙지를 잘 버무린 음식이다. 특히 육회와 섞어주는 육회 산낙지가 정말 먹어보고 싶었는데... 밥이라기보단 술안주에 가까운 음식이라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식사와 별도로 시키자니 가격이 만만치가 않았다.


의외의 별미였던 낙지전.


 곧이어 나온 낙지전. 들어간 낙지는 얼마 안 되어 보였지만 뜻밖에 달걀 맛이 좋아서 술안주로 딱 맞았다.



글을 쓰는 지금도 침이 꼴깍...


 코스요리의 하이라이트인 낙지 호롱이(호롱 구이)다.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려서 구워나온 낙지를 한 마리 통으로 이름처럼 '호로롱' 해서 먹는 맛이 일품이다. 한 마리로는 아쉬워 더 시켜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쯤 되니 사진만 봐도 행복해진다. 아아...


 낙지 초무침은 그냥 먹어도 맛있고, 밥에 비벼 먹어도 맛있다. 국산 낙지라 그런지 확실히 육질이 야들야들하니 서울에서 먹던 식감과는 확연히 달랐다.


학교 급식에 나오던 연포탕은 낙지 헹군 국이었나보다.



 마지막으로 연포탕. 그동안 제대로 된 연포탕을 먹어보질 못했는데 국물이 참 시원한 게 술이 그냥 술술 들어간다.


이날의 식사가 얼마나 훌륭했는지... Y의 자세만 봐도 알 수 있다.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만찬이 끝났다. 비에 쫄딱 젖어서는 쫄쫄이랑 헬멧을 쓰고 들어온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영산강 종주 길은 생각만큼 재미있지 않았지만, 낙지만큼은 한 번 더 먹으러 가고 싶은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다음엔 자전거 타고 갈 생각은 없다. 이미 내 머릿속엔 영산강 종주 길은 온데간데없고 곧 다시 떠날 섬진강 종주 생각만 한가득. 섬진강 길은 영산강에 비해 볼거리도 많고 자잘한 재미가 다양하다고 하니 기대해볼 만 하겠다. 이번에 또 가서 뭘 먹을까 사실은 그 생각이 더 크다. 



다시 일상으로.


 사실 아침부터 내내 서울로 올라가는 차 시간을 걱정했던 것은 설 연휴 귀경 정체 때문이었다. 하지만 뉴스에서처럼 고속도로 사정은 오히려 평소 주말보다 한가한 수준이었고, 우린 예정시간을 정확히 지켜 무사히 서울에 도착했다. 고속 터미널에서 다시 집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니 현관에 들어섰을 땐 이미 자정이 가까운 시각이었다.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푹 젖은 나의 모습을 보시며(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자전거를 타는 동안 또 비를 맞아야만 했다) 어머니께서는 왜 연휴에 좀 쉬지 사서 고생이냐 하셨다. 하지만 고생했던 기억은 잠깐이고, 행복했던 기억만 오래 남는 법이다. 벌써 Y와 나는 다음 여행을 기다리며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있다. (끝)



주행거리: 74.5km

주행시간: 4시간 45분

평균속력: 15.7km/h

최고속력: 36.4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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