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내가 처음 손에 카메라를 쥐고 사진을 막 시작하던 때에만 해도 스피드 라이트(스트로보)는 전문가들이나 쓰는 것이려니, 하고 그다지 필요 없는 물건으로 치부해 버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사진은 빛을 가지고 노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저 주어지는 빛만 가지고 찍는 것 보다는 내가 원하는 대로 빛을 더해주고 컨트롤 할 수 있다면 더욱 만족스러운 사진을 얻을 수 있는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고수들은 한결같이 일단 스피드 라이트를 구입하도록 권하는가보다.
 필자 역시 같은 이유에서 꽤 오래전에 Pentax 360 FGZ 라는 보급형 스피드 라이트를 구매했었다. 비록 가이드 넘버도 작고 끄덕끄덕(상하 각도 조정)만 가능한 녀석이었지만 꼭 필요한 순간에 그럭저럭 잘 써먹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돌연 행사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것도 140여개 기업이 참여하는 대규모 채용 박람회 행사. 풍경 사진이나 찍을 줄 알았지 갑자기 행사사진이라니. 일단 경험도 없고 실력도 미천하니 장비라도 좋아야겠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Metz 58 AF-1 Digital을 핫슈에 끼우고 나섰다. 이제 목에는 큼지막하게 PRESS라고 쓰여진 명찰이 걸렸다. 되던 안되던 일단 한번 해보자! 왕초보도 행사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걸 보여 주자고!


 * 본 사용기는 스피드 라이트를 처음 접하는 초보분들을 위해 쓰여진 가벼운 에세이 형식의 글입니다.
* 공식 행사 기록용으로 찍은 사진들이기에, 동의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얼굴은 블러 처리 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흔히 스트로보, 혹은 플래시라고도 불리는 이 악세서리의 정식 명칭은 '스피드 라이트'다. 광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발광하여 더 빠른 셔터스피드를 가져갈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이기에 '스피드 라이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제 막 사진을 배우고 조금씩 알아가는 초보들에게는 이 무겁고 투박한 장비가 왜 필요한지 의문이 들수도 있다. 나 역시 그랬으니. 하지만 확실한건, 스피드 라이트를 사용한 사진과 사용하지 않은 사진은 한눈에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특히 돌잔치나, 웨딩사진, 모델 촬영이나 행사, 보도 사진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 악세서리다.

 스피드 라이트를 구매하기 위해 게시판을 기웃거리다 보면, '무조건 한방에 가라'는 말을 자주 듣게된다. 무슨 말인고 하니 괜히 저가형이나 보급형을 샀다가 나중에 갈아탈 생각을 하지말고 무조건 가장 좋고 쎈놈으로 한방에 구입하라는 말씀 되겠다. 그리고, 그 한방에 가는 마지막 종착역이 바로 오늘 다뤄볼 Metz 58 AF-1 Digital(이하 메츠 58)이다.


 워낙 명성이 자자한 녀석이라 따로 하나하나 설명하기 입아플 정도다. 고가의 제품인 만큼 수 많은 장점들이 있지만 왕초보도 행사 사진을 무사히 찍을 수 있게 도와줄 몇가지 중요한 기능들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살펴보고 가도록 하겠다.

1 가이드 넘버 58
간단히 말해서 가이드 넘버가 크다는 얘기는 그만큼 빛을 세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카메라 내장 플래시가 15~20 정도, 필자가 전에 사용하던 Pentax 360 FGZ가 36이니 메츠 58의 가이드 넘버 58이 얼마나 강력한지 대충 감이 오리라 생각된다. 뒤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필자가 사진을 촬영해야했던 행사장은 야외였고, 그날따라 날이 너무 맑아서 눈이 부실 정도였다. 하지만 가이드 넘버가 높은 메츠 58은 이런 상황에서도 확실하게 빛을 뿌려준다. 어줍잖은 스피드 라이트로는 표도 안날 상황에서 말이다.

2 보조 발광부
메츠 58의 가장 큰 장점인 보조 발광부는 하나의 스피드 라이트 만으로도 두 개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꼭 행사 사진 뿐 아니라, 인물을 촬영하는 경우 특히 유용한 기능이다. 메인 발광부로는 천장 바운스를 쳐서 부드러운 빛을 뿌려주고, 동시에 보조 발광부는 직광으로 터뜨려 얼굴의 불필요한 음영을 제거하는 등의 응용이 가능하다. 보조 발광부 역시 3단계로 광량 조정이 가능하다.

3 정확한 P-TTL 모드와 쉽고 편리한 A 모드
초보자들이 스피드 라이트 사용을 어렵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익숙치 않은 세팅 때문이 아닐까. 카메라 하나만으로도 공부하고 세팅해야 할게 산더미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메츠 58에는 정확한 측광을 통해 필요한 빛의 양을 계산하여 발광해주는 A모드가 있어서 초보자도 편리하게 사용이 가능하다. 사실 이날 행사장에서 찍은 사진들 대부분이 익숙한 P-TTL 모드로 놓고 찍었는데, 이 역시 신뢰도가 매우 높았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외에도 여러가지 면에서 참 야무진 녀석이다. USB 포트를 이용해 펌업이 가능한 점이나 직관적이고 편리한 인터페이스에서도 사용자를 먼저 생각하는 배려가 느껴진다. 다만 다소 무게중심이 불안해 보이는 스피드 라이트 거치대는 조금 아쉬웠다. 아마도 거치대를 끼운 상태에서도 삼각대에 장착 가능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이나, 그냥 거치대에 올려놓았을 때의 모습이 다소 불안해 보였다. 너무 둔한 조작버튼도 의외로 신경쓰이는 부분이다. 버튼을 누를때 꽤 힘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는 상태에서 손의 감각만으로 조작하기에는 다소 불편한 점이 있었다.

 자, 이쯤했으면 대략적인 메츠 58의 특징들과 장점에 대해 어느정도 익숙해 졌으리라 본다. 이 외에 자세한 성능 테스트나 기계적인 비교는 다른 사용기를 참조하시길 바라며... 이제 본격적으로 메츠 58과 함께 필드로 뛰어들어볼 차례다! 과연 왕초보의 행사사진 찍기 대작전은 성공 할 수 있을 것인가!





극악의 노출차! 역광에서는 모니터 화면이 아예 식별 불가능일 정도였다


 오늘 촬영을 맡은 행사는 140여개 국내 외 기업들이 참여하는 '2010 서울대학교 우수 인재 채용 박람회'다. 아직 스피드 라이트에 익숙치 않았기에 일찍부터 나와서 이런저런 테스트를 해보고 있었다. 그런데 태풍 말로의 영향으로 폭우가 쏟아진다던 일기예보와는 정반대로 오전부터 하늘에는 구름한점 없이 쨍하기만 하다. 행사장에는 기업별로 천막 부스가 세워져 있었는데 태양이 얼마나 쨍하던지 역광 위치에서는 천막 내부가 아예 안보일 정도였다.


 어찌하여 하늘은 행사 사진 초보에게 이토록 가혹한 상황을 주시나이까. 천막 내부에 측광을 하면 분명 하늘이 하얗게 날아가 버릴 것이고, 하늘에 측광하면 천막 아래는 깜깜한 암흑이 되어버릴게 분명했다. 이런 상황이야 말로 스피드 라이트가 절실한 순간이다. 행사 사진이나 보도 사진의 경우는 주제 표현을 정확히 하기 보다는 있는 사실 그대로를 동등한 시선으로 기록하는게 가장 중요하다. 때문에 프레임 속에서 어느곳 한군데라도 어둡거나 밝게 날아가서는 곤란했다.


(위) 스피드 라이트 없이 찍은 사진 / (아래) 스피드 라이트를 발광하여 찍은 사진


 그러는 사이 어느새 박람회가 시작되고, 학생들이 하나 둘 행사장에 몰려오기 시작한다. 일단 테스트 삼아 몇 장 찍어봤다. 위와 아래의 사진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스피드 라이트를 발광시킨 쪽이 역광에서 원경과 근경이 균등하게 찍힌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익숙치 않아 그런지 사진이 다소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개막식의 현장. 당당히 중앙을 차지하고 셔터를 눌렀다!


 빠른 재충전 시간과 여유있는 배터리 수명 역시 스피드 라이트가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중 하나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록을 남겨야 하는 행사 사진의 특성상, 발광 후 다시 발광하기 까지 재충전 시간이 길면 그만큼 사진사에게 불리할 수 밖에 없다. 메츠 58은 삐-하는 비프음과 함께 우측 버튼에 불이 들어오며 재충전이 완료되었음을 알려준다. 실제 사용해보니 재충전 딜레이가 있다는 사실을 까먹을 정도로 꽤 빠른 편이었다. 연사시에도 정확하고 일정하게 발광해주어 신뢰성이 매우 높았다.




메츠 58의 광질은 자연광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조금씩 메츠 58에 익숙해지는게 느껴진다. 이날 하늘이 참 예뻤는데 역광에서도 현장의 생생한 모습과 함께 하늘의 표정을 담을 수 있어서 좋았다. 메츠 58의 명성에는 높은 퀄리티의 광질도 한 몫을 한다. 사실 이렇게 야외에서 보다는 실내에서 인물 촬영등을 할때 더욱 진가가 발휘되는 부분이다. 너무 인위적인 느낌의 불균등한 저품질 빛과는 달리, 자연광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만큼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광질을 보여준다. 참고로, 이날 행사장에서는 옴니 바운스나 디퓨저를 사용하지 않았다.







풍경에서도 스피드 라이트 사용유무는 상당히 다른 느낌의 사진을 만든다


 그럭저럭 야외 행사 진행 모습은 촬영이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바로 위의 사진 같은 경우도 상당히 태양광이 강한 역광 상황이었으나 스피드 라이트의 빛이 꽤 넓고 골고루 퍼진걸 볼 수 있다. 덕분에 터뜨린듯 안터뜨린듯 자연스러운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가이드 넘버 36의 스피드 라이트 였다면 아마도 이런 사진을 얻기 힘들지 않았을까.




친한 동기 형이 놀러와 친히 모델이 되어주셨다. 고맙습니다!


 이번에는 조금더 생생한 현장의 분위기를 사진에 담아볼 차례다. 아까보다 인물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서 스피드 라이트를 직광으로 터뜨렸다. 스피드 라이트를 사용하는 인물 사진에서 가장 쉬우면서도 확실한 효과를 낼 수 있는게 바로 역광 인물 사진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이 찍어볼 기회가 없어서, 가끔씩 급한대로 내장 플래시를 이용해 찍곤 했었다. 메츠 58은 역광 인물에서도 높은 퀄리티의 광질을 어김없이 보여준다. 서로 방향이 반대인 태양광과 인공광이 경계 없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정확한 측광으로 적절한 빛을 발광시켜주는 메츠 58의 측광 시스템도 한 몫 하고있다.




 대략 그림을 그려보면 이런 상황이다. 특히나 인물이 천막 아래쪽에 서 있는 경우에는 스피드 라이트 없이는 마땅히 살릴 방법이 없다. 오늘처럼 극도의 노출차가 있는 날이면 더욱 그렇다. 위 그림의 방법 말고도, 메츠 58은 보조 발광부를 이용하여 인물쪽으로 직광을 쏴주고, 메인 발광부는 위로 들어서 리플렉터 바운스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모델 촬영이나 인물이 더욱 클로즈업된 경우에 조금 더 활용이 가능한 유용한 방법이다.




인물을 사진에 크게 배치하여 사진의 운동감을 더했다. 모든 사진은 직광 P-TTL 촬영 결과물.



 오늘 촬영에 함께한 필자의 장비 구성이다. Pentax K-7이 꽤 작은 크기의 중급기라 메츠 58이 조금 크게 느껴지는 감이 없지않아 있었다. 물론 발광부가 꽤 높이 위치한 덕분에 렌즈 후드에 의해 그림자가 생기거나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크기는 꽤 큰 편이지만 배터리 제외 355g의 무게는 생각보다 가볍게 느껴진다.





 앞서 야외에서는 계속 직광으로 촬영했으나 부스 내부의 모습을 찍기 위해서 천장 바운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다행히 부스 천막이 흰색이고 고깔 형태로 되어있어서 자연스럽게 빛을 확산시키는 디퓨저 역할까지 해주었다. 아래 사진들 중 일부는 보조 발광을 직광으로 더해준 경우도 있으나, 상담중에 양해를 구하고 잠깐씩 찍은 사진들이라 보조 발광부까지 조작할만한 여유가 없는 편이었다.





부스에 가까이 다가가 천장 바운스로 발광시켜 찍었다



 열심히 상담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피드 라이트를 발광시켜 사진을 찍는다는건 여간 죄송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목에 걸고있는 PRESS 증을 보고는 대부분 흔쾌히 허락해주시긴 했지만, 아무래도 직광으로 터뜨리기는 부담스러운게 사실이다. 다행히도 천장 바운스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 큰 카메라가 아닌데도 머리에 큼지막한 메츠 58이 달려있으니 다들 당황스러운 웃음을 짓곤 하더라.





(위) 천장 바운스 발광 / (아래 마지막) 발광 금지


 위 부스 내부 사진들 중, 맨 마지막 한 장만이 발광 없이 찍은 사진이고 나머지는 전부 천장 바운스로 발광시켜 찍은 사진이다. 이렇게 비교해보니 스피드 라이트의 있고 없음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좁은 실내에서 발광시켰음에도 대부분의 사진이 꽤 자연스럽게 나와 만족스러웠다.





둘째날 날씨는 어제와는 또 전혀 달랐다


 그렇게 첫날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둘째날 아침이 밝았다. 구름 한점 없이 쨍하던 어제 날씨와는 달리 오늘은 하늘이 어째 희끄무레한 빛깔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메츠 58을 가지고 직광으로 터뜨려 대부분의 사진을 찍었다. 어제는 P-TTL 모드를 주로 사용했지만 오늘은 A 모드도 섞어서 사용해보기로 했다. 하늘의 명암차가 거의 없는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진들을 보면 하늘과 천막의 디테일이 함께 살아있는걸 볼 수 있다.



 메츠 58과 함께하는 왕초보의 행사사진 찍기 대작전을 재미있게 보셨으리라 믿는다. 갑작스럽게 행사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처음엔 많이 당황했었지만 메츠 58의 쉽고 편리한 인터페이스와 뛰어난 성능, 믿음직한 신뢰도 덕분에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무선 동조를 이용하면 이렇게 조금 독특한 느낌을 얻을 수도 있다


위 사진은 인물 촬영을 연습하며 전에 집에서 적외선 동조로 테스트해본 샘플이다. 모델은 필자의 동생이다. 내장 스트로보를 직광으로 터뜨리고 인물 뒷편에 메츠 58을 적외선 동조로 터뜨려 독특한 느낌을 연출해 봤다. 메츠 58은 광동조는 지원하지 않으며, 적외선 동조만 가능하다. 여러개의 스트로보를 바디에서 제어하는게 불가능한 펜탁스의 스트로보 시스템 특성상 광동조가 지원되면 더 좋았을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적외선 동조같은 경우에는 테스트해본 결과 너무 쨍한 야외에서는 인식이 잘 되지 않는다. 다음에는 실내에서 적외선 동조로 인물 사진에 도전해볼 계획이다.



 '스피드 라이트는 한번에 가라. 그리고 한번에 가려면 메츠 58로 가라.'

 한번도 스트로보를 써보지 않은 초보라면 이 말이 아직 공감이 안갈지도 모르겠다. 필자도 기나긴 의심 끝에 결국 360 FGZ로 첫 스트로보를 구입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메츠 58과 함께 하며 드는 생각은 좋은 스피드 라이트가 일단 손에 있으면 어떻게든 사용하게되고, 그만큼 내 사진에 더 많은 가능성이 주어지는게 사실이다. 앞서도 한번 언급했지만 결국 사진은 빛놀음이다. 누가 빛을 더 잘 다루는지, 더 잘 담아내는지가 결국 사진의 좋고 나쁨을 판가름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끝)





공유하기 링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