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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자전거로 제주 여행을 계획했을 때, 주변 사람들로 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가지 마라'. 걱정되다 못해 기분이 나쁠정도로 만나는 사람마다 똑같은 말뿐이었다. 하긴, 제일 덥다는 8월 첫주에 자전거로 남쪽 섬을 가겠다니 어찌보면 조금 바보같아 보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나에게 무조건 가지말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걸까.
 물론, 개중에는 마음에 걸리는 진심어린 충고도 있었다. 자전거로 여행을 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도로 위에서 보내게 될 것이고, 그러면 관광도 제대로 못하고 죽어라 페달만 밟고 온다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촉박하다보니 진짜 죽어라고 자전거만 타다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 하지만 제주도에 다녀온지 2주가 지난 지금, 나의 여행은 정말 그랬을까? 정답은 '아니다'다.

새연교 앞에 나란히 스트라이다를 세우고...


 서귀포는 참으로 예쁜 도시다. 높은 건물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제주의 특성상, 해안을 감싸 안으며 옹기종기 아담한 건물들이 늘어선 도시의 풍경은 서울에서 보는 그것과 많이 달랐다. 물론 절벽을 타고 도로가 굽이쳐 흐르는 덕분에 페달을 밟는 허벅지가 조금 뻐근하기는 했지만^^;

 서귀포에 다녀온 바로 이날, 3일차를 제외하고는 쉬는시간을 포함해 하루 4시간 이상 자전거를 탄 날이 없었다. 4시간 정도면 가장 더운 11시~2시를 제외하고도 아침 저녁으로 나눠서 2시간 정도씩만 타면 되는 가뿐한 일정이다. 페달을 밟을때는 확실히, 또 볼거리가 있을때는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게 다니겠노라 생각하니, 애초 걱정했던 것 처럼 자전거만 타다가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서귀포에 오니 가로수마저 야자수다! 정말 이국적인걸...?

 
 산방산 쪽에서 서귀포시로 들어오면 제일먼저 외돌개를 마주치게 된다. 외돌개부터 서귀포 항까지는 계속되는 내리막의 연속! 신나게 바람을 가르며 내려오고 있는데, 불현듯 이 길을 나중에 다시 올라와야 하는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새연교를 지나 정방폭포, 서귀포 시내까지는 대부분 큰 오르막이 없는 해안 도로로 되어있고, 일주도로까지 쉽게 연결된다. 긴긴 라이딩에 지쳤던 라이더들이라면 서귀포로 들어오는 길에서 잠시 땀을 식히는 것도 좋을듯 하다.



눈이 아릴정도로 새파란 서귀포의 하늘


 서귀포의 명물 새연교에 도착했다. 천지연 폭포와 불과 몇십미터 거리에 있는 이 다리는, 건너편 '새 섬'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보도교다. 제주 전통배인 '테우'의 모습을 형상화 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꽤 그럴듯 했다. 주로 인터넷을 통해서 불켜진 야경을 봤었는데, 이렇게 밝은 대낮에 보니 또 다른 느낌이다.
 새연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 무렵. 머리위로 쨍하게 내리쬐는 태양 때문에 다리 건너편에는 가볼 엄두도 못냈다. 대신 부둣가에 앉아서 바람을 쐬며 잠시 땀을 식히고 가기로 했다.

예쁜 다리만 보면 왜그렇게 기분이 좋아지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교량 설계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라 독특한 모양의 새연교가 참 인상 깊었다. 어찌보면 배의 모습을 그대로 형상화 했다는게 다소 유치해 보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새하얀 주탑과 서귀포 항의 소소한 풍경이 나름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전에 남해여행을 갔던 기억이 문득 난다. 멋진 드라이브 코스를 따라 자동차를 달리고 있었는데, 드문드문 작은 섬들 사이로 연육교가 놓여져 있었다. 그런데 이 연육교라는 녀석들이 하나같이 트러스 아치 형태로 되어있고, 약속이라도 한듯 빨간색 방청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아름다운 다도해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그야말로 '흉물'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런 무지막지한 다리들 보다는, 새연교처럼 이름도 예쁘고 모습도 아름다운 다리가 훨씬 더 좋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규모가 작아 조금 실망이었지만, 아담한 멋이 있었던 천지연 폭포


 다시 자전거를 타고 조금 더 달려서 천지연 폭포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우고 5분정도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면 아담한 폭포가 하나 나온다. 분명 초등학교 수학여행때 와봤던 곳일텐데 어쩜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실 폭포 보다는 발 담그고 놀던게 기억에 남는다


 사실 폭포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얼른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폭포수에 발을 담궜다. 그야말로 얼음물 그 자체! 너무 시원하다!! 사진 속 수면에 반사되는 빛만 봐도 알겠지만, 그날 날씨가 정말 더웠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 아래서 자전거를 타다보면 이렇게 잠깐씩 즐기는 소소한 행복이야말로 진짜 '피서'다. 더 오래 있고 싶었지만 갈 길이 멀기에 다시 오솔길을 돌아 나왔다.

바다와 어우러지는 정방폭포의 웅장한 모습


 천지연 폭포에서 다시 표선쪽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정방폭포에 도착한다. 제주는 3대 폭포가 있는데 그중 정방폭포가 으뜸이라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난다.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우고 폭포로 이어지는 계단에 들어섰는데, 이건 뭐 천지연 폭포랑은 스케일 부터가 다르다. 진짜 '장관'이라는게 이런거구나...


근처에만 가도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정방폭포의 매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낙차가 워낙 큰데다가 바닷바람이 많이 불어와, 폭포 아래는 그야말로 자연 에어컨 바람이 쉴새없이 불어온다. 카메라와 렌즈가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방진방적 기능을 믿고 과감히 폭포 바로 아래로 자리를 옮겼다.



정방 폭포 앞에서 잠시 쉬어가며 한 장!


 더위가 싹 사라지는 느낌이다. 너무 시원해서 자리를 못떠나고 한참을 그렇게 폭포 아래에 있었다. 이미 카메라 렌즈에는 물이 튀어서 뿌옇게 변해버릴 정도. 옷이야 자전거를 타면 또 마를테니 젖어도 큰 문제가 없다. 혹시라도 여름에 자전거로 제주를 여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정방폭포에 꼭 들리시길!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거다.



바로 뒤를 돌아보면 다시 이렇게 바다가 펼쳐진다.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


 너무 아쉬웠지만 한숨 돌렸으니 이제 다시 출발할 시간. 짧은 시간이지만 어찌나 신나게 놀았던지, 온몸에 힘이 다 빠져버릴 지경이었다. 시계를 보니 아직 2시다. 더위가 한풀 꺾이려면 조금 더 서귀포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출발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중섭 그림이 없었던 이중섭 미술관!


 정오의 태양을 피하기 위한 마지막 피서지는, 바로 이곳 '이중섭 미술관'이다. 서귀포 시내로 조금 들어가 위치한 이곳은 화가 이중섭의 생가 옆에 만들어진 자그마한 미술관이다. 소 그림으로 유명한 대한민국 대표 화가 이중섭은, 전쟁이 난 후 제주도로 피난을 와 이곳에서 잠시 살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중섭 미술관에는 이중섭 그림이 없었다! 1층 기획 전시실에만 최근 기증받은 그의 그림 몇 점이 있었을 뿐 어디를 둘러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알고보니 이곳 미술관은 그의 그림을 전시하기 위해 만든게 아닌, 그의 삶과 작품 활동에 대한 기록, 편지, 흔적 들을 모아놓은 곳이었다. 


아름다운 서귀포도 이제 안녕!


 그의 그림을 볼 수 없어서 아쉽기는 해도, 덕분에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진 곳에서 더위를 잠시 피해갈 수 있었다. 미술관 옥상에 올라가면 이렇게 서귀포 해변의 모습도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으로 볼때는 하늘이 너무 투명하고 아름답겠지만, 저때만 해도 꺾일줄 모르는 더위가 얼마나 얄미웠는지 모른다.

 이중섭 미술관에서 나와 간단히 점심을 먹고, 그렇게 짧은 서귀포에서의 '피서'가 끝이 났다. 자전거로 여행하면 내내 땅만 쳐다보다 온다고 했던 사람들에게 한마디! 그런거 아니거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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