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루만 더 있었으면 좋겠는걸' 쿠리치바에서 상파울루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브라질이라는 나라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애초에 며칠 일정 가지고는 제대로 돌아볼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럼에도 '딱 하루만 더 있었더라면 브라질리아 정도는 가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미련이 생겼다. 브라질리아는 미국의 워싱턴 DC,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시 같은 일종의 행정수도이다. 행정가도 아닌 내가 브라질리아에 가보고 싶은 이유는 순전히 건축가 오스카르 니에메예르(Oscar Niemeyer, 1907-2012)의 작업을 보고 싶어서였다. 명실상부한 브라질의 국민적인 건축가, 우리에겐 어쩐지 오스카 니마이어라는 발음으로 더 익숙하지만 근래 들어 포르투갈어 표기법을 따르는 것으로 바뀌었다. 브라..
채 일주일도 안 되는 빡빡한 출장 일정에도 굳이 쿠리치바를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순전히 내 의지였다.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르는 이역만리 브라질 땅에서 상파울루에만 머물다 가기엔 너무 아까웠다. 업무에 무리가 없는 선에서 딱 하루 정도는 어떻게 시간을 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후보지는 크게 세 곳. 모두 상파울루에서 비행기로 한두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들로 대략 예상되는 일정은 아래와 같았다.1. Rio de Janeiro: 브라질 최대의 관광도시 리우의 거대 예수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긴다. 2. Foz do Iguazu: 세계 3대 폭포라 불리는 이과수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긴다. 3. Curitiba: 전 세계 건축/도시/교통/행정가들의 참조도시, 쿠리치바를 답사한다. 관광을 목적..
불현듯 드니 빌 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Arrival, 2016)'가 떠올랐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전 세계 도심 상공에서 묵묵부답 공중에 떠 있는 거대한 괴 비행체 '셸(Shell)' 말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영화에서 세로로 긴 비행체를 가로로 눕혀 놓았고 곤충의 다리같이 뻗어 나온 4개의 기둥이 달려 있다는 점뿐이었다. 상파울루 미술관(MASP, Museu de Arte de São Paulo)의 첫인상은 이처럼 지구인의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경하고 이상했다. 이탈리아 태생의 브라질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Lina Bo Bardi, 1914-1992)의 설계로 지난 1968년 완공된 이 미술관은 명실상부한 상파울루의 상징이다. 처음 이 건물에 대해 알게 된 건 정말이지 우연한 기회였다..
만약 브라질에서 단 하나의 음식만을 먹을 수 있다면 무엇을 택해야 할까? 나는 주저 없이 슈하스코를 먹으리라. 이과수 폭포의 웅장한 물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황홀하고 브라질 건축의 아버지 오스카 니마이어 선생의 작품을 눈으로 감상하는 것도 멋지지만 나에게 있어서 맛보다 강렬한 기억은 없다. 고기, 고기가 먹고 싶었다. 출국 일정을 앞두고 이런저런 준비로 한창 바쁘던 어느 날, 옆자리에 앉은 신입사원이 슬쩍 쪽지를 내밀었다. 상파울루에서 살다온 친구가 추천해준 맛집이라고 했다. 총 세 곳의 레스토랑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한식집 한곳과 슈하스카리아 두 곳이었다. 그 친구는 그중 한식집을 일 순위로 추천했다지만 짧은 출장 일정에 한국음식을 먹기엔 좀 아쉬울 것 같아 먼저 제쳐두었다. 남은 두 곳의 슈하스카리아 ..
이번 브라질 출장길에 임하는 나의 마음가짐은 이전 과는 사뭇 달랐다. 지난봄 일본으로의 출장이 모형을 들고 가 설치하는 나름 단순한 작업이었다고 한다면 이번엔 어찌 됐든 간에 '집'을 '지어야'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이역만리 브라질까지 와 대나무로 집을 짓게 된 것일까. 지금 생각해도 풋- 하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이번 출장은 그 시작도, 과정도, 결과도 하나같이 예측불허의 연속이었다. '가로 1.8m, 세로 3m, 높이 6.5m의 2개 층 규모의 대나무 건축물' 이것이 이번의 내가 완수해야 하는 '출장의 목적'이다. 이 요상하게 생긴 건축물은 이미 서울과 도쿄에서 전시되었던 'DMZ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계된 것으로 당시 모형과 영상으로 선보..
한국에서부터 지구 정반대 편 브라질까지 가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미국을 경유하거나, 유럽 주요 도시를 경유하거나, 중동을 경유하는 방법. 지난 2016년에 유일한 직항 편이 폐지된 이후론 환승 편을 이용하는 방법만 남아있다. 그중, 미국을 경유하는 방법은 거리는 짧아도 ESTA를 발급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유럽 주요 도시를 거치는 방법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다. 아부다비의 에티하드 항공, 도하의 카타르 항공, 또는 두바이의 에미레이트 항공을 이용하는 방법이 가장 무난한 선택이다. 그렇게 브라질 상파울루로의 출장이 확정되었다. 오고 가는데만 꼬박 사흘은 잡아야 하니 일정을 계획하는 것도, 여비를 예상하는 것도 이래저래 다른 출장 때보다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것 같다. 게다가 난생처음으로..
나에게 하루 반나절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쌀쌀했던 4월의 도쿄 날씨는 자꾸만 몸을 웅크리게 만들었다. 출장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자유시간이다. 일정과 일정 사이에 생기는 자투리들을 잘 모으면 나름의 짧은 답사를 다녀오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본연의 업무에는 지장이 없는 선에서 말이다. 다만 그런 시간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뭔가를 미리 계획 한다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저 마음속에 미리 후보지를 두어 군데 점 찍어 두는 정도라면 모를까. 이날은 오전 4시에 미술관에서 열리는 컨퍼런스 참석을 제외하고는 오전 내내 일정이 비었다. 전시와 관련해 갑작스러운 돌발상황이 생길 것을 대비해 여유삼아 남겨놓은 시간이었는데 다행히도 일이 잘 끝나 남는 ..
하라미술관에서의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 서둘러 시나가와를 빠져 나왔다. 내가 담당하는 다른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스카이트리 답사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는 전시 관련 일정만으로 잡힌 출장이었지만, 내가 도쿄에 있는 시간에 맞추어 스카이트리 답사 일정이 추가된 것이다. 특히나 이날은 두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4박5일 일정 중 가장 정신없이 뛰어다닌 날로 기억된다. 도쿄 스카이트리는 지난 2012년 완공된 높이 634m 짜리 거대한 방송탑이다. 스카이트리가 개장하기 전까지 일본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던 도쿄타워가 333m이니 무려 300m나 더 높은 셈이다. 도쿄타워와 동일하게 방송전파 송출용으로 세워져 실제로도 도쿄타워가 감당하지 못하는 음영지역에 전파를 송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