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유럽에 올 수 있을까?’ 스무 살, 유럽으로의 첫 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과외 아르바이트로 모은 푼돈에 부모님의 지원금까지 보태어 무리해서 떠난 여행이었다. 물론 여행지로서의 유럽은 충분히 멋지고 좋은 곳이었지만 그만큼 과분했다. 그곳에서 한 달간 수없이 마주했던 감동들은 마치 손 틈새로 새어나가는 모래알과 같아 다시는 쥐기 힘들 것만 같았다. 인생이 충분히 길다는걸 채 다 알지 못했던 그때, 나는 유럽에 다시는 오지 못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불과 몇 년 후, 나는 스페인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고 다시 유럽 땅을 밟았다. 생각보다 빠른 재회였다. 하지만 아직 학생이기에 누릴 수 있는 행운이라 여기고 매 순간을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열정적으로 살았다. 무..
덜컹. 크게 한 번 출렁이는 차축의 진동이 창문에 기댄 내 머리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당시 스무 살 나이에 유럽을 배낭여행 중이던 나는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니스'를 출발해 '생폴 드 방스'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순간 안내방송에서 들리는 '방스'라는 단어에 반사적으로 가방을 챙겨 버스를 내렸다. 하지만 이상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가이드북에 나온 마을 사진과 영 딴판인 게 아닌가. 분명 '방스'라고는 했는데 여기가 정말 '생폴 드 방스'가 맞는지 스마트폰도 없던 그 시절엔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친구들과 상의 끝에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달리는 자동차를 향해 '생폴!'이라고 소리 지르며 열심히 손을 흔들었고, 운 좋게도 푸조 한 대를 얻어 탈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버스를 내린 곳은 ..
군더더기 하나 없이 미끈한 맵시의 '그 다리'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 브리핑 자료에 들어갈 근사한 '다리(bridge)' 이미지를 검색하던 중이었다. 부러질 듯 말듯한 조형, 군더더기 하나 없는 디테일, 중간 기둥 없이 물 위를 가로지르는 담대함 까지! 프랑스 마르세유에 있다는 '그 다리'는 내가 상상하던 이미지와 정말이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덕분에 작업은 무사히 끝났다. 조금 더 정보를 찾아볼까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일상의 고단함에 떠밀려 버렸다. 그렇게 '그 다리'는 한동안 나의 뇌리에서 잊혀 있었다. '그 다리'를 다시 마주친 건 유니테 다비타시옹에서 체크아웃을 마치고 나왔을 때였다. 구글 지도에서 마르세유 항구 근처의 주차할 곳을 찾던 중 어쩐지 낯익은 건물을 발견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계단은 층과 층을 연결하는 아주 기본적인 건축 요소이다. 기원전에 세워진 지구라트(Ziggurat) 정면에 긴 계단이 자리하고 있음을 떠올려보면 그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계단은 사실상 그 역할을 잃어버렸다. 수 백 미터 높이의 초고층 건물이 전 세계에 천여 개가 넘고* 불과 수 초 내로 엘리베이터가 몇십층을 오르내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혹시 당신은 지금 사는 아파트나 근무하는 사무실의 계단실을 얼마나 자주 이용하는가?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걸어 다니지 않는 이상 계단실에 들어가 볼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고층건물의 계단을 법에서 부르는 이름조차 '특별피난계단'이다. '특별히 피난할'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모르고 살아도 될 것..
건축하는 일은 곧 땅에 대한 존중과 이해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설계 작업은 으레 그 땅을 직접 찾아가 두 발로 걸으며, 두 눈으로 면밀하게 살피는 일로 시작된다. 책상 앞에 앉아 종이와 연필을 쥐기 전부터 건축가의 사유라는 것이 이미 시작되는 까닭이다. 내가 건축에 매력을 느끼는 건 자연과 인간이 서로 밀고 당기며 균형을 잡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지경계라는 가상의 선을 땅 위에서 찾아내고 이를 기준으로 집의 향과 배치를 결정하는 일부터가 당장 그렇다. 더욱이 본격적인 설계가 시작되면 중력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대 자연의 힘과 끊임없이 사투를 벌여야 하며, 건물이 높아지면 질수록 바람과도 싸워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공사가 시작되면 더욱 힘겨운 과정의 연속이다. 땅을 파고, 메우고, 벽을 세우고, 붙이고..
별안간 닭 한 마리가 길게 울었다. 어슴푸레 밝아오던 새벽의 고요함도 덩달아 깨져버렸다. 다시 누워봐도 이미 잠은 저만치 달아나 버렸고 눈은 말똥하다. 별수 없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옆자리의 아내는 아직 곤히 잠들어있다. 에라 모르겠다. 작은 쪽지 한 장을 남겨놓고 겉옷을 주섬주섬 챙겨 밖으로 나섰다. '아침 식사 전까진 돌아오겠어요' 평소 여행지에서 좀처럼 일찍 일어나는 법이 없는 편이지만 아침산책이라는 걸 한번 해보기로 했다. 그래도 목적지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한 곳을 정했다. '생폴 드 모졸 수도원', 사람들에게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입원했던 '생 레미의 정신병원'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아침식사를 마친 후 아내와 함께 정식으로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사전 답사 겸 미리..
리용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마르세유까지 이어지는 A7번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이대로 서너 시간 정도 계속 달리면 생 레미 드 프로방스에 도착한다. 그러고 보니 외국에서 운전하는 게 벌써 인도, 미국, 이탈리아에 이어 네 번째다. 자동차가 네 바퀴로 굴러가는 이치야 만국 공통이지만 그럼에도 나라마다 특유의 운전문화라는 게 있어 매번 긴장하곤 한다. 괜스레 핸들을 잡은 손이 떨려오는 까닭이다. 어느새 리용에서 꽤 멀어지고 이정표에 아비뇽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즈음부터 운전이 한결 편안해졌다. 프랑스의 운전자들은 카메라가 없는 곳에선 120, 130킬로미터까지 시원스럽게 내 달린다. 나 역시 추월차로를 넘나들며 지중해를 향해 엑셀을 힘껏 밟았다. 초반 한 두 개 정도 못 보고 지나친 과속카메라 말고는 군더더기 ..
결혼을 하고, 나는 가장이 되었다. 이제는 늘 두 사람이 함께니 무엇을 하더라도 혼자일 때 보단 어렵고 힘이 든다. 하물며 여행도 마찬가지다. 철없던 연애시절엔 하룻밤에 5유로짜리 호스텔에도 곧잘 묵곤 했었다. 하지만 일 년에 단 한번 부부가 함께하는 여름휴가에 그런 숙소를 택할 수는 없는 법이다. 미리부터 세워보는 휴가 계획에는 비행기 값도 두 배, 식비도 두 배, 숙박비는 두배 플러스 알파로 계산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회사의 공식 여름휴가 기간은 주말을 합쳐도 단 6일이 전부였다. 제아무리 머리를 굴려본들 우리 부부의 이번 휴가지는 멀리 가도 동남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난 올해 여름 꼭 '라 투레트'에 가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말이야 쉽지만 프랑스까지 가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