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일본으로의 세 번째 출장이다. 지난 2013년, 난생 처음으로 대형 쇼핑몰 설계를 맡게 되어 롯본기 힐즈나 미드타운 따위의 사례답사 차 도쿄에 왔었고 2015년에는 또한 처음으로 기념관 설계를 맡아 부산에서부터 배를 타고 후쿠오카로 들어와 기타큐슈, 야마구치, 히로시마를 돌며 여러 기념관 들을 돌아봤었다. 이번 출장의 목적은 도쿄 남부의 시나가와구에 위치한 하라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참가작품을 설치하는 일이다. 모형과 영상, 벽면 패널이 설계한 대로 잘 설치되는지 감독하고 오프닝과 큐레이터토크 까지 보고 오면 나의 임무는 완수다. 오후 비행기라 아침에 캐리어를 끌고 출근했다가 회사차를 얻어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어차피 동행없이 가는 길이라 공항버스를 타고 가도 그만이지만 미술관까지 가져가야하는 모..
아마 섬진강 종주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내 낡은 자전거 종주수첩의 마지막 페이지는 벌써 4년도 전에 배알도 수변공원에서 찍은 도장 이후 내내 덮혀 있었다. 돌아오는 현충일 날 자전거를 타자고 먼저 청해온 것 Y였다. 그는 내 오랜 친구이자 벌써 국토의 절반 이상을 자전거로 함께 달린 여행 단짝이다. 서울 근교는 이제 질렸고, 차를 가지고 산악 코스를 찾아가기엔 살짝 부담이라 고민하던 찰나 잊고있던 오천 자전거길이 떠올랐다. 그날로 우린 고속버스 티켓을 예매했다. 출발 하기도 전부터 엉덩이가 들썩거려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오천 자전거길은 충청북도 괴산에서 출발하여 다섯 개의 작은 천을 따라 증평, 청주를 거쳐 세종시에서 끝이 나는 약 100여 km의 길이다. 정식 종주루트라기 보다는 국토종주나 4..
라오스는 낮은 인구밀도에 비해 다양한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는 나라중 하나다. 라오스 정부내 공식 인정된 소수민족은 49개지만 하위민족은 160개 정도로 추정되며, 학자에 따라서는 800여개 이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고 한다. 라오스의 소수민족은 대부분 고유한 문화를 보존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이는 험준한 자연환경으로 인해 지역간 교류가 드물었던 환경에 기인한다. 우리가 정글 촬영을 했던 우돔싸이의 남깟 지역은 그 중 크무(까무) 족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까만색 바탕에 빨간 장식으로 된 복식을 주로 하는 이들은 현지에서 농업이나 관광업에 종사하며 부족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크무족과의 만남방비엥에서 신나게 놀던 두 젊은이가 어떻게 하면 크무족과 만나는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PD님은 고민이 깊으셨던 ..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는 짐을 챙겨 북쪽으로 출발했다. 방비엥에서 북쪽으로 13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보면 프랑스 식민지풍 도시로 잘 알려진 루앙 프라방을 지나게 된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고 볼거리도 꽤 있는 곳이지만 이번 방송에서는 다루지 않기로 했다. 대신 점심식사를 그 곳에서 하고 짧게 한시간 정도 자유시간을 가진 후에 다시 우돔싸이로 출발할 예정이다. 라오스는 북부 산악지대로 갈수록 도로 상태가 안좋아지고 길이 험해 이동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했다. 오늘 하루는 차 안에서 꼼짝없이 보내게 생겼다. 점점 험해지는 산세, 북부로 가는 길 방비엥을 나서기가 무섭게 주변 풍경이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했다. 길도 더 구불구불 해지고 계속해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했다. 달리던 중간에 풍경이 좋은..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인 작년 6월, 우리 둘은 세계테마기행 시청자특집 ‘청춘예찬 꽃보다 라오스 편’에 출연하였다. 생애 첫 TV 출연을, 그것도 무려 주인공이 되어 해외 올로케이션으로 데뷔했으니 가문의 영광도 이런 영광이 없을 것이다. 사실 처음 시청자 특집 출연자 공모를 봤을 때 만 해도 정말 우리가 갈 수 있을지 반신반의 했었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한동안은 정신이 없어 멍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튜브와 EBS 홈페이지에 우리가 출연한 방송이 다시보기로 올라와있는 걸 보니 이제서야 조금 실감이 난다. 어느새 올해의 시청자특집 편들이 방영을 앞두고 있다. 또 어떤 출연자가 어떤 여행지를 다녀 왔을지 상당히 기대된다. 이즈음 해서 나 역시 지나간 여행도 추억해보고 방송 ..
아빌라(Ávila)를 출발한 기차는 다시 고원을 가로질러 살라망까(Salamanca)에 도착했다. 마드리드로부터 약 220km, 기차로 세 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다. 이곳은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와 같은 '대학도시'다. 1218년에 설립된 살라망까 대학은 중세 유럽의 지성을 이끄는 한 축이 되었고, 15세기 말에는 스페인 예술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지성의 숨결은 오늘날까지도 도시 구석구석에 깃들어 살라망까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살라망까는 스페인 전역에서 까스떼야노(Castellano-스페인 중부 까스띠야지방의 언어, 현대 스페인어의 기원이다.)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스페인을 찾는 사람들에겐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보다 더 친숙한..
따끈한 탕속에 누워 큰 기지개로 아침을 맞았다. 전날의 피로는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평소 같으면 느즈막히 일어나 출발했을 우리지만 오늘 만큼은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기로 마음이 통했다. 내가 지난 1년간 Y와 자전거로 전국을 누비며 전수해준 몇 가지가 있는데 온천욕도 그중 한가지다. 발을 담가봤을때 몇 초 못견딜 정도로 뜨거운 온도여야만 근육이 풀리는 효과가 있다. 확실히 수안보 이후 Y는 온천욕 맹신자가 되었다. 친구는 이렇게 닮아가는 것 같다. 아침부터 열심히 씻었더니 배가 고프다. 숙소 밖으로 나와 여기저기 기웃거려보는데 식당이 눈에 띄질 않는다. 분명 어젯밤만 해도 보였던것 같은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근처 시장까지 한바퀴 슥 둘러보았지만 김밥집 하나 보이질 않는다. 그냥 짐을 다 챙겨나와..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자락 옥녀봉에서부터 흐르기 시작한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을 굽이치며 지나 지리산을 휘감아돌아 마침내 광양만에 이르러 남해바다와 한 몸이 된다. 한국에는 섬진강을 노래하는 시인들이 참 많다. 산이 많아 동서남북으로 흐르는 강줄기도 참 많은 우리나라지만 섬진강 만큼은 어딘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한 달 전부터 휴가를 미리 써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꼭 4월의 아름다운 어느날에 섬진강을 내달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주말, 하늘이 내려준 축복과도 같은 날씨 속에 꼭 꿈을 꾸는 듯한 이틀간의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 최고의 자전거길은 무조건 섬진강이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섬진강을 달린다는건 그야말로 하늘이 주신 선물이다. 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