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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글바글. 시원한 해장 라면 끓는 소리와 함께 국토종주 둘째날 아침이 밝았다. 

 

 어제 저녁 삼겹살과 맥주에 이어 아침으로 라면까지 끓이고 있으니 대학생이 되어 엠티에 온 것 마냥 설렌다. 직장인 신분이 되어 다시 맛보는 엠티라면은 그야말로 꿀 맛. 할머니댁 김치냉장고에서 신김치까지 꺼내어 쭉 찢어 입에 넣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신나게 아침을 해먹다가 출발이 조금 늦었다.

 

 한 그릇 씩 뚝딱 비우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늘상 회사 책상에만 앉아있다가 안장 위에 앉으니 엉덩이가 비명을 지른다. 1박 이상 자전거 여행을 하면 겪게 되는 '아침의 공포'랄까. 출발하고 조금 있으면 괜찮아 지지만 처음엔 살짝 망설여지는게 사실이다. 

 

농로로 쓰이는 도로였는지 심지어 표면까지 울퉁불퉁했다. 오마이갓.

 

 원칙적으로 국토종주 자전거길은 강줄기를 따라 조성되어 있어서 대부분 옆으로 강을 끼고 자전거 도로를 달리게 된다. 하지만 오늘 우리처럼 숙소를 찾기 위해 국도를 달려야 할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코스 자체가 자동차 도로를 공유하게 설계된 경우도 더러 있었다. 당연히 자전거 도로보다는 국도 위에서 긴장이 많이 되는 편이다. 이따금씩 어깨가 스칠듯 위험하게 옆을 지나는 트럭들도 있다. 특히나 바퀴가 작아 차체가 낮은 우리들에겐 공도주행이 썩 반갑지만은 않았다. 

 

 

 

어제 본 이포보가 그나마 신경쓴 디자인이었다니...

 

 할머니댁에서 남한강쪽으로 30여분 정도 달려서 다시 국토종주 자전거길에 합류했다. 어제 마지막으로 스탬프를 찍었던 이포보 다음 인증센터인 여주보다. 이포보도 딱히 아름다운 외관은 아니었지만 여주보는 한 술 더 떠서 정체모를 뾰족한 뿔까지 달고 있었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도 모자라 시각적으로도 심각한 공해가 아닐 수 없다. 이제 겨우 두 번째 만난 보인데... 앞으로 종주 인증까지 마주칠 수 많은 보들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다.

 

 

양갱섭취는 라이더의 숙명....이랄까

 

 강 위에 놓인 흉물스런 보 옆으로 더욱 기괴한 건물들도 쉽게 볼 수 있다. K-water, 즉 수자원공사 직원들이 상주하는 보 관리 사무소가 그것인데 작게나마 물과 관련된 전시를 해놓기도 하고 높은 전망대를 만들어 사람들이 올라가게 해 놓은 곳도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우리가 들를땐 늘 텅 비어있었다. 건물의 외관이나 디자인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할 말이 없다.

 

 국토종주 자전거 여행자 입장에서는 이런 관리소 건물들과 연계되어 화장실 또는 매점 등을 이용  할 수가 있어 썩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수 조원을 들여 만들었을까. 결코 좋게만 볼 일은 아닐 것이다.

 

급한 오르막? 너무 급한 오르막!

 

 여주보를 지나 달리다 보면 국토종주 인증코스의 하이라이트(?)를 만나게 된다. 무려 21% 경사로다. 보통 자전거길 경사도가 5~15% 정도인걸 감안하면 가히 최고수준이다. 계속 수면과 비슷한 높이로 진행하던 길을 짧은 구간내에서 교량 높이까지 들어올려버리니 이런 기형적인 오르막 구간이 생겨버렸다. 일반적으로 경사도 15% 전후부터 무게중심을 잃고 앞바퀴가 들썩들썩 거리게 된다. 한마디로 21% 오르막이라는건 자전거로 통행이 '불가(MTB가 아닌 로드나 생활자전거 기준으로)'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 길은 분명 '정식 코스'에 포함되어 있다.

 

 남한강 코스를 달려본 사람들 사이에서 워낙 비판이 많다보니 지금은 나무로 턱을 덧대어 아예 주행하지 못하게 해 놓았다. 덕분에 자전거를 질질 끓고 75m나 되는 오르막을 올라야했다. 타고 가라고 하지 않는걸 차라리 감사해야 하나...

 

 

조용해서 더욱 매력있었던 강천섬의 풍경.

 

 국토종주 자전거길은 남한강 위의 작은 섬인 '강천섬'을 가로지르며 여주를 빠져나오게 된다.이 곳 역시 로드 유저들 사이에서는 비포장도로라는 이유로 실컷 욕을 먹고 있지만 의외로 고즈넉하니 풍경이 너무 좋아서 놀랬다. 오히려 사각사각 타이어가 모래를 밟는 느낌도 좋고, 흙길 위에 무수하게 남겨진 선배 여행자의 흔적들이 운치 있어보이기까지 한다. 강천섬 구간은 그리 길지 않아 금세 포장도로로 이어지니 잠시 속도를 줄이고 여유를 가져보는 것을 추천한다.

 

 

 

갑자기 강원도스럽게 변해버린 풍경에 놀랐다.

 

 여주군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강원도 원주시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강원도라는 이름때문에 꽤 멀리까지 온 것 같아 제법 뿌듯했다. 풍경도 미묘하게 바뀐것만 같았다. 산세도 좀 더 험해진것 같고 강줄기도 훨씬 굽이치는 것 같고... 하지만 얼마못가 다시 충주시 표지판이 나오더라. 하천을 기준으로 행정구역을 나누는 경우가 많다보니 강 옆을 따라가는 자전거길도 자연스레 여러 행정구역을 넘나들게 된다. 언젠가 한번은 100m 내에서 순식간에 행정구역 안내 표지판을 세 번이나 마주친 일도 있었다. 

 

비내섬으로 가는 국도구간, 차도 없고 길도 깨끗해서 시원스럽게 달렸다.

 

 충주시에 들어온 이후 비내섬까지 한동안 국도를 달린다. 길이 좋아 속도도 잘 나고  배도 고프고 해서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았다. 마침내 비내섬 인증센터에 도착. 헌데 스탬프를 찍고나와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식당 같은게 보이질 않는다. 배에서는 꼬르륵 거리고 다리는 살짝 아파오는데 밥 먹을 곳이 없다니...

 

 스마트폰으로 주위 지도를 검색해보다가 리 멀지 않은 곳에 '양성 한우마을'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그래 여기다!

 

 

어제는 돼지고기, 오늘은 소고기! 그것도 한우!!

 

 양성 한우마을은 온천을 중심으로 조성된 작은 관광지였는데 농협 직판장에서 생고기를 직접 구매해 상차림비만 식당에 치루고 먹는 방법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우리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치마살과 갈비살을 골랐다. 서울보다는 싸다고 해도 제법 만만찮은 금액이었지만... 눈 딱 감고 지르기로 했다. 그래, 여행은 먹기위한 여정일 뿐이다!

 

 뜻밖의 포식을 한 덕분에 아침나절 내내 페달을 밟았던 몸도 금새 회복되었다. 물통에 찬 물도 다시 채우고, 썬크림도 새로 바라주고 다시 출발.

 

3월에 내리는 비는 많이 차갑다...

 

 충주를 향해 가던 무렵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여주 할머니댁에서 부터 75km 온 지점이었고, 오늘의 예상 목적지인 수안보까지도 또 그 만큼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비오는건 상관 없다지만 제일 걱정되는건 추위였다. 꽃샘추위가 채 가시기 전인 때라 비를 조금만 맞아도 몸이 금새 차가워져 버렸다. 급한대로 방수가 되는 바람막이를 둘러입고 자전거 짐가방은 비닐봉지로 싸매야만 했다. 비 생각을 안하고 방수포를 가져오지 않은게 실수였다.

 

 빗방울이 크지 않아 보여 계획대로 일정을 밀어붙이기로 했다. 남한강의 종착지인 충주시에 도착하면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충주댐 인증센터에 방문 하느냐 마느냐가 그것인데 충주댐에 가기 위해서는 왕복 15km 정도를 추가로 타야만 했다. 참고로 지리적인 이유때문에 충주댐 스탬프는 받지 않아도 국토종주 인증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근성의 라이더들. 이왕 여기까지 온거 충주댐도 힘내서 다녀오기로 했다.

 

충주댐을 끝으로 남한강 자전거길 전구간 완료, 도장 참 잘 찍는다?

 

 

힘겨운 오르막과 사투를 벌인 끝에 이곳에서 두 개의 인증 배지를 받았다.

 

 충주댐 인증센터는 댐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결국 숨이 할딱거릴 정도로 오르막을 오르고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힘들게 오른 보상이랄까. 충주댐 인증센터에서 한강과 남한강 종주 인증 배지를 받았다. 처음으로 구간 인증을 받은 기쁨에 힘들었던 오르막의 기억도 싹 잊혀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만약 국토종주를 다시 하더라도 충주댐 만큼은 가고 싶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문경새재 이화령을 넘는 것 보다 충주댐 오르는게 더 힘들었던것 같다. 이유는 잘 모르겟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유후

 

 

새재 자전거길이 시작 되는 곳, 충주 탄금대

 

 충주댐에서 내려와 충주시내를 좌측으로 끼고 조금 더 달리면 탄금대에 이르게 된다. 남한강 자전거 길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새재 자전거길이 시작되는 중요한 기점이다. 보통 로드 싸이클을 타는 사람들이 서울에서 당일치기 코스로 올만한 한계치이기도 하다. 서울에서부터 약 200km 정도 되는 지점이다.

 

 도착하기가 무섭게 빗방울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먼저 인증센터에 도착해있던 사람들은 슬슬 라이딩을 마치고 시내로, 혹은 집으로 돌아가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린 달려야할 거리가 한참 더 남아있었다. 일정대로라면 오늘의 숙박지는 수안보 근방이 되어야 했다. 남은 거리는 약 30km. 슬슬 어두워지는 하늘과 궂은 날씨가 조금 걱정이었지만 딱히 선택의 여지가 없어 달리는 수 밖에 없었다. 부디 별일 없기를 바라며...

 

 

 

남한강 자전거길에 비하면 도로사정이 조금 나쁜 편이다.

 

 

 새재 자전거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주위 풍경도 사뭇 달라졌다. 남한강 상류와 낙동강 상류를 이어주는 길이다 보니 계속해서 내륙으로 굽이굽이 달리게 된다. 자연스럽게 마을 사이를 지나거나 농로를 따라가기도 하고, 국도를 달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나름 강가를 달리는 것 보다는 다이나믹하고 재미있는 코스다.

 

 

 

사진은 멋져보여도 우리 속은 타들어만 갔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 덕분에 주변 산자락으로 안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제법 운치있는 풍경이지만 그보다 걱정이 앞섰다. 만약에 대비해 야간 라이딩 준비도 해왔으나 이런 산길을 한밤중에 자전거로 달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주댐에서 체력을 다 소진해버린 우리의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만 있었다. 게다가 네비게이션 역할을 맡았던 나의 판단 미스로 길까지 한번 잘못 들어 5km 가까운 거리를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힘은 힘대로 들고 시간은 흘러 날은 어두워져만 갔다.

 

결국 간이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비를 피하기로 했다.

 

 결국 해가 지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수안보까지 남은 자전거길은 모두 국도를 공유해서 달리게 되어있었다. 산 중턱을 향해 가는 도로라서 가로등도 없고 죄다 오르막이다. 평지에서 한 시간이면 될 거리를 두 시간 가까이 달려야 했다. 춘삼월에 비를 맞으며 야간 라이딩을 하니 체온도 떨어져 춥고 이제는 배까지 고파진다. 하아... 달리며 중간중간 비도 피하고 초코바도 까먹으며 마지막 안간힘을 다했다. 수안보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냐... 존재하기는 하는 것이냐...

 

마침내 라스베이거스... 아니 수안보에 입성했다.

 

 저녁 여덟시가 다 되어서야 마침내 수안보에 도착했다. 관광지답게 형형색색 네온사인 불빛이 밝은 거리가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깜깜한 산 속을 달려온 우리들 눈에는 마치, 사막 위로 라스베이거스가 짠 하고 나타나는 것만 같았다. 그만큼 반가웠다. 

 

 수안보에 온 만큼 오늘 저녁은 온천을 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방을 잡는 것 보다는 허기진 배를 채우는게 우선이라 식당부터 찾았다. 차게 식어버린 몸도 데울겸 따끈한 국물이 있는 요리를 먹는데에 두 사람의 의견이 모아졌다.

 

 

 

상 앞에 앉은 Y의 표정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실내에 자전거를 들여놔도 된다고 한 전골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제일 싼 두부전골로 2인분을 시켰는데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허겁지겁 집어넣는데 바빴던 것 같다. 빗물이며 진흙범벅인 자전거와 우리 모습을 보고 젊은 사람들이 고생 많다며 아주머니께서 한마디 하셨다. 하지만 자전거길 개통 이후 워낙 여행자들이 많아져서 그런지 딱히 신기해 하지는 않으신다.

 

비에 흠뻑 젖은 옷가지들도 가지런히 꿈나라로.

 

 밥을 먹고 나오니 어느새 열 시가 가까운 시각. 늦은 시간이었지만 24시간 온천욕을 할 수 있는 방을 잡고 뜨끈한 물에 몸을 뉘이니 그제서야 긴장이 좀 풀어지는것 같았다.

 

 목욕을 마치고 돌아와 일과를 정리하다 보니 오늘 무려 132.9km를 탔다. 하지만 이제 겨우 이틀째, 게다가 내일은 유명한 문경새재 이화령을 넘는 날이다. 맥주 대신 건전하게 두유 한 잔으로 심심한 입을 달래고는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부디 숙면하고 내일 아침 쌩쌩한 다리로 다시 출발할 수 있기를 바라며.(계속)

 

주행거리 132.9km, 주행시간 7시간 28분, 평균속력 19km/h, 최고속력 48.5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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