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행자가 아닌 인도 오르차 아이들의 영어선생님으로서 수업을 하는 첫 날이다. 그간 대학생활을 하며 과외 아르바이트는 꾸준히 해왔었지만 이렇게 '선생님'이 되어 여러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는일은 처음이라 조금 긴장됐다. 반면 여행을 마치고 곧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부임할 누나는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착착 모든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르차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수업에 대한 계획을 세우며 전날 밤 늦게야 잠자리에 들었다. 나중에 아이들과 수업을 한 뒤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가 너무 딱딱하게 생각하고 수업을 준비했던것 같기도 하다. 우리 둘다 그렇게 고리타분한 사람들은 아니지만서도 어느새 한국식 수업에 너무나 익숙해져있었던게 아닐까. 파란 하늘아래 흙바닥 교실에서 진행되는 오르차에서의 영어수업..
오르차에서의 둘째날 아침은 조금 특별했다. 오늘 아침도 문을 열고 나가면 어김없이 '짜이?' 하고 외치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똑똑똑... 나가기도 전에 먼저 문을 먼저 두드리는 주인장. 무슨 일일까? 내가 짜이를 좋아하는걸 알고 일부러 가져다 준걸까? '나마스떼' 하고 인사를 하며 문을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짜이 한잔을 들고 환하게 웃는 주인장이 떡하니 서있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나를 찾아온 손님이 있다고 했다. 누굴까? 이역만리 인도땅 한가운데서 낯선 여행자를 찾아온 손님이라니... 그 손님의 이름은 '가네쉬'. 인도에서 가장 흔한 남자 이름을 가진 눈이 크고 서글서글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반갑게 한국어로 인사를 먼저 건네는 가네쉬. 인상은 ..
인도 우타르 프레타쉬주에 위치한 작은 마을 오르차.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작은 기차역이 마을 어귀에 있지만, 대부분의 여행객은 근처 잔시에서 릭샤를 타고 들어와야 할 만큼 작고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을이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심심치 않게 한국인을 만날 수 있는 곳. 하지만 아직까지도 일반적인 배낭여행 코스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매력이 있는 마을이다. 처음 오르차에 가기로 마음먹은건 델리나 우데뿌르, 아그라 같은 대도시에 질려서였다. 사람들은 득실거리고 릭샤 한번 타려면 입에 침이 마르도록 흥정을 해야하는 탓에 지칠대로 지쳐있었던것 같다. 반면 제썰메르나 푸쉬카르같은 작은 도시들의 여유로움은 같은 길을 몇 번씩 다시 걸어도 좋을만..
어느새 장마철이다. 아프리카에 다녀온게 지난 2월이었으니, 어느새 반년 전 일이 되어버렸다. 정말이지 시간은 야속할정도로 빠르게 흘러가 버린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야심차게 여행기를 블로그와 각종 사이트를 통해서 자유롭게 연재했었고 17부작이라는 나름 스펙터클한(?) 스케일로 무사히 마무리를 지었다. 작년 인도 여행기가 아직도 파테푸르시크리에서 멈춰 지지부진 하고 있는걸 생각하면 이번 아프리카 여행기는 밀도있게 끝맺음을 잘 한것 같다. 여행의 기억이 서서히 흐려져 갈 즈음, M25 에디터로부터 메일에 답장이 왔다. 본래 카타르 항공권을 지원받으면서부터 여행기를 연재하기로 했었는데, 그 일정과 분량이 확정된 것이다. 세렝게티 한 편, 잔지바르 한 편 해서 총 두 편으로 연재되고 각각 2페이지 정도 ..
영하 10도의 강추위가 연일 계속되던 한국의 2월. 두툼한 점퍼와 목도리를 풀어 헤치고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아프리카에서의 여정도 이제 마지막 몇 시간만을 남기고 있다. 아직 비행기 시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지만 천천히 짐을 챙겨 케냐에서 만난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연락처를 교환하며 시간을 보냈다. 갑작스럽게 바뀐 날씨에 적응을 못하고 잠 못 이루던 잔지바르에서의 첫 날 밤, 비포장 도로에서 덜컹거리며 하루종일 버스를 타고 먼지를 뒤집어 쓰던 기억, 난생 처음 맛보는 악어 고기로 배를 두둑히 채웠던 마지막 저녁식사. 처음엔 너무나 불편하고 힘들게만 느껴졌던 모든 일이 어느새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있었다. 공짜 항공권이 아니었다면 애초부터 계획조차 하지 않았을 아프리카 여행이었다. 그래서 ..
'아이 원 잇 썸 스페셜 미트, 라잌 어 사파리 애니멀!' 숙소에 짐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다짜고짜 사파리 동물들을 먹고 싶다는 나를 조금은 이상하게 생각했을까. 여행을 떠나기 전 부터 케냐에 가면 꼭 신기한 고기들을 먹어보겠노라 다짐했던 터라 다른 메뉴들은 눈에 차지도 않는다. 게다가 국경을 넘어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아무것도 못 먹어서 그런지 코끼리 한마리도 통째로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스페셜 미트'를 염소 고기라고 알아 들었는지 자꾸 이상한 레스토랑을 알려주길래, 어제 사파리에서 만났던 동물들 이름을 떠올려가며 다시 천천히 설명을 했다. 코끼리, 타조, 악어, 사자... 나는 이런걸 먹어보고 싶다구! 한참을 더 설명한 끝에 드디어 주인장을 이해 시킬 수 있었다. '카니보..
뜨거운 증기와 강한 압력으로 추출하는 커피, 에스프레소. 사람들이 흔히 즐겨 마시는 커피 베리에이션 대부분의 베이스가 되는 에스프레소는 어쩌면 우리가 아는 커피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인공적인 힘이 아닌 자연의 힘, 중력에 의해 천천히 시간을 두고 내려지는 핸드드립 커피의 그윽하고도 깊은 향은 그래서 더 그립고 아련하다. 세계적인 커피 원두 생산지인 케냐의 원두는 생두의 크기에 따라 AA, A, B로 구분되어진다. 스스로 커피를 즐긴다고 생각은 하지만, 지식도 별로 없고 혀끝은 무뎌져 맛의 차이를 잘 느끼지도 못하는 나. 좋아하는 핸드 드립 커피보다는 인스턴트를 마시는 일이 더 많긴 해도, 언젠가 꼭 한번 'KENYA AA' 원두 커피를 본 고장에서 핸드 드립으로 마셔보고 싶다는 낭만적인 꿈이 있었다. 어..
'만약 천사들이 에덴동산에서 사진 촬영 작업을 하였다면, 그들이 찍은 야생 생물 사진은 오늘날 응고롱고로 분화구에서 찍을 수 있는 사진들과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라인하르트 퀸켈은 자신의 저서에 탄자니아의 응고롱고로 분화구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칼데라 분화구이자 8대 불가사의 중 한 곳인 응고롱고로 분화구. 마사이어로 '큰 구멍'이라는 뜻의 이 거대한 분화구에는 사파리의 빅 5라 불리는 사자, 코끼리, 표범, 코뿔소, 버팔로를 비롯하여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거대한 두 팔을 뻗어 대지를 감싸 안는듯한 모습의 응고롱고로,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을 만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짐을 챙겨 텐트를 나왔다. 간밤에 이슬이 촉촉하게 내려앉은 텐트를 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