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론적으로 건물은 젖지 않았다. 송은문화재단 신사옥의 외벽 재료는 일명 ‘송판 무늬 노출 콘크리트’다. 말 그대로 소나무 판을 덧댄 거푸집으로 콘크리트 구조체를 만들고 이를 그대로 노출시켜 마감했다는 뜻이다. 보통의 노출 콘크리트라고 하면 거푸집 안쪽에 일명 ‘테고(Tego) 합판’이라 불리는 매끈한 코팅면을 붙여 맨질맨질한 표면을 만드는 게 일반적이다. 한국사람들에게도 제법 익숙한 건축가 타다오 안도의 방식이다. 반면 소나무판의 표면을 버너로 그을려 특유의 요철을 극대화하게 되면 마치 야생 동물의 피부나 사람의 지문처럼 거친 무늬가 콘크리트 표면에 그대로 아로새겨진다. 게다가 표면에 덧바른 유성 발수제는 그 음영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발수제'는 시공을 마친 노출 콘크리트 표면에 발라 빗물의 침투와 ..

제가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작년 한 해 브런치에서 20만 뷰를 기록한 ‘젊은 건축가의 출장기’가 샘터사를 통해 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단행본 ‘건축가의 도시(가제)’로 재구성하며 이탈리아 편을 빼고 중국, 미국 편을 추가했습니다. 기존 일본, 브라질, 프랑스 편도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하여 총 38편의 글을 담았습니다. 젊은 건축가의 시선으로 보는 솔직 담백한 건축과 도시에 관한 에세이가 될 예정입니다. 아참, 브런치에서는 공개된 적 없는 50여 장의 핸드 드로잉도 함께 수록됩니다. 작년 12월 출판 계약 이후 원고 준비에 바빠 소식이 조금 늦었습니다. 3월에 최종 원고를 넘기고 지금은 조판 작업이 한창입니다. 이르면 5월 말, 늦어도 6월에는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 미리..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했습니다. 출품작은 브런치북 ‘젊은 건축가의 출장기’입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브런치북으로 이동합니다. 구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좋아요 부탁드려요!브런치북 '젊은 건축가의 출장기' 바로가기이번 출품작은 지난 네 편의 단편 브런치북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은 것입니다. 총 30편의 글을 1부 이탈리아, 2부 일본, 3부 브라질, 4부 프랑스 순서로 묶었습니다. 단편으로 이미 읽으셨던 분들도 긴 호흡으로 다시 만나보실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표지 그림은 예전에 마드리드에서 그려두었던 제 방입니다. 여러 나라 이야기가 함께 묶이다 보니 대표 그림을 선정하기까지 고민을 좀 했습니다. 출장이라는 게 결국 집을 떠나 조그만 호텔방에서 이루어지는 역사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돌로미티에서의 첫 번째 아침이 밝았다. 전날 저녁 늦게 마을에 도착한 탓에 주위를 둘러볼 새도 없이 곧바로 방에 들어와 잠을 청한 뒤였다. 반쯤 열린 발코니창 너머로 불어 들어온 선명한 산내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아직도 잠이 덜 깬 나의 의중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산새들마저 쉴 새 없이 지저귄다. 도저히 일어나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었다. 확실히 도시에서 맞이하던 아침과는 조금 달랐다.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고 문득 생각했다. 호텔 앞을 가로지르는 왕복 2차선 도로는 내 기억이 맞다면 어젯밤 역에서부터 걸었던 그 길이었다. 겨우 차 두대가 아슬아슬 지나갈 정도의 길이 마을의 중심 도로라니. 어쩌면 인구 3천 명 남짓의 이 작은 마을에선 중앙선을 그리는 것조차 사치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화려한 테이프 커팅과 함께 밀라노에서의 나의 공식적인 출장 업무도 모두 종료되었다. 그건 지난 며칠간 내 집 안방처럼 휘젓고 다니던 전시장을 관람객들에게 양보하고 떠나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시원섭섭한 마음도 들었지만 무사히 일을 마쳤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그보다 내 마음은 이미 출장 뒤로 붙여 써둔 일주일간의 여름휴가에 가있었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불과 몇 발자국 만에 '출장'에서 '휴가'로 나의 상태가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맨 처음 생각했던 건 '토스카나 렌터카 여행'이었다. 업무가 끝나는 날짜에 맞춰 여자 친구를 밀라노로 불러 함께 차를 타고 남쪽으로 토스카나의 소도시들을 여행하는 멋진 계획이었다. 하지만 둘이 휴가를 맞추어 쓰는데 실패하는 바람에 이 계획은 수..
나에게 있어 출장지에서의 한 끼 식사란 언제나 ‘주린 배를 채우는 수단’ 이상의 의미였다. 한 그릇의 음식은 낯선 도시를 탐험하는 체력의 원천이자,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위로가 되기도 하며, 새로운 정보와 문화를 습득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먼길을 떠나기 전, 일에 대한 설렘만큼이나 먹게 될 음식에 대한 기대감 또한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을게다. 지치지 않는 체력은 출장에서 최고의 덕목이다. 특히나 지난 밀라노에서 처럼 현장 업무가 수반되는 경우엔 더욱 그랬다. 예정에 없었던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필요한 건 의외로 빠른 판단력보다는 체력이었다. 그러니 출장 중에는 입맛이 없어도 삼시세끼 일부러 잘 챙겨 먹어야만 한다. 잘 먹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 환경에 익숙해지면 일의 능률도..
모든 예술은 대중 앞에 내어짐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화려함의 이면엔 언제나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수많은 스태프들이 있다. 크레딧에 이름 한 줄 나올까 조마조마할지언정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그들의 노고를 어느 누가 하찮다고 여길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언제나 전시장에선 하얀 벽 이전의 모습이 더 궁금하고, 공연장에선 까만 장막 뒤편의 일들에 더 관심이 많은 나였다. God Knows.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와 인터뷰를 위해 뉴욕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그가 들려준 이야기다. '설마 이런 사소한 것까지 누가 알아볼까요?’라는 직원의 우문(愚問)에 거장 건축가는 '신은 알고 계신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서 스태프란 보이지 않는 곳에서조차 작은 것 하나 포기 않고 끝까지 물..
거리에는 아직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오늘은 두 달 전 인천 앞바다에서 배로 부쳐진 전시물품들이 아침 일찍 미술관으로 반입되는 날이다. 대부분이 원목으로 만든 가구인지라 혹여나 작렬하는 적도의 태양 아래 틀어지거나 휘어지진 않았을까 내심 걱정하던 차였다. 아무래도 컨테이너에서 내리는 걸 두 눈으로 직접 봐야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아침 식사도 거른 채 서둘러 호텔 문을 나섰다. 밀라노 도심 서쪽에 위치한 '트리엔날레 지구'는 거대한 녹지대를 중심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한 스포르체스코 성(Castello Sforzesco)과 다양한 미술관 및 박물관이 산재하는 곳이다. 내가 담당하는 전시가 열리게 될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 박물관(Triennale di Milano)'은 그중 단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