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미티에서의 첫 번째 아침이 밝았다. 전날 저녁 늦게 마을에 도착한 탓에 주위를 둘러볼 새도 없이 곧바로 방에 들어와 잠을 청한 뒤였다. 반쯤 열린 발코니창 너머로 불어 들어온 선명한 산내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아직도 잠이 덜 깬 나의 의중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산새들마저 쉴 새 없이 지저귄다. 도저히 일어나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었다. 확실히 도시에서 맞이하던 아침과는 조금 달랐다.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고 문득 생각했다. 호텔 앞을 가로지르는 왕복 2차선 도로는 내 기억이 맞다면 어젯밤 역에서부터 걸었던 그 길이었다. 겨우 차 두대가 아슬아슬 지나갈 정도의 길이 마을의 중심 도로라니. 어쩌면 인구 3천 명 남짓의 이 작은 마을에선 중앙선을 그리는 것조차 사치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나에게 있어 출장지에서의 한 끼 식사란 언제나 ‘주린 배를 채우는 수단’ 이상의 의미였다. 한 그릇의 음식은 낯선 도시를 탐험하는 체력의 원천이자,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위로가 되기도 하며, 새로운 정보와 문화를 습득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먼길을 떠나기 전, 일에 대한 설렘만큼이나 먹게 될 음식에 대한 기대감 또한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을게다. 지치지 않는 체력은 출장에서 최고의 덕목이다. 특히나 지난 밀라노에서 처럼 현장 업무가 수반되는 경우엔 더욱 그랬다. 예정에 없었던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필요한 건 의외로 빠른 판단력보다는 체력이었다. 그러니 출장 중에는 입맛이 없어도 삼시세끼 일부러 잘 챙겨 먹어야만 한다. 잘 먹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 환경에 익숙해지면 일의 능률도..
스페인은 곧 ‘피에스따(fiesta, 파티)’다. 매일 밤 창문을 통해 길거리에 전해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시끌벅적한 분위기, 신나는 음악. 이제는 오히려 길거리가 조용하면 되려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 그만큼 피에스따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문화이자 곧 스페인 사람들의 삶 그 자체다. 교환학생을 오기 전 알고 지내던 서어서문과 친구가 마지막으로 건넨 인사도 그랬었다. ‘잘 다녀 와’가 아닌 ‘피에스따 잘 하고 와’ 피에스따는 보통 밤 10시~11시 사이에 시작된다. 여기엔 별다른 규칙도 없고 정해진 시간도 사실 따로 없다. 그냥 누구 한 명이 자기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면 다같이 모여 새벽 3~4시까지 음식과 술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은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기도 하고 그러면 된다. 그나마 작은..
이 날 레스토랑 보띤(Botín)에서 먹었던 저녁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거다. 물론 맛도 너무 좋았지만 그 보다는 학생 신분으로는 도저히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비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마드리드에서 살면서,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살아가면서 이만큼 비싼 요리를 먹어볼 일이 또 있을까. 아마 없을것 같다. 맛있게 먹고 집에돌아와 물어보니 보띤(Botín)이라는 레스토랑은 생각보다 꽤 유명한 곳이었고, 마드리드를 찾는 사람들에겐 거의 '필수 코스'같은 곳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살짝 소개해본다. 마드리드에서 쓰는 처음이자 마지막 '맛집'포스팅이다. 마드리드의 보띤(Botín)이라는 레스토랑을 처음 알게된건 우연히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김민수 교수님을 통해서였다. 김민수 교수님과는 전에 '디자인과 문화'..
사라고사에서의 마지막날 아침. 거리는 간밤에 내린 비로 촉촉히 젖어 있었다. 이날은 별다른 계획이 없었다. 그냥 점심을 먹기 전까지 가볍게 못가본 여기저기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지난밤 따빠스 투어의 여파로 늦잠을 자는 바람에 11시가 조금 넘어 호스텔을 나왔다. 18유로라는 거금(사실 여행자 숙소치고는 상당히 싼 편이다, 호스텔이니깐)을 줬지만 그만큼 푹 자고나오지 못한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무엇보다도 아침식사 시간을 놓치는 바람에 거리에 나오자 마자부터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일단은 바실리카가 있는 광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바실리카에 아직 못가본 우린이를 따라 한바퀴 휙 둘러보고 나와서 곧바로 맞은편의 Foro로 들어갔다. 어젯밤 호세, 알베르또와 함께 광장을 걸으며 로마 유적인 원형광장을 보고나 F..
호스텔에서 나와 호세(José)를 만나러 가는 길. 둘 다 호세를 못 본지 한 달도 넘게 되어 한껏 들떠 있었다. 잠시 호세라는 친구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마드리드공과대학교(UPM)에서 건축을 공부하는 친구인데 작년에 일 년간 한국의 우리학교로 교환학생을 와 있었던 아이다. 지금은 반대로 나랑 우린이가 마드리드 호세네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상황. 마드리드에서는 우리집이랑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지만 어찌나 바쁜지 생각보다 자주 얼굴을 못보던 차에, 호세의 고향인 사라고사에서 함께 만날 기회가 온 셈이다. 호세랑 만나기로 한 장소는 구시가지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나와서 있는 '아라곤 광장(Plaza Aragon)'이다. 호스텔이 구시가지 북서쪽에 있는 까닭에 아까 걸었던 알폰소 1세 거리,..
사라고사 바이크폴로 대회에서 잠시 빠져나와 에스빠냐 광장(Plaza España)로 향했다. 어느덧 시간은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무렵. 미리 사라고사에 도착해있던 우린이와 형윤이를 만나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도 한 장 없이 처음 와보는 도시에서 길을 찾아가려니 막상 조금 겁이 났다. 하지만 사라고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작고 아담한 도시였다. 한 두어번 물어 방향을 잡자 금새 에스빠냐 광장에 도착했다. 에스빠냐 광장은 사라고사 구시가지 남쪽에서 가장 번화한 곳. 하지만 내가 찾아갔을땐 트램 공사때문에 거리가 상당히 복잡했다. Alberto와 Jose에게 나중에 들은 얘기를 종합해보면(정확히 어디까지 맞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원래 사라고사에 있던 트램을 확장, 보수 ..
지난 10월 23일은 나의 스물 세 번째 생일이자 한국이 아닌 타지에서 맞게된 첫 생일이기도 했다. 한국에 있을때는 생일이라는게 그저 일년에 한번 으레 있는 그런 날이었지만, 막상 집이 아닌 머나먼 타국에서 생일을 맞게되니 기분이 좀 묘했다. 많은 친구들이 생일을 축하해주러 집까지 찾아왔고, 그리 큰 파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맛있는 음식과 함께 나름 근사한 시간을 보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지만 그 날의 즐거웠던 기억을 블로그를 통해 다시한번 추억하려 한다. 아울러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아참, 그러고보니 우리집에 사는 일곱 명의 친구들의 생일은 기가 막히게 매 달 적어도 한 번씩 골고루 나눠져 있다. Florent가 10월 17일로 제일 먼저 생일을 맞았고, 10월 23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