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전거로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기라도 했던걸까.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신 덕에 10시가 다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아침 식사용으로 빵과 토스트를 준비해 놓았지만 쓰린 속에 그런 밀가루 음식이 들어갈리가 만무했다. 배를 움켜잡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마침 아침 식사를 하시던 형님 한분이 고맙게도 손수 끓인 김치찌개를 같이 먹자며 권하셨다! 염치 불구하긴 해도 고마운 마음으로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무사히 출발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마라도를 지나 산방산까지. 어제 정도 거리만 타면 쉽게 모슬포항까지 도착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어째 저녁이 될 때 까지 술이 깨지 않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어제의 즐거웠던 ..
자전거는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교통수단이다. 발끝에 힘을 주어 페달을 한 바퀴 돌리면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만 앞으로 굴러가고,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슬슬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하면 바퀴도 덩달아 느리게 굴러간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끼리 흔히 우스갯소리로 사람을 엔진에 비유하곤 한다. 즉, 아무리 비싼 자전거를 탄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건 결국 페달을 돌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마치 자전거와 사람은 단순히 주인과 탈것의 관계가 아닌 함께 호흡을 맞추며 힘을 합하여 달리는 한 몸과 같은 존재라는 말처럼 들린다. 함께 호흡하고 교감할 수 있기에 먼 출퇴근길을 혼자 달려도 심심하지가 않다. 나는 이제 막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한 그야말로 초보 라이더다. 어쩐지 다리에 쥐가 나도록 페달을 ..
제주도는 길이 참 좋아서 자전거 타는 '맛'이 나는 섬이다. 조금이라도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겠지만, 노면 상태에 따라서 자전거가 나가는 느낌이 다르기도 하고 속도계 수치상으로도 그 차이가 확연하다. 하지만 자전거 타는 재미 말고 또 제주도 여행의 매력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게스트 하우스 투어.' 흔히 게스트 하우스라고 하면 외국 여행을 가서 사용하는 숙소 쯤으로 알고 있지만, 제주도에는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가 일주 도로를 따라 섬 여기저기에 자리잡고 있다. 첫날 숙소로 우리가 선택한 곳은 협재/금능에 위치한 '마레 게스트 하우스'다. 1132 일주도로를 타고 가다가 한림공원쪽 해안도로로 빠지면 한림공원을 지나 1km 못미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사실 제주도 ..
아침 7시 20분 비행기는 나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만 되면 뭔가 마무리할 일이 한꺼번에 생각나는 몹쓸 버릇 덕분에, 간밤에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6시가 다 되어서야 눈을 뜨고, 허겁지겁 짐을 챙겨 자전거를 어깨에 들쳐 엎고는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집에서 공항이 가까워 아침에 살짝 타고 가볼까 생각도 했었는데 역시나 무리였다. 아침에 빨래가 다 마르질 않아 인상을 찌푸리며 집을 나와버렸다. 멀리는 아니어도 집을 떠나는 마당에 부모님에 찡그린 얼굴을 보여드린게 못내 마음에 걸리더라.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어느새 공항에 도착했다. 여행이라는게, 꼭 멀리가지 않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요상하게 뒤흔드는 힘이 있는걸까... 제주로 가는 항공편은 종류가 꽤 많은 편이지만, 우리는 무난하..
드디어 내일이면 제주도로 떠난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여행을 다니며 늘 꿈꿔왔던 바로 그것. 드디어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을 앞두고 있다. 준비는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이다. 짐을 챙기고 지도를 보고 있으면 벌써 여행을 하고있는 듯한 행복한 기분이 든다. 스트라이다로 제주도를 여행하겠다고 하니, 물어보는 사람마다 다들 결사 반대다. 물론, 스트라이다가 장거리 여행하기에는 다소 불편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있지만, 시도해보지도 않고 그렇게 단정짓는 사람들의 태도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내가 꼭 완주해 보여주겠노라 오기 마저 생긴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준비를 하는 손길이 더욱 분주해진다. STEP 1 전조등과 후미등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차량'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도로위에서는 약자일 수 밖..
멀게만 느껴졌던 제주도 일주가 어느새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더운 날씨와 바쁜 일정 때문에 잠시 자전거 출퇴근을 안했었는데, 그새 몸이 찌뿌둥해진게 느껴져서 큰일이다. 주말을 맞아 마지막 점검도 할겸 가벼운 라이딩에 나섰다. 평상시에는 티티카카 스피더스를 타고 다니지만 제주도 일주는 스트라이다와 함께할 예정이기 때문에, 안장도 다시 조정해야 하고 이런저런 체크할 사항들이 꽤 많다. 오늘의 목적지는 행주산성 국수집. 일명 자전거 라이더들의 성지(?)라고 불리는 곳이다. 지난번에는 차를 타고 한 번 갔었는데 생각보다 맛있는 국수맛에 먼저 놀라고, 가게 앞을 가득 메운 자전거들에 또 한번 놀랐었다. 함께 제주도를 여행할 친구와 함께 한강대교에서 만나 국수집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제주도로 떠나기 전 마지막 모의..
스트라이다를 처음 들일때만 해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냥 주말에 잠깐 한강이나 나가보고, 심심하면 동네 마실용으로 타고 다니면 되겠지 했는데 어느새 본격적인 자출족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덕분에 아침 저녁으로 운동하며 살이 쪽쪽 빠지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자전거 출퇴근이라는게 묘한 매력이 있어서, 일단 한번 해보고 나면 쉽게 멈출수가 없다. 꽤 장거리 출퇴근이지만 스트라이다를 탈때도 페달만 열심히 밟으면 다닐만 했었다. 하지만 결국 본격적인 자출을 위해서 '티티카카 스피더스'로의 기변을 선택했다. 마침 그날 2010년식 새 모델이 출시되는 바람에 뒤도 안돌아보고 질렀다. 고민도 참 많이 했고, 바닥을 보이는 통장 잔고가 못내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었..
한강은 정말 넓고, 또 길다. 남한강과 북한강 까지 합치면 한강 수계는 전 국토의 거의 절반에 이를 만큼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이렇게 큰 강을 끼고있는 아름다운 도시 서울. 그래서 나는 언제나 외국 친구들에게 서울을 설명할때 제일 먼저 한강을 이야기하곤 한다. 파리의 세느강도, 런던의 템즈강도 부러울거 하나 없다! 도심에 이렇게 큰 강이 흐르는 메트로 시티는 전 세계에 서울뿐이야! 하고 말이다. 전에도 여러번 이야기 했었지만 한강은 유량의 변화가 급격하여 '고수부지'라는 어쩔 수 없는 지형을 만들어 내게 된다.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물속으로 잠겨 버리는 비운의 땅이지만, 요즘 같은 날씨에는 잘 닦인 자전거 도로를 따라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홍수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지하철 5호선에 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