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나는 가장이 되었다. 이제는 늘 두 사람이 함께니 무엇을 하더라도 혼자일 때 보단 어렵고 힘이 든다. 하물며 여행도 마찬가지다. 철없던 연애시절엔 하룻밤에 5유로짜리 호스텔에도 곧잘 묵곤 했었다. 하지만 일 년에 단 한번 부부가 함께하는 여름휴가에 그런 숙소를 택할 수는 없는 법이다. 미리부터 세워보는 휴가 계획에는 비행기 값도 두 배, 식비도 두 배, 숙박비는 두배 플러스 알파로 계산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회사의 공식 여름휴가 기간은 주말을 합쳐도 단 6일이 전부였다. 제아무리 머리를 굴려본들 우리 부부의 이번 휴가지는 멀리 가도 동남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난 올해 여름 꼭 '라 투레트'에 가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말이야 쉽지만 프랑스까지 가려면..
이번이 일본으로의 세 번째 출장이다. 지난 2013년, 난생 처음으로 대형 쇼핑몰 설계를 맡게 되어 롯본기 힐즈나 미드타운 따위의 사례답사 차 도쿄에 왔었고 2015년에는 또한 처음으로 기념관 설계를 맡아 부산에서부터 배를 타고 후쿠오카로 들어와 기타큐슈, 야마구치, 히로시마를 돌며 여러 기념관 들을 돌아봤었다. 이번 출장의 목적은 도쿄 남부의 시나가와구에 위치한 하라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참가작품을 설치하는 일이다. 모형과 영상, 벽면 패널이 설계한 대로 잘 설치되는지 감독하고 오프닝과 큐레이터토크 까지 보고 오면 나의 임무는 완수다. 오후 비행기라 아침에 캐리어를 끌고 출근했다가 회사차를 얻어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어차피 동행없이 가는 길이라 공항버스를 타고 가도 그만이지만 미술관까지 가져가야하는 모..
아빌라(Ávila)를 출발한 기차는 다시 고원을 가로질러 살라망까(Salamanca)에 도착했다. 마드리드로부터 약 220km, 기차로 세 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다. 이곳은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와 같은 '대학도시'다. 1218년에 설립된 살라망까 대학은 중세 유럽의 지성을 이끄는 한 축이 되었고, 15세기 말에는 스페인 예술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지성의 숨결은 오늘날까지도 도시 구석구석에 깃들어 살라망까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살라망까는 스페인 전역에서 까스떼야노(Castellano-스페인 중부 까스띠야지방의 언어, 현대 스페인어의 기원이다.)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스페인을 찾는 사람들에겐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보다 더 친숙한..
따끈한 탕속에 누워 큰 기지개로 아침을 맞았다. 전날의 피로는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평소 같으면 느즈막히 일어나 출발했을 우리지만 오늘 만큼은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기로 마음이 통했다. 내가 지난 1년간 Y와 자전거로 전국을 누비며 전수해준 몇 가지가 있는데 온천욕도 그중 한가지다. 발을 담가봤을때 몇 초 못견딜 정도로 뜨거운 온도여야만 근육이 풀리는 효과가 있다. 확실히 수안보 이후 Y는 온천욕 맹신자가 되었다. 친구는 이렇게 닮아가는 것 같다. 아침부터 열심히 씻었더니 배가 고프다. 숙소 밖으로 나와 여기저기 기웃거려보는데 식당이 눈에 띄질 않는다. 분명 어젯밤만 해도 보였던것 같은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근처 시장까지 한바퀴 슥 둘러보았지만 김밥집 하나 보이질 않는다. 그냥 짐을 다 챙겨나와..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자락 옥녀봉에서부터 흐르기 시작한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을 굽이치며 지나 지리산을 휘감아돌아 마침내 광양만에 이르러 남해바다와 한 몸이 된다. 한국에는 섬진강을 노래하는 시인들이 참 많다. 산이 많아 동서남북으로 흐르는 강줄기도 참 많은 우리나라지만 섬진강 만큼은 어딘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한 달 전부터 휴가를 미리 써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꼭 4월의 아름다운 어느날에 섬진강을 내달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주말, 하늘이 내려준 축복과도 같은 날씨 속에 꼭 꿈을 꾸는 듯한 이틀간의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 최고의 자전거길은 무조건 섬진강이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섬진강을 달린다는건 그야말로 하늘이 주신 선물이다. 섬진..
까스띠야 이 레온(Castilla y León)은 바야돌리드를 중심으로 마드리드 서북쪽 지역을 넓게 아우르는 행정구역이다. 넓고 평탄한 고원지대와 건조한 기후는 스페인 내륙지방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덕분에 까스띠야 이 레온은 이러한 환경에 아주 잘 맞는 '하몬(jamón)'과 '와인'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하몬은 돼지 뒷다리를 통째로 소금에 절여 수 개월 이상 건조시킨 스페인의 전통 음식이다. 상온에서 매달아두고 보관하기 때문에 건조한 날씨는 필수다. 우리나라처럼 습도가 높은 곳에선 수입해오는 것 조차 쉽지가 않은 음식이다. 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 역시 건조한 날씨와 물이 잘 빠지는 마른 토양에서 잘 자란다. 그야말로 스페인의 정체성과도 같은 하몬과 와인이 바로 이 지역의 자연적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 ..
포트와인(Vinho do Porto, Port Wine)은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와인이다. 주요 생산지는 포르투갈 북부의 도우루 강 계곡이며, 중세 시대 포르투갈 제 2의 항구인 포르투(Porto)에서 영국으로 대량 수출되기 시작하며 '포트(Port, 항구) 와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대항해시대에 포르투갈은 포트와인 수출을 통해 막강한 부와 힘을 축적했다. 그리고 그 명맥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늘날에도 전세계의 수많은 관광객들이 포트와인의 매력을 찾아 포르투를 방문한다. 와인에 그리 조예가 깊지 않은 우리 둘이지만, 오늘 만큼은 그 매력에 흠뻑 매료되고픈 마음이다. 포르투의 아침이 밝았다. 도우루 강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차갑지만 사람들은 분주하게 저마다의 일상을 시작한다. 모두들 일터를..
포르투(Porto)는 포르투갈 북부의 항구도시다. 리스본 다음가는 제 2의 도시지만 어쩐지 한국 웹상에서는 포르투보다 FC포르투가 상위에 검색된다. 실제로 인구는 약 24만명 정도로 대한민국 수도권 인구밀도와 규모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제 2의 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들릴 정도의 규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르투는 과거 대항해 시대를 이끌었던 무역의 중심지이자 포르투갈의 기원이 된 역사적인 도시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세계 각국의 수 많은 여행자들이 이 곳을 찾고있다. 비몽사몽 아픈몸을 이끌고 간밤에 리스본에서 포르투까지 힘겨운 여정이었다. 미리 앱으로 검색해놓은 값싼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왔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문은 닫혀있었고 얼떨결에 같은 주인이 운영하는 싸구려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