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도 희뿌연 연무(煙霧) 뿐이었다. 온데 사방이 구름으로 둘러싸인 누볼라우 산장의 아침 풍경은 마치 내가 하늘 위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이탈리아어로 구름(Nuvolau)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따뜻한 물은커녕 샤워실도 변변히 없고, 전기 콘센트라도 한번 쓸라치면 줄을 서야 하는 불편한 곳이지만 지난밤 이곳에서 나는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라(Mara)와 소피아(Sofia)와 헤어진 뒤, 이 산장에서 같은 방을 쓰게 된 호주인 부부와 친해진 까닭이었다. 선생님으로 일하며 방학 때마다 전 세계를 함께 여행한다는 둘은 저녁식사 내내 나와 함께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언젠가 호주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또 연락처..
내 여행의 출발은 늘 혼자였다. 누군가 함께하지 않으면 금세 외로워질게 뻔함에도 마음 내키는 대로 어디든, 언제든 훌쩍 떠나버리는 나였다. 하지만 공항에서, 기차역에서, 숙소에서, 혹은 레스토랑에서 나는 늘 사람들을 만났고, 어울렸고, 함께했다. 그러다 마음이 맞는 친구를 사귀면 하루, 혹은 일주일, 때로는 한 달 가까이 함께 여행하기도 했다. 여행이란 목적지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이르는 과정에 더 가깝다. 길 위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고, 사람이 있는 곳에는 사연이 있다. 그 사연들이 차곡차곡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야 말로 곧 여행의 본질이 아닐까 종종 생각하곤 했었다. 라가주오이 산장(Rifugio Lagazuoi)에서 묵기로 한 날, 나는 네 명의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다. 이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