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부터 지구 정반대 편 브라질까지 가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미국을 경유하거나, 유럽 주요 도시를 경유하거나, 중동을 경유하는 방법. 지난 2016년에 유일한 직항 편이 폐지된 이후론 환승 편을 이용하는 방법만 남아있다. 그중, 미국을 경유하는 방법은 거리는 짧아도 ESTA를 발급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유럽 주요 도시를 거치는 방법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다. 아부다비의 에티하드 항공, 도하의 카타르 항공, 또는 두바이의 에미레이트 항공을 이용하는 방법이 가장 무난한 선택이다. 그렇게 브라질 상파울루로의 출장이 확정되었다. 오고 가는데만 꼬박 사흘은 잡아야 하니 일정을 계획하는 것도, 여비를 예상하는 것도 이래저래 다른 출장 때보다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것 같다. 게다가 난생처음으로..
나에게 하루 반나절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쌀쌀했던 4월의 도쿄 날씨는 자꾸만 몸을 웅크리게 만들었다. 출장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자유시간이다. 일정과 일정 사이에 생기는 자투리들을 잘 모으면 나름의 짧은 답사를 다녀오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본연의 업무에는 지장이 없는 선에서 말이다. 다만 그런 시간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뭔가를 미리 계획 한다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저 마음속에 미리 후보지를 두어 군데 점 찍어 두는 정도라면 모를까. 이날은 오전 4시에 미술관에서 열리는 컨퍼런스 참석을 제외하고는 오전 내내 일정이 비었다. 전시와 관련해 갑작스러운 돌발상황이 생길 것을 대비해 여유삼아 남겨놓은 시간이었는데 다행히도 일이 잘 끝나 남는 ..
하라미술관에서의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 서둘러 시나가와를 빠져 나왔다. 내가 담당하는 다른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스카이트리 답사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는 전시 관련 일정만으로 잡힌 출장이었지만, 내가 도쿄에 있는 시간에 맞추어 스카이트리 답사 일정이 추가된 것이다. 특히나 이날은 두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4박5일 일정 중 가장 정신없이 뛰어다닌 날로 기억된다. 도쿄 스카이트리는 지난 2012년 완공된 높이 634m 짜리 거대한 방송탑이다. 스카이트리가 개장하기 전까지 일본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던 도쿄타워가 333m이니 무려 300m나 더 높은 셈이다. 도쿄타워와 동일하게 방송전파 송출용으로 세워져 실제로도 도쿄타워가 감당하지 못하는 음영지역에 전파를 송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외로운 출장지에서의 한줄기 희망과도 같은 저녁 약속이 생겼다.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까지 내리 동창인 친구와 신주쿠에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그녀는 꽤 오래 다녔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지금은 도쿄에서 의상디자인을 공부하는 중이다. 한국에서부터 출발 전부터 약속해놓은 일정이었지만 미술관에서의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몰라 확답을 못하던 차였다. 다행히 실력 좋은 설치 엔지니어들을 만난 덕분에 무사히 일을 마치고 예정대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도리어 약속시간 까지 여유가 조금 생겨버린 상황.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시부야부터 신주쿠까지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하라미술관에서 제일 가까운 역인 기타시나가와에서 시나가와까지 한 정거장, 다시 JR 야마노테선으로 갈아타 다섯 정거장만 더 가면 시부야 ..
다행히도 간밤에 모형에는 별 일 없었다. 나 역시 그 옆에서 곤히 단잠을 잤다. 오늘의 첫 일정은 미술관으로 모형을 운반하는 것인데 개관 시간이 열시인 관계로 아침에 여유가 조금 생겼다. 졸린 눈을 비비고 내려와 호텔 식당으로 향했다. 앙증맞은 모양은 물론 색깔마저 아기자기한 일본식 조식을 한 접시 가득 담았다. 미소장국과 밥을 기본으로 우메보시(매실 장아찌), 츠케모노(절인 채소)까지 곁들인 전형적인 일본 가정식이다. 아무래도 일본 회사원들이 출장으로 많이 오는 비지니스 호텔이다 보니 아메리칸 식 보다는 일본식을 택해 타지에서도 '집밥' 느낌으로 편안하게 해주려는 배려 같았다. 물론 나 같은 외국인 손님게에 있어서 만큼은 일본으로 온 출장의 기분을 한껏 더 살려주는 좋은 한 끼 였지만 말이다. 가볍게 ..
이번이 일본으로의 세 번째 출장이다. 지난 2013년, 난생 처음으로 대형 쇼핑몰 설계를 맡게 되어 롯본기 힐즈나 미드타운 따위의 사례답사 차 도쿄에 왔었고 2015년에는 또한 처음으로 기념관 설계를 맡아 부산에서부터 배를 타고 후쿠오카로 들어와 기타큐슈, 야마구치, 히로시마를 돌며 여러 기념관 들을 돌아봤었다. 이번 출장의 목적은 도쿄 남부의 시나가와구에 위치한 하라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참가작품을 설치하는 일이다. 모형과 영상, 벽면 패널이 설계한 대로 잘 설치되는지 감독하고 오프닝과 큐레이터토크 까지 보고 오면 나의 임무는 완수다. 오후 비행기라 아침에 캐리어를 끌고 출근했다가 회사차를 얻어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어차피 동행없이 가는 길이라 공항버스를 타고 가도 그만이지만 미술관까지 가져가야하는 모..
아빌라(Ávila)를 출발한 기차는 다시 고원을 가로질러 살라망까(Salamanca)에 도착했다. 마드리드로부터 약 220km, 기차로 세 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다. 이곳은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와 같은 '대학도시'다. 1218년에 설립된 살라망까 대학은 중세 유럽의 지성을 이끄는 한 축이 되었고, 15세기 말에는 스페인 예술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지성의 숨결은 오늘날까지도 도시 구석구석에 깃들어 살라망까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살라망까는 스페인 전역에서 까스떼야노(Castellano-스페인 중부 까스띠야지방의 언어, 현대 스페인어의 기원이다.)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스페인을 찾는 사람들에겐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보다 더 친숙한..
까스띠야 이 레온(Castilla y León)은 바야돌리드를 중심으로 마드리드 서북쪽 지역을 넓게 아우르는 행정구역이다. 넓고 평탄한 고원지대와 건조한 기후는 스페인 내륙지방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덕분에 까스띠야 이 레온은 이러한 환경에 아주 잘 맞는 '하몬(jamón)'과 '와인'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하몬은 돼지 뒷다리를 통째로 소금에 절여 수 개월 이상 건조시킨 스페인의 전통 음식이다. 상온에서 매달아두고 보관하기 때문에 건조한 날씨는 필수다. 우리나라처럼 습도가 높은 곳에선 수입해오는 것 조차 쉽지가 않은 음식이다. 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 역시 건조한 날씨와 물이 잘 빠지는 마른 토양에서 잘 자란다. 그야말로 스페인의 정체성과도 같은 하몬과 와인이 바로 이 지역의 자연적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