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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 해안 일주도로에서 살짝 빠져나와 드라이브를 계속하면 이내 '물건항'에 이르게 된다.

 시원스레 하늘을 향해 열린 바다의 모습과, 작고 아담한 두 개의 등대가 인상적인 물건항. 평범한 마을이겠거니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자니 어딘가 이국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남해에만 있는 특별한 관광지, 여기가 바로 '남해 독일 마을'이다. 

 붉은색 지붕과 새하얀 벽, 나무 창틀이 인상적인 이 곳의 집들은, 하나 같이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양새를 하고있었다. 
어떤 사연이 있길래 이런 특별한 마을이 생기게 된걸까.

멀리 남쪽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독일 마을의 전경

 
 처음에는 조금 이상했다.
 오래된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어촌마을 가운데 이런 풍경을 보고있으니 어째 쌩뚱맞기도 하고, 인공적으로 만든 이국적인 마을을 관광지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의 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어느정도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까지 해서 관광객을 모으려 하는 관청의 얄팍한 상술도 참 너무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잠시동안의 이런 철없는 나의 생각과는 달리, 남해 독일마을은 큰 의미가 담긴 마을이었다.
 

멀리 천연기념물 150호 '물건 방조어부림'도 보인다


 이 마을에 '진짜' 독일인이 사는건 아니다. 물론 외국인들도 일부 살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재독교포 1세대 들이다.
 교포 2세도 아닌 1세대라니 조금 의아했다. 어떤 이유에서 이들은 진짜 독일에서 한국의 독일마을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일까.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시절, 경제부흥을 위해 돈이 필요했던 우리나라는 독일로 광부와 간호사들을 대거 파견했다. 맨몸으로 타국땅을 밟아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살아갔던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이야기이다. 저마다 한가득 꿈을 품고 떠났을 이들은 독일에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그들의 아름다운 희생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큰 힘이 되었다.

 현재 재독 교포는 약 3만여명 정도라고 한다. 젊은날 고향을 떠나 한평생을 타국에서 보내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을 그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마을이 바로 이곳 '독일 마을'이다.  

독일 마을은 40가구가 채 안되는 작고 아담한 곳이다


 창문을 열면 남해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그림같은 집은, 다시 한국을 찾은 교포들에게 주는 소중한 선물인 셈이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독일식 주택이 일상이겠지만 관광객들에게는 눈이 즐거운 또하나의 볼거리가 되었으니 이 또한 참 보기좋은 모습이 아닐까. 집주인이 독일에 가있는 동안은 민박이나 홈스테이로 관광객들을 맞이하기도 한다.
 
 또한 독일마을은 드라마 '환상의 커플'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드라마는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눈에 익은 한국의 자연 풍경속에 어우러진 이국적인 집들이 시청자들의 눈에 신기하게, 또는 아름답게 보여지지 않았을까. 생각보다 드라마를 보고 이곳을 찾아오는 연인들이 꽤 많았다.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테라스도 군데군데 보인다


현관을 장식한 이국적인 철제 장식물


 독일 마을이 만들어지게 된 깊은 사연을 알고나니 또 다르게 보인다.
 
 건물의 '표정'은 외관에서 나온다. 그중에서도 특히 건물의 외부 마감재료의 재질이나 디테일은, 크게 인식하진 못하더라도 실제로 건물의 '표정'을 만들어내는데에 중요한 인지요소로 작용한다. 한국의 건물들이 대부분 비슷비슷해 보이는건 대부분이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많이 쓰는 재료들을 똑같이 사용하기 때문기도 하다. 외국에 나가보면 평범한 성냥갑 모양의 빌딩도 왠지모르게 달라보이는건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독일 마을의 대부분은 독일산 자재를 직접 공수해와서 독일인 건축가가 설계하고 지은 집들이라고 한다. 물론, 건물의 외관이 우리나라에선 흔히 볼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건축 자재의 원산지까지 꼼꼼하게 신경써서, 독일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노력이 깃든 독일 마을의 집들은, 어설프게 모양만 흉내낸 집들과는 뭔가 달라보인다.
 독일식으로 새롭게 지은 집들이지만, 한국인의 꼼꼼한 면모가 엿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한국에선 흔한 전형적인 마을 입구의 표지석


 작은 부분까지 하나하나 독일의 모습을 재현한 독일 마을이지만, 그래도 한국은 한국인가보다.
 마을 입구의 표지석에 큼지만 궁서체 글씨는 너무나 한국적이다! 얼굴에 웃음이 살짝 번진다.

 그 옆으로 나란히 나부끼는 태극기와 독일 국기는 왠지 정겹기까지 하다.

남해를 배경으로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경남 남해 독일마을에는, 
진짜 독일에는 없는 독일스러운 풍경이 가득하다.
 우리가 흔히 독일이라고 알고있는 바이애른주 같은 곳은 사실 바다가 없다. 그나마 바다를 면한 니더작센 주 같은 곳은 북해를 바라보고 있기때문에 우리나라의 남해 바다와는 아마도 많이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이곳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를 모르고 찾아온 관광객들은 겉모습만 대충 훑어보다가 실망하고 돌아가기 쉽다. 하지만 재독 교포들의 희생과 다시 찾아온 그들이 선물로 받은 남해의 아름다운 자연, 마을 구석구석 담겨있는 이런 이야기를 이해한다면 이처럼 진솔한 관광지도 또 없지 않을까. 다만, 최근들어 유명세를 탄 독일마을이 관광지로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처음 마을이 만들어 질때와 조금은 다른 의도로 마을을 상업화 하려는 움직임들이 조금씩 일고있다. 관광객도 좋고, 볼거리도 좋지만 그래도 독일 마을의 주인은 이곳에 '살고있는' 재독 교포들이다. 부디 모두가 잊지 않고 기억해주었으면.

 마을이 만들어진 이유가 그랬던 것 처럼, 이제는 우리가 다시 베풀어 주어야 할 차례이다. 무턱대고 사진기를 들이밀기 전에, 이곳은 세트장이 아니라 정말 사람들이 살고있는 한 마을이라는점을 잊지말고 배려한다면, 오늘 저녁 바다를 바라보며 독일 맥주와 함께하는 바베큐 파티에 당신을 초대할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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