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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이 많아 다도해라 불리는 남쪽 바다.
 푸른 바다위에 펼쳐지는 크고 작은 섬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 정말 아름다운 곳. 하지만 늘 사진으로 볼수 밖에 없었기에 아쉬웠던 곳이다. 서울에서만 살아 남해바다는 구경도 못해봤던 '서울촌놈'인 내가 인터넷에서 사진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 섬이 있었으니, 바로 '소매물도'다. 경상남도 통영시에 속해있는 소매물도는 사는 사람이 40명 정도뿐인 정말 작은 섬이다.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섬이기도 하다.
 여행계획을 짜면서, 무슨일이 있어도 소매물도만큼은 꼭 보고오리라 다짐했었는데, 출발하기 전 일기예보를 보면서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배를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곳인 만큼 날씨가 흐리거나 파도가 높으면 안되기도 했지만, 힘들게 찾아간 섬에서 구름만 잔뜩 낀 뿌연 경치만 보고오는 헛걸음을 하게 될까봐 불안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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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마자 한눈에 홀딱 반해버린 소매물도 사진 (사진출처 : 네이버 포토갤러리 ddubung님)


 소매물도로 가는 배는 거제도와 통영항에서 탈 수 있다.
 통영에서 하루를 묵었던 우리는 '통영항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기로 했다.
 부디 사진에서 본것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객터미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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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물도로 가는 배를 타기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오전에 '동피랑 마을'에 들렀다가 충무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1시가 되어서야 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때까지도 하늘은 개일듯말듯 여전히 뿌연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소매물도까지 가는 뱃삯은 14300원.
 매표소에 가서 표를 끊으려 배 시간을 물어보는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소매물도를 돌아보는데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을 들었었기에 당일치기로 들어갔다가 바로 나올 생각이었는데
지금시간에 배가 들어가면 하룻밤을 소매물도에서 자고 다음날 배로 돌아와야 한단다.

 졸지에 소매물도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 우리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역시 가장큰 문제는 날씨. 만약 하늘이 내일까지 계속 지금처럼 흐리다면 소매물도에 하루를 통째로 투자하기는 어딘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사진으로 봤던것과 달리 그저그런 곳이라면 또 얼마나 실망스러울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마지막 배시간이 점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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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물도로 출발!


 결국 우리의 선택은 '그래도 소매물도'였다.
 다음날 통영날씨는 더 안좋아진다는 기상청 예보가 있었던 터라 오늘 소매물도를 못본다면 이번여행에서 영영 놓치게 되버릴게 분명했기에 도박을 한 셈이다.

 소매물도로 가는 '뉴매물도페리'에는 생각보다 관광객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다들 지금 시간에 배를 타고있는걸 보니 하룻밤 소매물도에서 보낼 생각을 하는 사람들인것 같다. 아마 이사람들도 우리처럼 고민했을지 모른다.

 좁은 객실에 멍하니 앉아있기 보다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기 위해 갑판으로 나와 섰다.
 저멀리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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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멀어져가는 통영항


 통영항은 점점 멀어져 가고, 우리는 마치 돌이킬 수 없는 비장한 결심을 한 사람들 마냥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른사람들이 보면 별것도 아닌일에 너무 심각한 고민을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나는 소매물도의 모습을 내눈으로 꼭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자칫잘못하면 함께 여행하는 친구들도 나도 기분만 상하고 시간을 허비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 그저 묵묵히 흐린 하늘만 바라보고 선채로 흔들거리는 배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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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 지나가는 이런 풍경들


 우리가 탄 배는 소매물도로 향하는 길에 있는 비진도, 대매물도 같은 다른 섬들을 경유해서 간다. 통영항에서 소매물도까지 직선거리는 28km정도지만 실제로는 한시간 반정도가 소요된다.

 통영을 출발하자마자 순식간에 첫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순식간에 배가 선착장에 묶이고 분주히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긴다. 5분도 안되어 배는 곧바로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다.

 배를 이용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바뽀레또(수상택시)'를 타며 보았던 풍경과 많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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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섬 주민들


 우리와 같은 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은 관광객이 반, 섬 주민들이 반 이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소매물도'를 찾는 사람들이고, 일부는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비진도'를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섬 주민들은 목적지에 가까워지면 금새 알아차리고선 내리는 쪽으로 짐을 들고 나온다. 따로 안내방송 같은게 없기 때문에 나같은 관광객들은 주위 사람들한테 배가 설때마다 일일히 물어봐야 정류장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사진을 여러장 찍었지만 어디가 어디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름이라도 좀 써둘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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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등대, 흰등대... 작은 항구의 풍경


 배가 잠시 서기위해 마을 어귀 작은 항구에 설때마다 조그만 등대들이 눈에 띈다.
 항구 앞쪽 방파제에는 보통 두개의 등대가 서있기 마련인데, 빨간색과 흰색 두가지로 칠해져 있다.

 빨간색과 흰색은 왼쪽과 오른쪽을 구분하여 배가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란다.

○ 우현표지(右舷標識) : 바다에서 항구 방면으로 볼땐 항로의 오른쪽에 설치되어 선박이 표지의 왼쪽으로 항해할 수 있음을 표시하는 항로표지. (즉 붉은 색 외관의 등대)
○ 좌현표지(左舷標識) : 항로의 왼쪽에 설치되어 선박이 표지의 오른쪽으로 항해할 수 있음을 표시하는 항로 표지. (즉 백색외관의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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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을 까맣게 태웠던 그날의 하늘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말 배타고 가는 내내 하늘색깔은 이랬다.
 주위 섬들조차 뚜렷이 안보일정도로 뿌연 안개와, 해를 숨겨버린 야속한 하늘때문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소매물도에 도착했는데 비가오는 바람에 배가 뜨지 못해서 섬에 갇혀버리는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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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드디어 구름이 조금 걷혔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래서 였을까.
 중간 정도 왔을때부터 서서히 햇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아직까지는 겨우 살짝 해가 고개를 내민정도였지만 도착할때쯤엔 하늘이 완전히 맑아질거라 믿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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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판에서 만난 귀여운 꼬마아이들


 날씨가 흐려서 주위로 보이는 풍경은 그다지 찍을게 없었다. 애꿎은 카메라를 계속 만지작 거리며 심심해하고 있던 찰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객실로 들어가버려 텅 빈 갑판에서 놀고있는 꼬마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어딜가도 아이들 사진찍어주길 좋아하기에 몰래 뒤에가서 노는 모습을 찍어주려하는데, 갑자기 카메라를 든 나를 발견하더니 질색을 하며 도망을 간다.

 '사진찍지 마세요~'
 '카메라 치우라구요~'


 초상권을 아는걸까^^; 사투리 심한 말투로 연신 저 말만 되풀이하며 도망다닌다.
 나는 그냥 귀여워서 사진한장 찍어주려는 거라며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 보았지만 막무가내다. 멀리서 그냥 셔터한번 눌렀을 뿐인데 나에게 와서는 화를내며 발길질까지 해댄다. 왜그러는건지 영문도 모르고 그저 나는 아쉬워하며 아이들의 투정을 온몸으로 웃으며 받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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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카메라 앞에서 포즈도 취해준다


 그러는것도 잠시. 카메라를 피해 도망다니는데 지쳤는지 어느새 '오빠야~'하고 날 부르며 내곁으로 온다.
 섬에 사는 아이들인것 같아 보였는데 물어보니 역시나 대매물도 당금마을에 산단다. 책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을 봐서는 학교나 학원을 다녀오는 길인것 같았다.

 가지고있던 과자를 나에게 주며 '갈매기가 가까이 오면 갈매기에게 던져주고, 아니면 그냥 오빠 묵으라~' 하고선 또 갑판위를 둘이서 신나게 뛰어다닌다.
 술래잡기, 얼음땡, 도둑잡기...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며 계속 나보고 같이 하자고 한다. 갑판에 있는 다른 사람들때문에 그냥 하는척 시늉만 해줬더니 그새 흥미를 잃고서 이번엔 내옆에 와서 무서운이야기를 해주겠단다.
 망망대해를 가로질러가는 심심한 배위에서 아이들이 해주는 조금은 시시한(^^;) 무서운 얘기를 들으며 잠시나마 순수한 아이들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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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사진을 찍었을 줄이야


 이번에는 아까 그렇게 피해다니던 내 카메라에 이번엔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내가 들고있던 카메라는 수동 필름 카메라였는데, 투박하게 생긴 모습이 신기했는지 아이들이 자기도 한번 사진을 찍어보겠단다. 초점 맞추는 방법이나 조리개 같은걸 설명해줄수는 없고, 찍고싶은게 뭔지 물어본 뒤 대략 초점거리랑 노출을 맞춰서 카메라를 쥐어줬는데...

 내 얼굴을 찍는답시고 저런 사진을 찍어놓았더라. 사진 현상해보고선 깜짝 놀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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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빨빠진 모습이 너무 귀엽다, 얼음땡 하던 도중에 찍은 한장


 갑판 여기저기를 신나게 뛰어다니고, 처음보는 나한테도 금새 마음을 여는 모습을 보니 꽤 성격이 밝은 아이들인것 같았다. 까맣게 탄 피부도 뜨거운 햇볕에서 하도 뛰어놀아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사진도 찍어달라고 하며 포즈도 취하고, 내 카메라를 빼앗아서 사진을 직접 찍어보기도 하더니 내릴때가 다 되어서 갑작스럽게 찍은 사진을 자기한테도 주면 안되겠냐고 물어본다. 당장에 찍은 사진을 보여줄 수도 없는 필름카메라인데다가 사진을 인화해서 나중에 보내줘야한다고 말을 해줬더니 그럼 나중에 편지로 사진을 보내달라 한다.

 하지만 배는 이미 매물도에 도착해버렸고, 주소를 미처 물어보기도 전에 아이들은 인사를 하고 배에서 내려 뛰어가더니 항구에 나와계시던 아빠 품에 쏙 하고 안긴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현상을 하고 사진을 보니 아이들에게 사진을 보내주지 못하는게 너무 아쉽다. 인터넷이라도 할 정도의 아이들이면 이 글을 볼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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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물도 당금마을의 모습


 매물도 당금마을에 아이들을 내려준 배는 다시 출발해 마지막 목적지인 소매물도로 향한다.
 이제 거의 다왔다. 하늘도 많이 구름이 걷혀 살짝 푸른빛이 돌기 시작한다.
 예감이 좋다. 왠지 소매물도에서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을것만 같은 좋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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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으로 이루어진 크고작은 섬들


 거대한 해안 절벽을 몇개 지나자 드디어 소매물도가 서서히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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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소매물도


 드디어 소매물도에 배가 도착했다.
 남해의 작은 섬들을 지나 한시간 반이나 배를 타야 올 수 있는 소매물도.
 오늘은 날씨가 흐렸지만 꼭 푸른 하늘을 볼 수 있길 바라며...

 배위에서 만났던 소소한 풍경들, 귀여운 아이들. 추억으로 간직한채 이제는 소매물도에서의 새로운 추억만들기를 기대해 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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