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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출장의 목적은 이 건축물을 지구 반대편에 똑같이 세우는 것!

 이번 브라질 출장길에 임하는 나의 마음가짐은 이전 과는 사뭇 달랐다. 지난봄 일본으로의 출장이 모형을 들고 가 설치하는 나름 단순한 작업이었다고 한다면 이번엔 어찌 됐든 간에 '집'을 '지어야'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이역만리 브라질까지 와 대나무로 집을 짓게 된 것일까. 지금 생각해도 풋- 하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이번 출장은 그 시작도, 과정도, 결과도 하나같이 예측불허의 연속이었다.

 '가로 1.8m, 세로 3m, 높이 6.5m의 2개 층 규모의 대나무 건축물'

 이것이 이번의 내가 완수해야 하는 '출장의 목적'이다. 이 요상하게 생긴 건축물은 이미 서울과 도쿄에서 전시되었던 'DMZ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계된 것으로 당시 모형과 영상으로 선보였던 인간과 새를 위한 건축물을 1:1 실제 크기로 만든 것이다. 훗날 비무장지대 내에 지어지는 것을 전제로 하는 건축물인 만큼 자연 유래 재료인 대나무와 노끈 만으로 건축하도록 한 원칙도 그대로 구현하였다. 다만 실내에 설치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여 총 5개 층 규모 중에서 2층과 3층 만을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만들었다는 점 정도가 다르다.

 보통의 '현장'이라는 게 서울만 살짝 벗어나도 내 맘대로 잘 안되고 배로 힘이 드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 여긴 지구 정반대편의 브라질이란 말이다. 고생길이 열릴건 안 봐도 뻔 했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똑같은 건축물을 이미 지난 서울 전시에서 지어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당시에도 난생처음으로 계획해본 대나무 건축의 난해함 때문에 몇 날 며칠을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했다. 시행착오를 발판 삼아 수 없이 도면 수정을 했지만 브라질이라는 낯선 환경하에 과연 이 계획안이 얼마나 완벽하게 지어질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상파울루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도 내내 의문이었다. 

오는 8월 부터 상파울루 중심가로 옮겨온 한국문화원, 이번 전시가 곧 개관전이기도 하다.

문화원 1층의 전시공간, 하얗게 새로 칠해진 벽들이 전시로 채워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담당하는 대나무 건축물은 리셉션 앞, 로비 정중앙에 세워기로 되어있었다.

작업 1일 차, 만남

 30시간의 긴 비행에도 다행히 내 몸은 건사했다. 저녁 늦게 호텔로 들어와 짐을 풀고는 곧바로 골아 떨어졌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부터 네 명의 작업자들을 지휘하여 나흘 안에 설치 작업을 끝내야만 한다. 단 하루의 여유도 없었다. 작업을 종료함과 동시에 바로 다음날 대대적인 개관식 행사가 준비되어있기 때문이었다. 결코 그 누구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나의 귀국 편 비행기는 작업을 마치기로 예정된 당일 저녁에 출발하기로 되어있었다.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아침에 일어나 식당으로 내려왔다. 우선은 아침을 든든히 먹어두기로 했다. 뭔가 불안하고 예측이 잘 안될 때는 일단 배부터 든든히 채워두는 게 경험상 가장 괜찮은 선택이기 떄문이다.

대나무를 일일이 닦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전시장소인 주브라질 한국문화원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확인하고 싶었던 건 한국에서부터 여러차례 연락을 주고받으며 준비했던 대나무의 상태였다. 지어질 건축물은 주요 구조부터 바닥, 외장, 계단까지 모든 요소가 대나무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재료보다도 대나무의 품질과 의장성이 작품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지난 서울에서의 작업에서는 담양에서 막 베온 생물 대나무를 직배송받아 썼었다

 준비된 대나무가 문화원 앞마당에 가지런히 쌓여있었다. 우려했던 것보다는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세히 보면 볼수록 한국 대나무보다 더 조직도 치밀하고 묵직한 게 건축용으로는 더 좋을 것 같았다. 의외로 아마존 근처에서 대나무가 잘 자란다는데 혹시 이것들도 거기서 온 걸까 잠시 상상해 보았다.

 작업자 한 분이 먼저 나와 수건으로 정성스레 표면을 닦고 계셨다. 첫인상이 좋았다. 미리 시키지 않은 일임에도 실내에 들어갈 전시물이니 으레 깨끗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아니 열을 확신하고 싶었다. 본인이 하는 작업에 대해 이렇게 애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작업자라면 믿어봐도 좋을 것 같았다.

나흘간 호흡을 맞췄던, '우리 팀'이다.

 뒤이어 나머지 세 분이 도착해 비로소 작업자 전원이 모였다. 그중 한 분은 나와 비슷한 동양인 인상을 하고 있었는데 일본계 브라질인이고 일전에 일본문화원의 대나무 작업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철사나 노끈을 이용해서 기다란 부재를 강하게 묶어야 하는 작업의 특성상 서울에서의 작업 때는 '비계공'을 섭외하여 진행했었다. 대나무 건축이라는 게 딱히 정형화된 공종이 아니다 보니 이번에도 작업자를 섭외하는 게 특히나 까다롭고 난해했다. 다행스럽게도 대나무 작업 유경험자를 수소문 끝에 찾은 모양이었다. 출발이 좋았다. Obrigado!

통역 또한 중요한 작업의 일부다.

 나는 포르투갈어를 못하고 작업자들은 영어를 못한다. 아무리 건축이 도면으로 의사소통하는 일이라고 해도 말 한마디가 때로는 백 장의 도면 보다 나을 때도 있다.

 작업 내내 옆에서 통역을 도와줄 담당자가 도착했다. 아직 대학생인 그는, 브라질에서 오래 살아 한국어와 포르투갈어를 둘 다 자유롭게 구사했다. 그간의 현장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단순한 통역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일지라도 설계의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반드시 오역이 생기고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먼저 한국어로 통역자에게 설계의도와 작업진행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한 후에 비로소 작업자들과 다시 한번 회의하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시간은 조금 오래걸릴지 모르지만 나는 이 순서와 방법에 확신이 있다.

 물론 나의 지시를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구현해낼까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현장을 통솔해야 하는 입장에서 작업자들에게 신뢰를 보여주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회의를 마치고 문화원을 나왔다. 오늘 하루의 작업은 저녁 시간 이후에 다시 와 확인하기로 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정도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현장을 통솔할때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원칙이다.

가지런히 쌓여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대나무들

기초 바닥과 주 기둥까지는 어느정도 모양이 잡혔다.

 해가 저물어 다시 돌아와본 현장의 작업은 건물의 구조가 되는 기둥을 세우기 위한 기초 바닥과 위치잡기 까지 진행되어있었다. 각도가 조금 틀어진 것만 바로잡아주고는 첫날부터 늦은 시간까지 고생한 작업자들에게 진심을 담아 격려를 건넸다. 아마 오늘 하루는 치수대로 부재를 가공하고 준비하는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으리라. 내일을 기약하며 호텔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아침에 카톡으로 보고 받은 사진. 뭔가가 어색했다?

작업 2일 차, 의견 충돌

 둘째 날 아침은 문화원으로 가기 전에 재료상부터 들렀다. 현장에서 미리 준비해둔 노끈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내가 직접 사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노끈은 이번 건축물에서 대나무를 묶는데 쓰이는 중요한 구조재료임과 동시에 매듭의 모양을 통해 전체적인 디테일을 완성하는 의장 재료기도 했다. 서울에서 사용했던 노끈의 정보를 알려주고 미리 준비시켰지만 역시나 사진과 실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마침 노끈을 판매하는 곳이 상파울루 북쪽의 한인타운 봉 헤치로(Bom Retiro) 근처에 있다고 해서 겸사겸사 들러보기로 했다.

출장이 아니었더라면 와 보기 힘들었을지도 모를 재밌는 가게였다.

 우버를 불러 타고오니 금방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방산시장이나 청계천 정도 되는 곳이었을까. 주변으로 노끈, 철사, 종이, 단추 등 다양하고 잡다한 물건들을 파는 가게가 즐비했다. 전에 이탈리아 출장 때도 전시 설치에 필요한 전동 드라이버를 사기 위해 밀라노 뒷골목 공구 거리를 한참이나 헤매고 다녔던 기억이 새록하다. 이렇게 여행이 아닌 출장으로 도시를 누비다 보면 예상치 못한 발견이나 즐거움이 덩달아 따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행히도 마음에 쏙 드는 노끈을 찾았다.

  한참을 둘러본 끝에 한국에서 썼던 것과 비슷한 색상과 재질의 물건을 찾았다. 서울 전시에서는 넉넉잡아 2km 정도 사용했었기에 같은 양을 사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 더 추가해서 넉넉하게 구매했다. 안 그래도 없는 시간에 혹시나 여길 다시 오는 것보다는 그냥 좀 남더라도 여유 있게 준비하는 쪽이 나도 편했다.

구조를 먼저 완성해야 할까, 외피를 먼저 붙여야 할까

 점심 무렵이 다 되어서 문화원으로 돌아왔다. 작업자들은 여전히 대나무와 씨름 중이었다.

 작업은 어젯밤에 본 것에서 조금 더 진척이 있었는데 여기서 조금의 의견 충돌이 발생했다. 내가 설계한 이 건축물에는 총 19개의 수직 기둥과 거기에 긴밀하게 결속되는 각 층별 격자가 있고, 적절한 길이로 자른 대나무가 바깥으로 붙어 바닥과 벽을 이루는 구조였다. 대나무의 무게가 생각보다 상당하기 때문에 지난 서울 전시에서도 구조가 부실해서 건물 전체가 약간 기울어지는 문제가 발생했었다.

 때문에 나는 뼈대에 해당하는 구조체부터 완성을 시켜놓고 거기에 살을 붙이자고 처음부터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구조체를 만들던 도중 1층에서부터 바닥과 벽을 붙이며 작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나는 즉시 작업 중단을 요청했다.

결국 모든 문제의 원인은 이 녀석이었다.

 통역을 여러차례 통하는 지난한 대화 끝에 왜 그렇게 작업해야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다름 아닌 고소작업용 리프트 때문이었다. 2층까지 연속되는 구조체를 먼저 조립하고 싶어도 올라가는데 필요한 리프트 장비를 다른 팀에서 사용 중이라 어쩔수 없이 손 닿는 부분부터 완성하려 한 것이란다. 이런 건 감독자인 나의 권한 밖의 문제였다. 혹여 바뀌어버린 작업 순서 탓에 끝에 가서 문제라도 생길까 걱정은 됐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나도 뜻을 굽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작업자들을 믿고 기다려 보는 것뿐이었다.

늦게까지 환하게 켜있는 문화원의 불

 저녁이 되어 다시 찾은 문화원은 여전히 대낮이었다. 진도는 오전에 보았던 1층 바닥과 벽이 80% 정도 완성되어있는 정도였다.

 손이 많이 가는 외피 작업을 먼저 하다보니 시간은 비교적 오래 걸리는 반면 상대적으로 진척이 별로 없어 보였다. 작업자들도 꽤 지쳐있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해주는 게 고마워 그만 해산하려는 찰나... 아뿔싸, 건물이 놓인 방향이 도면과 정 반대인 것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말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번 고민했다. 분명 작업자들이 도면을 거꾸로 놓고 본 것 같긴 한데 이제와서 수정하려면 남은 이틀을 꼬박 새워도 장담할 수 없는 일정이었다. 이럴 땐 판단을 빨리하고 대안을 더 오래 생각하는 쪽이 좋다. 원래 의도했던 방향과 반대로 만들어졌음을 사실대로 말하고 대신에 이대로 완성해도 큰 문제는 없으니 계속 진행하자고 했다. 작업자들은 자신들의 명백한 실수에 미안해했지만 한편으로는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들을 믿어주는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 왔다.

가끔은, 진실보다 믿음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결국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모든 것이 마무리된 상황에서 돌이켜보면 그리 큰 실수는 아니었고, 오히려 더 좋아진 면도 없잖아 있었다.

 그날 저녁 작업자와의 사이에 오간 한두 마디의 신뢰의 말들이 그들로 하여금 끝까지 포기 않고 작업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으리라 믿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신뢰가 필요하고, 신뢰를 쌓는 데에 있어서 언어는 그리 큰 장벽이 아니었으리라.

오늘 하루는 온전히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기로 했다.

작업 3일차, 전적으로 신뢰하며

 이날은 내가 쿠리치바에 하루 다녀오기로 되어있어 종일 현장을 비워야 했다. 물론 카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보고받기는 했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확인할 도리는 없었다. 짧은 시간 동안 서로가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집중력을 더 발휘하여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상파울루로 다시 돌아오는 비행기는 저녁 아홉 시가 넘어 공항에 도착했다. 작업자들은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꼭 확인을 받고서 퇴근하겠다고 했다. 부리나케 우버를 잡아타고 문화원에 도착한 시각은 이미 열 시 반을 막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간 문화원 로비에는... 제법 완성에 가까워진 작품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거의 다 되었다!

 가장 우려했던 뼈대가 완성되었으니 이제 남은 건 부지런히 손을 놀려서 살을 붙이는 것뿐이다. 며칠 새 귀동냥으로 배운 포르투갈어로 muito obrigado 하고 안도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물론 우린 어디까지 계약관계에 의해 서로가 맡을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건 나의 근심과 걱정을 대단히 덜어준 그들에 대해 한 개인으로서의 감사이기도 했다. 초보적인 인사말에도 이젠 제법 포르투갈어를 한다며 치켜세워주는 칭찬 또한 잊지 않는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어느새 벽면을 가득 채운 다른 전시물들, 개관이 임박했다는 뜻이다.

작업 4일 차, 완공

 마침내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전날 하루 집중해서 진도를 나가준 덕분에 남은 작업들은 자잘한 디테일 위주였다. 하지만 작다고 해서 결코 방심할 수만은 없었다. 결국 전체의 인상이라는 건 손에 닿는 작은 윤곽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부재의 방향이나 뻗어나간 상태 따위를 일일이 만져가며 검수하고 조율하는 시간 또한 예정된 기한 내에서 마쳐야만 했다.

 예상 완료 시점은 처음 약속했던 것과 같이 정확히 오후 6시였다. 그런데 갑작스레 오전 중으로 끝내줄 수 없냐는 황당한 요청이 들어왔다. 이번 전시와 관련하여 높으신 분께서 한국으로부터 오신다는게 그 이유였다. 난 단호하게 거절했다. 잠시 한국어로 설왕설래하는 모습을 보고는 작업자들이 되려 무슨 일이냐며 물어왔지만 딱히 통역해줄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적당히 둘러댔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마지막 난관은 나선계단이었는데... 멋지게 해결했다!

 이 자그마한 대나무 건축물 안에는 무려 나선 계단이 하나 포함되어있다. 지름이 작은 대나무 기둥에다가 발판을 고정할 방법이 딱히 없어서 각목으로 'ㄱ'자 모양 받침대를 만들고 그 위로 노끈을 둘둘 말아서 감추는 방식으로 지난 서울 전시 때 작업했었다. 이번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작업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했다. 미리 주문해두었던 각목이 배송에서 누락된 것이다. 첫날 미리 꼼꼼하게 검수하지 못한 내 책임도 일부 있으니 크게 뭐라 할 수는 없었다. 후회는 가능한 짧게 하는 게 좋다. 대신 지금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해결책을 생각하는 데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무엇이든지 해내는 그대들은 멋쟁이!

 정답은 의외로 작업자들 쪽에서 나왔다. 각목 대신에 남은 대나무를 가지고 고정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없겠냐는 나의 물음에, 재빨리 톱을 들고는 뚝딱뚝딱하더니만 꽤 그럴싸한 대안을 제시했다. 대나무 외의 추가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 기존 안보다 되려 좋아 보여서 나는 그 즉시 승인했다. 

 디자인이란 때로 현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기지에 의해 더 좋게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 같다. 아, 물론 계단이 반시계 방향으로 올라가야 하는 걸 그 반대로 조립해버리는 바람에 한번 다 뜯어버려야 했던 건 작업자들의 애교 정도로 받아들이기로 하자.

어찌나 포장을 잘 했던지 '언박싱'하는 쾌감마저 느껴졌다!

 준비해온 모형의 세팅도 함께 진행됐다. 1/50 스케일로 제작된 이 축소모형은 대나무 건축물 바로 옆에 캡션과 함께 놓일 예정인데 이번 전시에 설치된 부분이 본래 5층 규모로 설계된 건물의 일부라는 것을 인지하게 해 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혹시나 먼길 오는 동안 부서질까 꼼꼼하게 포장해준 신입사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본다.

마지막 한 조각마저 다 올리고 나면...

...비로소 완성이 가까워진다. '매'의 눈으로 함께 지켜보는 중!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 아마도 작업자들은 잘라놓은 마지막 부재까지 제자리에 고정시키고 나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내 입장에선 절대로 그렇지가 않았다. 모든 부재가 제자리에 들어선 이후에서나 비로소 확인하고 조율할 수 있는 마지막의 그 어떤 영역이 있기에, 묵묵히 그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끝날때 까진 끝난게 아니다!

마침내... 작업을 마치고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은 아름다웠다.

 작업자들이 마지막 부재를 끼우는 것을 신호로, 내가 직접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대나무는 자연재료인 만큼 절대로 도면과 같이 곧을 수 없다는 걸 지난 두 번의 시공을 통해 깨달았다. 제멋대로 삐죽삐죽한 대나무들을 전체 형상을 생각하며 하나씩 돌리고, 비틀고, 움직여가며 어린아이 머리 빗겨주듯이 정리해주는 작업을 거처야만 비로소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끈질기게 수정하는 내 모습을 보고는 작업자 중 한 명이 '저 사람은 완벽주의자다!'하고 푸념 같은 칭찬을 던지기도 했다. 적어도 내 귀에는 일 제대로 잘한다는 말로 들렸으니 이 또한 Muito Obrigado!

나흘간 함께 땀흘려주신 고마운 작업자분들과 함께, 따봉!

 어느덧 상파울루 거리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완성의 기쁨을 누려볼 새도 없이 기록용 사진만 서둘러 찍은 뒤에 짐가방을 챙겨 공항으로 출발했다. 

 내일은 일요일이니 문화원이 있는 파울리스타 대로 앞 교통이 통제될 것이고, 때맞춰 개관식도 열리니 그야말로 잔치가 한바탕 벌어질 텐데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가야 하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어쩌면 건축가에게 정이나 미련, 그리움 따위는 사치의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무사히 잘 지어졌으니 그거면 됐다.(계속)


주. 작품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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