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죽을 듯한 허기를 느껴야 건강한거랬다

 

 달콤한 휴가의 끝을 알리는 마지막날의 해가 솟았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눈 뜨자마자 아침 먹을 고민부터 시작한다. 맛있는건 완주하고 부산에서 먹기로 하고 편의점 음식으로 간단히 끼니를 떼웠다.

 자전거 국토종주의 마지막 목적지는 낙동강하굿둑 인증센터다. 일정이 하루 늘어난 덕분에 오늘 타야할 거리는 70km 남짓. 부담은 확실히 덜했지만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기까지 겨우 70km만을 남겨두고 있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었다. 

 

 

이제는 익숙한 나의 전속 모델

 

 어떤 여행에서든 사진은 늘 내 담당이었다. 이번 자전거 국토종주도 마찬가지. 친구 Y와 일정 거리를 두고 뒤따르며 도촬하듯 사진을 찍었다. 정작 찍히는 사람은 내가 뒤에서 찍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비슷비슷한 주행 사진들이 많다보니 다 거기서 거기 같지만 저마다 이유와 사연이 있다. 예를 들어 풍경이 멋있다거나, 특이한 무언가를 봤다거나, 노면 상태가 갑자기 바뀌었거나, 날씨가 변했다던가 할 때마다 고스란히 사진으로 남겼다. 물론 전속 사진 기사가 따라다닌 덕분에 잘나온 자기사진이 많다며 Y는 연신 즐거워한다.

 

 

 

이정도 언덕쯤이야 가뿐히!

 

 낙동강 중류 이후부터는 강의 흐름을 따라 미세하게 내리막길이 지루할 정도로 계속된다. 특별히 볼 거리도 없고 인적도 드물다. 오히려 작은 오르막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들 정도였달까. 낙동강 하류는 완주를 눈앞에 두었다는 흥분감 하나만 보고 탄다는 말도 들었던 것 같다.

 

 

평범한 자전거길에서 만나는 소소한 재미

 

 그나마 기억이 나는 이벤트가 있다면 자전거로 삼랑진교를 건넌 정도였다. 국토종주 첫날 양평에서 건넜던 철교처럼 목침소리가 달그락 거리는 맛이 있었더라면 더욱 좋았을텐데.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좁고 긴 다리위로 낙동강을 자전거로 건너보는건 분명 즐거운 경험이다.

 

 

 

이제 완주까지 도장 한 개!

 

 양산물문화관 근처 해서는 사진처럼 강 위로 이어진 데크길이 꽤 길게 되어있다. 아무래도 난간 너머 바로 강이다보니 안전속도에 제한이 있지만 자전거가 쭉쭉 잘나가서 깜빡하게 된다. 이 무렵부터 길 위에 자전거가 많아진것 같다. 줄서서 스탬프를 찍어본 적이 없었는데 여기선 그랬다. 그리하여 마침내 대망의 국토종주 완주까지 단 하나의 스탬프만을 남겨놓게 되었다. 아 감격스러워라.

 

 끝이 보이기 시작하니 물 한잔 먹기위해 쉬는 시간조차 아깝더라. 얼른 완주하고픈 마음 뿐이었다.

 

 

 

마지못해 먹었던 부실한 점심식사

 

 부산 신시가지에 가까워진 모양이다. 주변으로 높은 아파트도 보이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졌다. 강 옆으로 공원이나 산책로를 조성해 놓기도 했다. 한강이랑 비슷한 풍경이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편의점이나 끼니를 떼울만한 곳이 보이질 않는다. 그렇다고 강에서 멀어져 시내로 들어가기도 좀 그렇고... 임시방편으로 포장마차에 앉아 부산어묵(이게 진짜 부산어묵인지는 확실치 않다)이랑 삶은 달걀로 점심을 대신했다. 달린 거리가 얼마 안되긴 해도 상당히 배가고팠는데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해서 많이 아쉬웠다.

 

 

 

고층아파트 단지와 잘 조성된 근린공원들, 영락없는 신도시의 모습이다

 

 어묵 몇조각으로 허기를 달랠수 있었던 건 점점 줄어드는 거리를 보며 힘을 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고보면 자전거길을 따라 600여 킬로미터를 내려오는 동안 의외로 같은 방향으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거의 못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도시 근처를 제외하고는 길 위에서 사람구경을 하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렇게 내내 여행하다 갑자기 사람들을 많이 마주치니 기분이 묘하다. 확실히 일상과 가까워진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이번 여행에서 즐겨보는 마지막 햇빛

 

 강가에 자전거를 대고 땅바닥에 철푸덕 앉았다. 확실히 남쪽이라 그런지 햇살이 참 따뜻하다. 아니면 이번 여행동안 어느새 봄이 와버린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잠시 Y가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 햇살아래 망중한을 한없이 즐겼다. 바쁜 일상을 돌아가면 이 순간이 그리워질 것을 알기에 한동안 엉덩이를 떼기가 힘들었다.

 

 

 

오오 드디어 낙동강 하굿둑이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멀리 낙동강 하굿둑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주일 내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우리의 목적지. 지나쳐온 수 많은 보들과 마찬가지로 그리 아름다운 외관은 아니지만 이 순간 만큼은 한없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남은 거리 이제 겨우 5km 남짓. 하지만 최후의 순간까지 우리를 괴롭히는건 다름아닌 바람이었다. 하굿둑으로 접근하는 강변 자전거길에는 하류에서 상류방향으로 바닷바람이 불어댄다. 옆 사람이랑 말하기가 힘들 정도로 거센 바람에 안그래도 지난 여정에 힘든 다리가 더욱 무겁다. 물론 완주 앞에서 그깟 바람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해냈다!

 

 마침내 633km 완주, 낙동강하굿둑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출발지인 아라서해갑문에는 황량할 정도로 인적이 드문 반면 이곳은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로 나들이객들이 가득했다. 우린 자축의 의미로 술 대신(아직 자전거를 타고 부산역까지 가는 일이 남았다) 탄산음료로 건배를 했다. 다친곳 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친것에 감사하며...

 

 

 

인증센터에서 공식적으로 인증을 완료했다

 

 마지막 스탬프까지 모두 채운 인증수첩을 가져가면 전산입력후 이렇게 인증 스티커를 붙여준다. 자세히보면 인증 번호가 있는데 난 19,970번이다. 이 숫자가 지금까지 국토종주 인증을 받은 사람 수라고 한다. 간발의 차이로 만 번대 인증번호를 받았다. 이때가 올해 3월이었는데 10월이 된 지금 번호는 3만번대에 육박하고 있다. 확실히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기는 한 모양이다.

 

 인증을 마치고 한 2주정도 지나 집으로 인증서와 인증 메달이 배달되어 왔다. 메달은 그냥 그랬지만 인증서는 나름 고급스럽게 만들어져 볼만했다. 여행의 기억이 흐릿해져갈 즈음 다시 받아보니 새록새록 추억도 떠오르고 좋더라.

 

 

 

유일한 부산 관광... 하루만 더 있었더라면

 

 낙동강 하굿둑에서 부산역까지도 자전거를 마저 타고갈 계획이었으나 맥이 탁 풀려 포기했다. 길도 좀 위험해 보이고... 해서 지하철을 타고 부산역까지 왔다. 계획한 일정 대로였으면 부산에서 하루를 놀다갈 수 있었지만 어쩔수 없었다. 기차시간도 얼마 안남고 해서 역 근처 초량밀면에서 못다한 점심식사를 마저 했다. 밀면을 처음 먹어본 Y는 생각보다 별로라고 했고 나 역시 전에 먹어본 다른집보다 영 못했다. 여행의 피날레를 좀더 맛있는 음식과 함께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허탈할 정도로 순식간에 우린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6일에 걸쳐 총 주행거리 633km, 총 주행시간 34시간 30분을 달려 부산에 도착했다. 하지만 우리 둘과 자전거를 실은 KTX는 단 세 시간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일탈은 긴 듯 했으나 일상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긴 시간 함께해준 고마운 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길 위에서는 그토록 쌩쌩 달리던 자전거지만 지하철 탈때는 그저 무거운 짐밖에 안되더라. 집에 도착해 자전거를 원래 있던 베란다에 돌려놓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끝)

 

주행거리: 67.8km / 주행시간: 3시간 36분 / 평균속력: 18.7km/h / 최고속력: 40.3km/h

 

 



공유하기 링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