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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종주 마지막 밤을 앞두고

 

 출발지와 목적지를 정해두고 달리는 자전거 여행은 수평선상에서 움직이는 것과 비슷하다. 두 점을 잇는 선분 위에서 얼마나 빨리, 혹은 천천히 달릴 것인지만 결정하면 두 바퀴가 알아서 나를 이끌게 된다. 길을 찾거나 방향을 잡기위해 그리 많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밥을 먹을 곳도, 잠을 잘 곳도 모두 그 길 어딘가에 있다. 그래서 자전거 여행은 잡념을 떨쳐버리기에 참 좋다. Rider's high는 꼭 심장이 터질듯한 흥분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자욱한 안개 너머 대구의 스카이라인이 인상 깊었다

 

 어느덧 자전거 국토종주 대장정의 다섯번째 아침이 밝았다. 갑작스럽게 휴가를 쓰고 떠나온 여정이었다. 사무실에서 한창 일하고 있었을 시간에 좋은 경치에서 자전거를 타는 기분이 참 좋았었다. 그런데 벌써 토요일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달려야할 거리보다 달린 거리거 더 많아졌다. 어쩐지 조금은 서글퍼졌다.

 찜질방 치고는 나름 숙면을 취했다. 목욕탕에 들어가 근육을 좀 풀어준 것도 괜찮았다. 지하철역 근처 번화가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식사전

 

식사후

 

 확실히 자전거를 타다보면 칼로리 소모가 많다. 낮시간은 물론이고 아침에 눈뜨기가 무섭게 허기 부터 밀려왔다. 하지만 너무 배불리 먹었다간 곧바로 자전거 타기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다. 고민 끝에 김밥집에 들어갔는데 김밥 두 줄에 라면 한 그릇, 라볶이까지 시켜 먹고나니 결국 거한 한 끼가 되어버렸다. 돌이켜보니 이번 여행은 칼로리 소모를 빙자한 맛기행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 넌 정체가 뭐냐

 

 대구를 빠져나와 낙동강길에 다시 진입하자마자 독특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애심토트(asymptote)의 대표건축가 하니 라시드가 설계한 '디 아크'라는 건축물이다. 용도는 무려 '4대강 홍보관'이라는데 역시나 흉물스럽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하니 라시드 강연을 직접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도 좀처럼 공감할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에서 지어진 건물이다보니 곱게 봐주기가 어렵다. 그래도 한 번 들어가 보려 했으나 이른 아침시간이라 문도 닫혀있었다. 미련 없이 패스.

 

강정고령보 인증센터

 

달성보 인증센터

 

딱히 풍경은 찍은게 없고...이런 사진만

 

 오늘의 첫번째 체크포인트인 강정고령포에 이어 달성보까지 순식간에 패스. 출발 전 찾아본 글들에 의하면 낙동강 진입 이후로는 길이 평이해서 재미도 없고 지루할 거라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그러고보면 인증센터도 랜드마크가 아니라 딱딱하게 보 이름으로만 계속되는 것도 그런 이유인듯 하다.

 

 

그래도 쉴땐 쉬어가야지

 

 간만에 햇빛이 쨍하고 났다. 아침나절 강가는 제법 쌀쌀할 정도로 바람이 불곤 했었다. 간만에 등이 따땃할 정도진한 햇빛을 맞으니 이대로 그냥 지나치긴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마침 달성보에는 편의점이 있어서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안장에서 잠시 내려와 쉬어가는 여유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우회 대장정 시작!

 

 고령, 창녕, 합천, 창녕을 지나는 국토종주 자전거길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일명 로드 자전거의 지옥이라 불리는 '낙동강 하류 4대 업힐'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630km 전체 구간중 경사가 심하고 길이 험하기로 유명해 아예 비공식 우회코스가 정설화 되어있을 정도다. 

 바퀴도 작고 로드용 고압 타이어를 쓰는 우리에게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정규 코스만을 달려서 완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지난번과 같이 산 속에서 돌발상황을 맞아 조난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하루가 지체되어 토요일이 되어버렸으니 만약의 경우에는 월요일에 회사로 복귀 못하는 경우마저 생길 수 있었다.

 

 ...라는 거창한 핑계하에 우리는 반가운 마음으로 모든 험로를 우회하기로 결정했다.

 

 

논밭을 유유히 가로질러 다람재를 우회

 

 첫번째 업힐인 '다람재'를 우회하는 길이다. 사실 다람재는 경사도 적당하고 길이도 짧다는 정보를 들었지만 노면사정이 좋지않다는게 흠이었다. 다행히 '4대 업힐'들의 자세한 후기 및 우회로 지도는 인터넷상에 많이 공개되어있다. 우리 역시 어젯밤 찜질방에서 계란을 까먹으며 우회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공부한 상태. 하지만 국토종주 이정표만 따라 달리는 것과 달리 농로와 마을길을 오가며 길을 찾는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번 헤메기는 했지만 무사히 우회를 마치고 다시 정규코스에 합류하는데 성공했다.

 

무심재가 가까워질 무렵... 우회로를 부르는 이상한 정규코스

 

 두번째로 '무심사'를 우회할 차례다. 산 중턱에 위치한 절인 무심사에서는 점심도 얻어먹을 수 있고 경치구경도 할 수 있다지만 이또한 우회하기로 했다. 다람재보다 훨씬 더 구불구불한 산길이라고 했다. 본격적으로 임도가 시작되기 직전 교차로에서 빠져나와 창녕군 이방면을 통과해 우회하게 된다. 읍내를 지나는 김에 이 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경상남도에 들어서니 갑자기 봄이 되었다

 

 이방면에 들어서면서 행정구역이 경상남도로 바뀌었다. 이제 정말 남쪽에 왔구나 하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니 목련꽃이 피어있는게 아닌가! 불과 몇일전 서울 근교를 달릴때만 해도 억새풀 일색이던 겨울이었는데 말이다. 남쪽으로 열심히 달려온 덕분에 봄을 조금 일찍 만나게 된 셈이었다. 어째 기온도 푹해진것 같은게 기분탓만은 아니었으리라. 

 

냉면에서 졸지에 육개장으로 메뉴가 바뀐 사연

 

 따뜻해진 기온과 봄꽃에 대해 떠들다가 Y는 별안간 점심으로 냉면을 먹자고 했다. 따뜻한 남쪽에 들어왔으니 시원한 음식을 먹자는 뜻이었겟지만.... 춘삼월에 냉면을 파는 집이 있을까. 읍내 몇 안되는 식당들 중 '냉면'이라고 쓰여있는 식육식당을 끝끝내 찾아 들어갔다.

 주인 할머니께 당당히 냉면 두 그릇을 시켰지만 춘삼월에 그런 음식을 누가 파냐며 잔소리를 한 바가지 들어야만 했다. 결국 우리의 점심 메뉴는 갈비탕과 육개장으로 강제 변경당했고 '시원한' 냉면국물 대신 '시원한' 탕국물로 배를 채웠다.

 

 

 

박진고개를 우회하는 길, 나름 멋진 풍경을 만났다

 

 달성보에서 합천창녕보에 이르는 구간은 영아지, 구름재, 박진고개로 이어지는 세번째 업힐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아예 인증센터에서도 우회 지도를 나눠주고 있을 정도였다. 산을 하나 넘어가야할 길을 옆으로 돌아가다 보니 주상절리 같은 멋진 지형을 끼고 달리게 되었다. 우회하는 길이라 경치 구경은 꿈도 못꿀줄 알았는데 뜻밖의 횡재였다.

 

 

오늘의 마지막 도장을 찍고

 

 마지막 네번째 업힐구간인 도초산 임도를 우회해 마침내 창녕함안보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도초산 임도는 이름만 자전거길이지 비포장 등산로에 가까운 노면을 따라 산등성이를 하나 크게 넘는 곳이라고 했다. 무모한 도전을 피하고 싶기도 했을 뿐더러 해가 질때까지 시간도 얼마 없었다.

 

 

우연히 마주친 낙동강의 일몰

 

 오늘의 마지막 스탬프까지 찍고 나니 어느덧 완주까지 딱 두 개의 도장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언제 일주일이 훌쩍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달려왔다. 그렇게 낙동강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감상에 잠시 잠겼으나... 아직도 숙박지까지는 길이 꽤 남아있다. 아닌 밤중에 라이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 

 

 

 

생각보다 힘들었던 수산리 가는 길... 기분 탓인가

 

 오늘의 숙박 예정지는 수산리, 행정구역으로는 밀양시 하남읍에 속하는 작은 읍내다. 처음 계획은 삼랑진까지 가서 내일 탈 거리를 줄여볼까 했는데 그 전에 체력이 바닥나버렸다. 창녕함안보를 지나서 부터 부산 시내에 전까지 수산리와 삼랑진 두 곳 외에는 딱히 잠잘 곳이 없다. 그나마 가까운 수산리를 택했건만 달려도 달려도 나올 생각을 않는다. 둘쨋날 수안보를 찾아가던 그 밤이 생각날 정도... 그나마 산 속이 아니고 비가 안와서 다행일 뿐이었다.

 

인테리어부터 느껴지는 로컬 치킨집의 풍미!

 

 마침내 수산리 시내에 들어왔고, 우리는 5박6일 대장정의 마지막 밤을 치맥으로 장식하는데 뜻을 모았다. 조금 둘러보니 치킨집이 서너개 있었는데 가장 허름해보이고 이 마을에 오래전 부터 있었던것 같은 이른바 '로컬 치킨집'을 선택했다. 작은 마을이니 만큼 근래들어 생긴 프랜차이즈 자본보다는 역사와 전통(?)의 맛집에서 마지막 날을 기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생맥주가 없는게 조금 아쉬웠지만 튀밥을 기본안주로 주시는 제법 '로컬'스러운 입맛 덕에 재미도 있었다.

 

 이제 여행은 딱 하루 남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마지막화에서 계속)

 

 

식사후

 

 

주행거리: 122.1km / 주행시간: 7시간 7분 / 평균속력: 17.1km/h / 최고속력: 40.3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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