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라이카의 주력 기종이라고 하면 필름 바디에서부터 이어진 유전자의 M 시리즈를 떠올리곤 한다.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과거의 명성에 조금 못 미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만, 누가 뭐래도 아직 M 시리즈는 분명 건재하다. 캐논, 니콘의 웬만한 플래그쉽 DSLR 가격은 우습게 뛰어넘는다. 그럼에도 얼핏 보면 고풍스러운 미러리스에 불과해 보이는 소소한 외관이다. 라이카 M 시리즈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사진가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기를 극히 꺼리면서도 최고의 바디와 렌즈로 원하는 사진을 허락하는 카메라. 불편한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뭇 취미사진가들에게 로망인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필름바디 여러 대, DSLR 서너 브랜드를 거쳐 오면서 자연스럽게 라이카를 한번 쯤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M 시리즈를 제 돈 주고(설사 중고라 할지라도) 사서 취미용으로 써보겠다는 생각은 대학생인 나에겐 사치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러던 중, 2010년 초 라이카에서 X시리즈의 첫 주자로 X1을 발매한다. 물론 여전히 가격은 만만찮지만 M 시리즈에 비하면 그나마 손닿는 거리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취미 사진가들의 이목은 단번에 몰렸다. 크롭 센서에 고정형 렌즈. 물론 X1은 좋은 카메라였지만 확실히 M 시리즈와는 비교하기 조금 애매한 포지션이었던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뜨거운 관심을 보였고 이는 라이카가 추구하는 ‘작고 좋은 카메라’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이후 수많은 취미 사진가들에 의해 X1은 수 없이 평가되었다. X1은 사진 결과물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혹독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최신 기종들에 비하면 형편없는 AF, 어딘가 부족한 소프트웨어 기능들, 사람 속 터지게 만드는 기계적 성능 등. 그렇지만 ‘카메라는 결국 사진이 잘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과 함께 상당히 두터운 팬 층을 확보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차피 쓸 사람은 쓴다는 대세론도 돌았던 것 같다. 이후 X1의 시도는 비슷한 컨셉의 조금 더 저렴한 후지필름의 X100으로 이어지며 계속되었고, X100이후 렌즈 교환식 미러리스에 대한 계획은 일절 없다는 후지필름은 X-pro1등을 내놓으며 시장의 관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의 흐름과 소비자층의 요구 속에서 지난해 드디어 X1의 후속작 X2가 세상에 나왔다.
사람들이 X1에 대해 실망했던 부분은 결과물의 퀄리티에 너무나 만족스럽지만 사용자 입장에서 답답한 기계적 성능이었다. 그렇기에 시간이 흘러 후속으로 출시되는 X2는 분명 그런 부분들에서 충분한 보완이 이루어졌으리라 여겨졌다. X2에 대한 기대와 함께 상당한 호기심이 생기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리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밝혀두고자 한다. 필자는 X1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 온라인 상의 후기나 주변 사람들의 실 사용소감 정도를 들은게 전부였고 대신 비슷한 라인업의 후지필름 X100을 베타 테스터부터 거치며 국내 및 해외에서 1년 정도 주력으로 썼었다. 그렇기에 본 리뷰는 단순히 전작인 X1과의 비교 보다는 비슷한 포지션의 미러리스를 주력으로 오래 사용한 입장에서 X2라는 신제품에 대한 솔직한 감상이 주가 되겠다. 글에 등장하는 모든 사진은 오토 컨트라스트 이외의 보정을 하지 않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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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
정말 빨라졌을까. 아마 X2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 유저들이 가장 궁금해했던 질문 1순위였지 않을까. 실제로 X1을 사용해본 주변 사람들의 입에서는 ‘답답해 죽겠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오곤 했다. 미러리스들의 컨트라스트AF의 태생적 한계로 받아들이기에는 해도 너무하다는 의미였다. X1에 비해서 상당히 괜찮은 평가를 받았던 후지필름 X100 조차 나에게는 답답한 느낌이 있었으니 X1은 얼마나 심했다는 걸까. 라이카 공식 홈페이지는 X2의 포커싱 속도가 전작에 비해 3배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숫자는 어디까지나 숫자일 뿐이고, 직접 X2를 사용해본 느낌은 X100과 비슷한 수준. X100에 비하면 최신 기종이니 그보다 더 좋아야 하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되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간 라이카 디지털라인이 빠르게 변하는 최신기종들 사이에서 한 발씩 늦게 따라가던 걸 생각하면 이정도만으로도 고맙다. 완전 최신 기종들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미러리스의 컨트라스트AF와 비슷한 수준이고, 딱히 라이카라서 답답해 죽겠다 하는 느낌이 든 적은 사용하면서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만 11포인트 포커싱 포인트가 스크린 중앙에 꽤 몰려 있어서 촬영 구도 상 불편한 순간이 몇 번 있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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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 편의성
일단 가장 급했던 AF에 대한 궁금증을 풀었으니 이제야 껍데기가 좀 보인다. 라이카 X2의 외관 및 하드웨어 인터페이스는 전작의 패밀리룩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꼭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절제된 디자인이 압권이다. 실버와 블랙버전(폴 스미스 에디션은 한정수량)으로 발매되었는데 실버는 그립부분의 가죽이 블랙에 비해 더 딱딱한 느낌이라 손에서 살짝 미끄러지는 경향이 있다. 미러리스 치고는 무게감이 조금 있는 편이니 별매 그립을 함께 사용하는 걸 기본 옵션으로 생각하면 편하다. 라이카 답게 만듦새가 꽤 좋은 편인데 배터리 그립 덮개라던가 몇 군데에서 살짝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다른 카메라들과 비교했을 때 X2의 가장 매력적인 외관은 바로 다이얼 방식 조리개, 셔터스피드 조정 방식이다. 과거 수동 카메라를 쓰던 느낌 그대로 디지털에서도 오른손 엄지로 상단 다이얼을 돌려서 각종 수치 변경이 가능하다. 이건 비단 과거의 감성을 충실히 재현했다는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LCD 상에서 여러 번 버튼을 눌러 메뉴를 찾아가며 변경할 필요 없이 ‘직관적’으로 사진의 상황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이얼이 한 바퀴 완전히 돌아가는 것도 매우 매력적이어서 예를 들면 조리개 2.8에서 16으로 급하게 변경하고 싶을 때 멀리 돌아가지 않아도 반대 방향으로 몇 칸만 움직이면 쉽게 조정이 가능하다.
오토 모드로 놓는 것 역시 다이얼 조작만으로 가능하다. 실제로 본 리뷰에 사용된 모든 사진은 자동(프로그램) 모드에서 전부 촬영했다. 너무 게으른 사진가라고 손가락질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히 결과물에서는 불만이 없어서 계속 그렇게 놓고 사용했다. 오히려 그때그때 세팅하며 촬영하기 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스크린 속에 무엇이 들어오는지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절제된 미학이 느껴지는 외관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그렇기에 아쉬운 점도 분명 존재한다.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function키가 따로 없다는 점이다. 후지필름 X100을 예로 들어보면 오른쪽 상단에 Fn키가 작게 튀어나와 있어서 원하는 기능(필름모드변경, ISO변경 등)을 할당에서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게 되어있다. 별것 아닌 기능 같지만 실제 촬영하는 상황에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 들 정도. 다른 유저들도 비슷하게 느꼈던 건지 이후 후지필름은 펌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잘 안쓰는 RAW버튼에도 기능을 할당하여 두 번째 function키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다만 전체적인 디자인 느낌으로 봤을 때 분명 Fn키가 옥의 티처럼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X2를 디자인하면서도 분명 비슷한 생각을 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 카메라에는 Fn키가 없다. 메뉴 몇 번 더 누르면 될 것이지 그게 뭐 그리 불편할까 생각하시는지. 만약 X2에 Fn키가 있었다면 가장 할당해주고 싶은 기능은 ‘색감 변경’. 의외로 선택할 수 있는 색감모드가 몇 개 없기는 하지만 ‘경조흑백’을 자주 쓰게 되는 이상 매번 LCD 창으로 메뉴를 선택해가며 변경하기엔 너무나 불편했다. 단, 꼼수가 하나 있기는 하다. JPG+DNG 모드에서 JPG 색감설정만 경조흑백으로 해 놓으면 컬러와 경조흑백 사진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다만 나처럼 RAW 파일과 별로 안 친하다던가 하면 무용지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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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질
개인적으로 세상의 모든 디지털 카메라를 두 종류로 분류한다. 먼저, LCD창에서는 사진이 너무 멋져보였는데 막상 컴퓨터로 옮겨서 보면 영 심심해 보이는 카메라. 다른 하나는 LCD로 볼 때는 그저 그랬는데 컴퓨터로 옮겨서 보니 기가 막히게 나오는 카메라. 당연한 소리지만 후자의 경우가 훨씬 좋은 카메라이고, 사진가 입장에서는 어떤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경험이기도 하다. X2는 분명 후자의 쪽이었다. X2를 받아들고 집에 오는 첫 날, 정말 쓸데없는 사진을 길가에서 몇 장 찍었다. 새 카메라를 손에 쥐었으니 어느 누구라도 비슷했으리라. 헌데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 LCD에 보이는 결과물은 영 심심해 보였다. 테스트 삼아 찍어본 거라 구도도 피사체도 엉망이라 그랬던 거겠지 하며 집에 돌아와 컴퓨터로 사진을 옮기기 시작했다. 헌데 모니터에 옮겨진 사진은 LCD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진이었다. 중앙부는 물론이고 주변부에 이르기까지 작은 실오라기의 디테일하나 놓치지 않는 표현력은 물론이고 광학적 수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경험의 의미하는 건 X2의 결과물이 정말 좋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반대로 해석하면 그만큼 디스플레이 표시창의 퀄리티가 최신 기종들만 못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어쨌든 X2를 사용하면서 사진을 다 찍고서 카메라 LCD로는 사진을 잘 안 보게 되었다. 대신 컴퓨터로 옮겨서는 100% 확대한 상태에서 이리저리 스크롤 해가며 사진을 음미하는 버릇이 생겼다. 가끔 라이트룸에서 100% 상태로 확대되어 있는 상태인데 원본 풀사이즈인줄 알고 ‘이런 사진을 내가 언제 찍었더라?’하고 착각한 적도 있다. 바보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정말 그런 적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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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및 색감
X2는 물론이고 기존의 라이카 디지털 리뷰를 찾아보면 하나같이 흑백사진이 대부분인 글이 많다. 사실 나 역시 전에 썼던 몇 편에서는 그런 적이 있으니. 그래서 이번에는 좀 컬러 사진을 많이 찍어보려고 노력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라이카에는 JPG 컬러세팅으로 일반 흑백모드와는 별도로 ‘경조흑백’이 들어가 있다. 그냥 흑백 모드에 비해 톤이나 컨트라스트에서 상당히 세심하게 세팅되어있는데, 흔히 말하는 ‘라이카의 흑백’이 바로 경조흑백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물론 실력 있는 사진가들은 RAW 파일로 가져와 자신이 원하는 흑백의 파라메터를 조정하면 이보다 더 훌륭한 느낌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가벼운 마음으로 그 순간순간에 사진 자체에 충실한 쪽을 즐기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분명 ‘경조흑백’은 좋은 수단이 된다. 알려진 바로는 기존 X1의 경조흑백에 비해 조금 더 세팅 값이 수정되어 탑재되었다고 한다. X1을 사용해본 적도 없거니와 그 미묘한 차이를 구분해 내기에는 실력이 부족해서 정량적인 분석은 못하겠다. 다만 자꾸만 손이 경조흑백으로 가는 건 분명 수치적으로 비교하지는 못해도 눈으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음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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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나 저러나 어쨌건 X2는 여전히 불편한 카메라다. 미끈한 외관 때문에 별매 그립 없이는 손에 들기 영 불안하고, 최소 초점거리는 30cm라 조금만 가까울라치면 삐빅- 거리는 카메라 때문에 답답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이제는 컴팩트 카메라에서도 별 강조 안하는 기본 기능인 ‘동영상’ 같은 건 아예 시도한 흔적 조차(?) 찾아볼 수 없다. 라이카는 원래 빠르게 변화하는 사용자들의 욕구를 일일이 대응하기 보다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우직한 철학으로 조금 느리더라도 꾸준히 자기 갈 길을 가는 브랜드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면 전작들에 비해 X2는 분명 ‘상대적’으로 상당히 진보한 기종이다. 그런 면에서 X2에 추가된 얼굴인식 AF 기능은 상당히 귀엽기 까지 하다!
라이카의 X1으로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렌즈고정식 미러리스라는 독특한 시장 분야는 후지필름, 소니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후속 작 X2는 분명 격변하는 시장의 흐름 속에서도 X1에 담겼던 철학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필름에서 디지털 시장으로 넘어오며 과거의 명성을 잃어버린 브랜드도 있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반세기 전의 라이카와 지금의 디지털 라이카의 느낌, 가치가 생각보다 꽤 닮아있다는 점이야말로 불편한 라이카가 왜 그토록 사랑을 받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