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는 아직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오늘은 두 달 전 인천 앞바다에서 배로 부쳐진 전시물품들이 아침 일찍 미술관으로 반입되는 날이다. 대부분이 원목으로 만든 가구인지라 혹여나 작렬하는 적도의 태양 아래 틀어지거나 휘어지진 않았을까 내심 걱정하던 차였다. 아무래도 컨테이너에서 내리는 걸 두 눈으로 직접 봐야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아침 식사도 거른 채 서둘러 호텔 문을 나섰다. 밀라노 도심 서쪽에 위치한 '트리엔날레 지구'는 거대한 녹지대를 중심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한 스포르체스코 성(Castello Sforzesco)과 다양한 미술관 및 박물관이 산재하는 곳이다. 내가 담당하는 전시가 열리게 될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 박물관(Triennale di Milano)'은 그중 단연..
‘다시 유럽에 올 수 있을까?’ 스무 살, 유럽으로의 첫 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과외 아르바이트로 모은 푼돈에 부모님의 지원금까지 보태어 무리해서 떠난 여행이었다. 물론 여행지로서의 유럽은 충분히 멋지고 좋은 곳이었지만 그만큼 과분했다. 그곳에서 한 달간 수없이 마주했던 감동들은 마치 손 틈새로 새어나가는 모래알과 같아 다시는 쥐기 힘들 것만 같았다. 인생이 충분히 길다는걸 채 다 알지 못했던 그때, 나는 유럽에 다시는 오지 못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불과 몇 년 후, 나는 스페인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고 다시 유럽 땅을 밟았다. 생각보다 빠른 재회였다. 하지만 아직 학생이기에 누릴 수 있는 행운이라 여기고 매 순간을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열정적으로 살았다. 무..
덜컹. 크게 한 번 출렁이는 차축의 진동이 창문에 기댄 내 머리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당시 스무 살 나이에 유럽을 배낭여행 중이던 나는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니스'를 출발해 '생폴 드 방스'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순간 안내방송에서 들리는 '방스'라는 단어에 반사적으로 가방을 챙겨 버스를 내렸다. 하지만 이상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가이드북에 나온 마을 사진과 영 딴판인 게 아닌가. 분명 '방스'라고는 했는데 여기가 정말 '생폴 드 방스'가 맞는지 스마트폰도 없던 그 시절엔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친구들과 상의 끝에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달리는 자동차를 향해 '생폴!'이라고 소리 지르며 열심히 손을 흔들었고, 운 좋게도 푸조 한 대를 얻어 탈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버스를 내린 곳은 ..
군더더기 하나 없이 미끈한 맵시의 '그 다리'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 브리핑 자료에 들어갈 근사한 '다리(bridge)' 이미지를 검색하던 중이었다. 부러질 듯 말듯한 조형, 군더더기 하나 없는 디테일, 중간 기둥 없이 물 위를 가로지르는 담대함 까지! 프랑스 마르세유에 있다는 '그 다리'는 내가 상상하던 이미지와 정말이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덕분에 작업은 무사히 끝났다. 조금 더 정보를 찾아볼까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일상의 고단함에 떠밀려 버렸다. 그렇게 '그 다리'는 한동안 나의 뇌리에서 잊혀 있었다. '그 다리'를 다시 마주친 건 유니테 다비타시옹에서 체크아웃을 마치고 나왔을 때였다. 구글 지도에서 마르세유 항구 근처의 주차할 곳을 찾던 중 어쩐지 낯익은 건물을 발견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계단은 층과 층을 연결하는 아주 기본적인 건축 요소이다. 기원전에 세워진 지구라트(Ziggurat) 정면에 긴 계단이 자리하고 있음을 떠올려보면 그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계단은 사실상 그 역할을 잃어버렸다. 수 백 미터 높이의 초고층 건물이 전 세계에 천여 개가 넘고* 불과 수 초 내로 엘리베이터가 몇십층을 오르내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혹시 당신은 지금 사는 아파트나 근무하는 사무실의 계단실을 얼마나 자주 이용하는가?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걸어 다니지 않는 이상 계단실에 들어가 볼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고층건물의 계단을 법에서 부르는 이름조차 '특별피난계단'이다. '특별히 피난할'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모르고 살아도 될 것..
건축하는 일은 곧 땅에 대한 존중과 이해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설계 작업은 으레 그 땅을 직접 찾아가 두 발로 걸으며, 두 눈으로 면밀하게 살피는 일로 시작된다. 책상 앞에 앉아 종이와 연필을 쥐기 전부터 건축가의 사유라는 것이 이미 시작되는 까닭이다. 내가 건축에 매력을 느끼는 건 자연과 인간이 서로 밀고 당기며 균형을 잡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지경계라는 가상의 선을 땅 위에서 찾아내고 이를 기준으로 집의 향과 배치를 결정하는 일부터가 당장 그렇다. 더욱이 본격적인 설계가 시작되면 중력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대 자연의 힘과 끊임없이 사투를 벌여야 하며, 건물이 높아지면 질수록 바람과도 싸워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공사가 시작되면 더욱 힘겨운 과정의 연속이다. 땅을 파고, 메우고, 벽을 세우고, 붙이고..
리용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마르세유까지 이어지는 A7번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이대로 서너 시간 정도 계속 달리면 생 레미 드 프로방스에 도착한다. 그러고 보니 외국에서 운전하는 게 벌써 인도, 미국, 이탈리아에 이어 네 번째다. 자동차가 네 바퀴로 굴러가는 이치야 만국 공통이지만 그럼에도 나라마다 특유의 운전문화라는 게 있어 매번 긴장하곤 한다. 괜스레 핸들을 잡은 손이 떨려오는 까닭이다. 어느새 리용에서 꽤 멀어지고 이정표에 아비뇽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즈음부터 운전이 한결 편안해졌다. 프랑스의 운전자들은 카메라가 없는 곳에선 120, 130킬로미터까지 시원스럽게 내 달린다. 나 역시 추월차로를 넘나들며 지중해를 향해 엑셀을 힘껏 밟았다. 초반 한 두 개 정도 못 보고 지나친 과속카메라 말고는 군더더기 ..
샤를 드골 국제공항 국내선 환승 터미널에 막 들어섰다. 감각적인 노출 콘크리트 벽체와 유리로 된 천장이 참 아름다웠지만 뜨거운 7월의 햇볕 때문에 어쩐지 후텁지근한 기분이다. 아내는 화장실에 들러 헛구역질을 하고 나왔다. 전날 밤을 꼴딱 새우고 열 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파리에서 아내의 몸상태는 이미 넉다운이었다. 이번 여행의 출발지인 리용에는 아직 도착하지도 못했다. 걱정스러운 마음 가운데 얼마 남지 않은 국내선 환승 시간을 확인하고는 이내 아내의 손을 끌어당겼다. 늦지 않으려면 지금 뛰어야 한다. 이게 다 라 투레트 때문이다. 애초에 이번 휴가를 계획한 이유부터가 라 투레트를 보기 위해서였고, 긴 비행에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국내선을 한 시간이나 더 타야 했던 것도 라 투레트가 파리보다는 리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