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더더기 하나 없이 미끈한 맵시의 '그 다리'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 브리핑 자료에 들어갈 근사한 '다리(bridge)' 이미지를 검색하던 중이었다. 부러질 듯 말듯한 조형, 군더더기 하나 없는 디테일, 중간 기둥 없이 물 위를 가로지르는 담대함 까지! 프랑스 마르세유에 있다는 '그 다리'는 내가 상상하던 이미지와 정말이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덕분에 작업은 무사히 끝났다. 조금 더 정보를 찾아볼까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일상의 고단함에 떠밀려 버렸다. 그렇게 '그 다리'는 한동안 나의 뇌리에서 잊혀 있었다. '그 다리'를 다시 마주친 건 유니테 다비타시옹에서 체크아웃을 마치고 나왔을 때였다. 구글 지도에서 마르세유 항구 근처의 주차할 곳을 찾던 중 어쩐지 낯익은 건물을 발견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건축하는 일은 곧 땅에 대한 존중과 이해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설계 작업은 으레 그 땅을 직접 찾아가 두 발로 걸으며, 두 눈으로 면밀하게 살피는 일로 시작된다. 책상 앞에 앉아 종이와 연필을 쥐기 전부터 건축가의 사유라는 것이 이미 시작되는 까닭이다. 내가 건축에 매력을 느끼는 건 자연과 인간이 서로 밀고 당기며 균형을 잡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지경계라는 가상의 선을 땅 위에서 찾아내고 이를 기준으로 집의 향과 배치를 결정하는 일부터가 당장 그렇다. 더욱이 본격적인 설계가 시작되면 중력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대 자연의 힘과 끊임없이 사투를 벌여야 하며, 건물이 높아지면 질수록 바람과도 싸워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공사가 시작되면 더욱 힘겨운 과정의 연속이다. 땅을 파고, 메우고, 벽을 세우고, 붙이고..
리용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마르세유까지 이어지는 A7번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이대로 서너 시간 정도 계속 달리면 생 레미 드 프로방스에 도착한다. 그러고 보니 외국에서 운전하는 게 벌써 인도, 미국, 이탈리아에 이어 네 번째다. 자동차가 네 바퀴로 굴러가는 이치야 만국 공통이지만 그럼에도 나라마다 특유의 운전문화라는 게 있어 매번 긴장하곤 한다. 괜스레 핸들을 잡은 손이 떨려오는 까닭이다. 어느새 리용에서 꽤 멀어지고 이정표에 아비뇽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즈음부터 운전이 한결 편안해졌다. 프랑스의 운전자들은 카메라가 없는 곳에선 120, 130킬로미터까지 시원스럽게 내 달린다. 나 역시 추월차로를 넘나들며 지중해를 향해 엑셀을 힘껏 밟았다. 초반 한 두 개 정도 못 보고 지나친 과속카메라 말고는 군더더기 ..
샤를 드골 국제공항 국내선 환승 터미널에 막 들어섰다. 감각적인 노출 콘크리트 벽체와 유리로 된 천장이 참 아름다웠지만 뜨거운 7월의 햇볕 때문에 어쩐지 후텁지근한 기분이다. 아내는 화장실에 들러 헛구역질을 하고 나왔다. 전날 밤을 꼴딱 새우고 열 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파리에서 아내의 몸상태는 이미 넉다운이었다. 이번 여행의 출발지인 리용에는 아직 도착하지도 못했다. 걱정스러운 마음 가운데 얼마 남지 않은 국내선 환승 시간을 확인하고는 이내 아내의 손을 끌어당겼다. 늦지 않으려면 지금 뛰어야 한다. 이게 다 라 투레트 때문이다. 애초에 이번 휴가를 계획한 이유부터가 라 투레트를 보기 위해서였고, 긴 비행에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국내선을 한 시간이나 더 타야 했던 것도 라 투레트가 파리보다는 리용에서..
스페인 마드리드에 온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다. 그 긴 시간동안 '여행'이라곤 고작 세 번, 그것도 하루 당일치기로 다녀온게 전부다. 뭔가 이상하다! 교환학생을 오기 전 들었던 얘기들이랑 많이 다르다. 스페인으로 인턴을 하러 왔던 과 선배도 매주 여행다니느라 바빴다고 했고, 스위스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아는 형도 거의 매 주마다 유럽 전역을 쏘다녔다고 자랑처럼 얘기하곤 했었다. 그런데 왜 난 아직 그렇게 여행하지 못하고 있을까. 이 고민의 정답을 찾게해준 여행이 바로 '똘레도(Toledo)'였다. 2007년 유럽 배낭여행이후 처음으로 다시 하는 유럽 여행이자, 교환학생으로 마드리드에 와서 처음으로 떠난 짧은 여행. 여러모로 의미깊었던 똘레도 여행에서 나는 무엇을 깨닫고,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 똘레도는 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