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어디일까. 답답한 마음에 누가 내 지도를 빼았어서 손가락으로 콕 하고 찍어주는 상상도 해본다. 벌써 한 시간 째, 스톤타운 외곽 어느 길가에 서서 언제 올지 모르는 능궤 행 미니버스를 마냥 기다리는 중이다. 오전 보다 더욱 맑아진 하늘 아래로 내 어깨를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이 참 얄밉다. 버스 정류장이라고는 하지만 변변한 그늘 조차 없는 덕분에 시원한 콜라로 더위를 식히는게 전부다. 하지만 그 전에 지루해서 먼저 지칠 노릇이다. 그렇게 한 시간 쯤 더 지났을까. 드디어 저 멀리서 조그만 봉고차가 한대 이쪽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와 멈춰선다. 한 눈에 보기에도 이미 자리가 없는 버스. 뒷 좌석 창문으로 힘겹게 내 배낭을 구겨넣고는, 이내 나 역시 배낭처럼 구겨진 채로 들이밀어 진다. 스톤타운이 인도 바..
'내일 뭐할거야? 스파이스 투어라는게 있는데 아주 싸고 재미있어. 해보지 않을래?' 잔지바르에 도착하자마자 파파시(papasi, 일종의 호객꾼)들이 벌떼처럼 달라붙기 시작한다. 아직 오늘 하루도 뭐 할지 모르겠는데 내일 일정부터 먼저 짜주려고 다들 아우성이다. 쏘리, 노땡큐를 연발해가며 힘겹게 그들을 따돌렸다. 탄자니아의 잔지바르는 과거 중개무역의 요지였다. 따사로운 열대의 기후와 비옥한 토질이 맞물려 많은 향신료와 과일들을 재배하는 대규모 농장이 들어서기도 했고, 그곳에서 혹은 더 먼 곳에서 일을 하기 위한 노예들이 목에 쇠사슬이 묶인 채로 짐짝처럼 팔려 나가기도 했다. 아픈 기억은 어느새 시간이 흘러 '스파이스 투어'라는 가장 인기있는 여행 상품이 되었다. '스파이스'는 향신료, '스파이스 투어'는 ..
간밤에 내내 잠을 설쳤다. 찐득찐득한 땀냄새가 진하게 베어있는 침대커버는 몸이 닿을 때 마다 찰싹 달라붙어 따라 올라오고, 침대를 통째로 감싸는 모기장은 어디가 뚫려있는건지 당최 제 기능을 못한다. 윙윙거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손을 휘젓다 보니 어느새 창밖이 환해지기 시작한다. 아직 전날의 피로가 풀릴리 만무하지만 한번 떠진 눈은 다시 감길 생각을 안한다. 대충 고양이 세수로 눈꼽을 떼고는 조금 이른 시간 밖으로 나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깜깜하지만 15달러인 숙소와 가격이 두배긴 해도 선풍기가 돌아가는 숙소, 그래도 첫날이니 더워서 잠을 못자는 일은 없어야 겠다고 생각해서 비싼 돈을 주고 짐을 풀었건만 밤새도록 돌아가는 발전기 소리때문에 선풍기가 돌고있는지 내가 돌고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
사진을 시작하면서 부터 꼭 한번 써보고 싶었던 가방, 돔케.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인해 그림의 떡일 뿐이었는데 좋은 기회가 되어 사용해볼 수 있게 되었다. 직접 써보니 알겠다. 왜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도 사람들이 이 가방에 열광을 하는건지. 카메라 가방이라는건 사진사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된다. 있는 듯 없는듯 묵묵히 제 자리에서 할일에 최선을 다하는 가방. 어쩌면 돔케야 말로 그런 가방의 본분을 다 하고 있는 가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앞으로 더 오래 사용해봐야 하겠지만 오래두고 쓰면 쓸수록 더 정이들것만 같은, 그래서 친구같이 서로에게 길들여 질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보며 계속 펜을 굴려본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은 누구에게나 한번 쯤은 일탈을 꿈꾸게 만든다. 얼마 후, 인터넷을 기웃거려가며 가장 짜릿한, 하지만 오랜 여운을 남기는 일탈은 뭐가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살며시 펜을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어느새 모니터 앞에 바싹 다가가 앉아 비행기표를 찾아보고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행은 그렇게 일탈을 꿈꾸며 시작된다. 인도를 여행하며 서양에서 온 한 여행자를 만난 적이 있다. 차림새만 봐도 오랜 여행의 연륜이 묻어나는 진짜배기 배낭여행자였다. 이번 여행도 벌써 1년째 계속되는 중이란다. 괜시리 주눅이 들어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왜 그렇게 오랬동안 여행을 하고 있냐고. 돌아온 그의 답은 ..
스무살, 내 인생의 첫 배낭여행지는 유럽이었다. 아직 어린 나의 눈에는 모든 도시가 마냥 신기하고 멋지게 느껴지던 그때였지만 그 어느곳 보다도 모나코에서의 하루는 아직도 잊을수가 없다. 푸른 지중해위에 수평선 위로 높게 돛을 올린 요트의 향연.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닷물보다 더욱 아름다웠고, 시내를 유유히 질주하는 빨간 페라리보다 더욱 역동적이었다. 요트를 타고 길도 이정표도 없는 망망대해를 달리는 상상만으로도 나의 가슴은 쿵쾅거렸다. 바다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을까. 그때부터 나는 늘 요트를 한 척 가지는 꿈을 꾸게 되었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면 언젠간 이룰 수 있는게 '목표'라면, '꿈'은 조금 다르다. 손을 뻗어 잡기에는 아득히 멀리 있지만 마음에 담아두는 것만으로도 가슴뛰게 만들어주는 그것...
오랜 비행때문인지, 시차에 아직 적응을 못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막 잠에서 깬 후배녀석의 표정이 어째 시무룩하다. 오늘 하루쯤은 다르에스살람에서 푹 쉬었으면 좋겠다고 얼굴에 써 있는게 다 보이는데 짧은 일정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싫은 소리가 먼저 입에서 나온다. 지친 몸을 이끌고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조차 없는 찜통같은 공항 한 구석에서 서둘러 입국수속을 마치고 비자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탄자니아는 따로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아갈 필요가 없는 국가다. 여권과 함께 50달러만 내면 즉석에서 비자를 발급해준다. 기다리는 동안 드디어 여유가 좀 생겨서 주변을 둘러본다. 조금은 어색한 공항의 풍경과 쉴새없이 들려오는 낯선 말들, 얼굴에 땀이 흐르는것도 모르고 마냥 신기해서 두리번거려본다. 그런데 어째 오히려 누런 ..
한국서 아프리카까지 가는 길은 멀고 또 멀다. 직항편을 타고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해봐야 이집트의 카이로나 남아공의 케이프 타운 정도가 전부고, 그 외의 지역은 대부분 환승을 통해서 길고 긴 인고의 시간을 거치고 나서야 입성이 허락된다. 문득, 요즘 모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하는 아프리카 우물파기 프로젝트가 생각이 난다. 길고 긴 비행은 후덕한 인상의 튼튼한 체격을 자랑하는 김용만씨조차 지치게 만들 정도였으니... 출국 2시간 전, 일찍부터 공항에 나와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프리카에 간다는게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카타르 항공에서 받은 공짜 티켓이 아니었다면 쉽게 마음먹지도 못했을 아프리카 행이다. 비행기를 타고 가야하는 먼 거리 만큼이나 아직 마음의 거리도 멀기만 하다. 좌석벨트를 착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