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사람들에게 주말은 토요일이 아닌 금요일 부터다. 전에 집을 계약하러 처음 집주인 할머니를 만났을때도, 금요일에는 수업 넣는게 아니라며 피에스따(fiesta)는 목요일 밤부터라고 묻지도 않은 조언을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뭐, 그 말 그대로 내 시간표의 금요일에는 아무런 수업이 없다. 이따금씩 스페인어 수업 보충시간이 금요일로 잡히긴 하지만 원칙상으로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날이다. 이런 금요일이면 보통 빨래, 청소, 밀린 집안일을 하며 여유롭게 보내곤 했다. 지난주 금요일은 유난히 할 일이 없는 날이었다. 조깅이라도 하러 나가면 좋으련만 요새 마드리드는 거의 매일같이 비가 내린다. 전날 느즈막히 할 일을 하다가 잠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 8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늦잠을 더 자볼까 침대에서 ..
오르차에서의 마지막 밤, 우리는 새벽 네시가 넘어서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음식과 물이 맞지 않아 계속 힘들어하는 누나와 그 옆에서 마지막까지 정중히 부탁을 하는 가네쉬.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단 하루만이라도 더 남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길 바라는 가네쉬의 마음을 모르는건 아니지만, 그러기엔 누나의 몸상태가 자꾸만 악화되는게 눈에 보였다. 네시가 조금 넘어서 결국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늦은시간까지 우리와 함께있어준 가네쉬를 돌려보내려 했지만 막무가내다. 결국 가네쉬는 숙소 마당에 있는 해먹에 누웠다. 인도의 여름밤은 밖에서 자도 좋을만큼 덥지만 혹시나 모기가 있을까 걱정되어 우리가 가지고 있던 해충방지 스프레이를 가네쉬에게 건네줬다. 오르..
달그락, 달그락. 한 걸음씩 내 딛을 때 마다 발 끝에 자갈이 채인다. 싱그러운 6월의 녹음이 가득한 벌판 위로 끝없이 이어지는 철길을 따라 그렇게 혼자서 걸어보는 나만의 시간, 이 얼마나 오랜만이던가. 반나절이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는 그야말로 초고속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들이지만, 유난히 '기차'라는 두 글자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늘 낭만과 추억으로 먼저 다가온다. 궤도를 따라서 정해진 길로만 다닐 수 있는 기차. 하지만 그래서 더 아련하기만 하다. 태어나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떠났던 여행의 설레임, 대학교에 입학해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MT를 떠나던 기억, 사랑하는 연인과 오붓하게 앉아 덜컹거리는 차장에 기대어 사랑을 속삭였던 추억. 이 모든 이야기들은 철로 위에 쌓이고 또 쌓여만 간다. 같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