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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더더기 하나 없이 미끈한 맵시의 '그 다리'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 브리핑 자료에 들어갈 근사한 '다리(bridge)' 이미지를 검색하던 중이었다. 부러질 듯 말듯한 조형, 군더더기 하나 없는 디테일, 중간 기둥 없이 물 위를 가로지르는 담대함 까지! 프랑스 마르세유에 있다는 '그 다리'는 내가 상상하던 이미지와 정말이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덕분에 작업은 무사히 끝났다. 조금 더 정보를 찾아볼까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일상의 고단함에 떠밀려 버렸다. 그렇게 '그 다리'는 한동안 나의 뇌리에서 잊혀 있었다.

바로 이 사진이었다! MuCEM © Agnès Mellon

 '그 다리'를 다시 마주친 건 유니테 다비타시옹에서 체크아웃을 마치고 나왔을 때였다. 구글 지도에서 마르세유 항구 근처의 주차할 곳을 찾던 중 어쩐지 낯익은 건물을 발견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지도의 핀을 클릭했다. 그러자 너무나 익숙한 사진들이 스마트폰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 다리'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항구 쪽으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유럽 지중해 문명박물관(Musée des civilisations de l’Europe et de la Méditerranée) 또는 줄여서 뮤셈(MuCEM)이라 불리는 이 특별한 박물관은 지난 2013년에 개관했다. 설계는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Rudy Ricciotti(1952-)가 맡았다. 본격적으로 유럽 지중해 문명의 역사를 다루는 최초의 박물관이자 지방에 위치한 프랑스 최초의 국립 박물관이다. 뒤늦게 자료를 조금 검색해 보니 그리 오래되지 않은 박물관임에도 그 위치나 역사성, 소장량 등에서 한 번 방문해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곳이었다.

마르세유 항구에서 바라본 구도심

항구의 끝자락과 바다가 만나는 자리에 MuCEM이 있다.

  박물관은 마르세유 항구 초입의 거대하고 평평한 간척지 위에 지어졌다. 그 아래로는 거대한 주차장이 있었다. 편안하게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오자 드넓은 푸른 바다와 새하얀 모래밭이 우릴 반겼다. 그 위로 툭 하고 무심하게 올려진 듯한 건물이 바로 '유럽 지중해 문명박물관'이었다. 세장한 다리와 대조를 이루는 거대한 크기의 무표정한 매스가 인상 깊었다.

외벽의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패널을 지지하는 구조물

패널 사이로 바라본 생장 요새의 성벽

외벽의 패턴이 지붕까지 연속되고 있다.

옥상 테라스에서는 곧 훌륭한 차양 역할까지 한다.

 건물의 개성 있는 외관은 독특한 무늬를 가지는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패널의 조합으로 만들어졌다. 짙은 색상의 콘크리트 패널들은 안쪽의 유리 벽으로부터 뻗어 나온 스테인리스 스틸 파이프로 견고하게 지지되고 있었는데 마치 얇은 막처럼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지상층에서부터 순서대로 전시를 감상하고 마지막으로 옥상 테라스에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그 다리' 입구에 도착했다.

다리의 목적은 아주 분명하다. MuCEM © Agnès Mellon

 길이 130m, 폭 4m 남짓의 다리는 박물관의 옥상과 구도심의 '생장 요새(Fort St. Jean)'를 잇는 보행교다. 가느다란 비례의 조형미와 중간 기둥이 없는 구조미가 과연 사진으로 처음 보았던 것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다리로 올라가는 입구 경사로

다리 위로 올라서면 박물관의 지붕 너머로 지중해가 보인다.

생장 요새쪽에서 바라본 다리의 전경

 우리는 박물관에서부터 구도심을 향해 다리를 걸었지만 대부분은 그 반대였다. 사람들은 마르세유 구도심의 대표적 관광지인 '생장 요새'를 본 뒤에 자연스럽게 다리를 건너 박물관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다리가 없었더라면 깎아지는 절벽을 내려와 바다를 건너야만 도달할 수 있는 먼 거리다. 과연 다리는 단순한 형태만큼이나 직관적으로 역사의 '현장'과 '기록'을 최단거리로 연결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곧게 수평으로 뻗은것 같은 착시를 불러 일으킨다.

 건너다보니 다리 전체가 은근한 아치 형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간 지지점 없이 100m가 넘는 거리를 연결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재미있는 건, 다리 위에선 누구나 알아챌  수 있을 아치 형태가 멀리서 찍은 사진만으로는 의외로 눈치채기 쉽지가 않았다. 이러한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노력을 쏟았음이 분명했다.

생장 요새쪽 출구

성벽 위로 다리가 '사뿐하게' 올라타 있다.

 왜 다리 하나에 이토록 공을 들였을까. 그 해답은 반대편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생장 요새의 오래된 성벽으로 연결된 다리의 끝부분에는 그 어떤 구조물이나 군더더기 하나 없었다. 마치 가벼운 깃털이 땅 위에 놓인듯한 모습으로, 아무것도 건드리지도 해치지도 않으며 오래된 건축과 완벽하게 조우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수 백 년의 시간차를 가지는 두 건축이 하나로 연결되면서도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가. 거기에 대한 멋진 해답이 마르세유에 있었다.

명료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이란. MuCEM © Agnès Mellon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가장 명료한 것처럼 신비한 게 없다'라고 말했다. '그 다리'는 명료함이 빚어낸 가장 아름다운 구조물이었다. (계속)


 *젊은 건축가의 프랑스 휴가기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카카오 브런치에서 동시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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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김진영,『박물관이 보여주는 지중해 문명의 미래 : 마르세유의〈유럽 지중해 문명 박물관(MuCEM)을 다녀와서』, e-Journal Homo Migrans Vol.9 (Dec. 2013): 7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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